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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이 해외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문제에 대한 사고

글/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3년 2월 25일] 최근 밍후이왕에서 “동수의 체류문제에서 생각하게 된 것…”이라는 한편의 글을 읽었다.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중국국적 수련생들이 난민신청을 했는데 약간의 생각이 있어 오늘 문장을 통하여 교류하려 한다.

우리나라에는 상당한 숫자의 중국국적 수련생들이 난민신청을 했다. 적지 않은 수련생은 난민신청 혹은 난민신청을 하지 않는 이일에 대하여 부동한 생각과 태도를 지니고 있다. 정법시기에 우리는 반드시 개인 수련 속에서 형성된 각종 관념을 버리고 정법에 서서 중생구도의 각도에서 난민문제를 인식해야 한다고 여긴다.

“동수의 체류문제에서 생각하게 된 것…”이라는 글에서 수련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적 난민’ 은 국제인권규약에 근거하여 산생된 보호규약이며 이는 국경을 나누지 않고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국제적 인도주의 정신을 체현하고 있다. 이 규약의 권리에 비록 ‘정치’라는 단어가 있으나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미상에서의 ‘정치’와 같지 않은 것이다. 또 절대로 그 무슨 사치스러운 대우도 아니다. 단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권리이며 특별체류도 역시 이러한 것이다. 이 한 점으로부터 볼 때 대법제자는 충분히 이 조약을 적용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이는 정정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며 응당한 권리이다. 마치 우리가 국제사회의 정치가들의 지지를 필요로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그들에게 법을 널리 알리고 진상을 말하는 것이며 “정치를 한다”거나 혹은 “국외세력과 결탁”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난민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에서 난민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난민’이란 “인종·종교·국적·특정사회집단에의 소속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이유 있는 공포 때문에 자국국적 밖에 있는 자 및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 때문에 자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 자” 이다.

장씨깡패집단은 3년간 파룬궁에 대하여 전례 없는 박해를 진행했다. 이 한 점만으로도 중국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해외 수련생은 모두 난민의 권리와 자격이 있으며 정정당당하게 중국 이외의 국제 인권규약 협약국에서 난민을 신청하여 본국에 돌아가서 박해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만일 한 해외의 국가에서 대법제자의 난민을 허가하고 난민의 신분을 부여했다면 이 국가에서 공개적으로 중국에서 발생한 이번의 박해는 인권규약을 어긴 것임을 승인하는 것이다. 모두 장씨깡패집단이 중국인권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떠들어대는 것에 귀뺨을 때리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난민을 신청한 대법제자의 성공한 사례는 모두 사악에 대한 타격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감금된 수련생을 구출하려 하고 다가올 위험에 처한 수련생을 도와주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나라 수련생은 쟁론이 있는 것 같다. 일부 수련생은 난민을 신청한 수련생의 동기가 불순하며, 어떤 수련생은 사심으로 해외에 남아 대법을 이용하여 해외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근본 더는 갈 길이 없는 정황에서 난민을 신청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신청이 불허된 수련생 혹은 장기적으로 허가되지 않은 수련생의 일체 고난은 모두 그들이 애초에 신청한 목적이 불순하며 자신의 집착으로 조성된 것으로 오직 그들 자신이 법에서 제고하여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고 여겼다.

물론 현재 많은 속인이 대법의 명의로 해외에서 난민을 신청하여 자신의 자사적인 목적을 도모하려 한다. 속인에 대하여 잠시 말하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주변의 수련생에 대하여 가장 똑똑히 알고 있다. 그들과 우리는 모두 해외에서 진상을 똑똑히 알려 중생구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미 난민을 신청한 수련생 다수는 모두 다른 선택이 없어서였다. 일부는 그들의 학생비자 기한이 만료되었고, 일부는 기타 원인이 있었다. 이러한 수련생은 우리나라에서도 생활하기 아주 힘들다. 난민 신분이 허가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일을 할 수 없으며 정부에서 제공하는 지원금으로 생활해야 한다. 정부의 일부 규정으로 어떤 수련생은 심지어 이러한 지원금마저도 신청할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난민이 허가되기 전에는 출국도 할 수 없다. 때문에 출국하여 홍법도 할 수 없다. 어떤 수련생은 대법의 일에 필요한 많은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이것은 구세력이 우리가 대법 일을 하는 것에 심한 교란을 배치한 것이며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박해를 인식해야 한다. 그들이 이러저러한 집착이 있다고 해서 그들을 도와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응당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며,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이다(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다. 해외의 수련생 숫자가 제한이 있으며 사부님께서 전에 말씀하셨다. “국외 수련생은 되도록 중국 대륙에 가지 말도록 하라. 왜냐하면 사악을 폭로하는데 당신이 수요 되기 때문이다(북미 대호구 법회에서의 설법).” 또한 이러한 수련생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련생이 중국으로 강제 추방당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기세 드높게 구원활동을 할 것인가? 또 왜 꼭 수련생이 산과 물이 다하여 갈 길이 없게 되어야 비로소 난민을 신청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는가? 속인 이 층차에 있어서 UN도 그렇게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이 구세력의 생각에 부합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있는 힘껏 우리의 동수들을 도와 그들의 신분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들도 반드시 하나의 좋은 환경에서 대법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요구는 단지 이 국가에서 합법적인 신분을 요구할 뿐이다.

