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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을 어기지 않고 비바람을 지나오다

글/ 푸젠(福建) 대법제자

[밍후이왕] 비바람 속에서 오늘까지 22년 동안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걸어오면서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전반생을 돌이켜보면 인생의 풍상고초를 겪었지만 이 고덕(高德) 대법을 얻어 비할 바 없이 행복합니다. 대법을 실증하고 스스로 더 정진하며 서약을 실천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제 수련 경과를 쓰려고 합니다.

1. 고난 속에서 성연(聖緣)을 맺다

저는 1998년에 법을 얻은 70대 대법제자입니다. 저는 농촌의 한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초기 중국공산당(중공) 부대를 따라 도시에 들어간 후 마음이 바뀌셨습니다. 그때부터 가정의 의무는커녕 처자식 4명에게 무관심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아동단에 가입해 악당의 명령에 충성했고 투쟁 철학에 열중하셨습니다. 거기에 가정 갈등으로 인한 고뇌로 원래 성격이 과격하던 어머니는 더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매일 우리를 때리고 욕하셨습니다. 저는 1살 때부터 계속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이질, 학질, 천식이 잇따라 이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키가 부뚜막보다도 높지 않을 때부터 밥을 짓고 동생들을 돌보는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지난 세월이 너무 고달파서 정말 돌이켜보기 싫습니다. 우리 자매의 성장 과정에는 빈곤과 무관심뿐이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는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학교 다닐 때만 동급생과 선생님 사이에서 약간의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우리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면서부터 수입도 얻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습니다. 사회도덕이 타락함에 따라 사람들은 정신적 자극을 추구해 저의 액운이 또 한 번 닥쳐 전남편은 저와 이혼하고 우리 모자를 버린 후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루어 운명은 또 한 번 저를 고통의 심연에 밀어 넣었습니다. 저는 정말 인생이 덧없는 것을 느꼈고 몸부림칠 힘이 없었으며 이런 생을 마치고 싶었습니다.

절망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제게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줬습니다. 무신론의 해를 깊게 받았기에 당시 반신반의했지만 그녀의 진심 어린 도움으로 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전법륜’을 한 번 다 본 후 대법의 각종 기적이 끊임없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온 방에 크고 작은 유색 무색의 오색영롱한 파룬이 있어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신(神)이 계셨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제가 겪은 고생은 모두 법을 얻기 위해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속인의 고통은 이로부터 끝났습니다. 사부님의 가사에서 쓰신 것처럼 “나는 알았노라 내가 누구인지 나는 알았노라 신의 길을 힘차게 달려가야 함을”[1] 그리하여 그 후의 비바람 속에서 저는 확고하게 이 서약을 지켰고 대법의 지도와 보호로 정념정행(正念正行) 하면서 신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정진했습니다.

2. 비바람 속에서 정념정행

제가 법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4.25’, ‘7.20’이 잇따라 왔고 대법을 비방하는 여론이 천지를 뒤덮었습니다. 저는 신앙은 잘못이 없고 파룬궁(法輪功)은 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주저 없이 용감하게 법을 수호하는 행렬에 합류했습니다. 두려움이 전혀 없이 수련생들과 함께 사부님 경문을 외웠고 경찰의 발길질과 주먹질도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는 천목으로 큰 파룬이 불법적으로 수감된 곳 하늘에서 집중적으로 도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부님의 격려와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이 훌륭한 장관은 영원히 제 기억에 새겨졌습니다.

이 과정을 돌이켜볼 때 수련생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갓 법을 얻었는데 이런 오성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박해가 시작되기 전에 저는 법과 인연이 있어 대법에 들어온 것임을 의식했고 진정한 신께서 인간 세상에 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반본귀진(返本歸眞)의 길을 끝까지 가리라 생각했습니다! 대법은 이미 제 생명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생명의 승화를 느꼈습니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후 저는 불법적으로 구류됐고 노동교양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악(邪惡)을 정념으로 대했고 서명에 협조하지 않았으며 이성적으로 자신에게 ‘나는 대법의 존엄을 수호하고 있다. 가족 정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기록지에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고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돈이 없어 변호사를 청하지 못했다. 반드시 날 석방해 집에 돌아가게 해야 한다’라고 썼습니다.

