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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하늘이 푸르러지고 바람이 따뜻해지다

세금 징수원 이야기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본 지역에서 1위라는 성적으로 세무서에 합격했고 면접 후 곧바로 채용됐다. 젊었을 때 야망이 넘쳤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잔인한 현실 앞에서 좌절했다. 나는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전통 교육을 받았는데 현실의 모든 것은 완전히 상반됐다. 나는 왜 그런지 몰랐다. 생계를 위해 소극적으로 세파에 어울렸고 큰 염색항아리 속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그때 나는 출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세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업무를 맡았다. 세무국은 매년 기업 소득세를 결산했다. 이때면 소장은 전체 담당관(19명)을 접대소나 여관과 같은 곳에 모이게 하고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10여 일이나 걸려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물자를 낭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소득세 결산 세법 조례가 많고 계산이 복잡해 그렇게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데이터 조작을 위한 것이다.

나는 이 점을 발견한 후 혼자서 하루면 총괄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최종 데이터’는 일정하기에 나는 거꾸로 추측하는 방법으로 총괄표를 작성했다. 이렇게 하면 빠르기도 하고 목표에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조사국에 있을 때 보고서도 마찬가지로 했다. 사실대로 필요 사항을 작성하면 시 당국은 당신이 틀렸다고 하고 수입에 대한 세금에서 반드시 최소 한 배의 벌금이 있어야 한다고 조사국에 요구했다. 벌금 수입만이 매우 높은 공제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수입을 두 부문으로 나누었다. 한 부분은 정상 수입이고 한 부분은 벌금 수입이었다. 생각해보자. 최저층의 보고서가 이렇게 모두 가짜인데 층층 위로 올라가면 얼마나 큰 허수가 있을까! 바로 이렇게 한 계단씩 속이는 것이다.

그해 시 정부는 각 분야 간의 소위 청렴 정치평가를 진행했다. 우리 국 감사실 주임은 우리에게 인맥이 괜찮은 사업자들을 찾아 세무국을 위해 허위 보고를 하도록 지시했다. 세무국에 대해서는 호평을 올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 국과 경쟁하는 공상관리국에 대해서는 혹평을 하게 했다.

그때 방산국(房產局) 산하의 경공업 시장에서 자영업자 공개입찰을 했는데 어머니도 참여하셨다. 표면적으로는 ‘공개적이고 공정한’ 원칙에 따라 노점 번호 제비뽑기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우리 세무서 동료들은 당첨될 제비에 벌써 표기를 했다. 어머니는 마음에 드는 8번 노점을 뽑으셨다. 각종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관리비, 노점 비용도 내지 않아도 됐다. 어머니의 딸(나)이 세금징수원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은 우리 직장에서는 흔한 일이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중공사당(中共邪黨) 정권은 사람더러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한다. 그것은 정권을 세운 그날부터 시작해 바로 깡패가 일으킨 것이며, 줄곧 모두 거짓말과 가짜로 민중을 속여 왔고, 폭력으로 독재를 했는바, 바로 이렇게 세운 정권이다. 내내 모두 끊임없는 날조와 폭력에 의거해 진압해 왔으며, 매 한 가지 선전과 탄압은 거의 다 모두 거짓이었다. 그것의 정치적 성과가 거짓이고, 그것이 선전한 영웅인물이 거짓이며, 그것이 타격한 나쁜 사람이 거짓이고, 그것이 선전한 적대세력이 거짓이며, 그것이 세운 영웅인물이 거짓이고, 허울 번지르르한 겉모습도 거짓이다. 세인, 특히 중국인은, 갈수록 그것의 면모를 똑똑히 보게 됐다.”[1]

그때 세무서는 각 분야 업무 관리를 했다. 나는 백여 개 요식업 기업을 관리했는데 내 직속상관은 날 찾아와 분국의 ‘회관, 식당’으로 삼을만한 호텔 하나를 찾으라고 했다. 까놓고 말해서 거기 가서 공짜로 먹고 마시자는 것이었고 그 대가로 호텔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다. 이것은 이 분야의 ‘잠재된 규칙’이었다. 국민의 노동 결실을 낭비하는 이런 소위 공무원은(나를 포함해) 이렇게 주지육림에 빠져 세금이 대량 유실됐다. 이런 작은 것 하나에서도 전모를 엿볼 수 있다.

