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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군부대 제자가 비바람을 겪으며 정념이 확고해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군대에서 전역하기 전까지 군부대 기관에서 일했습니다. 1996년 5월, 부대의 한 친구가 제게 대법을 소개하고 ‘전법륜’ 책과 사부님 설법 테이프를 갖다 준 것을 계기로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20여 년간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셨기에 저는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길에서 안정적으로 오늘까지 왔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대법을 굳게 믿다

1999년 7월 20일, 중공과 장쩌민 사악한 집단은 파룬궁에 대해 미친 듯한 박해를 감행했습니다. 중공 악당은 국가 기구를 총동원해 대법을 모독하고 비방하며 제자를 잔혹하게 박해했고 거짓말로 세인을 선동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악한 박해에 직면해 저는 자신에게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정법(正法)이고 우리는 바른길을 걷고 있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다’라고 일깨워줬고 ‘사악이 아무리 광기를 부려도 사부님을 배반하지 않고 대법을 떠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당시 각 부대는 매일 장병들을 모아 중공 사당의 문건을 학습시키고 대법을 모함하는 거짓말을 가르쳤으며 각자 메모와 필기를 해야 했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사악한 압력에 참석해야 할 회의, 특히 누가 대법을 모독할 때 저는 끊임없이 부정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때는 발정념도 몰랐음). 신문도, 텔레비전도, 뉴스도 듣지 않고 항상 머리를 맑게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실을 알게 된 부대장이 찾아와 수련을 포기하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흔들리지 않고 파룬따파가 무엇인지, 제가 수련하고 덕을 본 사실을 이번 기회에 평화롭게 알리고 대법의 기본 진상도 좀 알려줬습니다.

그는 진상을 알고 나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에 협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법제자를 보호하기도 했습니다. 한 수련생은 업무차 부대장을 대동하고 베이징으로 출장을 갔는데 갖고 있던 대법 서적을 호텔 종업원이 보고는 호텔 지배인에게 신고했습니다. 이 부대장은 이를 알고 호텔 간부를 찾아가 대법 서적을 돌려받고 대법제자를 보호했습니다. 그는 이후 승진해 좋은 보답을 받았습니다.

저는 당시 군에서 일정한 직위가 있었기에 부모 형제, 친지 등 여러모로 오는 압력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저를 압박하며 악담을 퍼붓거나 구슬렸고 부모님은 제 걱정으로 울면서 저와 관계를 끊겠다,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요하셨습니다. 육친정에 대한 시험과 명리(名利)의 유혹에 직면해 저는 심사숙고한 후 과감히 사부님을 굳게 믿고 끝까지 대법을 수련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집착을 버리다

저는 군대에서 돈과 재물을 관리하는 기관에 있었습니다.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부패사회에서 군도 많이 오염됐습니다. 손님을 접대하고 선물을 보내는 것이 풍조가 됐고, 권세와 돈거래로 돈과 선물을 하지 않으면 일하지 못하는 것이 일상화됐으며, 먹고 마시고 매춘, 도박 등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업무에 쓸 경비는 겹겹이 차단돼 정작 훈련이나 후방장비 구매, 물자확보 등에 쓰이는 경비는 턱없이 적었습니다.

저는 이런 난잡한 환경에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탐내거나 점하지 않았고, 받지도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부대의 정상적인 물자확보 경비는 빼지 않았으며 차단하거나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한번은 한 상급자가 제게 “생각을 좀 넓게 가져라. 차만 운전하지 말고 길을 봐”라고 했지만 저는 태연히 웃었습니다.

제 상관은 업무 변경 시기에 관련 상관에게 저를 추천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축의금’을 지참하고 어느 상관 집에 가서 “한번 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호의를 사양하고 그에게 대법 수련의 원칙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대법 진상을 알고 평소 제 업무태도를 마음에 들어 했기에 이해해줬습니다.

한번은 타지의 한 업체가 제 사무실로 와서 그들 회사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저녁에 그는 마오타이주(茅台酒) 두 병을 들고 와 우리 집에 놓고 갔습니다. 그가 간 후 저는 병 밑에 현금 봉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인데 대법의 요구대로 해야지 타락하는 사회 도덕에 따라서는 안 됩니다. 다음날 저는 기사에게 업체 주소를 찾아 마오타이주와 현금을 돌려줬습니다.