구치소에서 저는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어디서든 대법을 널리 알리고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으며 진상을 알리고 주변 사람에게 대법이 좋고 제가 혜택받았으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잘못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고생을 낙으로 여기고 선타후아(先他後我)해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도와줬습니다. 제 열정, 성실함, 인내심은 사람들의 존중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나를 ‘의모(義母)’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번갈아 가며 절 대신해 대법 책을 보관해주었습니다. 특히 감방 대장은 제가 감방에 갓 들어갔을 때 감방을 수색할 때 제 부탁을 받고 대법 책을 보관했고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보관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경찰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줬더니 그녀는 알아듣고 제가 연공하는 것을 간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게 감방을 관리할 것을 제안했는데 저는 거절했습니다.(나중에 저는 제가 감방을 관리했더라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데 더 유리했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구치소의 한 검찰관은 매일 제가 있던 감방을 순찰할 때면 한참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더니 말했습니다. “저는 아주머니가 여기에 앉아있는 것을 볼 때마다 울컥합니다.” 그것은 대법제자가 가진 자비롭고 평화로운 장이 그녀를 감화했기에 그녀의 명백한 일면이 대법제자가 내보낸 선량한 에너지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구치소에 납치됐을 때 저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높이 외쳤고 구치소 규정에 협조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경찰은 저에게 쓴맛을 보여주겠다고 위협하고 감방의 몇몇 용의자를 불러 강제로 제게 죄수복을 입히고 수갑을 채우게 했습니다. 제 머리카락을 잡고 콘크리트 기둥에 박았으며 힘들면 구둣발로 절 힘껏 찼고 죄수에게 걸레로 제 입을 틀어막게 했으며 주먹으로 제 눈을 쳤고 손으로 제 얼굴을 후비고 긁게 했습니다. 저는 발정념하면서 ‘파룬따파하오’를 외쳤습니다. 정념은 악인을 제약해 얼굴에서 피가 흘렀지만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힘들어 가쁜 숨을 쉬었고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는데 제가 여전히 그녀를 직시하면서 굴복하지 않은 것을 보고 약이 바싹 올랐지만 저를 감방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밖에 없었고 감방 대장에게 저를 화장실 문 앞에서 자게 하고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주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다음날 제가 여전히 굴복하지 않자 그녀는 또 제 뺨을 때리고 저를 몇 번 찼지만 원래의 기세는 없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그녀 손에 염주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손이 아파서 그랬던 겁니다. 그녀를 협조했던 죄수들도 모두 응보를 받아 설사, 발열, 두통이 있었습니다.