우리 대법제자는 속인사회에서 표현은 모두 응당 아름답고 복분이 있는 것이다. 사상경지에서든지 생활 상태에서든지 모두 선량하고, 상화롭고, 관용을 베풀 뿐만 아니라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가정이 화목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유력하게 대법을 실증할 수 있다. 하지만 구세력은 정법수련을 모르며 정법수련의 이치를 모른다. 그것들이 알고 있는 일체는 모두 개인 수련의 이치이며 고험을 이유로 우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신체를 소멸하는 것으로 대법의 형상을 파괴하려 하며 중생이 구도되는 것을 저애하고 있다. 그것들의 박해는 우리로 하여금 전심전의로 정법의 세인구도 일을 할 수 없게 하며 지체되는 것은 중생이 구도되는 보귀한 시간이다. 박해 당한 것은 많은 구도될 생명들이다.

또 수련생이 확실히 국외에 남으려는 생각이 있고 만일 그것이 집착으로 인한 것이라면 닦아서 버려야 한다. 절대 다른 극단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한 대법제자가 어디에 남으려고 결정하면 그곳의 중생의 명백한 일면은 아주 기뻐하며 그들은 대법제자가 법을 그들에게 전해줄 것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이 구도될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불학회가 그 나라에 설립되는 것을 중요시하는가? 불학회 설립은 그곳의 수련생에게 합법적인 수련환경을 마련해 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대법이 그 나라에 발을 붙였음을 표명하며 그 나라의 미래에 모두 아주 깊은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도리로 이 나라에서 대법제자를 받아들였다면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좋은 기초를 다진 것이 아니겠는가? 단지 우리 일부 수련생이 아직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책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우리가 단체 법공부와 교류를 통하여 공동으로 제고할 수 있다.

동수사이에 속인의 마음으로 수련생이 대법을 이용한다고 비평하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동수의 그러한 ‘집착’은 근본적으로 동수의 본질이 아니며 동수 자신도 근본적으로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닦아 버려야 하며 정념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들을 동수자신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런 ‘집착’에 있어서 너의 것, 나의 것이라 할 것 없이 바로 사악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구실이고, 구세력이 대법제자의 정체를 파괴하는 구실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많은 중국 수련생들은 남들이 대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며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모두 대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일부 수련생이 난민을 신청할 초기에 완전하게 순정한 목적을 품은 것이 아니더라도 그들도 역시 끊임없이 제고하고 있으며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려하고 있다. 그들의 집착 혹은 불순한 생각도 구세력이 그들을 박해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어떤 수련생은 수련생이 난민을 신청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으나 법리상에도 똑똑하지 못하다. 나는 전에 한 수련생이 다른 수련생을 권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은 당신이 돌아갔을 때 그렇게 큰 난을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 만일 당신이 넘기지 못하면 떨어질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 층차까지 수련되었다고 생각되고 감당할 수 있다면 당신은 곧 돌아가도록 하라.” 나는 이것은 크게 잘못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법공부가 깊지 못한 수련생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근본 상 이번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법시기 수련에서 고난을 감당하기 위한 것으로 변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부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대법제자가 대법이 박해를 받을 때, 여러분이 우선 생각한 것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었으며 생각한 것은 어떻게 하면 대법을 실증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북미 순회 설법).” 이것이야말로 법이 우리에 대한 진정한 요구이다. 우리는 인간세상에서 고생을 겪고 소업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며 자신을 수련하고 제고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다. 바로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온 것이다. 구세력은 구우주의 이치에 근거하여 박해 속에서 위덕을 수립시키려 하고 있다. 사부님의 요구는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는 가운데서 중생을 구도하고 우리더러 위덕을 수립하게 하셨다. 우리는 절대로 구세력과 사악이 정법과 우리의 제고에 어떠한 방조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의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아직 개인 수련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동시에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우리 대법제자는 응당 이런 하나의 정념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우리 대법은 어디로 가든지 모두 환영받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정법의 주동적인 위치에 놓아야 한다. “큰 연극에 누가 풍류의 주인이던가, 오로지 중생을 위해 한 번 출연하노라(홍진세상으로 내려오다).”, “대법제자는 이미 중생이 구원될 수 있는 더는 없는 유일한 희망으로 되었다(정념).” 우리는 정법노정에서 오늘과 같은 역사단계에 왔으며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아 연출을 잘하여 사명을 완성해야 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그럼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매체에 진상을 똑똑히 알릴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식이 아닌가? 왜 수련생들이 협조가 필요하고 그들 개인의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가를 알리는 동시에 역시 우리나라 정부에 중국에서 어떤 일이 발생되고 있는지 알리는 기회인 것이다.