법을 얻다

나는 술좌석에서 술을 마구 마셨기에 몸이 점점 나빠진 데다 남편마저 배신해 나에게 삶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1998년 8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당시 나는 심각한 췌장염을 앓았는데 성 소재지 큰 병원에 한 달 넘게 입원했고 출근할 수 없었으며 늘 피로감이 있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편한 곳이 없었다. 그날 내가 걷다가 쉬다가 하면서 도심 공원에 갔을 때 자상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아가씨, 왜 그래요?” 나는 “병이 났어요”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말했다.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해요!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어요.”

내가 눈을 들고 바라보니 한 무리 활기찬 사람들이 정연하게 줄을 서서 그곳에서 연공을 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대열에 들어갔다. 나중에 내가 ‘전법륜(轉法輪)’을 받쳐 들었을 때 오랜만의 신성한 느낌이 들었다.

법공부 장소에서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모든 약을 다 버렸다. 그때부터 온몸이 병 없이 가벼웠다. 그제야 나는 여자의 배도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리하기 시작해서부터 나는 기능성 자궁출혈이 있었고 나중에는 또 다발성 자궁근종으로 확진됐으며 난소종양 수술도 했었기에 내 배는 항상 아팠다. 그때부터 나는 온몸에 병이었던 불평하던 여자에서 사부님의 제자가 됐으며 파룬궁 수련자가 됐다.

어릴 때부터 커서까지 나는 높은 절벽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아래는 아주 캄캄하고 바닥이 보이지 않았으며 몸은 무게감이 없었다. 매번 깨어난 후 놀라 식은땀이 끊임없이 흘렀다. 이것은 내가 아래로 내려온 과정인 것 같다!

수많은 ‘처음’

수련 전에 나는 관할 업체를 조르지 않고 억류하거나 보복하지 않아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법을 위반하지 않는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처리해줬기에 늘 호평을 받았다. 법공부 후에야 진선인(真·善·忍) 표준의 요구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엄격하게 자신에 대해 요구하기 시작했다. 속담에 ‘강가를 자주 걷는데 어떻게 신발이 젖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말이 있다. 나는 반드시 강가를 자주 걸어도 신발이 젖지 않도록 하겠다고 생각했고 그 후의 많은 ‘처음’이 나타났다.

우리 세무서는 납세자를 관리하는 곳이다. 그때는 지역을 나누어 관리했기에 지역에 따라서 뭐가 있으면 그걸 관리했다. 그래서 명절이면 선물 받는 것이 정상이 됐고 못 이기는 척하다가 나중에는 마음 편히 받았다. 먹고 마시는 것, 물품에서부터 현금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내가 받았을 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들도 내 명의로 받았다. 때로는 누가 준 것인지도 몰랐고 심지어 내 명의로 음식점에 가서 밥 먹고 식비를 내지 않고 도망가라는 농담도 했다.

나는 법을 배운 후 ‘실과 득’의 관계를 알았기에 어지러운 환경에서도 깨끗하게 살리라 남몰래 결심했다. 나부터 시작하고 지금부터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마음 편하게 뇌물을 거절했고, 처음으로 음식점에서 내가 계산했고, 처음으로 물건 사면서 전액을 지불했으며(다른 동료들은 모두 억지로 가지려 했지만 나는 예전에는 듣기 좋게 도매가격으로 산다고 말했음), 처음으로 목욕할 때 표를 사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처음으로 머리를 깎으면 얼마를 내야 하는지 알았으며, 처음으로 버스를 탔고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처음’이 있고 난 뒤 나는 하늘이 푸르러지고 바람이 따뜻해진 것을 발견했다. 더는 방황하지 않았고 인생에 목적지와 목표가 생겼는데 사부님이 계셔서 정말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나는 세무서 각 부서에서 내근, 담당관, 조사, 파일 관리 등 일을 다 해봤기에 업무 평가에서 내 가장 좋은 성적은 전 구(區) 제 4위였다. 이 분야에서 어떻게 ‘탈세하고’, ‘합법적인 조세 회피’로 ‘누세’하는지 등 모든 잠재적 규칙을 손금 보듯 잘 알았기에 솜씨 있게 일을 처리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나를 찾아와 우월한 대우를 해줄 테니 회계 업무를 겸직해달라고 했다. 까놓고 말하면 ‘가짜 장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대법제자다. 첫 번째 글자가 ‘진(眞)’이기에 나는 ‘거짓’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자연스럽게 이익의 유혹을 거절했다.