저는 감방에서 매일 발정념, 연공하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정념정행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사악을 해체해 점차 구치소에는 아무도 저를 감시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를 때린 경찰이 저에게 사과하고 파룬궁은 좋다면서 정부의 방식에 곤혹스러워했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사람을 구하는도다”[2]였습니다. 대법제자는 어디서든 모두 자신이 중생을 구하는 희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고 대법의 위덕을 보여줘야 세인이 대법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잇따라 저는 재차 노동교양소에 보내졌습니다. 저는 어디서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견지해야 하고 태연하게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곳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전향하지 않을 것이고 죄수복을 입지 않지 않을 것이며 감옥 규정을 외우지 않겠습니다.” 9일 동안 작고 어두운 방에 갇혀 있은 후 그녀들도 더는 저를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마침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이해 저는 사부님이 그리웠고 수련생들이 그리웠습니다. 이때 한 경찰이 뛰어 들어와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원만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가 ‘대원만’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잠시 멍해 있다가 얼른 두 손으로 ‘대원만법’을 받고 사부님의 사진을 눈 깜짝하지 않고 보았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보았습니다! 속으로 묵묵히 사부님에게 ‘제자는 반드시 잘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노동교양소에서 전문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관리대대로 보내지는 길에서 속으로 ‘사부님, 수련을 잘한 수련생과 함께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배치해주세요’라고 간청했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대장에게 말했습니다. “파룬궁을 박해하지 마세요!” 그녀는 잠시 멍해지더니 곧 웃었습니다. 제가 간 감방에는 온통 백발인 수련생 한 명과 온순해 보이는 바오자(包夾-수감자로 이뤄진 밀착 감시원)가 있었습니다. 이튿날 이 수련생이 제게 법 외우기를 가르쳤습니다. 일주일 만에 신속하게 ‘홍음’, ‘홍음2’와 경문 몇 편을 외웠습니다. 법의 힘이 있으니 정념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한 번은 대장이 제게 일이 있으니 응접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협조하지 않자 그녀들 7~8명이 저를 응접실로 들고 갔습니다. 응접실에는 몇몇 간부와 전향된 사람이 밖에서 한 사람을 둘러싸고 들어왔습니다. 그녀들은 잇따라 자리를 떠나 맞이하러 갔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대법을 전문 비방하는 소위 전문가 왕 모모임을 알고 냉담하게 무시했습니다. 그는 제 맞은편에 앉아 괴상하게 물었습니다. “왜 나를 구하지 않나요? 나를 자비롭게 여기지 않나요?” 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당신을 구해야 한다고? 대법 사부님께서는 ‘십악한 자를 기다리는 것은 추풍뿐일세’[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다리세요!” 왕 모모는 당황해하며 할 말이 없어 조리 없이 말하고는 총망히 현장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전문 관리대대 대장이 몇몇 감옥경찰과 의료인을 거느리고 갑자기 제 혈압을 쟀습니다. 제가 거부했지만 여전히 강제로 혈압을 쟀는데 고혈압이 220이고 저혈압이 180이었습니다. 그녀들은 절 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저는 여전히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몇 사람을 찾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떠벌렸습니다. 저는 “나에게 숨이 붙어 있는 한 협조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의료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습니다. “가지 않아도 됩니다. 제 약은 무미무색이기에 아주머니에게 먹이기는 쉽습니다.” 저는 나쁜 사람은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한 수련생은 그녀들이 준 소위 영양식품을 먹은 후 정신이 흐릿해졌습니다. 저는 그들이 준 음료수를 마시지 않았고 수돗물을 마셨으며 찐빵을 먹었습니다. 사악은 어찌할 방법이 없자 관심하는 척하면서 위선적으로 말했습니다. “전향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형기를 늘릴 텐데 어떻게 합니까? 언제 나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출가한 셈 치겠습니다. 수련은 어디서든 다 됩니다!”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잘못된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저는 전반적으로 사악한 박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잘못 이해했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형기를 몇 달 넘게 감금됐습니다. 사악은 위험이 나타날까 봐 두려워 감히 저를 더 구금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날 한 의료인이 절 검진했는데 이전의 그 의료인은 제 박해에 가담하다 응보를 받아 계단을 내려갈 때 발을 심하게 삐어 출근할 수 없게 됐다고 했습니다.

3. 진상을 알리고 사람 구하기에 급하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책임입니다. 저는 진상자료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자료점(資料點-자료 만드는 곳)이 아직 곳곳에 있지 않았기에 중생구도에 자료가 특별히 필요했습니다. 현지 수요를 만족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외지 수련생에게도 제공해야 했습니다. 사악의 공포로 가득한 그 시기에 이지적이고 명석해야 자료를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을 외웠습니다. “법공부 태만하지 않으니 변화가 그 중에 있도다”[4].

