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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변화를 보고 친척들이 대법을 수련하다

글/ 중국 허베이(河北)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펜을 들려니 감개무량해 눈물이 글썽해진다. 23년간의 수련은 장편영화와도 같이 끝없는 이야기였다. 사존의 위대함과 자비로움,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超常)함은 23년의 수련 과정에서 하나하나 실증되었다. 아래에 일부를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1.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나다

나는 ‘대약진’ 때 태어났다. 아버지는 상인으로, 중국공산당(중공)이 공사 합영을 한 후 여러 슈퍼를 관리했다. 아버지는 정직하고 의리를 지키며 탐내지 않고 남의 것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횡령하고 가짜를 섞어서 죄를 뒤집어쓰고 노동 개조를 당하셨다. 노동 개조에 들어간 아버지는 성심껏 일했고, 장기적인 중노동으로 큰 병이 나서 톈진의 대형병원에 입원하셨다.

아버지는 1959년에 입원해서 1960년에 퇴원하셨다. 마침 중공의 ‘대약진’ 때라 강철을 생산하고 큰 가마솥 밥을 먹을 때였다. 중공이 인위적으로 만든 3년 대기근에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어머니 말로는 긴 골목 안쪽으로 집집이 문 앞에 ‘조전(祚錢)’이 걸려있는 때도 있었고 건강한 남자가 굶어 죽는 일이 더 많았다고 한다. 나는 당시 3살이었다. 3살에서 6살까지 매달 정량으로 옥수숫가루 3근(1.5kg)을 줬다. 우리 집 9식구는 일손이 한 명도 없었고 아버지는 병 치료하느라 돈이 들었으며, 어머니는 또 100여 리(약 50km)를 오가며 입원한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그때의 고생과 어려움은 상상도 하기 힘들 테니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어머니는 너무 힘들고 너무 곤란했다! 이런 정황에서 1살 남짓한 나는 춥고 배고프고 오줌까지 싸도 돌볼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한 말이 “엄마, 배고파요!”였다고 했음) 나는 이미 걸을 줄 알았지만, 다리가 마비되었다. 내게 기억이 있는 그 순간부터 생각나는 것은 다리가 아팠다는 것이다. 발에 난 몇 개의 동상 흉터는 당시 역사의 증거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려움이 많고 병이 많았기에 마음이 괴로워서 몸 안팎, 위부터 아래까지 다 나쁘고 좋은 데가 없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나는 건강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결혼 후 처지는 더 엉망이었다. 가족 간의 냉담, 감정 붕괴, 병의 고통도 더 심해졌다. 30대가 되었을 때 각종 질병이 모두 왔다. 경추염, 오십견, 손발 경련, 뇌 경련, 다리 통증, 두통, 편두통, 산후병, 거의 실명에 가까운 눈, 만성 신장염, 노이로제, 심각한 기혈결손, 창백한 안면, 부속기염, 자궁근종, 심한 하혈을 해 두꺼운 화장지를 받쳐도 다리를 따라 바닥에 흘렸으며, 협심증 등등, 또 이름 모를 병도 많다. 해마다 약값이 1만 위안(약 183만 원)을 넘었지만, 병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매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어느 날 밤, 나는 마당에 꿇어앉아 하늘을 보며 신이시여! 부처님이시여! 어디에 계십니까? 저를 구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는 왜 이리 삶이 고생스럽습니까?! 라고 말했다. 여러 번 자살하려고 해도 죽지 못하자 (수련한 후 사부님께서 줄곧 나의 생명을 보호해주시고 내가 법을 얻어 수련하기를 기다리신 것을 알았음) 마지막에는 결심을 내리고 수면제 한 봉지를 사서 옷장에 숨겨놓고 때를 기다리며, 이번에는 꼭 죽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고통스럽게 죽을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오빠가 ‘전법륜(轉法輪)’을 가져왔다. 오빠는 이 책이 어떻게 좋고 병을 제거하고 건강에 좋다는 등등을 이야기했다. 나는 오빠의 체면을 봐서 책을 받았다. 그러나 눈이 거의 실명이 되었는데 어떻게 두꺼운 책을 볼 수 있겠는가?! 정말 우스웠다. 나는 병이 나아지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며칠 지난 후 기왕 곧 죽을 거면 그냥 한번 보자고 생각했다. 오빠가 준 책이 무얼 말하는지 모르고 죽으면 오빠가 마음 써준 것을 헛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나는 앉을 수가 없어 종일 누워있었고, 침대에 누워 책을 들고 눈을 가늘게 떠서 자세히 보았다. 책과 눈의 거리는 한 치(약 3cm)도 되지 않았고 희미하게 글자를 알아보았다. 이윽고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눈도 안으로 움푹 들어가며 아팠다. 나는 재빨리 눈을 감고 손으로 머리칼을 꽉 잡고 벽에 몇 번 부딪쳤다. 그리고 다시 누웠는데 줄곧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이렇게 좀 쉬었다가 다시 보았다. 한 구절을 미처 보지 못하니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이 책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꼭 보리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네다섯 줄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몇 줄을 본 후 나는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벽이나 침대의 철관에 머리를 들이받고 눈을 감고 쉬었다. 부지불식간에 보면 볼수록 보기 좋았고 너무 좋았다! 그 책에서 말씀하신 것은 정말 좋았다! 나는 통증도 잊고 식사하는 것도 잊었다. 알기 쉬운 말로 쓰인 책 속의 이치는 마음을 꿰뚫었고 각종 문제에 대한 의혹을 풀어주었다. 여기까지 썼을 때 또 울음이 나왔다. 그런 행복, 희열,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후련함, 내가 평생 힘들게 찾았던 것을 마침내 찾은 느낌이었다! 인류의 언어로 묘사할 수도, 똑똑히 말할 수도 없다! 단지 마음으로 느낄 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책을 본 지 3일째 되던 날, 마치 심한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온몸이 괴롭고 아팠다. 집밖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감기에 걸리지? 오빠가 말한 것처럼 내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아닐까? 기침, 감기에 죽지는 않는다. 죽는 것도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신기하게 하루 만에 다 나았다!

