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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에 대한 체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1] 나는 27년간의 수련 중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단락의 함의를 점점 더 깊이 체험했다.

나는 이 일념은 수련해 낸 정념이자 신념(神念)임을 깨달았다. 이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믿음의 기초에서 나온 것이다. 심성이 제고될수록 이 일념이 더 강해져 그 힘은 산을 가를 수 있다.

이 일념은 난(難)에 부딪혔을 때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드러난다. 생활, 일에서 부딪히는 문제, 부딪히는 모순, 사물을 대하는 시각과 처리 등에서 나타난다. 즉 우리가 문제를 사람의 생각으로 대하는지, 신의 생각으로 대하는지의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내 체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부님 계시고 법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2000년, 나와 아내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되어 한 달간 불법 수감되었다. 구치소에서 나온 후 직장의 보위과는 반년간 나를 감시했다. 나와 아내를 강제로 세뇌반에 보내 ‘전향’시키려 한다는 말을 듣고 아내와 상의해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떠나기로 했다. 이렇게 사악의 세뇌반 박해를 막아서 사악이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떠나기 전에 나는 나를 감시하던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내가 떠나는 이유를 말했다. 그러면서 “내 편지를 상사에게 바치면 당신은 별일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날 말리지 못하니까.”

우리는 집을 떠날 때 현금 3천 위안(약 56만 원)과 카드 한 장만 가지고 갔다. 아내가 “카드를 쓰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 돈만 가지고 어떻게 생활하겠어요?”라고 하면서 걱정하자 나는 별생각 없이 “사부님께서 ‘사부가 있고 법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운가? 그것을 상관하지 않겠다!’[2]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시는데 잘 곳 없고 밥 먹지 못할까 봐 걱정해요?”라고 했다.

우리는 사부님의 보호 아래, 이러한 바른 일념에 의지해 집을 떠난 열한 달 동안 십여 개 현(縣)과 시(市)의 친지, 옛 전우, 옛 동창, 심지어 친구의 친구에게 몸을 의탁했다. 가는 곳마다 먼저 파룬궁 박해의 실상을 알리고 공안의 수배로 집을 나선 우리의 상황을 잘 설명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열정적인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당신들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신념 문제일 뿐입니다. 원하는 만큼 있으세요.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우리를 받아주던 이들은 생활만 돌봐 준 것이 아니라, 떠날 때 돈도 조금씩 챙겨주었다. 그동안 공안은 직장에 사람을 보내 우리를 찾아다녔으며, ‘내부 수배’까지 했다. 길거리에 검문소를 설치해 우리를 조사했고 공항과 호텔에 나와 아내의 사진을 걸어 놓았다.

공안 경찰은 우리 친척과 가족들을 거의 다 찾아다니며 “만약 내막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은닉죄를 범하는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모르는 고향 친척들까지 찾아갔고, 내가 군대에서 찍은 단체 사진 한 장으로 전우들을 다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막 거처를 떠난 후에야 경찰이 도착했다고 한다.

한번은 아내와 함께 중형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우리를 찾는 경찰 버스가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또 한번은 우리가 한 도시를 막 떠나자 우리를 배웅하던 친구가 돌아갈 때, 우리를 가로막으려고 새로 설치한 검문소를 보았다고 한다.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도는 기간에 우리는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전우, 동창, 선생님에게 공개 편지를 썼다. 각급 부서와 지도자에게도 호소문을 썼다. 우리가 집을 나간 후 공안은 우리를 찾기 위해 우리 딸을 괴롭혔다. 사악의 소란을 피하려고 딸도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떠날 때 몸에 현금이 3천 위안밖에 없었다. 몇 달 동안 우리는 지인의 도움으로 휴대폰과 컴퓨터, 레이저 프린터, 스캐너 등 진상 자료용 장비를 샀다. 수련생의 협조로 우리 일가족이 함께 진상 자료점을 만들었다. 나중에 우리가 막 거주지를 바꿨을 때 국보 경찰에게 납치되어 우리 일가족은 불법 노동교화를 당했다.

나중에 아내는 “곳곳으로 피신하면서 집이 있어도 가지 못하니 시간이 지나면서 진저리가 났어요. 마음속으로 차라리 경찰에 붙잡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구세력이 이 관념을 틈탔던 것이었다.

“너희들이 경찰을 도와 나를 박해하면 안 된다”

중공의 박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시(市) 공안 정보처의 경찰 20여 명이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들어오자마자 불법 수색을 했다. 한 수련생의 경문을 내가 주었다고 한 말이 이유였다.

