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농촌 대법제자로 올해 일흔 살에 가깝습니다. 1997년 심각한 폐·심장병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만나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27년간의 파룬따파 수련 길에서 저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정진할 때면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셨고, 깨달음이 벗어났을 때는 깨우쳐 주셨으며, 낙심했을 때는 일으켜 세워주셨고, 넘어졌을 때는 부축해주셨습니다. 사부님의 넓고 깊은 은혜 속에 잠겨 감사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보답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래에 제 수련 경험 일부를 써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리며,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 합니다.
1.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두려움의 물질을 해소시켜 주시다
2008년, 지역 수련생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저도 ‘작은 꽃’(파룬궁 진상 자료 제작소)을 피웠습니다. 기술 수련생이 컴퓨터 관련 지식과 자료 인쇄법을 가르쳐 주어 이 지역 수련생들을 위해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올림픽’ 기간이었고, 우리 마을에는 ‘610’에서 지정한 마을 간부가 밤에는 우리집 문 밖에서 오랫동안 잠복 감시했고, 낮에는 그의 가족들이 몰래 제 행적을 감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는 단호하게 컴퓨터와 프린터를 들여왔습니다. 두려움이 생길 때마다 발정념을 하고 정법 구결을 외웠습니다. 정념이 나오면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사라져 흔적도 없어지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 안정적으로 자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2010년, 성(省) 공안청에서 우리 지역 대법제자들에 대한 대규모 박해를 명령했고, 수십 명의 수련생들이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제 기계는 사악에게 빼앗기지 않았고, 저는 몇 시간 구금되었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생겨 매우 후회스러웠고, 자료를 만들 용기가 없어 컴퓨터와 기계를 모두 다른 수련생에게 보냈습니다. 이 지역 일곱, 여덟 명의 수련생을 위한 자료는 모두 외지 수련생이 공급했습니다. 제 수련은 침체된 상태에 빠졌고 정신이 위축되며 마음이 우울해져 두려움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습니다.
반년 후, 우연한 기회에 우리 지역의 모든 책임자 수련생들이 제 집에 와서 저와 법에서 교류하며, 넘어진 후 다시 일어나 정법 노정 과정을 따라가도록 격려해주었습니다.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관심 속에 저는 정신을 차리고 마침내 일어섰으며, 다시 돌아와 자료를 만들고 진상을 알리고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10여 년 동안, 중공의 이른바 ‘민감한 날’마다 파출소 경찰들이 항상 저를 괴롭혔습니다. 사악의 습격과 압력에 직면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저는 발정념을 하고 법을 외웠습니다. 대법은 제 두려움을 없애고 정념을 굳건하게 해주어 해를 거듭하며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법력으로 제 체내의 두려움이라는 물질을 없애주시고 제게 바른 믿음과 힘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제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고, 당당하고 착실하게 자료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몇 달 전, 저는 수련생에 대한 정이 무거워 세상을 떠난 한 수련생에 대해 슬퍼하며, 법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공간의 사악이 틈을 타 두려움이 생겨, 대법 서적과 기계 및 소모품을 옮겨야 했습니다. 이번 심성 고비를 저는 매우 어렵게 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계속 저를 돌봐주셨고 많은 수련생이 법에서 저와 교류하며 제가 놓지 못하는 집착을 친절하게 지적하고 법리를 바르게 깨닫고 제고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수련생들의 강력한 도움으로 저는 마침내 두려움을 버리고 자료점은 곧 정상 운영을 회복했습니다.
이 몇 년간의 수련에서, 제가 고비를 넘지 못할 때마다 항상 선량한 수련생들이 와서 도와주셨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는 수련의 길을 안정적으로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2.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다
거의 10년 동안 컬러 프린터를 사용해 왔는데, 프린터들이 모두 버려진 오래된 프린터로 기술 수련생이 조립한 것이어서 자주 고장이 났습니다. 책임을 맡은 A 수련생과 기술 수련생이 항상 적시에 와서 수리를 도와주어 수련생들에게 자료를 제때 공급하는 데 차질이 없었습니다.
2023년 가을 수확기 농번기에 제 두 대의 4900, 4800 프린터가 모두 고장 났습니다. 이 지역 협조인 수련생은 농사일이 바빠 기술 수련생과 적시에 연락하지 못했고, 수련생들이 주간지를 보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저는 매우 초조해하며 울었습니다. 결국 메일함으로 도시의 한 협조인 수련생과 연락이 닿았고, 그녀의 조정으로 그녀와 기술 수련생이 추운 가을바람을 무릅쓰고 밤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수련생이 수리 과정에서 부품이 고장 난 것을 발견했고, 그런 부품을 갖고 있지 않아 결국 한 대의 프린터에서 부품을 분해해 다른 프린터에 장착했습니다. 결국 일에 차질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프린터가 오래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 고장 나면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A의 제안과 조카 수련생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곧 6800 신형 프린터를 구입했습니다. 이로써 후환을 해결했습니다.