이렇게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보는데 두 달이 채 안 걸렸고(매우 천천히 보고 또 매일 끊임 없이 보았다) 모든 질병이 신기하게도 없어졌다. 언제 좋아졌는지 물어봐도 도통 모르겠다. 나중에 법공부를 계속하면서 그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구하지 않으면 스스로 얻는다”[1] 의 법리에 내가 부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뜻밖에도 다시 태어났다! 생명은 소중하고 자살은 죄가 있다는 이치도 알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면제를 모두 버렸다. 그때가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기쁜 날이었다!

2. 잔혹한 박해 중에 친척들이 연이어 법을 얻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인은 적이 없으며”[2] 나는 사람이 만약 적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수련하기 전, 임신 6개월이 되었을 적에 손윗동서가 사소한 일로 문을 막고 나를 욕하며 뺨을 때렸다. 나는 화가 나서 디디브이피(DDVP)를 마실뻔했다. 남편이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태아와 함께 죽었을 것이다! 영원히 풀지 못할 원한을 맺을 뻔했다! 그러나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원수가 없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지니고 형님댁에 가서 말했다. “이 책을 보세요. 정말 좋아요. 이 책을 보면 부부싸움을 하지 않게 되고, 원만하고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에요. 누가 행복한 가정을 원하지 않겠어요?” 부부는 감동하고 함께 대법을 수련했다. 그들이 수련을 시작한 지 2, 3개월 만에 잔혹한 박해가 시작됐다. 그들은 두려워서 수련을 포기했다.

몇 달 전, 저녁에 한창 진상 자료를 만들고 있는데 남편이 거실에서 다른 사람과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말투가 좋지 않았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좀 지나 남편이 핸드폰을 들고 들어왔는데 화가 나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남편은 모모(조카)가 욕하는 것이 얼마나 듣기 싫은지 보라며 스피커폰으로 듣게 했다. 갑자기 닥쳐온 일에 직면해 나는 매우 침착했다. 나는 남편이 갑작스러운 욕설에 못 견딜까 봐 위로하며, 우선 성급해하지 말고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황을 말해보라고 했다.