이것 또한 우리 정부가 대법에 대한 지지를 밝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만일 그들이 곤경에 처한 대법제자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그들은 자신을 위하여 하나의 좋은 미래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한 대법입자를 사악의 손에 보낸다면 그들은 바로 대법에 가장 나쁜 일을 한 것으로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손실을 미봉하려면 아주 힘든 것이다. 마치 독일, 아이슬란드, 캄보디아, 미얀마에서 발생한 일과 같이 우리의 대법에 아주 큰 손실을 가져다줬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자신의 정부를 선거로 선출했고 정부는 국민을 대표한다. 한 정부가 대법의 홍전이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면에서 장××집단이 파룬궁 수련자 단체의 연공의 자유와 생활방식의 선택을 탄압한 것을 반대하지 않으며 심지어 중국의 독재자의 위협으로 잘못된 일을 한다면 이러한 정부는 정의와 공정의 입장을 상실한 것이다. 국민이 그들을 선출한 것은 그들이 자신을 대표하여 선량한 목소리와 의지를 나타낼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왜 “민의를 대표”한다고 하였겠는가? 만일 정면에서 국민을 대표할 수 없다면 그들은 곧 어디로 가야 하겠는가? 그들을 선출한 국민은 또 어떠하겠는가?

이 국가와 민족이 정법에서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가는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닌가? 물론 우리는 우선 마음속으로 상대방이 대법을 응당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곤란에 봉착하면 그것은 우리가 진상을 똑바로 알리지 못한 것이다. 오직 똑똑히 알려야만 그들은 곧 대법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은 것은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것이다.

만일 정부가 중국에서 발생한 무서운 일에 대하여 거리가 너무 멀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이 나라의 수련생을 도와주는 것이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미 몇 명 수련생의 신청은 이민국에서 기각 당했다. 만일 우리가 즉시 행동을 개시하지 못하면 그들은 아주 가능하게 중국에 강제추방당해야 한다. 최근 밍후이왕에 사부님께서 평어를 쓰신 수련생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수련생이 참여하든 하지 않던 매 사람의 일사일념은 모두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킨다.”,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정념으로 봐야 하며 그래야만 힘의 상쇄가 산생되지 않는다.”

그들의 사건이 정확히 처리되지 못한 부분적 원인은 그들이 우리나라의 언어와 법률절차를 모르기 때문이며 그들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특히 우리나라 수련생의 도움이 필요하다. 발정념을 하는 외에 우리는 이러한 수련생의 난민신청문제로 우리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쓸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에게 정부에 편지를 쓸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우리는 가히 정부에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나는 본국의 국민으로서 우리부에서 반드시 이러한 신청자에 한하여 체류를 허가하고 그들의 난민신분을 허가해야 하는 지를 쓸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중국 및 해외의 정황을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정부는 가능하게 진정으로 장xx정부의 사악함을 인식할 수 있다.

정부에서 기각당한 거의 모든 수련생의 기각이유에서 동일한 한마디를 찾아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돌아가더라도 당신은 박해를 당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 이는 우리가 더욱 더 깊이 있고 세밀하게 정부에 진상을 똑똑히 알려야 할 것을 설명한다. 나는 매 수련생은 모두 합당한 이유로 일단 중국 수련생이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왜 그들이 박해당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우리는 가히 그러한 수련생들이 개인의 사실로 참고할 만한 편지를 정부의 장관에게 쓸 수 있다.