한 경찰이 사부님의 법상을 들려고 하자 나는 “안돼! 당신들은 일을 적절하게 하라.”라고 소리쳤다. 그들은 멈추었다. 그리고는 나를 지역 파출소로 납치해 갔다. 경찰 이십여 명이 나를 불법 심문했다. 나는 파룬궁 진상을 말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은 나를 어두운 방에 가두었다.

우리 지역은 아열대 기후여서 사계절 모기가 있다. 내가 방에 들어서자 습기 찬 실내에 곰팡이가 슬어있었고 악취와 비린내가 났으며, 모기가 윙윙거리며 얼굴로 달려들었다. 나는 모기에게 “나는 대법제자인데 박해 받고 있다. 너희도 경찰을 도와 나를 박해하지 말라.”라고 했다. 이 일념이 나오자 모기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방안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마음이 선량한 한 경찰이 내게 낡은 담요 한 조각을 보내주었다. 나는 몸을 반쯤 누인 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잠을 잤다. 비록 환경이 열악했지만, 날이 밝을 때까지 푹 잤다.

이튿날, 그 경찰들이 다시 와서 나를 계속 불법 심문했다. 경찰 우두머리는 능청스럽게 “당신을 어떻게 그런 곳에 가둬 놓았소?”라고 했다. 나는 “당신들은 어떤 비열한 수단으로도 나를 변하게 할 생각을 하지 말라.”라고 했다. 그들은 나를 반나절이나 불법 심문했으나, 어떤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경찰 우두머리는 “당신의 굳건한 신념에 정말 탄복합니다. 솔직히 배신자가 필요하지만, 우리도 배신자를 미워합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나를 회사로 돌려보냈다.

사부님의 보호로 무탈하게 넘어가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法輪(파룬)은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1]

나는 수련 중에 많은 난관을 만났는데, 세 번의 생사관과 위험한 일을 겪었다. 하지만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고 그것을 심성을 제고하는 시험으로 여겼다. 나는 심성을 지키고 사부님의 보호 아래 모두 넘어갔다.

한번은 내가 밥을 할 때 고기를 튀겼는데, 솥에서 기름을 거르다가 고기가 솥에 떨어지면서 뜨거운 기름이 오른쪽 손등에 튀었다. 본능적으로 손을 찬물에 집어넣었다가 문득 ‘나는 수련인이라 아무 일도 없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손을 꺼내자 손등이 빨개졌고 후끈후끈해졌으며, 따끔한 느낌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일을 계속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증상이 없어졌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른손 중지와 검지에 큰 물집이 생겼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기름에 데었을 때 물로 씻어야 한다는 속인의 관념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것은 교훈이다.’라는 생각뿐이었다. 정오가 되기 전에 손가락의 물집이 사라졌다.

2012년, 나는 또 납치되었다. 구치소에 불법 수감되었을 때 갑자기 몸이 불편해지면서 혈압이 높아졌고 ‘심실 조기박동’과 ‘심방 조기박동’ 증세가 나타났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구치소의 의사는 매우 걱정하며 나를 병원에 데려가 응급실에 보냈다.

병원의 간호사가 내게 산소를 주입하고 심전도 검사를 했는데 나는 가소로웠다. 의사가 위독하다고 하자 구치소 경찰이 구치소에 함께 수감 중인 아내에게 알려 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병원 응급실에 있던 3일 동안 의사는 여러 가지 강압제를 썼고 이뇨제까지 썼다.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혈압이 떨어지지 않았고 부정맥의 증상도 호전되지 않았다. 주임 의사는 어떻게 효과가 없을 수 있느냐고 하며 어리둥절했다. 나는 “이것은 박해로 인해 나타난 현상입니다. 약은 우리 수련인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나를 지키던 경찰이 내게 수갑을 채워 침대에 묶으려 하자 나는 거부하고는 퇴원을 강하게 요구했다. 나는 “계속 이렇게 들볶으면 내가 병원에서 죽는다.”라고 했다. 결국, 구치소 의사는 나를 구치소로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다시 검사했을 때 혈압이 정상이었고 부정맥 증상도 사라졌다. 의사도 내 몸에서 파룬따파의 비범함을 보았다.

단식을 ‘벽곡’으로 삼다

2002년, 나는 불법 노동교화 때 일을 거부하는 것으로 박해에 저항했다. 노동교양소는 딸과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았고, 중앙과 각급 부서로 쓴 내 편지(집 편지 포함)를 압류했으며, 나를 감시하지 않으려는 조장을 아무 이유 없이 묶었다(닭 날개 묶기). 나는 단식, 단수, 단언(나중에는 진상을 알리기 위해 말을 했음)으로 항의하며 노동교양소 수뇌부에 해결을 요구했다. 노동교양소 간부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나를 만나지 않았다.