조카는 대가족 묘지가 지대가 너무 낮다며 손아랫사람인 그들이 돈을 써 묘지를 손보려고 했다. 큰조카가 전화를 걸어 의논했지만, 남편은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큰조카가 “작은아버지는 천 위안(약 18만 원)을 내놓으세요”라고 했고 남편은 싫다고 했다! (말투가 매우 듣기 싫었고 방에서 다 들렸다) 큰 조카는 다급해져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예전에 할머니가 암 말기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작은아버지는 아들로서 군대에 입대하고 나 몰라라 했다, 우리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어떻게 효도하셨고 침대에서 대소변을 받았다는 등등을 들춰내며 욕을 했는데, 욕을 하면 할수록 더 듣기 거북한 말이었다. (나는 이 일을 몰랐다. 시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을 때 남편은 19살이었다. 나는 약간만 들은 적이 있는데 모두 부정적인 말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일에 대해 항상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말참견을 하지 않고 아무런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조카의 말을 듣고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니, 형님과 아주버님이 힘드셨을 거라고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때 남편은 화가 나서 온몸을 떨었다. 나는 부드럽게 “여보, 화내지 마세요. 조카가 당신을 욕한 것은 잘못이에요. 그러나 그가 말한 것이 사실인지, 당신이 그렇게 했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처지를 바꿔 생각해 봐요. 당신이 좋은 말로 조카를 대했다면 그가 당신을 욕했겠나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핸드폰은 2, 3초에 한 번씩 울렸고 조카는 갈수록 더 험한 욕을 했으며 정말 듣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남편이 화가 나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재빨리 옷을 입었다. 남편이 어디 가는지 물어서 나는 조카에게 간다고 말했다.

그때는 이미 저녁 8시가 넘었고 조카의 집과는 약 20리(약 10km)였다. 나는 축전지차를 타고 가면서 그를 구해야겠다, 대법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술을 너무 심하게 마시는데 생수 빈 병에 술을 부어서 옷 주머니에 넣고 물처럼 마시며 하루에 몇 근을 마신다. 누구든지 다 욕하고 자기 어머니마저 욕한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손이 떨리고 다리가 떨리고 눈이 퉁퉁 부어 이제 50세인데 눈이 침침하고, 혀뿌리가 굳어 생명이 이미 매우 위험한 상태다. 아내는 이혼하고 이미 집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조카 집에 가보니 그는 침대에 누워 자는 체하며 나를 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몸을 수그리고 그에게 “어때요, 좀 좋아졌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미안해하며 눈을 뜨고 “너무 많이 마셨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조카님이 한 말은 맞지만, 욕은 해서는 안 돼요. 아무리 나빠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조카는 삼촌에게 그러면 안 되지요. 내가 조카하고 말할 때는 아들 대하는 것과 같아요. 어디 아들이 아버지를 욕하는 법이 있어요?”라고 좋게 말했다. 그는 일부 가정사를 말했다. 또 그의 외가 식구가 우리 친정 식구보다 낫다는 등등을 말했다. 나는 그의 외가 식구들이 사람 됨됨이가 좋다고 인정했다. 나는 그의 편에서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동시에 규범을 벗어난 행동을 지적하여 정기와 위엄을 잃지 않았다. 그는 감동해서 나에게 “엄마, 친엄마! 제게 진심으로 말해주시는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분발하라고 말했다. 그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겠다고 해서, 나는 엄숙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태도가 아주 단호했다. 그가 대법을 수련하자 그의 어머니도 다시 수련했으며 아버지도 정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빼빼 말랐던 조카는 희고 통통하게 변했다. 정말 온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사존의 절묘한 배치인 것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가 한 명도 떨어지지 않도록 이런 절묘한 방식으로 그들 부부가 다시 대법 수련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우리 친정 식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2003년 언니는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졌고 두피는 반들반들했다. 효심 깊은 큰아들이 언니를 데리고 많은 병원에 다녔으며, 한약과 양약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우리 집이 인테리어 공사 중인데 언니가 찾아와서 나와 함께 파룬궁을 수련하고 싶다고 했다. 너무 의외였다. 이전에 입이 마르도록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했지만 듣지 않으면서 ‘문화대혁명’이 다시 오면 어떻게 하느냐던 언니였다. 나는 언니가 중공 악당에 대해 겁에 질려서 그랬다는 것을 안다. 중공이 공사 합영을 할 때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고 끌려가 노동 개조를 당했고, 그들은 한밤중에 집을 수색했다. 지붕 위, 담 위가 모두 사람이었는데 당시 겨우 열 살이 넘었던 언니는 너무 놀랐다. 문화대혁명 때 아버지는 ‘4류 분자’로 정해져서 매일 비판을 받았다. 온 가족은 놀라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나는 듣고 매우 기뻤다. 나는 요구가 있다고 말했다. “수련을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매일 열심히 법공부 해야 해. 장난으로 여기면 안 되고. 언니가 법리를 알아야 일에 부딪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야.” 언니는 진지하게 대답했고, 정말 정진했다. 언니에게 연공 음악을 줄 겨를이 없었지만, 스스로 제2장 공법 포륜(抱輪)을 한 시간 했고 매일 창가에 서서 법공부를 했다(시력이 좋지 않음). 2개월이 흐르자 마치 신생아 머리 나듯 새까맣고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자라난 것이 아주 극적이었다! 다리 통증, 위병, 혈액 병도 사라졌다. 온 식구가 사부님의 은혜, 대법의 은혜에 감사드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언니의 큰아들은 늘 과일, 케이크 등을 사다가 사부님께 올리고 향을 피웠다. 형부는 웃느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한, 어느 장소나 막론하고 파룬궁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직언으로 맞서 상대방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했다.