우리는 더는 이것은 수련생의 개인적인 문제로 여기고 난민을 신청한 수련생한테 차가운 태도를 보이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묻지도 않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꼭 그러한 곤경에 처한 동수와 가족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도움을 줘야 하며 단 한마디 관심어린 말이라도 좋다. 그들은 곧 대법의 무궁한 힘을 느낄 것이며 그들이 더는 고독함을 느끼지 말게 해야 한다. 동시에 그들이 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강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것은 대법 속에서 수련해낸 자비와 정체의식이기 때문이다! 이 자체도 역시 주동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난민신청을 한 수련생 각도로부터 이 일을 말해보자.

내가 느끼건대 난민 신청을 한 각 수련생마다 모두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하나의 문제를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왜 난민 신청을 하는가?” 진정으로 법에 서서 이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난민 신청을 한 많은 수련생들과 교류하여 보았는데, 대다수 수련생은 이 문제를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수련생이 신청하라고 해서 신청을 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난민신청을 하는 것은 체면이 서는 일도 아닌데, 누가 난민이 되기를 원하겠는가? 라고 여긴다. 게다가 다른 동수들이 이해해 주지 않아 자신마저 정정당당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이번에 신청하면 어느 때 가서야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이러고 보면 돌아가자 해도 안 되고 남아 있자 해도 달갑지 않아, 마음으로는 고통을 느끼면서 자신이 너무도 많은 것을 잃은 것 같고, 속인의 마음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될 때로 되라, 자연스러움에 맡기겠다, 만약 이민국에서 허가하지 않으면 난 돌아가면 그만이니 뭐 대단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일에서 상당히 피동적이고, 심지어 소극적인 정서를 지녔으므로 진상 알리기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은 언어, 법률을 모두 모르고 있지만 어쨌든 도와주려는 수련생이 있으므로 이 일에 별로 마음을 쓰지 않고 있다.

상술한 여러 가지 상황에 견주어 우리는 난민신청을 한 이런 수련생들과 함께 법 공부하고 함께 이 일에 대한 인식을 법에서 교류하였다.

한 수련생의 신청은 기각 당했고, 이의신청 후에도 역시 신청이 기각 당하여(이 가운데는 속인 이면으로서는 다 상상해 낼 수도 없는 잘못된 일들이 발생하였고, 그 수련생은 언어도 통하지 않았다), 이미 이민국에서는 강제송환을 준비 중에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였고, 그녀의 남편도 개의치 않아했거니와 동수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으며, 아내를 데리고 귀국하면 그만인데 두려워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였고, 더는 시끄럽게 소송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 대법제자에 대해 말한다면 귀국하는데 확실히 무슨 두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정법수련은 개인 수련의 생사를 내려놓는 틀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가 생사를 내려놓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간의 생사현상을 꿰뚫어 본 것으로서, 길고 긴 생명의 세월 속에서의 이 짧은 한 순간의 고통의 시달림을 대수로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제자의 몸은 법을 실증하는데 쓰는 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하던 모두 중생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난민신청이란 이 길을 선택한 이상, 마땅히 중생에게 책임지는 태도로 잘 걸어가야 할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대법이 세간에서 박해받을 때, 대법의 한 입자로서의 우리는 속인의 이 한 면에서, 우리는 기타 국가에서 보호를 찾고 있다. 가령 이 나라에서 보는 척도 안 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겠는가? 우리가 미봉할 수 없는 손해를 빚어낼 것이다. 우리는 대법을 대표하고 있는바, 바로 이렇게 위대하다.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진정으로 그들을 배려하고, 진정 마음으로 중생에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려주어 그들이 대법을 지지하게 하는가 하는데 있다.

한 수련생은 난민을 신청한 후 자신은 그 나라의 운명과 한데 연결되었다고 여기면서 강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였다. 우리 매 대법제자는 모두 마땅히 자신을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시끄럽다고 함부로 그 중생을 버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마땅히 앞 다투어 상소하여 이 일을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일로 삼고 전면적으로 해야 한다.

