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대법을 수련한 지 27년이 됐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되돌아보니 대법이 이기적이고 겁 많던 평범한 사람을 관용적이고 너그러우며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선량한 생명으로 만들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1. 정법위 간부가 진상을 알고 삼퇴하다
제 친척 중 한 명은 어느 직할시 구 정법위 간부입니다. 그녀의 아버지와 친척 대부분이 체제 내 고위 관리이고, 그녀의 남편 역시 중공(중국공산당) 고위 관리입니다. 겉보기에는 무한한 영광을 누리는 것 같지만, 해외에서 생활하는 그녀의 딸은 매우 이성적이어서 체제 내 공산당 고위 관리인 부모를 경멸합니다. 정법위라는 이 박해 사슬에 있으면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 가담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친척의 이름도 악인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녀가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온 가족이 승승장구할 때 그녀의 남편이 갑자기 횡사한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이 일은 그녀에게 너무나 큰 타격이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녀의 집에 손님으로 갔습니다. 안에 들어가서 거실에 거의 1미터에 달하는 마오(毛) 마귀의 석고상이 놓여 있고 벽에는 마오의 서예 인쇄물이 많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마오 마귀를 매우 숭배하고 있었고 집안 전체에 음기가 아주 짙었습니다. 저는 마오의 사악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가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많은 중국인을 죽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제 외할머니도 울다가 기절하셨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가 위대한 구세주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마오쩌둥 주치의 회고록’이라는 책을 보고서야 그가 얼마나 잔인하고 사악한지 알게 됐습니다. 이런 죽은 사람의 동상을 집에 두는 것은 매우 불길합니다. 그의 시신이 식기도 전에 그의 아내는 체포돼 결국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아내조차 보호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당신들을 보호하겠습니까?”
그녀는 교양과 주관이 있는 사람으로 자부심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진상을 말하자 그녀는 많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평소 진상을 알리기 위해 모아둔 자료들이 있었고, 또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가 있어 저에게 지혜가 끊임없이 샘솟았습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공산당은 봉건 미신을 비판하지만 과거 마오쩌둥이 베이징에 입성할 날짜는 도사를 청해 정한 것이며, 중공 고위층의 많은 사람이 불확실한 일에 직면하면 도사나 승려를 찾아가 점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매년 절에서 첫 향을 피우고 첫 종을 치는 사람들은 모두 성이나 부급 고위 관리들인데 그 목적은 무사히 계속 승진하고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신에게 비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벽 3시까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체계적으로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었고, 제가 몸이 안 좋아 수련에 들어오게 됐으며, 수련 후 건강해지고 도덕성이 향상돼 정직하게 사업을 하게 된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의 자비로 그녀의 선념을 일깨웠습니다. 결국 그녀는 파룬궁이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지 무슨 사교(邪敎)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저는 대법이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진 성황도 말해주었습니다. 진상을 이해한 후 그녀는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에 동의했고, 미국에 가서 션윈 공연을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무엇보다 먼저 집안에 있는 마오 마귀의 동상과 서예 등을 전부 치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동의했고 남편의 죽음이 어쩌면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우선 마오 마귀의 동상을 가져가 폐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마귀 동상을 안고 차에 탔을 때, 갑자기 우리 가족 모두가 음산한 사악한 기운을 느꼈고, 저는 그것이 다른 공간의 사악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가족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가족이 차를 몰아 멀지 않은 산으로 갔고 저는 그 마귀 동상을 작은 산골짜기에 세게 내동댕이쳤습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마귀 동상은 산산조각이 났고 완전히 박살 났습니다. 차를 몰고 돌아올 때 사악이 또 해코지하려 해서 아이의 손이 차 문에 끼었지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자 아이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친척은 진상을 알고 나서 나쁜 일을 하려 하지 않았고, 어쩌면 암암리에 대법제자를 보호했는지 이후 복을 받았습니다. 친척은 은퇴한 후 미국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척의 한 여동생은 그녀만큼 운이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박해받을 때 그녀는 딸과 함께 우리를 ‘×교’라고 조롱했습니다. 지금 그녀와 그녀 딸의 결말은 비참합니다. 남편은 병으로 죽고 그녀 자신은 암에 걸렸으며 딸의 결혼 생활은 불행합니다. 이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법을 선하게 대하면 복을 받고, 선악에는 응보가 따르며 인과응보의 철칙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2. 어머니가 대법을 믿어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다
우리집은 가정교육이 매우 엄격했고 어머니는 아주 전통적이셔서 저희가 어릴 때부터 덕을 중시하고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어머니는 수련하지 않으셨지만 대법 사부님과 대법을 매우 믿으셨고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셨습니다. 전염병 기간에 팔순을 앞둔 어머니가 심각한 심장병 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응급 이송됐습니다. 의사는 병세가 위중한 것이 아니면 병원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의사가 검진한 후 말했습니다. “어르신은 전신 장기가 쇠약해 언제든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연세가 이리 많으시니 노인분을 고생시키면서 중환자실에 보내지 말고 편안히 가시게 하세요.”