작은올케는 스자좡(石家莊)의 한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고지혈증. 고혈당, 고혈압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해도 호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심각해졌다. 마지막에는 약 한 보따리를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나타난 큰 변화를 알고 있다. 오랜 고질병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성품도 변해 누구에게나 선량하고 성실하게 대했다. 작은올케도 수련하면서 아주 빨리 건강이 호전되었고 약도 다 버렸다. 지금 70대인데 집안일도 하고 밥도 하고 공장 일도 일부 관여한다.

큰올케는 수련하지 않지만, 대법을 지지하고 믿는다. 내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면 그녀는 맞장구치며 좋은 역할을 했다. 또 여러 번 호신부를 주민위원회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녀도 복을 받았다. 그녀의 오빠는 나이가 많지 않았는데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두 여동생도 재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몸이 불편하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 위험을 산들바람으로 넘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수련한 후에 나타난 심신 변화를 보고 2007년 말 수련을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중공의 박해를 받았고 또 내가 몇 번 박해를 받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셨다. 아버지가 문화대혁명 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늘을 뒤엎을 듯한 중공의 탄압을 보고 아버지는 놀라 수련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어머니도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부님의 법신상과 대법 서적을 숨겨놓았다. 아버지는 매우 빨리 세상을 떠났고, 몇 년 후 어머니는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어머니에게는 신기한 일이 너무 많다. 사부님의 보호로 여러 번 생사관을 넘었고 작년에 103세로 천수를 다했다. 임종 전에 장의사가 어머니의 맥을 짚어보고 이 할머니는 심장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는 심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어디나 다 좋고 병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어떻게 병이 없는 것을 알았냐는 뜻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머니는 원래 파룬궁을 수련했으며 나중에 연세가 너무 많아지자 수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악당의 거짓말에 속아 대법을 믿지 않았다. 나는 일부 진상을 간단히 말했는데, 그는 어머니에게 나타난 초상적인 현상과 연세를 보고는 믿었다. 내가 그에게 USB를 주자, 그는 소중히 여길 것이며 잘 보겠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이웃도 나의 변화를 보고 대법을 수련했으며 많은 병이 좋아졌다. 올해 80여 세지만, 건강하다. 매일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하고 자료를 배포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중단한 적이 없다.

당질녀도 나의 변화를 보고 작년부터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당질녀는 또 헤이룽장(黑龍江)에 가서 병든 둘째 언니에게 대법을 전했다. 둘째 언니도 건강을 회복했다.

3. 가정 자료점을 17년 동안 안정적으로 운영하다

2004년 나는 현지에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이 적지만 수요량이 많아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이 매우 바쁜 것을 보았기에, 내가 조금이라도 분담해 그들이 법공부, 연공하는 시간이 있게 하려 했다.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는 기술을 배웠다. 수련생은 나를 도와 기계를 사고 소모품을 샀다. 이렇게 마우스도 쓸 줄 몰랐던 내가 사람을 구하는 대법 자료를 만들게 되었다. 대법의 위력과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거대한 압력 속에서도 평온하게 17년이 지나갔다.