또 하나의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난민 신청을 한 수련생 중에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진정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심이 아주 강하여 다른 수련생이 도와줄 것이니 자신은 별로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 무더기나 되는 자료를 수집하여 이민국에 제출하였지만 자신마저 무슨 내용인지 다 모르고 있다. 당신은 정부에 진상자료를 통하여 담화를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당신은 남에게 무엇을 말해 줄 수 있는가, 자신이 우선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난민신청은 이민국에서 면담을 해야 한다. 신청자 자신이 가서 난민 신청을 하는 이유를 말할 것을 필요로 하는데, 대법이 무엇이며, 장사악의 본질을 똑바로 말 할 수 있는데 이는 이민국에 대법을 실증하고 대법의 풍모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어떤 수련생은 면담할 때 5장 공법의 이름마저 다 똑바로 말하지 못하며, 어떤 사람은 4.25 전의 원인과 후과도 말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자신이 이민국에 제출한 진술서마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런 것들은 당신이 가짜라는 느낌을 이민국 관리에게 주게 된다. 이는 참답게 책임지는 태도인가? 이렇게 하면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가?

어떤 수련생은 시작부터 이 일을 정부에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몹시 중시 하였으며, 세심하고도 열심히 매 한 부 자료를 준비하였다. 면담 시, 자신이 주동적으로 이민국 관리에게 끌려가지 않고 이야기 하듯 대법은 무엇이며, 장xx이 어떻게 한 걸음 한 걸음씩 박해를 해왔고 다시 공포를 해외에까지 뻗쳤는가, 왜 이 번 박해가 있게 되었는가? 수많은 사실을 예로 들어 장의 국가 공포주의, 眞(쩐)·善(싼)·忍(런)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에 대해 지금 바로 ‘종족말살“의 죄행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만약 한 사람이 중공집권자의 반 인류 정책, 군체 말살정책을 방임한다면 그건 스스로 그 후과를 맛볼 것이며, 단지 조만간의 일일 뿐이란 것을 알려 주었다. 이민국 관리는 흥미진진하게 들으면서 우리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정말 훌륭하게 분석한다고 여겼다. 얼마 후 그의 난민신청은 허가되었다. 그러므로 난민신청자 누구나 모두 참답게 책임지고 이 진상을 투철하게 말해야 한다. 나는 다른 나라의 수련생들도 난민신청을 한 수련생들을 조직하여 난민에 대한 인식을 교류하여 어떻게 이 진상을 똑바로 알리겠는가를 알게 해야 한다.

또 하나가 있는데 반드시 안에서 찾아야 하는 바, 한 가지 상태가 늘 존재할 때면 자신의 어느 방면에 누락이 있어 구세력이 틈을 타고 틀어오게 한 것이 아닌지 자신의 마음을 검사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한 수련생의 난민신청이 늘 비준되지 않으니 본국 정부가 어떠어떠하다고 원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 아니며, 모두 밖에서 찾는 것으로서 어떠한 실질적인 작용도 일으키지 못한다. 내가 요해한 바로는 난민이 허가되기 전, 수련생에게 아직도 속인마음이 있는 탓으로 아마 확정되지 않음으로 하여 가져오게 되는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는 대법제자이므로 정념을 유지해 해야 하며, 얼마나 간고하던 간에 우리는 모두 자신을 고려하지 말고 대법과 중생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결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늘 이민국에서 허가해 주겠는가 하는 것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지나치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바로 집착하여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또 경문에서 말씀 하셨다. “어떠한 마음도 내려놓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며,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체를 하노라면, 일체가 곧 그 속에 있다[도항(導航) – 워싱턴 DC 국제법회에서의 설법].”

동시에 날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 하는 것을 견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공부를 잘하는 것은 강대한 정념을 유지하고, 매 대법제자마다 정법 중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보증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정법(正法) 중에서 내가 보건대 여러분이 아주 잘 할 때는 모두 여러분이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한 것이 조금 차 할 때는 내가 보건대 그것은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2002년 보스턴 법회 설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하는 것은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며”(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난민이라는 이 비교적 민감한 문제에서 우리는 반드시 잘해야 하고 우리의 길을 바르게 걸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한 부의 우주대법은 부동한 역사시기의 부동한 층차의 중생에게 부동한 시기의 부동한 층차에서 문제가 나타났을 때의 대조를 남겨놓은 것이며, 생명에게 부동한 역사시기에 나타난 각종각양(各種各樣)의 상황을 대하는 것을 남겨놓는다.”(2001년 캐나다 법회에서의 설법)이기 때문이다.

개인 수준의 제한으로 단지 우리나라의 상황을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하며, 참고로 드릴 뿐이다. 법리에 부합되지 않는 곳은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이 있기를 기다린다. 우리 자신이 대법 중에서 수련해 낸 지혜로 더 많고 많은 생명을 구도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문장발표: 2003년 2월 25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3/2/25/452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