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스트리아 서양인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소중한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 저는 처음으로 션윈 공연의 사회를 맡게 됐습니다. 사회자가 될 기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에는 의구심이 가득했고 정말 이 역할을 떠맡아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준비 과정과 사회 진행 자체가 엄청난 시간을 요구할 것이고,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우러러보던 공연의 사회를 맡는다는 것이 경험도 없는 제게는 상상조차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사회자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생활의 리듬을 바꾸고, 안락한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하며, 사회 요령을 익히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회자를 찾지 못한다면 공연 횟수가 줄어들 텐데, 그건 너무 아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선발에 지원해 우선 제가 이 역할에 어울리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지원 후 몇 달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미 다른 후보를 찾았나 보다 싶어 무의식중에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심지어 정말 저를 선택한다면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몇 주 뒤 뉴욕에서 준비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쓸 수 있는 휴가가 이미 없었거든요.
어느 날 한 통의 메시지가 왔습니다. 여전히 사회자 역할에 관심이 있는지, 그 역할을 맡는 자신을 그려볼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순간 거대한 책임감이 밀려왔고, 본능적으로 그 책임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메시지는 단순히 관심 여부를 묻는 것뿐이었지만, 저는 그들이 이미 저를 사회자로 결정했다고 여겼습니다. 나중에야 그때는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고, 다른 적합한 후보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상황을 알았다면 제 반응도 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선택된 줄 알았던 저는, 제가 하지 않으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션윈에는 사회자가 꼭 필요했으니까요. 무의식중에 이미 어떻게 할지 알고 있었지만, 아직 공식적인 결정은 내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준비 작업에 참여하려면 빠진 업무를 보충하기 위해 야근까지 해야 했습니다.
한 수련생과 나눈 대화를 통해 제 인생의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저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뉴욕에서 처음 무대에 올라 연습했습니다. 처음에는 텅 빈 극장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됐습니다. 아무도 없는 관객석이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미 외운 대사를 암송하며 천천히 무대 환경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때로 극장 반대편에서 누군가 지나가면 말이 더듬어졌습니다. 누군가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됐거든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습니다. 나중에는 한 사회자가 제 낭독을 들으며 매번 끝난 후 개선점을 알려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세밀한 분석 때문에 매우 긴장했고 집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다른 사회자들과 함께 작은 옆 무대에서 마이크와 조명을 써가며 연습했습니다. 각자 차례로 대사를 낭독하고 다른 이들이 피드백을 주었죠. 제가 처음 낭독할 차례가 됐을 때, 내면에서 무대에 오르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긴장이 극에 달했습니다. 매우 낯선 경험이었지만 긴장을 이겨내고 용감히 맞서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심득을 쓰면서, 사회자가 되려면 한 걸음씩 장애물을 넘어서고 안락한 구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점차 더 큰 도전으로 내몰렸고, 매번 도전의 난이도는 딱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비록 그 순간들이 불편했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뉴욕에서 준비할 때 많은 사회자분들이 귀중한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한번은 우리가 큰 극장에서 실제 공연 환경처럼 연습했는데, 제 차례가 오기 직전 한 사회자가 다시 한번 절대 대사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알고 있어요, 대사를 꽤 잘 외운 것 같습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초 후 무대 위에 서자마자 대사를 완전히 까먹었고, 심지어 일부 구절은 기억에서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즉시 집중력이 부족했고 자만심 때문에 넘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집에서 준비하는 동안 매일 대사와 연기를 연습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게으름으로 연습 시간을 줄이면, 올바른 궤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많은 연습에 몰두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매일 꾸준히 충분히 연습해야만 저항이 줄고 투자하는 시간도 더 효과적이 됐습니다.