1) 초기의 어려움

나의 눈은 비록 많이 회복되었지만, 20cm 남짓한 노트북의 작은 글자를 보려면 늘 가늘게 뜬 눈으로 15cm 이내로 가까이 봐야 비로소 글자가 똑똑히 보였기에, 자료 제작을 가르쳐 준 수련생이 불안해했다. 처음에 그녀가 조급해하자 나는 긴장돼서 더 잘 보이지 않았다. 수련생은 더욱 조급해했다. 나는 ‘수련생에게 요구해서는 안 되며 수련생을 이해하고 자신을 수련해야 하는데 마음이 왜 흔들리는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열심히 보고 배우기만 했다. 수련생은 조작하면서 설명했다. 나는 열심히 필기하고 언제 어떤 모양의 대화창이 나오는지 진지하게 보았다. 수련생이 간 후 나는 기억한 것과 필기를 대조해 노트북을 조작했고 아주 빨리 배우게 되었다.

2) 가정관을 돌파

나는 이 모든 것을 남편과 상의하면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남편과 상의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은 가장 바르고 가장 신성한 일이며, 지혜롭게 그가 받아들일 수 있게 하자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남편은 프린터와 컴퓨터를 보고 불쾌해했다. 나는 평온하게 “내가 만들어 쓰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아도 되며, 그러면 안전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이라는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에 자료 수요량이 갈수록 많아졌고 당연히 만들수록 더 많아졌으며 항목 개발도 점점 많아졌다. 자료와 각종 항목은 줄곧 밍후이왕을 바싹 뒤따랐다.

수련생은 한 번에 인쇄용지를 20박스씩 가져왔다. 그때는 1박스에 10권씩 들어있었고 매우 무거웠다. 수련생은 차에서 내려 문 안에 들여놓은 후 재빨리 가버렸다. 안전 때문에 문밖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재빨리 문을 잠그고 혼자서 위층으로 옮겼다. 화가 난 남편은 옆에서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 바라봤다. 아들도 옆에서 기분이 상한 얼굴로 보면서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정말 좋은 기회다. 그들이 나를 도와 심성을 수련하게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얼굴은 온화했다. 이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어떤 생각이 있으면 안 된다고 여겼다. 여러 상자를 옮기니 팔, 다리가 나른해지고 힘이 모자랐다. 그러나 빨리 옮겨야 한다. 만약 누가 문을 두드리면 어떻게 하나. 나는 한 계단 한 계단 위로 올라가면서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3] 를 외웠다. 좀 지나자 정황이 변했다. 부자가 나를 도와 옮기더니 나중에는 나에게 옮기지 말라고 했다. 법은 정말 보배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니 정말 좋다!

나는 ‘관문’을 지날 때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았으며 가족의 감내도 헤아렸고 책임을 그들에게 미루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될수록 스스로 했는데, 그들은 나에게 많은 지지와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들도 그들의 사명을 실현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매우 좋은 위치를 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볼품없는 사람이라 말조차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20여 년을 수련하면서 일에 부닥치면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으며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댁, 친정에서 나는 막내라 발언권이 없었으며 말을 잘할 줄도 몰라 한참을 말해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지금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나와 상의하고 나를 매우 존중하며 신뢰한다. 모두 대법이 나의 지혜를 열어준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많은 집착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시간을 다그쳐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되도록 유감을 적게 남기겠다. 생각했어도 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고 구하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사존의 보호, 자비로운 점화, 지혜가 열리는 것을 깊이 느꼈다. 잔혹한 박해 속에서 매번 위기를 넘겼다. 걸음걸음마다 사존의 노고와 제자를 대신하신 감당이 배어있다! 나는 눈물을 잘 흘리지 않지만, 매번 사존을 떠올리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심지어 목놓아 울기도 한다!

수련생 여러분, 우리 함께 정진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여 사람을 많이 구합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세간을 향해 파룬(法輪)을 돌리노라’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 정념정행(正念正行)’

 

​원문발표: 2021년 10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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