2024년, 다른 4900 프린터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한 대의 프린터로만 자료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프린터에 고장이 생겼을 때 즉시 수리가 안 되어 저는 다른 자료점 수련생에게 자료 제작을 도와달라고 부탁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계속할 수는 없어 저는 또 한 대의 6800 신형 프린터를 샀습니다.
A는 저를 매우 이해해 주었고 제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하며, 자발적으로 프린터의 가격 반을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어코 750위안(약 15만 원)을 저에게 주려고 했고 저는 일단 받아두었습니다. 그 돈을 자세히 보니 100위안 지폐 두 장과 50위안, 20위안, 10위안, 그리고 5위안, 1위안 지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농민인 A는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며 수입이 제한적이고, 몇 마리 소를 키우고 있지만 최근 몇 년간 중국 경제가 침체되고 축산업이 불경기에 접어들어 소를 키우는 건 계속 손해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 짐작이 갔기에, 저는 받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제가 경제적 수입은 없지만 가정 형편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또한 언니, 딸, 조카 모두 대법 수련인으로 도시에 살며 경제력이 있었습니다. 이 몇 년간 제가 사용하는 컴퓨터, 프린터, CD 레코더에 그들이 많은 돈을 지원해주었고, 제가 자료를 만들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지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을 A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전염병 이후 몇 해 동안, 우리 지역 파룬궁수련생들은 꾸준히 진상을 알리고 사람들을 구하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통상적으로 모든 수련생이 매주 개인당 자료 열 부를 배포합니다. 자료가 준비되면 저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밖에 나가 배포 활동에 참여합니다. 몇몇 수련생들이 “선생님은 자료도 만들고 원고도 쓰느라 바쁘시니 나가서 배포까지 하지 마세요”라고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아무리 분주해도 직접 나가서 배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대법제자로서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책무이며, 최전선에는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주 시장에 가는 기회를 활용해 먼저 진상 자료를 나눠준 후에 장을 봅니다.
우리 지역의 협조인 수련생이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면서, 수련생들의 여러 일을 계속 조율할 사람이 필요했으나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했습니다. 비록 제가 자료 제작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무척 바쁘지만, 진상지폐를 전달할 사람이 필요했기에 자진해서 그 임무를 맡았습니다. 주변의 일흔이 넘은 여성 수련생 한 분이 진상지폐 운영 자금으로 3천 위안을 가져왔지만, 저는 그분의 고령을 고려해 2천 위안만 받았습니다. 언니 수련생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저는 3천 위안을 더해 총 5천 위안으로 진상지폐 자금 순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A는 제가 얼마나 분주한지 잘 이해하고 세심하게 배려해줍니다. 자료점의 소모품과 진상지폐를 모두 직접 제 집까지 배달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조율이 필요한 사안들 중에는 전화로 연락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보안상 전화로 논의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현재 중공 악당은 중국에서 대법제자들에 대한 박해를 계속 진행 중이기에, 대법제자들은 활동할 때 항상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행동하여 사악한 세력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안전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일부 사안은 반드시 대면해 소통해야 합니다. 업무 조율의 편의를 위해 남편이 특별히 고급 전동스쿠터를 사주었습니다. 수련생들을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일이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은 큰 보람과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2024년 7~8월에 중공 악당이 인터넷을 극도로 차단했습니다. 어느 주에는 인터넷에 접속조차 못했는데, 수련생들이 주간지를 보고 자료를 배포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저는 다른 자료점까지 찾아가 자료를 구해왔습니다. 큰비가 내린 뒤라 가는 길에 저지대에 물이 고여 하천처럼 됐던 구간이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 빠르게 달리는 스쿠터가 일으킨 물보라가 높이 튀어오르는 것을 보고서야 물이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시는 위험천만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3. 중생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글을 쓰다
2002년에 공안의 납치를 피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습니다. 언니 수련생의 집에 머무는 동안, 하루는 정공(靜功)을 수련하다가 문득 천목(天目)으로 기품이 넘치고 단아한 용모를 지닌 여신이 제 앞 공중에 떠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놀랍고 기쁘면서도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연공 중에 그녀를 여러 차례 더 보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언니와 주변 수련생들에게 이야기했고, 이 여신의 정체는 우리에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되었습니다.
며칠 후, 가장 친한 수련생 메이(梅)가 고향에서 찾아와 저를 고향으로 데려갔습니다. 수련생 펑(鳳)이 이미 제가 머물 집을 구해 놓았는데, 펑과 처음 대면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순간적으로 알아차렸는데, 바로 그녀가 제 천목으로 보았던 그 여신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신화 이야기 같았습니다.
