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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10리 근방 수련생이 공동으로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다

글/ 산둥 농촌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금년 55세로 1999년 ‘7·20’ 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한 수련생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법 공부 팀 수련생의 수련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단체 법 공부

2014년 2월, 10리 안팎의 지역에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이 모여 단체 법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인은 법을 떠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나는 대로 올 수 있는 수련생들이 모여 법 공부를 했는데, 대개 격일로 법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용하지 않고 기거하지 않는 옛날 우리 집이 법공부장이었습니다. 법 공부할 때 집 입구에 5,6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늘 앉아 있는 걸 보고, 도시에서 온 컴퓨터 기술수련생은 그들 노인들이 마음에 놓이지 않는지, “안전한가요?”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들 노인들은 물론이고 우리 마을 사람들 대다수는 모두 대법의 진상을 명백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 법 공부는 많을 때는 15명 내외고 적을 때는 5, 6명이 될 때도 있었지만, 수련생들이 거의 방안을 가득 메울 때가 많았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기 때문에 구들장 바닥이 서늘해서 겨울에는 몹시 춥기 때문에 먼저 온 수련생이 아궁이에 불을 때 방을 덥히는데, 땔감은 직장을 퇴직한 노수련생이 겨울철 대비를 위해 구입해 놓은 석탄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법 공부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각자 자신의 수련정황을 말할 수 있었으며, 법 공부가 끝나면 모두 진상자료를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농촌 사람이라 농사일에 바쁩니다. 사람마다 집집마다 모두 농토가 있고, 또 앵두, 사과, 포도 등 과실수를 재배하기 때문에 농사철이 되면 누구도 한가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농번기가 되면 일손이 모자라 7, 80대 노인들까지 농사일을 거들어야 하는 실정입니다. 일꾼을 사려면 하루 품삯이 100~200위안(한화 일만 오천 원~삼 만원)이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품팔이로 돈을 벌려는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시골여성이라고 해도 하루 품삯으로 밀가루 100근을 구입할 수 있으니, 하루 벌어 1년 양식을 장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번기에는 단체 법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저녁식사를 한 후, 법을 베껴 쓰다가 12시가 되면 발정념을 하고 곧바로 잠을 자야하고,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 연공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일터로 나가야 했습니다. 너무 더울 때는 서늘한 새벽에 일터로 나가 먼저 일을 한 후 해가 떠서 더워지면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연공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위한 목적으로 일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어 법 공부를 하고 연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법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상을 알리다

우리는 법 공부와 연공을 하는 외에 진상을 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시장을 가는 시간을 이용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향진에 5일장이 열리는데, 시장바닥은 동서로 200여 미터나 되고, 시장이 서기만 하면 20여 명의 수련생들이 온통 시장을 누비며 소책자, CD, 달력, 복자(福字) 등의 진상자료를 배포하며 진상을 알립니다. 그러면 중생들은 앞 다투어 진상자료를 가지려고 하는데, 이런 정경을 보면 중생들이 모두 각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평소 진상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수련생들도 자연스럽게 이끌려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현지 주민들은 모두 순박합니다. 그들은 진상자료를 배포하기만 하면 대부분 누구나 받아가고, 직접 삼퇴에 서명하고, 장쩌민을 고발하는 고발장에 서명을 합니다. “장쩌민을 고발한다면 우리가 서명을 하겠다. 장쩌민은 참으로 나쁘다.”고 말했습니다. 시장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릴 때, 듣는 사람도 있고, 듣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그전처럼 악한 면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땐 큰 시장을 가기도 하는데, 그곳은 비록 사람이 많지만 효과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시장이 크다보니 너무 복잡하고 시끄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용히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겨울 농한기가 되면 수련생 2, 3명이 한 조가 되어 각 시골마을을 찾아가서 진상을 알립니다. 다행이 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가 진상을 알리는데, 그럼 효과가 매우 좋습니다. 명백히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시간 또한 충분해서 소통하기가 아주 편리합니다.

한 번은 시장에서 진상을 알릴 때 한 여교사가 진상 듣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녀는 “저는 당원입니다. 성은 챠오(桥) 인데, 다리라는 챠오 입니다. 나는 멍자(孟家)촌 사람인데, 탈퇴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분명하게 거부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날 2명의 수련생이 그 마을에 갔을 때 대문이 열려 있는 한 집을 발견하고 그 집으로 들어갔는데, 바로 그 여교사가 쫓아 나와 수련생을 향해 나가라며 밀어냈습니다. 그래도 수련생들은 시장에서 했던 진상내용을 말하면서, ‘이 여교사를 찾으려고 했어도 못 찾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우리는 지식인의 사고방식으로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을성 있게 진상을 알리면서 발정념과 또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며 계속 진상을 알렸습니다. 1시간 넘게 진상을 일린 후에야 그녀는 명백히 알아들었습니다. 그녀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녀가 어떻게 좋지 않은 말을 했어도 우리의 말은 막히지 않았고 거침이 없었는데, 당시 사부님의 자비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한 생명이 구도 된 것입니다. 진상을 명백하게 알게 된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원래는 이런 일이었군요. 원래는 이런 일이었군요.” 하며 명랑하게 말했습니다.

