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76세로, 1950년생입니다. 어머니는 자녀가 많았고, 저를 낳을 때 젖도 없었던 데다 제가 병까지 들었습니다. 게다가 점쟁이가 저 때문에 어머니가 해를 입는다고 했답니다. 양부 댁은 형편이 넉넉하고 사람이 매우 착실하고 성실했지만 자녀가 없었기에, 친어머니는 결국 저를 그 집에 보냈습니다.
고난으로 점철된 전반생
제가 16~17세 되던 해,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중공 악당이 군중을 부추겨 서로 싸우게 했습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무식해서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따라갔는데, 누군가를 타도하려 하면 거짓 죄명을 씌웠습니다. 사실 전부 거짓말이었습니다. 당시 권력자들은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봐 두려워하며, 양아버지를 살아있는 표적 삼아 비판 투쟁을 가했습니다. 양어머니는 보다가 화날까 봐 몸을 피하셨고, 저는 밤낮없이 아버지 곁에서 비판 투쟁을 함께 견디며 공포와 정신적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때 저는 밤마다 울며 원망했습니다. 마을 권력자들은 제가 아버지를 고발하지 않는다며 저를 ‘황제파’, ‘황제의 개’라고 낙인찍었습니다. 마을의 압박 속에 저는 정신적으로 심한 충격을 받아 멍하니 넋을 잃고 말았고, 소식을 들은 친오빠, 언니가 찾아와 마음 아파하며 저를 데려갔습니다. 좀 쉬다가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 20대가 됐습니다. 친어머니가 저의 혼처를 정해주었는데, 상대는 군 입대자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군에 입대하면 ‘정치적 면모가 좋다’고들 했으니, 저는 ‘이제 비판 투쟁을 당하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그 집은 형제자매가 7~8명으로 생활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결혼 후 아들을 둘 낳았습니다. 큰아들은 17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남방으로 입대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4살 되던 해, 남편의 트랜스아미나제 수치가 매우 높다는 진단이 나왔고 어서 치료받으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덜렁대는 사람이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정을 돌보지 않으며 술 마시고 담배 피우기를 좋아했습니다. 갖은 설득 끝에 제가 자전거로 남편을 태우고 50리 밖 병원까지 갔더니, 의사가 더 늦었으면 간 질환으로 진행됐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댁 어른들 말로는 시아버지 위로 3대 조상 모두 60세를 넘기지 못하고 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병은 3개월간의 주사와 약으로 겨우 안정됐지만, 그 후부터 힘들고 고된 일, 걱정거리는 모두 저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 시절 굶주림과 과로가 겹쳐 제 몸무게는 35kg밖에 안 됐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묵은 병은 낫지 않는데 새 병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자궁 종양이 발견됐는데 양쪽 모두 6.5cm나 됐고, 이후 여러 가지 질병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현(縣)에 가서 입원 수술로 종양을 제거했지만 다른 병들은 치료비가 없었습니다.
큰아들이 제대한 뒤, 생계를 위해 우리는 현으로 나가 분식집을 열었습니다. 규모를 점점 키워 나중에는 식당으로 바꿨습니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해보니 지금 사회가 얼마나 혼탁한지 알게 됐습니다. 부패와 타락이 만연해 마치 저승에 온 것 같았고, 날마다 온갖 부류의 인간들을 대면해야 했습니다. 심기가 뒤틀리는 데다 과로와 스트레스까지 겹쳐 성질이 점점 사나워졌고, 모든 게 짜증스럽고 울고만 싶었습니다. 이러다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사스가 유행하던 해에 음식점들이 영업을 중단하게 됐고, 우리도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대법을 얻어 새사람이 되다
2003년, 먼 곳에 사는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방직 공장에서 알게 된 사이로, 그때 저는 20세 안팎이었는데, 같은 고향 사람이기도 해서 우리는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 친구를 보자마자 저는 “드디어 신선을 만났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사부님이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방 안 가득 약이 놓인 것을 본 친구는 그날 저녁 바로 저에게 연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이 세상에 좋은 게 뭐가 있겠어, 다 거짓말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체면상 마지못해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날 밤 잠이 막 들었을 때, 심한 몸살 감기에 걸린 것처럼 뼈마디가 다 아프고, 화장실도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습니다. 변을 보니 검은 핏덩이와 고름 같은 것이 나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거 책에서 읽은 것과 똑같잖아(대법을 수련하면 사부님이 몸을 정화해 주신다)! 사부님이 나를 돌봐 주시는구나, 어쩜 이리 빠르시지!’ 이튿날 머리가 어지럽고, 목소리가 쉬고, 코 양쪽이 뛰고, 온몸의 맥박이 쉼 없이 뛰었습니다. 