가족들은 수의를 샀고 고향의 친척들도 달려와 마지막 인사를 할 준비를 했습니다. 어머니도 뒷일을 당부하고 유언장을 썼으며 변호사도 와서 공증을 했습니다. 모두가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밤에 저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실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머니 침대 곁에 앉아 밤새도록 함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다음 날 제가 집에 돌아와 쉬고 있을 때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외할머니가 사부님 설법을 듣고 싶어 하세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사부님을 떠올리실 만큼 어머니의 정념이 정말 강했습니다. 반면 저는 병원에서 사부님 설법을 틀기가 겁나서 망설였습니다. 의사가 어머니가 설법을 듣는 것을 보고 웃으며 물었습니다. “할머니, 무얼 듣고 계세요?” 가족이 대답했습니다. “어르신이 좋아하셔서요. 이걸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신대요.” 의사는 미소를 짓고 떠났습니다. 다음 날 제가 어머니 곁에 갔을 때 막 잠에서 깨신 어머니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방금 어떤 사람이 둥실둥실 다가와 당신 심장 부위를 손으로 몇 번 돌리며 수술을 해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잠꼬대를 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 후 어머니는 정말 위험에서 벗어나셨습니다. 나중에 저는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어머니를 수술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사부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건강을 회복하신 후 점점 더 젊어지셨고 안근무력증까지 나으셨습니다. 원래 어머니는 눈꺼풀이 처져서 가끔 무언가를 보려면 직접 눈꺼풀을 위로 당겨야 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회춘’이라는 말이 그저 사자성어일 뿐이라 여겼는데, 어머니를 통해 이 말이 진실이며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게 됐습니다. 저는 종종 어머니의 이 사례를 들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립니다.
지금 어머니는 매일 정성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시고 사부님 설법도 들으십니다. 어머니 좌우에는 노인용 휴대폰이 하나씩 있는데 한쪽에는 대법 노래가 들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사부님 설법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보기에 기품이 넘치고 우아하십니다.
이 자리에서 제자는 대법에 대한 감사함을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으며, 중생을 위해 자비롭게 구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3. 남편이 중형을 선고받은 이후의 경험
약 10년 전, 남편은 진상을 알리다 납치돼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경험은 다시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걱정, 근심, 두려움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법제자이기에 제가 짊어진 사명을 알았고, 수련생을 구출하는 동시에 자신을 내려놓고 이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며 인연 있는 중생을 구하려 했습니다. 동료 수련생들은 금빛처럼 빛나며 저를 감동하게 했습니다.
당시 아이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경찰의 광기 어린 가택수색과 폭력적인 납치는 아이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고, 아이는 경찰만 보면 제게 “경찰이 사람을 때리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방과 후에 집에 가기를 꺼렸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두렵고 집이 너무 적막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이런 큰 난을 맞닥뜨린 저는 남편을 구출하고 변호사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해서 사업을 돌볼 여력이 없었고 때로는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 엄마도 잡혀간 것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저 역시 압박감을 견디며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고 미행을 당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차량 두 대와 5~6명의 수상한 사람들이 연인, 대학생, 고객으로 위장해 제 정보를 캐내려고 미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상황 앞에서도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마음을 다잡으며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제 처지를 동정한 한 수련생이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이 모든 걸 감당하냐고 묻자 저는 대답했습니다. “저에게는 사부님이 계시잖아요!”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에 감사하게도 우리는 하나의 구출팀을 구성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정의로운 변호사를 만날 때 동행해주었고, 어떤 수련생은 파출소나 민원 사무소에 청원하러 갈 때 함께 가주었으며, 어떤 수련생은 후속 보도를 맡았습니다. 또 어떤 수련생은 구치소 근처에서 발정념을 할 때 동행해주고 변호사가 남편을 접견할 수 있도록 연락을 도왔습니다. 남편 고향의 친척들도 많은 서명을 받아 남편의 무죄 석방을 요구해주었습니다. 대가족 전체가 자신의 위치를 잘 잡아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꾸었습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사악은 불법적인 재판을 열었고 남편은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후 구치소에 남편의 영치금을 넣으러 갔다가 남편이 이미 감옥으로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은 악명 높은 검은 소굴인데 남편이 폭력적인 전향과 고문 박해를 어떻게 감당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불법 판결을 받은 후 구치소에서는 면회를 허락했습니다. 