진상을 전해 세상 사람을 구하다

1999년 ‘7.20’ 이후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기 위해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어떻게 박해 환경에서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세인을 구할 것인지를 놓고 여러 차례 교류했습니다. 대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은 제자에게 주어진 신성한 책무이자 역사적 소명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시간을 다그쳐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조건의 제약 때문에 우리는 주변 복삿집에 가서 진상자료를 찍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사악의 교란으로 어떤 복삿집은 문을 닫았고 어떤 곳은 사악한 경찰의 협박을 받아 대법 자료를 복사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자기 회사를 경영하는 수련생이 있었는데, 그가 자비를 들여 복사기를 장만하고 진상자료를 찍어 수련생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수련생들은 또 현지 기관, 부대, 마을과 읍 등에 자료를 보내 사람들이 대법 진상을 깨닫고 정사(正邪)와 선악을 분별하게 했습니다. 사악의 기세는 크게 압도됐습니다.

밍후이왕 자료가 늘어나자 2005년 기술 수련생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저는 컴퓨터를 사고 프린터, CD라이터 등 장비를 갖춰 가정 자료점을 꾸렸습니다. 저는 인터넷 접속과 다운로드를 배워 필요에 따라 자료를 출력하고 CD를 구워 주변 수련생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용도로 쓰게 했습니다. 이후 16년간 자료점이 줄곧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군부대 안뜰은 폐쇄된 상태였는데, 나는 이곳에 거주하는 유리한 여건을 이용해 수련생들에게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조사정법하고 세인을 구하는 신성한 사명을 함께 수행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안뜰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는데 경비병이 보게 되어 저는 얼른 수련생을 우리 집에 데려왔고, 경비병이 떠나고 나서 그를 안전하게 밖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후 저는 군대에서 현지 시 직속 부대로 이동해 수련생과 연락이 편해졌고 구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저는 진상 현수막을 걸고 스티커를 붙이고 자료를 배포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저는 공무 출장이나 친척 친구 방문 등 어디를 가건 진상자료를 갖고 가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몇 년간 농민공, 용역공들이 많이 모이는 곳, 공사 현장, 버스정류장, 공원이나 휴게소, 놀이터 등 유동인구가 많고 넓은 지역을 보면 이런 곳에 중점적으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정념정행하여 사악한 바람을 막아내다

2004년 말,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9평 공산당)’이라는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읽고 나서 저는 공산당 사악한 영혼의 본질을 철저하게 깨닫고 그것이 100년간 해온 악행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아내(수련생)와 교류하면서 대법제자로서 악당과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따지웬 탈당 사이트에 성명서를 올려 사악한 중공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을 탈퇴(삼퇴)하고 우리의 삼퇴 성명을 인쇄해 거리, 주택가 눈에 띄는 곳에 붙여 세상 사람들을 일깨워줬습니다.

이후 사당(중국공산당)은 전국에서 이른바 ‘선진성 교육’ 활동을 벌여 중생을 해치면서 매일 사당(邪黨)의 논리를 배우고, 외우고, 쓰게 했습니다. 사악이 중생을 해치는 행위에 협조하지 않기 위해 저는 배우지도, 기억하지도, 쓰지도 않고 사악한 무리가 하는 어떤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스스로 나서서 사악한 조직을 공개적으로 탈퇴하고 대법도 실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부대 서기를 찾아가 공개적으로 탈당을 제안했습니다.

제 이 행동에 간부들은 긴장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상관 몇 사람이 번갈아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일, 생활, 자녀의 장래를 빌미로 저를 협박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협박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이번 기회에 대법 진상을 알리고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이후 국(局) 상관과 관계자들이 오후 2시에 단체로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처리’할 예정이었습니다. 저는 사부님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1] 저는 사부님께서 계시고 대법이 있기에 사악이 저를 움직일 수 없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동시에 발정념 횟수를 늘렸습니다. 나쁜 생각이 제 공간에 들어올 때마다 저는 그것을 한순간에 소멸해버리고 항상 정념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가지(加持) 해주시는 것을 분명히 느꼈고 자신의 거대한 신체가 모든 사악을 멸하는 강대한 기세를 느꼈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의 입을 빌려 “왜 이렇게 키가 크냐”며 격려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상을 아는 상관이 저를 위해 나섰다고 합니다. 한바탕 정사대전 결과 사불압정(邪不壓正: 사악한 것은 바른 것을 이기지 못함)이 됐습니다. 사부님의 자비와 보호로 오후 1시 반쯤 “이번 담화는 취소됐다”라고 전달받았습니다. 그 뒤로 이 일은 흐지부지됐고 아무도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자비로 제자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합장하고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에 감사드리며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에 감사드렸습니다!