감격에 겨워 남편에게 울며 말했습니다. “이제 신이 우리를 돌봐 주시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흥분하는 걸 보고 남편도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법을 얻은 지 3개월 만에 온몸의 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30대 때의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노래하고 싶고 춤추고 싶었으며 살이 오르고 얼굴에 혈색이 돌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56~57세였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며 음식을 나르면서도 가볍게 뛸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기분이 좋아 병도 다 나았고, 화도 내지 않고 무엇을 봐도 흐뭇했습니다. 남편도 매우 기뻐하며 제가 하는 말이라면 다 찬성했습니다. 스쿠터에 저를 태우고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스티커를 붙이며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하면 평안합니다’라고 알렸습니다. 우리 둘이 하룻밤에 300여 장의 자료를 배포하고, 70여 장의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진상스티커를 새 전봇대에 붙이면 새 전봇대는 흰색이라 매끄럽고 깨끗해서 반듯하고 단단히 붙었습니다. 나중에 악당들도 도저히 다 처리하지 못해 포기했습니다. 진상스티커는 무려 7개월 이상 붙어 있었는데, 글자는 보여도 테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배포량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2006년에는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자료 포인트를 만들었고, 저도 ‘작은 꽃’(자료 제작소)을 피웠습니다. 농촌에서 자라 마우스조차 쓸 줄 몰랐던 저는 처음에 조금 겁이 났지만,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간청했더니 사부님이 누군가를 보내 가르쳐 주셨고, 저는 사람을 구하는 모든 기술을 익히게 됐습니다.
사부님의 곁에서 보호받다
법에 부합하게 행동하고 상대를 자비롭게 대하면,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반드시 무사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몸소 체험했습니다.
한번은 저와 한 수련생이 자전거를 타고 나가 스티커를 붙이고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30리쯤 가다가 저는 집에 돌아고 싶어졌는데, 수련생이 “몇 리만 더 가면 우리집이에요, 조금만 참아요”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갑자기 50세가량의 건장한 남자가 제 자전거 뒤 짐받이를 붙잡고 놓지 않으면서 제 천 가방을 잡아당기며 안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제 가방 안에는 ‘천멸중공(天滅中共-하늘이 중국공산당을 멸한다)’ 스티커 몇 장과 진상 CD 몇 장, 그리고 집 열쇠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 손으로 자전거를 잡고, 다른 손으로 힘껏 가방을 끌어당겼습니다.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파출소로 갑시다! 당신들이 도처에 붙여 놨잖아! 우리는 연결망이 있어서 발견하면 바로 잡아요, 위에서 그렇게 규정해 놨어요!” 저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습니다. “가죠 뭐.”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어? 왜 당신은 겁도 안 나요? 그 젊은 사람은 울었는데.”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 사부님이 이타적으로, 먼저 남을 생각하라고 가르치셨어요! 저 자신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 구하러 다니는 생각뿐이에요!” 그 남자는 제 자비로운 마음에 감동해 손을 늦췄습니다. 저는 얼른 말했습니다. “어, 왜 이렇게 얼굴이 낯이 익으세요? 우리 식당에 밥 드시러 오신 분 아닌가요!” 어느 식당이냐고 묻기에 저는 말했습니다. “현에 체인점이 여러 군데 있어요, 다음에 다시 만나면 제가 제대로 한번 대접할게요.” 그 남자의 험악한 기색이 사라지더니 말했습니다. “나는 마을 이장인데, 다른 사람이었으면 절대 못 빠져나갔을 거요!” 저는 크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장님! 제가 가진 구원의 CD 3장을 전부 이장님께 드릴게요, 이 CD를 얻으신 이장님은 정말 복 받으신 거예요!” 저는 재빨리 자전거에 오르며 가면서 외쳤습니다. “저 동생도 꼭 놓아주세요! 우리는 여러분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에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러면서 손까지 흔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정법위, 파출소 직원들이 찾아와 진상을 듣다
2021년 7월의 어느 날,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안방에서 주간지를 인쇄하고 있는데, 마을 서기가 갑자기 와서 문을 열라고 했습니다. 당시 우리 호적은 현 근처 마을에 있었고 마을 서기와 사이가 좋았습니다. 저는 서기 댁에 자주 진상 책자를 갖다 드렸습니다. 서기가 말했습니다. “파출소장하고 정법위 서기가 잠시 후에 오는데, 빨리 정리 좀 하세요. 연공 안 하겠다고 서명 좀 하라고요.” 저는 바로 말했습니다. “안 돼요! 절대 서명 안 해요! 저 지금 목욕 중이라고 하세요!” 서기가 “알겠어요” 하고 떠났습니다. 저는 즉시 인쇄물을 치우고 대법서적을 숨긴 뒤,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실에 앉아 기다리며 사부님께 간청하면서 해야 할 말을 준비했습니다.