대문이 열려 있는 또 한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 남자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는 즉시 탈퇴했습니다. 우리가 다음 집을 방문하려고 집을 나오려고 하자, 그 남자가 “아내가 곧 돌아올 것이니 기다려라. 아내는 아주 선량하니 보증하건데 아내도 당장 탈퇴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내를 기다리며 그 남자에게 깊고 폭 넓게 진상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아내가 돌아왔고, 남편이 빨리 말하라고 독촉해서, 우리가 아내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거기서 딱 말이 막혀버렸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아내는 듣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그녀가 선량하다고 한 말을 믿고, 말하기만 하면 통할 것이며 힘들지 않게 탈퇴를 시킬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했던 것이 장애가 된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정념을 발하는 한편 사부님께 지혜를 청하면서, ‘이집 남편이 선량하다고 한 아내를 구해주세요.’ 하고 빌었습니다. 우리는 그녀는 선량한 일면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이 선량하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재빨리 생각을 바꿔 그녀에게 “선량한 것이 좋지 않나요?”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뜻밖에도 “좋지 않다”고 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무리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누구나 선량한 것은 좋다고 인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왜 좋지 않은가요?” 물었습니다.

그녀는 화를 내며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한창 사과를 수확해야할 때 형부가 병이 나는 바람에 남편이 집안일을 제쳐 두고 형부네 집안일을 도와주었는데, 한창 바쁜 농번기에는 누구나 일꾼을 사기가 어렵다는 것을 당신들도 알 것이고, 또 품삯도 아주 비싸다는 것도 알거에요. 그런데 사과를 수확하는 일도 그렇게 수월하지가 않아요. 일에 능숙하지 않으면 더욱 어려워서 허리를 굽혔다 펴는 작업이라 어렵고, 사과가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상품가치가 없기 때문에 1, 2위안이 없어져요. 1등급은 1근에 4원 80전으로 크고 색깔이 고운 것이지요. 수확 후에는 경운기로 실어 날라 출하시켜야 하는데, 몇 시간씩 대기해야하기 때문에 한밤중에 가서 줄을 서야 해요. 그리고 상자마다 분류해야 해요. 1년 동안 땀 흘려 지은 사과농사를 1개월 안에 처리해야하지요. 우리가 일을 거들어 5일만 있으면 일이 끝날 수 있어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 우리 집안일을 하려고 했어요. 사과 출하시기가 끝나면 우리의 것은 때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언니가 우리를 돌아가지 못하게 했어요. 언니는 병원에 입원한 형부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면서 우리를 돌아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러면서 언니는 우리가 돌아가려고 한 것에 불만을 표하며, “사람도 아니다.”고 심한 욕을 했어요. 우리는 밤낮 없이 언니네 일을 해주었지만, 사람이 아니라는 심한 욕을 들었어요. 우리가 늦게 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사과 수매가 끝난 후라 어쩔 수 없이 수확한 사과를 저장고에 보관할 수밖에 없었고, 손에 돈 한 푼 쥐어보지 못했어요. 당신이 말해보세요. 착한 것이 좋아요? 사과수확이 끝난 후 남편은 화가 나기도 하고, 마음이 조급하기도 해서 급기야 병이 났고, 병원비만 3만 위안(한화 507만 원)을 썼어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그렇게 선량했어도 좋은 것을 얻지 못했어요.

우리는 그녀의 긴 설명을 듣고 마침내 그녀의 말뜻을 알게 되어 그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재산상 손해보고 화를 피한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당신이 선량한 사람이기에 재산을 손해 보았어요. 손해를 보고 사람이 상하지 않은 것이 좋은가요?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가 좋은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다 말하지 않은 채 선량한 것이 좋죠. 선량한 것이 좋죠.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말을 산둥 연극의 노랫가락처럼, 저는 알았어요. 하고 길게 곡을 붙여 뽑더니, 이어서 다시 똑 같은 가락으로, 방으로 들어가세요. 하고 곡조를 뽑았습니다. 우리는 그제야 앉을 수 있었고, 또 삼퇴를 말하고, 대법진상을 말했습니다. 그녀는 매우 기분 좋게 우리에게 식사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우리는 얼른 집에 돌아가서 식사준비를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그녀는 우리와 말할 때 줄곧 노랫가락에 맞춰 기분 좋게 말했습니다. 부부는 대문 앞까지 배웅하며 말했습니다. “내년 정월에 꼭 우리 집에 오세요. 제가 대접할게요.” 남편이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저의 아내가 착하다고 했죠. 그렇죠? 내 말이 틀리지 않았죠?” 우리는 함께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후에 우리가 도시에서 진상을 알릴 때 한 수련생에게 우리가 겪었던 착한 부부의 이야기를 하자, 그 수련생이 그 마을이 자기 친정마을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이 우리 친정마을예요. 마을이 800여 호나 되는 아주 큰 마을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지금은 많지 않아요. 그런데 그 착한 부부는 누군지 알 수가 없지만, 우리 그 마을 대다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경극을 할 줄 알아요. 아마 그래서 그 부인이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정말예요.”