고향에 정착한 지 며칠 후, 어느 깊은 밤에 달콤한 잠에 빠진 저는 청아한 음악 소리에 깨어났습니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제 원신(元神)이 육체를 떠나 다른 차원으로 날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제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천상을 천천히 날아다니며, 제가 지나가는 곳마다 그곳의 중생들은 모두 발끝으로 서서 제가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그 모습에 제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오랫동안 날아다니며 보니 그 광경이 저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했습니다. 저는 돌아가면 반드시 정진하여 수련하겠다고, 중생들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그리고 나서 제 원신은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 경험을 메이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녀는 이것을 글로 써보라고 격려했습니다. 원고가 완성된 후, 메이는 책임 수련생을 통해 자료점 수련생에게 전달했고 명혜망에 투고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매주 ‘명혜주간(明慧周刊)’을 볼 수 있었는데, 제가 쓴 이 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간지에 게재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주변 수련생들의 격려와 지지에 힘입어, 저는 정기적으로 명혜망에 글을 투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수련생들이 사부님을 따라 정법(正法)한 경험과 수련 체득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가정 자료점을 설립한 이후, 기술 수련생이 저에게 타자, 편집, 명혜망 원고 제출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저는 법을 실증하는 글을 열정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10여 년 동안, 이 지역 중생들은 파룬따파의 불광(佛光)이 널리 비치고 사부님의 한량없는 자비로운 감화 아래, 수련생들의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진상 알리기와 복음 전파 노력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진상을 깨닫고 복을 받은 사례가 끊임없이 나타났습니다. 제 가족들은 수련과 구원 활동을 지지하여 여러 차례 복을 받았고, 이웃들, 마을 주민들, 친척과 친구들, 동창들, 수련생들, 수련생의 가족과 친척들이 진상을 알고 난 후 받은 복, 이 모든 실제 사람들과 실제 사건들이 제가 수집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발견하고 알게 될 때마다, 빠짐없이 수련 이야기로 정성껏 기록하여 명혜망에 전송했습니다.
20년의 세월 속에서, 저는 사부님의 체계적인 안배 아래 글을 써왔습니다. 저는 평생 문학을 사랑했고 학창 시절부터 독서와 작문을 즐겼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이미 저를 인도하고 계셨으며, 예전의 글쓰기 훈련은 지금 법을 실증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당시 박해를 받아 떠돌이 생활을 할 때, 수련생 펑이 자발적으로 저를 위해 거처를 마련해주었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불과 며칠 만에 원신이 육신을 떠나 중생들이 주(主)의 귀환을 기다리는 우주의 진상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저를 인도하여 글쓰기의 문을 열게 하신 것이며, 펜으로 법을 실증하는 시작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심오한 뜻이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늘에 이른 것은 제 영광이자, 제가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와서 이행해야 할 사전(史前)의 위대한 서약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끊임없이 제 지혜를 개발해주셨고, 여러 해 동안 글을 쓸 때마다 머릿속으로 구상한 내용을 펜으로 옮길 때면, 사고가 명석해지고 글이 물 흐르듯 술술 나와 끊임없이 완성되어, 원고를 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최상의 수련 환경을 마련해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랜 세월 글을 써왔고 그로 인해 많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가족들은 결코 방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밖에 나가 저를 대신해 까다로운 일들을 처리해주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바쁠 때는 간단한 식사만으로 허기를 달랬는데, 남편은 불평 한마디 없이 저와 같은 식사로 만족해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엄숙히 맹세합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크신 은혜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이어나가겠습니다. 펜으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며, 사부님께 보답하겠습니다. 법이 인간 세상을 바로잡고 사부님께서 귀환하실 때까지 쉼 없이 쓰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매년 대법의 날과 중국 내 법회 때마다, 수련생들은 저에게 수련생들의 원고를 정리해달라고 부탁했고, 누가 도움을 청하든 저는 기꺼이 도왔습니다. 매년 두 차례 있는 명혜망 원고모집 기간에는 매우 분주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글쓰기에 매진했습니다. 동시에 매주 이 지역 수련생들의 주간지와 자료도 빠짐없이 준비했으며, 매일 최소한의 수면만 취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매일 법 한 강을 공부하는 것을 철저히 지켰고, 아무리 고된 노동과 피로에 시달려도 법공부만큼은 보장했습니다. 저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오직 법공부를 통해서만 대법의 일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사부님의 위대한 정법 과정이 맹렬하게 진척됨에 따라, 저는 이번 생에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온 이유가 중생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생에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될 수 있어 무한한 기쁨을 느낍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지옥의 심연에서 건져올리시고 새 생명을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사부님께서 저를 인간이 신이 되는 황금빛 대도(大道)로 인도해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4/22/4882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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