집안 인테리어를 할 때 건재를 구입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 분국장을 만났다. 분국장은 건재를 가득 실은 차를 보고 물었다. “어디서 산 겁니까? 왜 이 길로 옵니까?” 내가 대답한 후 그는 놀라워하며 말했다. “왜 관할 구역에서 사지 않았나요?” 내가 웃으면서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요”라고 하자 그는 가면서 중얼거렸다. “파룬궁은 정말 다르군!” 나중에 다른 동료에게도 말했다. “○○(내 이름)를 보시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를 어느 위치에 두어도 난 시름 놓을 수 있어요.”

그때 노키아 아날로그 핸드폰이 출시된 지 얼마 안 됐는데 ‘다거다(大哥大: 중국에서 맨 처음 나온 핸드폰)’와 비교하면 작고 예뻐서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런 핸드폰이 하나 있으면 매우 영광이었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건 내가 처음 사용한 핸드폰이었는데 항상 손에 들고 다니며 허세를 부렸다. 그건 건축기업을 조사할 때 그 기업에서 준 것이었다. 법을 얻고 ‘전법륜’을 배운 후 사부님께서 이런 예를 드셨다. “한 수련생이 산동(山東) 모모(某某) 시(市) 편직물공장에 다녔는데,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연마(煉)하도록 가르쳐 준 결과, 전 공장의 정신 면모를 모두 이끌었다. 예전에는 편직물공장의 수건을 늘 자기 집으로 하나씩 가져갔는데, 모든 직원들이 그랬다. 공을 배운 다음에는 그는 가져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집에 가져갔던 것도 도로 가져왔다.”[2] 자신을 대조해보니 부끄러웠다. 작은 수건도 모두 엄격하게 요구해야 했기에 나는 얼른 핸드폰을 돌려줬다.

세무서에서 세수 징수제를 바꾸어 나는 방산국에 파견돼 기존주택 징수 업무를 관리하게 됐는데 더 큰 시험이 왔다. 이 위치에서 1년에 80만~100만 위안(약 1억5천만 원)의 부수입을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책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절차의 미비, 각종 법률 조항의 누락이 있어 계산이 복잡했다. 내 ‘잔머리’로 아무도 모르게 재물을 가로챌 수 있었지만 나는 대법제자이기에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하고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각종 징수 계산 소프트웨어를 제작했고 가능한 한 보완해 많은 인정을 받았다. 이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뇌물을 거절하는 것이다.

방산국의 모 과장은 나를 찾아와 소위 ‘합작’을 하자고 했다. 주택 증서를 내줄 때 절차를 늘리자고 했다. 내 위치는 그 중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는데 돈을 가장 많이 들여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녀의 뜻은 내가 나설 필요 없이 내가 녹색 신호등만 켜주고 이익을 받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완곡하게 사절했다. 많은 사람이 날 찾아와 식사 초대를 하겠다고 했으나 나는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고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사례금을 주려 해도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각양각색 사람이 각종 인맥을 찾아 나에게 뇌물을 주려고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어떤 사람은 감탄하면서 파룬궁이 대단하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정의가 있다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나를 별종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우리 집에 돈이 부족하지 않아서라고 했으며 많은 사람이 나를 바보라고 했다.

서민은 집을 사기 쉽지 않고 주택 증서를 내기는 더 쉽지 않다. 인맥을 찾아 뒷거래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가기 어렵다.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주거니 거절하거니를 하는 것은 보기도 좋지 않아 납세자가 안심하도록 먼저 돈을 받았다가 나중에 다시 돌려주고 진상을 알렸다. 미용 상품을 경영하는 가게에 주택 증서를 내줄 때 내가 2만여 위안 현금을 그의 집에 돌려주러 갔는데 그 여주인은 내 손을 잡고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얼른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이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다음 진상을 알리고 ‘삼퇴’(공산당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시켰다.

내 업무 위치에서 어느 납세자에게 번거로움을 주거나 증서를 내주지 않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나는 상대에게 몇 시간 동안 세법을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서비스홀에서 한 여성이 낮은 소리로 내 어릴 때 별명을 불러 고개를 들고 보니 예전의 이웃집 딸이었다. 여기에는 한 단락의 인연이 있다. 나는 어릴 때 마루가 연결된 집 가장 동쪽에 살았고 그녀 집은 중간에 있었다. 그녀 집 가족은 매일 우리 집을 거쳐서 나가야 했다. 내 기억에 집 경계선 문제로 그녀 가족은 자주 내 어머니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다툼했다. 그때 나는 어렸기에 두려워서 보기만 했다. 그녀들은 나보다 10살 많았는데 온 가족이 내 어머니 한 사람을 욕했고 우리 집 장소를 차지했다.