잠시 후 마을 서기가 세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그들을 거실 소파에 앉혔습니다. 파출소장은 류(劉) 씨이고, 정법위 서기는 저우(周) 씨였으며, 소장은 다른 한 사람에게 저를 촬영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류 소장이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왜 이 기공을 수련합니까?” 저는 간단히 이야기했습니다. “어린 시절 집안 성분이 나빠 비판 투쟁을 당하고, 굶주리고, 남편이 병약해 혼자 일하다 온몸이 병들었는데, 이 공법이 병을 낫게 하는 데 탁월하다는 말을 듣고 해봤더니 정말로 얼마 안 돼서 모든 병이 나았으며, 남편의 지지를 받으며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72세인데 몸이 매우 건강합니다.” 이어서 저는 말했습니다. “이 공법은 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지켜줄 뿐 아니라, 책에서는 도덕성을 높이고, 어떤 일이 생기면 안으로 찾고, 처사에 있어 먼저 남을 배려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책에서는 ‘때려도 반격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더 높은 기준으로 자신을 다잡고,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보통 사람 중의 좋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진실하고 선량하고 인내할 수 있는 좋은 사람, ‘진선인(眞·善·忍)’은 우주의 특성으로, 우주의 특성에 따라 자신을 다잡지 않으면 병도 낫지 않습니다. 이 공법은 가정에도 나라에도 수많은 이로움만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습니다.”
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계속 듣고 있기에, 저는 더욱 열심히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번은 제가 승용차에 치인 적이 있는데, 꽤 심하게 부딪혀 타고 있던 스쿠터가 그 큰 차 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충격으로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운전자는 겁에 질려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있었고, 동승한 여자 한 명이 내려와 저를 부축하며 “어떠세요, 아주머니?” 하고 물었습니다. 정신이 조금 들자 ‘전법륜(轉法輪)’에 적힌 말이 떠올랐습니다. 운전자가 과속하기는 했지만 고의로 사람을 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례였습니다. 제 상황이 책에 나오는 것과 꼭 같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얼른 말했습니다. “저 괜찮아요, 그냥 가세요! 사부님이 지켜주시니까 틀림없이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머리 오른쪽 위에 작은 사발만 한 혹이 생겨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제 전화번호를 달라기에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구경꾼이 많이 몰렸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이번엔 운전자가 좋은 사람 만났네.” 저는 구경꾼들과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여러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는 것만 꼭 기억하세요!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사고에서 죽지 않으면 마비됐을 거예요!”
저는 입이 열 개라도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다 말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마지막에는 선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있다는 얘기만 이어갔습니다. 결국 그들은 더위를 못 이겨했고, 마을 서기가 가자고 했습니다. 정법위 서기와 파출소장은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공법은 좋은 거네요, 집에서만 수련하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마세요.”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우리 사부님 말씀이 기준이지, 당신들 말은 기준이 아니에요!’
나중에 아들이 저를 겁줬습니다. “그들이 이미 어머니 뒤를 밟고 있다고 하니 조심하세요!” 하지만 저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날도 거의 빠지지 않고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고 자료도 나눠줬습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법공부를 잘하고, 정념을 잘 발하고, 지혜롭게 행동해서 구세력에게 빈틈을 주지 말자.’
저는 또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 허약한 몸으로 진작 여러 번 죽었을 것이라고요. 사부님은 가장 큰 희생으로 금쪽같은 귀한 시간을 만들어 불초한 제자들에게 주시고, 저희를 위해 짊어지고 걱정하시며, 시시각각 제자들을 일깨우고 돌봐 주십니다. 사부님의 은혜는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스승님의 은혜는 넓고 깊어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글을 써 본 적도 없고 학력도 낮아, 대법의 신기함을 완전히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수련생들끼리 교류할 때 하는 말처럼, 금쪽같은 이 마지막 시간에 빨리 부족한 곳을 보완하고, 모든 집착과 속인의 마음을 빨리 내려놓으며, 법에 있지 않은 일체의 생각을 닦아 없애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처럼 그다지 정진하지 못한 수련생들이 어서 빨리 정진의 발걸음을 내디뎌, 우리 손에 손 잡고 함께 천국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21/5097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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