한번은 구치소 면회 때 A 수련생이 아무런 신분증도 가져가지 않았는데 기적처럼 저와 함께 남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 발정념을 할 때 A가 천목으로 보니 A 자신과 제 남편이 크고 높은 두 명의 신이 돼 각자 큰 칼을 쥐고 등을 맞댄 채 요괴를 베고 마귀를 없애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고 A가 제 가족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남편에게 큰 격려가 됐고 사부님께서 저희를 격려해주신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저는 매달 감옥에 가서 남편을 면회할 수 있었는데, 감옥이 집에서 너무 멀고 교통이 불편해서 한 번 다녀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면회 갈 때 우리가 자가용으로 함께 갈게요”라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수련생들은 그 말을 지켰고, 5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신성한 약속을 실천하며 제가 남편을 맞이해 검은 소굴을 걸어 나올 때까지 내내 저와 동행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매번 검은 소굴에 가서 남편을 면회하고 발정념을 할 때마다 다른 공간의 사악은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저희 또한 면회 기회를 빌려 그 검은 소굴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을 정기적으로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대법제자가 불법 구금돼 있었기에 사악은 우리가 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예를 들어 앞이 안 보일 만큼 억수 같은 비가 여러 번 쏟아졌을 때, 우리는 즉시 입장(立掌)을 하고 발정념을 하며 동시에 법을 외워 사악을 제거했습니다. 또 한번은 폭우 속에 차가 감옥 근처에 다다랐는데 길이 물에 잠겨 차바퀴의 3분의 2가 물에 잠기면서 더는 갈 수 없게 됐고, 앞서가던 차 몇 대는 물속에서 시동이 꺼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A 수련생이 ‘양수기로 물을 빼내자!’는 일념을 내보냈습니다. 불과 몇 분 만에 기적이 일어났고 도로의 물이 빠지면서 우리 차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사악이 더욱 미쳐 날뛰며 운전하는 수련생의 눈앞을 아예 캄캄하게 만들어 앞길을 못 보게 했고, 하마터면 옆에 있던 대형 화물차와 부딪힐 뻔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가 아니었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팀은 검은 소굴 면회와 발정념을 고정 항목으로 삼아 전염병 봉쇄 기간에 면회가 금지됐던 때를 제외하고는 매달 한 번씩 갔습니다. 우리는 항상 아침 6~7시에 출발해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운전하는 수련생이 집에 도착할 때는 늘 자정 12시가 넘었습니다. 다들 정사대전(正邪大戰)에서 적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매번 검은 소굴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한 강의의 법공부를 했고, ‘논어’와 전법륜(轉法輪) 중의 ‘主意識(주이스)가 강해야 한다’ 등을 10여 번 외웠으며, 경문 ‘정념’과 ‘홍음4’를 100번씩 외워서 수련생마다 정념이 충만했습니다. 감옥 근처에 도착하면 식당 룸을 잡아 점심을 먹은 뒤 저는 면회를 가고 수련생들은 룸에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도 다들 계속 법을 외우고 대법 노래를 부르며 정념을 강화하고 졸음 마장을 쫓아냈습니다. 매번 모두가 정념이 가득 차서 아주 충실함을 느꼈습니다. 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항상 수련생들이 면회 길에 동행해주었는데, 이 견고한 작은 정체(整體)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보면 바로 천군만마일 것입니다!
남편이 감옥에서 돌아온 후 제가 물었습니다. “우리가 면회 갈 때마다 많은 수련생이 가서 감옥의 사악을 제거하려고 발정념을 했는데, 당신은 알았어요?”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알았지. 내가 면회를 다녀오면 소굴에 늘 상황이 생겼거든. 예를 들면 사악이 꾸미던 박해 음모가 흐지부지된다거나, 감옥경찰이 감방에 들어와 나쁜 짓을 하려 해도 문이 열리지 않는 일 같은 거 말이야.”
한 수련생이 감개무량하여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두려워하시더니 이제는 갈수록 의연하고 침착해지셔서 완전히 딴 사람 같아요.”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저는 생명의 진정한 의미와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 고통과 시련을 겪더라도 저는 시련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비바람이 지나간 후, 시련은 그저 저를 성취시킨 하나의 경험이 되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정법 수련의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끊임없이 경험을 정리하고 마음을 닦아, 두려움, 명예욕, 금전욕, 허영심, 색욕심, 질투심 등 모든 사람 마음을 제거할 것입니다. 특히 딸과 자매에 대한 가족 정, 부부의 정 등을 내려놓고 자신을 정화하여 더욱 이성적으로 변하겠습니다. 대법제자들이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예전처럼 수련생들과 한데 뭉쳐 서로 원융하고 보충하고 협력하며 더 많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를 자비롭게 성취시켜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진심 어린 교류를 나눠주신 수련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는 길에서 저는 더욱 안정되고 성숙하게 걸으며 제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서약을 실천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3/31/50825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3/31/50825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