이제 그녀가 집을 사서 주택 증서를 발급 받으러 온 것이다. 나는 두려워하는 그녀를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지난 일은 모두 지나갔어요. 우리가 이웃이 된 것도 연분이죠. 저는 지금 파룬따파를 수련해요.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원한을 품지 말고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녀는 미심쩍어하며 나에게 밟아야 할 서류를 건네줬다. 절차를 마친 후 내가 그녀를 바래다줄 때 걸어가면서 진상을 알렸다. 그녀는 격동하며 말했다. “탈퇴하겠어요. 저를 도와 공청단을 탈퇴시켜주세요!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뇌물을 주어도 문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 자녀분이 결혼할 때 꼭 저에게 알려주세요.” 매우 고마워하며 멀리 떠나간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이 악연을 해결해주시고 그녀를 구원해주셨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무수히 많다. 번데기가 나비로 변하는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다. 내가 한 이야기는 파룬따파 수련에서 내 심신의 실제 변화 과정이다.

진상 알리기

내가 일하는 세무서 홀에는 감시카메라가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태연하게 여유 시간에 ‘전법륜’을 보고 납세자에게 진상을 알린다.

나는 많은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진상을 알렸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진상을 알리도록 항상 작은 계기를 배치해주셨다. 예를 들면 납세자가 조급하게 세무 등록을 하려 했지만 관련 자료가 불완전해 나는 그에게 먼저 처리하고 나중에 자료를 보완해 가져오라고 했다. 이때 납세자는 나에게 주는 자료에 몇백 위안 돈을 끼워 넣었다. 나는 돈을 돌려주러 갈 때 자연스럽게 진상을 알렸다. “저는 파룬따파 제자입니다.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알려주셨어요.” 많은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모두 ‘삼퇴’했다. 술좌석에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술을 권하면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에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자연스럽게 진상을 알렸다.

‘9평 공산당’이 발표된 후 나는 읽어보고 우리 국장에게 줬다. 국장은 나에게 돌려줄 때 말했다. “내가 이걸 기율검사위원회에 보내면 ○○씨는 문제가 생길 겁니다.” 나는 웃으면서 “국장님은 선량한 사람이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신 거죠”라고 말했다. 국장은 남몰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말했다. “정말 잘 썼습니다!” 국장이 진상을 알고 ‘삼퇴’했기에 나는 많은 교란을 받지 않았다.

직장 동료의 친구에게 일을 처리해주고 선물을 받지 않아 그들은 나를 식사 초대했다. 한 사람은 기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편집자였는데 동시에 모두 ‘삼퇴’했고 모두 진상 듣기를 좋아했다. 전체 과정에서 나 혼자 거침없이 말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셔서 샘물처럼 끊임없이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마지막에 기자는 말했다. “많은 책을 보셨나 봐요! 고금의 일에 정통하시군요. 오늘 저는 식견을 넓혔습니다. 탈퇴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탈퇴하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지금 저는 오로지 한 권의 책만 봐요. 바로 ‘전법륜’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고 모든 의혹을 답할 수 있는 천서(天書)입니다.”

세무서에서 여행을 조직하면 노간부들도 초청한다. 나는 직장의 한 수련생에게 말했다. “이번에 우리는 헛걸음하면 안 돼요. 퇴직한 동료들도 왔어요. 평소 그들을 만나지 못하는데 오늘 마침 이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요.” 수련생은 동의했다. 우리는 저녁밥을 빨리 먹고 노간부가 나오는 족족 알려주자고 약속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직장은 큰 염색항아리 중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다. 사람들 간의 경계심이 모두 매우 강하고 온종일 서로 속이고 속는 속에 있기에 진상을 알릴 때 한 사람씩 단독으로 말하는 것이 효과가 비교적 좋다. 이렇게 음식점에서 노간부 한 명이 나오면 수련생이 손을 흔들어 그를 부르고 우리는 한 사람이 발정념하고 한 사람이 말했다. 이렇게 해서 노간부들은 거의 모두 ‘삼퇴’했다.

한 징수원으로서 연말 업무 보고할 때 나는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이 감히 말하지 못 하는 말을 할 수 있다. “납세자의 돈 한 푼 받지 않았고 납세자가 사준 밥 한 끼 먹지 않았습니다.” 혼란한 세상에서 이 점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되는가? 파룬궁 여기만 정토일 뿐이다.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 나를 지옥에서 건져내고 나를 환락과 취생몽사 중에서 깨워 나는 환골탈태했고 나에게 생명의 영원함을 주셨다. 오로지 세 가지 일을 잘해서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1년 5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18/4257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