첫 공연 전 몇 주간, 한 수련생의 심득교류를 읽었습니다. 그는 션윈 공연에서 다른 공간의 광경을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막이 내리고 사회자가 마지막 프로그램을 알리려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한 사회자가 대사를 말하다가 한 문장에서 작은 실수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부 관객들의 주의식이 1초 만에 흐트러졌고, 천국으로 향하는 황금빛 거대한 흐름과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 왕과 왕비, 그리고 일부 영혼들이 천지 사이에 멈춰 떠다니며 혼란스러워하다가 거대한 흐름을 따라 천국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실수하지 말자, 한 수련생이 영국 션윈 공연에서 본 광경(2부)]
이 글을 보고 션윈 사회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인지 깨달았고 더욱 열심히 연습하게 됐습니다. 첫 공연 당일, 매우 긴장했지만 이것이 제가 걸어야 할 길임을 알고 있었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맡은 임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첫 무대는 제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도전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몸을 편안히 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집중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공연이 후반부로 접어들 무렵, 등과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점점 통증이 심해져서 그냥 누워 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날 밤 땀을 많이 흘리고 열이 났습니다. 다른 수련생들과 교류한 후, 제 몸이 새로운 임무를 위해 정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며칠 후 다시 열이 올랐습니다. 몸이 더욱 철저히 정화되어야 하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며칠 뒤 또 다른 공연이 있었지만 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양제를 복용하거나 의사를 찾아가서 빠르게 회복하여 다음 공연을 준비하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무대에 다시 서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열이 나는 것은 제 병업을 없애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전에 읽었던 한 설법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장래 좋은 직장과 전망(前程)이 있을 수 있고, 그의 봉급도 자연적으로 많을 것인데, 그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보통사람보다 높을 것이고 일반 사람보다 높을 것이다. 사람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가 이것마저도 가지지 않는다면, 그는 이것마저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그들의 이런 상황에 대하여 내가 말하는데, 이왕 정을 내려놓을 수 있고 명리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살생할까 봐 두려워하는 그 자체도 내려놓아야 하지 않는가? 이것은 최후의 집착을 내려놓은 것이 아닌가?”(스위스법회 설법)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왜 영양제 복용도 하지 않고, 의료 도움도 받지 않겠다는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걸까?’ 겉으로 보면, 영양제를 복용하고 치료를 받으면 열이 떨어져 잠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고 아마도 다음 공연의 사회를 무사히 맡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병업을 없애는 과정을 미루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러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몇 차례 공연이 끝난 후 몇 주가 지나, 한 구절의 법을 읽었습니다. “구세력의 교란인지 아닌지? 이에 대해 말하자면 자신이 자신의 가장 표면적인 신체를 개변시킬 때 여전히 일부분은 당신들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말하면 모두 그리 크지 않으며, 법을 실증하는 데는 그리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대단히 큰 곤란이 나타났을 때는 틀림없이 사악이 교란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발정념을 하여 그것을 깨끗이 제거해 버려야 한다!”(각지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이 말씀을 읽었을 때, 여러 차례 공연을 방해했던 열은 단순히 제거해야 할 병업뿐만 아니라 사악한 교란도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확고한 정념으로 이런 사악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연 중에는 각 프로그램 사이 휴식 시간에 다음 대사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각 대사에 대해 사람의 감정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대사는 좋아하고, 어떤 대사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대사는 다른 것보다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 문장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사소한 부분들이 어떤 대사의 연기를 기대하게 하거나 거부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복잡한 대사를 마주할 때 이러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긴장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다음 대사를 준비하면서, 한 션윈 예술가가 영상에서 공유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공연 중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는 안으로 찾으며 자신에게 ‘공연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최고의 공연을 선사하기 위한 것’임을 상기시킨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대사에 얽힌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저를 방해해 임무에 더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깨달은 후, 그 대사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내려놓았고 복잡한 대사를 마주할 때 느끼던 긴장감도 줄어들었으며, 더욱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 후, 제 마음은 계속 시험을 받았습니다. 큰 칭찬을 받기도 했고 날카로운 비판도 받았습니다. 특히 한 공연 후에, 사회자로서의 장점과 부족함을 분명히 알게 됐고, 동시에 제 마음도 시험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공연 후 만난 첫 번째 사람은 저의 공연을 엄격하게 비판하며 개선할 점을 지적했습니다.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죄책감을 느끼며 저 자신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 만난 두 번째 사람은 저를 칭찬하며 특히 잘한 부분을 알려주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사회자 경험이 많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피드백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두 가지 피드백 모두 제 마음을 시험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겉으로는 사회자로서 제 장단점을 반영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비판과 칭찬에 제 마음이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은 수련 중의 저의 일부 체득이며, 층차의 한계로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25년 오스트리아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7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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