2015년, 장쩌민 고소 열풍이 일었습니다. 전국 각지 대법제자들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한 장쩌민을 고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현지 수련생들과 여러 차례 교류하면서 긴박함과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장쩌민은 이번 박해의 원흉으로서, 중공 사당을 이용해 대법제자를 박해할 뿐만 아니라 전국, 나아가 전 세계인을 속이고 박해해 죄악이 하늘을 찌르는데 그를 고소하지 않으면 천리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쩌민 고소는 대법제자들이 정체를 이루는 과정으로 정법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이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정법의 노정을 따라야 했습니다. 저와 아내, 아들 온 가족이 함께 장쩌민 고소장을 써서 최고법원에 우편으로 보냈고 수령 증명서를 받았습니다. 저는 또 현지 노년 수련생들의 소장을 정리해줘 함께 고소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우리 지역은 전체적으로 제고하고 승화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놀랄 수는 있되 위험하지 않게 보호하십니다.

수련의 길에서 저는 여러 차례 위험한 일을 겪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언제나 놀랍긴 하되 위험한 일은 없었습니다.

제가 수련을 시작하기 전인 1996년 어느 날, 부대 동료가 오토바이로 저를 태워 친구 집 모임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 오토바이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한참을 들여서야 시동을 걸었고 오토바이는 사거리에서 가로로 달리던 트랙터와 충돌했습니다. 오토바이 속도가 너무 빨라 저는 트랙터 트렁크에 내동댕이쳐졌고 또 트렁크에서 바닥으로 내팽개쳐졌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저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친구를 여기저기 찾아다녔는데 친구의 상태가 심각해 트랙터 운전자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검사 결과 비장과 간이 파열돼 보름간 응급처치를 받고서야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몸에 아무런 상처가 없었으니 너무 신기했습니다! 대법을 얻은 후 알고 보니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서 그때 이미 저를 돌보고 계셨습니다.

2005년, 저는 아이를 대학에 보내려고 시안(西安)에 갔습니다. 아이를 안착시킨 후 저는 친구의 뷰익 승용차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길에서 저는 기사에게 진상을 알렸고 기사는 진상을 알고는 삼퇴했습니다. 상하이 고속도로 산둥 도로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차량 오른쪽 앞바퀴에 펑크가 났습니다. 순간 차가 좌우로 부딪치며 제어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는 약 500m 앞으로 가다가 옆으로 넘어지면서 V형 철관에 받혀 겨우 멈췄습니다.

자동차가 좌우로 번갈아 부딪혀 차체가 심하게 찌그러져 문이 열리지 않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선루프로 기어 나왔습니다. 차에 타고 있던 다섯 사람은 모두 무사했습니다. 사고 수습 요원들은 현장을 보고 “당신들은 귀인이 보호해주셨네요. 이렇게 심각한 사고에 인명 피해가 없다니 기적 같은 일입니다”라고 감탄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와 차에 있던 모든 사람을 구해주신 데에 대해 끝없이 감사드립니다!

2020년 10월 중국공산당 사당(邪黨)이 회의를 열어 베이징으로 가는 차량은 모두 검색을 받아야 했습니다. 고종사촌동생이 결혼했기에 저는 차로 아내를 데리고 고향에 가고 있었습니다. 둥잉(東營) 구역에 도착하자 검문소를 만났는데 모든 차량과 승차 인원은 반드시 사진을 찍고 신분증과 차량의 모든 물건까지도 검사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차에는 진상자료가 한 봉투 있었고 저와 아내는 모두 중공 사당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신분증에는 공안 기관에서 한 표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검사를 피할 수 없어 저는 아내와 함께 발정념을 하면서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加持) 해주십사 청했습니다. 우리가 차를 세우고 검사할 차례가 됐을 때는 마치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 “이 차 검사했지?”하고 소리치는 것만 들렸고 대답이 없었습니다. 지휘하는 경찰관이 빨리 떠나라고 해서 저는 재빨리 검문소를 벗어나 큰길로 차를 몰았습니다. 저와 아내는 서둘러 두 손을 모으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오직 사부님과 대법만 굳게 믿는다면 넘지 못할 관문은 없습니다. 착실하게 수련하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해내야만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는 신성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수련할 시간은 많지 않고 소중합니다. 자신의 일언일행, 일사일념을 법 속에 용해하고 끊임없이 대법에 동화하고 자신을 닦고 중생을 구해 합격한 대법제자가 되겠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의 격려와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밍후이왕 제1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1/11/4332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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