우리는 되도록 세 가지 일을 잘 했으며, 두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밍후이왕의 전시판을 보고 도시 수련생에게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만드는 방법을 알고 노년 수련생에게 맡겨서 큰길에 붙였습니다. 70세 전후의 두 수련생이 장쩌민을 고소하는 전시판을 만들었는데, 모두 19개를 만들어서 밤에 삼륜차에 싣고 다니며 붙이고 걸었습니다. 한번은 많은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워 몰던 차가 전복되었습니다. 여자 수련생 두 명이 함께 바닥에 쓰러져,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잠시 후 몇 걸음을 걷고 나서 좋아졌습니다.

어느 날 그녀 둘은 대대사무실 문 위에 커다란 간판이 걸린 것을 보았는데, 간판 내용이 사람을 해치는 “모모모가 좋다”는 붉은 글자였습니다. 그들은 그해 12월 28일 밤 펜치를 들고 가서 그 간판을 뜯어내려 집에 갖고 가서 태워버렸으며, 밤이면 큰 대나무 장대로 큰길 양쪽 전신주에 진상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날이 밝자 어떤 사람이 외쳤습니다. “큰 길이 정말 보기 좋아요. 하룻밤 사이에 변했어요.”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가지해주신 덕분입니다.

우리 법 공부 팀원 3명이 진상 자료점의 작은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는 삼퇴 명단을 스스로 인터넷에 올렸으며, 자료는 시간이 있을 때 많이 장만해서 농번기에는 적게 만들어도 되게 했습니다. 기술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도시수련생의 도움을 받았으며, 차츰 의지하는 마음을 내려놓아 도시수련생의 부담을 덜게 했습니다.

옛 수련생을 되찾아오다

우리 법 공부 팀은 비교적 수련생이 많은 편이며, 10리 안팎 8개 촌에 모두 수련생이 있습니다. 우리 촌에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병업으로 다리를 절며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S 수련생과 함께 그 수련생을 찾아갔습니다. 원래 그 집 수련생 부부는 이전에 모두 파룬궁(法輪功)을 착실하게 수련했습니다. 남편이 갓 법을 얻었을 때 등이 온통 마른버짐이었지만 연공을 시작한 몇 분 만에 등에 ‘쏴’하는 느낌이 내려갔는데, 연공이 끝난 후 몸의 마른버짐이 모두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박해가 시작되면서 그들 부부는 연공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S수련생과 함께 그들 부부를 찾아가서 법으로 인도하자, 아내는 단번에 오성이 올라와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하겠다고 했고, 고소장을 인터넷에 발표한 지 얼마 후 그녀의 아픈 다리는 깨끗이 나아서 지팡이도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법 공부 팀에 참가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살고 있는 촌의 다른 수련생과 진상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선도로 얼마 되지 않아 남편도 법 공부와 연공을 다시 시작했고, 삼륜차로 우리와 함께 묘회(庙会)까지 가서 진상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한 명은 우리 마을 사람인데, 사악한 공산당이 박해를 하기 전에 법을 배웠지만, 박해가 시작되자 두려운 마음에 수련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다가 근래 들어 우리가 단체법공부를 하는 것을 보고 환경이 좋아진 것으로 여겨 법 공부를 하기 시작했지만, 밍후이주간에서 아직도 박해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보도를 본 후 다시 수련을 중단했습니다. 2015년 장쩌민을 고소하는 열풍이 시작된 후 제가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장쩌민을 고소하는 중요성을 말해주면서, 연공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를 알고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박해 전 연공을 한 후 심장병이 좋아져, 밤이면 편히 잠잘 수 있었고, 식사도 잘 할 수 있으며, 눈두덩도 붓지 않고 온 몸에 힘이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두려워 수련을 중단하자, 그녀의 심장병이 다시 나빠지고 원래 갖고 있었던 모든 질병이 다시 악화되어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입술도 자색으로 변해 눈도 뜨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녀 얼굴은 그녀의 말대로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몸이 그렇게 좋지 않다면, 그러면 이것을(장쩌민 고소장) 쓰자고 권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글을 써보지 않아 쓸 줄 모른다고 해서, 저는 그녀를 도와 고소장을 작성해 정리 후 읽어주자, 그녀는 옳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성명과 날인을 한 후 정식으로 장쩌민을 고소하자고 했습니다. 그녀는 정중히 자신의 이름을 적고 날인했습니다. 고소장을 보낸 후 3일째 되던 날 그녀가 우리 집을 찾아와서 기뻐하며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어요. 온 몸의 병이 다 좋아졌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약도 먹지 않고 건강해진 모습을 본 그녀의 딸이, “대법은 참으로 신기하다.”면서 집에서 법 공부와 연공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딸도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잘 걷지 못했고 심장도 좋지 못했는데, 법 공부를 한 며칠 후 몸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딸이 저를 찾아와서 집에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딸은 이미 ‘전법륜(轉法輪)’을 세 번 읽었으며, 사부님께서는 사람을 구도하러 오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끝까지 대법을 굳게 수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연공을 한 후 신체는 명확히 호전되었습니다. 계단을 단숨에 3층까지 올라가도 심장이 괜찮게 되었습니다. 딸의 좋아진 모습을 보게 된 이웃도 연공을 따라하며 ‘전법륜(轉法輪)’을 구입했다고 했습니다.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을 하다