내가 단식, 단수하는 동안 노동교양소는 나를 외면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수시로 내 상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단수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단식과 단수를 시작한 첫날 밤에 입이 말라 힘들 때 ‘깊은 산속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수련할 수 있는데,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며 대법은 끝없는바, 벽곡(辟穀)하는 것으로 여기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나 혼자 큰 원탁에 앉아 식사하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부터 목마름도, 배고픔도 느끼지 않았고 정신도 맑았다. 경찰은 내가 단식, 단수하면서도 정신 상태가 여전히 좋고 얼굴색이 불그레하며, 말에 기운이 넘치자, 감시자에게 내가 몰래 물이나 음식을 먹지 않았는지 물었다. 감시자는 “파룬궁(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부른다)은 단식, 단수 후 양치도 하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습니다. 파룬궁은 진짜입니다.”라고 했다.

나흘 째 되는 날, 노동교양소는 사고가 날까 봐 두려워했고(내가 단식할 뿐만 아니라 단수까지 했기에), 한 기율위원회 서기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노동교양소의 위법 행위를 지적했다. 그는 상부에 보고해 내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대대장도 내가 제기한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나흘 뒤, 단식, 단수를 멈췄다. 그 이후 내 환경은 좋아졌다.

“나는 죄인이 아니고 감옥살이하러 온 것이 아니다”

1999년 ‘7.20’ 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나는 여러 차례 납치와 불법 수감, 불법 노동교양을 당하고 불법적인 형을 선고받았지만, 신념을 지켰으며, 악(惡)에 협조하지 않았다. 납치된 이상 수련하고 진상을 알릴 환경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며 심성을 지켰다. 그래서 매번 사악은 박해를 가중하지 못했고 나는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했다.

2005년 내가 불법적인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으로 이송된 첫날, 감옥 경찰 대장이 나를 찾아와 대화했다. 그는 대화 마지막에 “나는 당신이 무슨 이유로 들어왔든 당신이 감옥의 규율을 지키고 나를 난처하게 하지 않으면 나도 당신을 건드리지 않겠소.”라고 했다. 나는 “나는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다는 이유로 끌려왔습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고 감옥살이하러 온 것이 아니기에 나의 원칙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가 내게 뭘 하러 왔는지 묻자 나는 법을 실증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깜짝 놀라 즉시 “당신이 법을 어떻게 실증한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나는 “아까 당신과 얘기할 때 바로 법을 실증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파룬궁은 진선인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이 선의를 지켜야 재난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내게 법에서 깨달은 이 일념이 있었기에 그는 훈련 담당 감독관에게 나를 난처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훈련 한 달 뒤(나 혼자라서 감독관이 매일 나를 데리고 작업장을 돌아다니고, 다른 파룬궁 수련생들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나는 한 창고에 배치됐는데, 나를 지키는 두 감시자는 동년배였다. 그들은 내 생활에 관심을 보이며 돌봐 주는 등 내게 잘 대해주었다.

내가 창고에 배치된 첫날, 감시자 한 사람이 그의 수입 라디오(2012년 이전에는 감옥에서 라디오 사용이 허용되었음)를 내게 주고, 그는 일반 라디오를 사용했다. 나는 그가 준 라디오로 희망지성, 미국의 소리, 자유아시아 등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었고 국내외의 정법 형세를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나는 다른 감시자의 일을 도와주었다. 그는 내가 붓글씨를 쓸 줄 안다고 큰 책상을 만들어 주었고, 그의 문방사우를 가져다 쓰게 했으며, 내가 일을 하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사부님의 경문(經文)과 시사(詩詞)를 베끼고 서예 연습을 했다.

나중에 가족들이 사부님의 말씀이 담긴 MP4를 보내왔기에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베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창고에 온 죄수와 대외협상가,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하게 했다. 한때는 다른 교도소에서 불법 수감된 수련생들과 비정기적으로, 전달 방식으로 수련 체험을 교류했다.

대법제자로서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고,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키며, 진선인을 기준으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고 언제나 자비롭고 상냥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중생을 구하는 사명을 마음에 새기고,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의 관념을 버리고 수련인의 정념으로 대한다면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해주신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진정으로 수련하려는 마음이다.

우리가 언제라도 정념을 유지한다면 그 일념은 산을 가를 수 있으니 넘지 못할 난관이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시드니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10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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