저는 매일 법공부, 발정념하고 진상 알리기를 견지했으며 맡은 구체적인 항목을 잘했습니다. 동시에 어린 손녀를 돌봐야 했고 아이를 재우고 한밤중에 우유를 먹여야 했습니다. 그때 진상 알리는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고 낮과 밤에 18번 발정념을 했으며 어떤 때는 20번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의지는 정말 놀랍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발정념을 많이 하도록 제자에게 공능 하나를 주셨습니다. 매일 발정념할 때가 되면 손바닥에서 파룬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각이 되면 돌았습니다.(노동교양소에 있을 때 발정념도 이러했습니다.) 정말 사부님께서는 “어떤 대법제자는 사악한 생명을 볼 때 法輪(파룬)과 대법신통을 내보내 사악을 제거했고”[5]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부님은 항상 제자가 정진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점화해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 경문을 발표하셨습니다. “대법제자 진상을 알리려고 입속의 예리한 검 일제히 뿜어내네 썩은귀신의 거짓말을 폭로하나니 다그쳐 구도하고 빨리 알리세”[6] 저는 사명을 깊이 느꼈습니다. 아침에 저는 아이를 안고 산책하면서 채소를 샀는데 목적은 아침 시장에 가서 진상을 알리기 위한 겁니다. 가끔 두려운 마음이 나왔지만 사부님의 법 ‘두려울 것 뭐냐’, ‘사도은’을 외웠고 발정념하면서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점차 약해졌고 정념이 끊임없이 강화되어 두렵다는 물질이 정념정행 중에서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한 번은 내가 이미 진상 자료를 배포했던 마트에 가서 진상 자료를 또 배포했는데 문을 나설 때 붙잡혔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구하고 싶어요. 여러분이 모두 바빠 물품을 정리할 때 볼 수 있도록 자료를 여기에 두었는데 절 붙잡으면 여러분도 구원받지 못해요.” 그 젊은이는 다 듣고 나서 말했습니다. “됐습니다. 가세요. 앞으론 두지 마세요.” 저는 “여러분이 보면 둘 필요가 없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번은 제가 진상자료를 배포했던 아파트에 가서 또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다 배포하고 문 앞에 이르렀을 때 평소 열렸던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저는 느낌이 이상해 경비원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말했습니다. 경비원은 지도자가 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40대 남성이 왔습니다. 그는 절 보더니 말없이 나갔습니다. 이때 경비원이 저에게 아파트에 배포한 자료를 회수해 오라고 했습니다. 제 첫 일념이 자신에게 발정념하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되돌아가 한 곳에 앉아 조용히 발정념을 했습니다. 다음 갑자기 경쾌한 폭죽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절 박해하는 사악을 해체해주셨다는 것을 의식하고 얼른 일어나 문 앞에 갔는데 마침 그 간부가 문밖에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머니 가세요”라고 말했다. 저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문을 나섰습니다. 길에서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저를 쫓아와서 말했습니다. “오늘 아주머니가 연세 있는 것을 보고 보내준 겁니다. 아십니까? 온 국보(국내안정보위국)에서 모두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제야 저는 방금 악당의 소굴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한 번은 큰 거주 지역에 가서 진상 자료를 붙이러 갔습니다. 한동안 붙였을 때 경비원이 보고 외치면서 쫓아왔습니다. 저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주신 신통이 생각났습니다.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소리 지르지 못하게 한다!’ 제가 속으로 이 일념을 내보낸 후 소처럼 건장한 그 경비원이 조용히 그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주지를 떠나간 후 고개를 돌려 보고 웃으면서 속으로 ‘가세요. 이제 쫓아오지 못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그 사람은 돌아서서 조용히 떠났습니다.

장쩌민을 고소한 후 잇따라 주민센터, 파출소 사람이 집에 와 소란을 피웠습니다. ‘문을 열고 진상을 알려야 하나, 아니면 회피하고 보지 말아야 하나?’ 두려운 마음이 저를 모순 속에서 몸부림치게 했습니다. 망설이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쩌면 납치돼 박해받을 수 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진수제자인가? 생사를 내려놓았는가?’ 저는 안으로 찾아 두려운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와 신으로 가는 수련의 길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교란을 중생을 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앞서 두 번 소란을 피웠을 때 나는 여전히 좀 긴장해 말투가 평온하지 못했다.’ 깨달은 후 저는 정말 두려운 마음,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주었으며 삼퇴를 권해 한 명의 주민센터 관계자와 두 명의 간부와 직원이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를 모두 탈퇴했습니다. 집에 우담바라가 피었는데 그것은 사부님께서 절 격려해주신 겁니다.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직 많은 사람 마음과 집착이 있습니다. 꼭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잘 배워 마지막 남은 길을 잘 걷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진선인으로 자신의 일사일념을 가늠하겠습니다. 제 수련 층차가 제한되어 있기에 법에 있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3-나는 누구인가’
[2]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2-법정건곤(法正乾坤)’
[3]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선악이명(善惡已明)’
[4]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2-정진정오(精進正悟)’
[5]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6]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2-빨리 알려라’

 

원문발표: 2021년 4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24/4210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