2016년 7월, 81세의 여성 수련생이 도시의 아들집에서 기거하다가 돌아왔는데, 그녀는 몇 년 동안 도시에서 CD를 배포하는 등 많은 사람을 구하는 진상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녀는 다리가 많이 아프고, 법 공부를 하면 졸립고, 발정념을 하면 손이 넘어갔는데, 연공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원래 문맹자라 연공을 마치고 나면 두 손으로 ‘전법륜(轉法輪)’을 받들고 사부님 법신께 빌었습니다. “사부님, 저는 이 한 평생 글자를 모르지만, 다음 생엔 반드시 글자를 알겠습니다.”

수련생인 그녀의 작은딸이 그런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가 법 공부를 하고 싶다면 이번 생에 어머니가 글자를 알게 해드리겠다고 말하고, ‘논어’를 한 글자 한 글자씩, 한 단락을 읽어주고, 다음 날 딸은 출근했습니다. 그녀는 논어의 작은 한 단락을 계속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사부님 가지로 현재는 모든 대법 책을 다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대법에 대한 마음도 매우 굳건했습니다. 몇 해 전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사악한 경찰에게 여러 번 붙잡혔지만 모두 정념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정확하지 못한 상태가 나타났는데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녀의 딸이 그날 오후 어머니를 우리 법 공부 팀에 참여케 했으며, 밤에 그녀가 한 노년 수련생의 집에 묵게 했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속인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면 그녀를 찾아가서 누가 옳고 그른지 판결해달라는 교란을 받게 되어 법 공부를 잘 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가부좌를 하면 견디지 못하게 아팠고, 이 일에서 구세력이 빈틈을 타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안으로 찾았습니다. 자기와 무관한 남의 일에 간섭하는 마음을 찾았고, 집 앞 작은 채소밭에 대한 집착을 찾았습니다. 보기에는 작은 일 같지만, 무슨 일이든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부님 가지 하에 강대한 발정념으로 이 노 수련생에 대한 사악의 박해와 정신적 속박을 해체했습니다. 우리가 15분간 발정념을 한 후 그녀의 기분은 상쾌해졌습니다. 이튿날 그녀는 도시의 중생구도를 위해 돌아갔습니다.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다.”였습니다.

한 수련생으로부터 한 외지 남자 수련생이 작년에 뇌졸중 병업 가상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다른 수련생과 함께 삼륜차로 3, 40km를 달려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말할 때 침을 흘리며 발음도 똑똑치 못했습니다. 수련을 거의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어떻게 할까? 오직 법 공부를 해야 이 관을 벗어날 수 있는데?’ 그의 아내도 수련생이어서 아내에게 우리 집 법 공부 팀에 참여해서 법 공부할 것을 권했습니다. 발음은 정확하지 못했어도 그런대로 따라 읽었습니다. 서툴게 늦게 읽었어도 우리는 기다렸습니다. 수련생 모두 천천히 읽으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간 그들 부부가 오지 않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시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들 부부는 속인 TV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 문화는 틈만 있으면 파고들기에 절대로 구세력의 꼬임에 빠져들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스스로 법 공부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집 법 공부 팀에 합류하라고 했고, 그의 병업 현상이 사라진 후에야 그들은 스스로 법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곳 현지 수련생들은, 우리는 그를 움직이지 못했는데 당신이 그를 움직여 도와준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자비다.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수련 중에서는 항상 청성한 두뇌를 유지해야 하며, 절대로 하늘의 공적을 훔쳐 자기의 공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수련생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원문발표: 2018년 4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4/13/3640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