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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의 근원

글/ 미서명

[밍후이왕] 세상에서 일어난 어떠한 일이든 모두 하나의 원인과 결과가 있다. 다만 사람마다 차원이 달라 사건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다르다. 신앙의 각도에서 보면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한 보응이 있다. 역병의 출현은 틀림없이 신이 죄지은 자를 징벌하는 것이다. 만약 이 지역의 도덕이 숭고하고, 민심이 순박하고 선하며, 관리가 공정하고 청렴하다면, 그곳은 기후가 좋고, 천하가 태평하여, 백성들은 안정된 생활을 누릴 것이다. 이런 문화를 전하고 계승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장구한 역사 기록에도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문화에서 역병의 발생을 본다면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사악한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은 ‘진선인(真·善·忍)’을 신앙하는 파룬궁(法輪功) 단체를 특정 종교로 모함해 제멋대로 잔인하게 살해하고, 짓밟고, 헐뜯어 이미 부처를 비방하고 바른 믿음(正信)을 박해하는 하늘이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그것은 결국에는 청산될 것이며 매장될 것이다. 그리고 양심을 저버리고 악을 도와 나쁜 짓을 하며, 사리사욕을 위해 선량한 사람에 대한 박해에 가담한 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악을 고치고 선을 향한다면 몰라도, 하늘의 뜻은 명백하기에 반드시 보응을 받을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전염병 중대 재해 지역으로 된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시 가오청(藁城)시로 말해보면,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던 초기에 스자좡에서만 십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했다. 그중에는 가오청시 쩡춘(增村)진 황자좡(黃家莊)촌 농민 리처우런(李疇人)도 포함되어 있다. 2001년 12월 23일, 리처우런은 다른 몇몇 파룬궁 수련생들과 함께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하다가, 가오청 공안국과 쩡춘진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가오청시 구치소에 구금돼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구타와 고문, 잠 못 자게 하는 것, 비행기 태우기 고문 등 박해를 받았다. 심지어 강제로 오줌을 마시게 했다. 리처우런은 고문으로 몸이 매우 허약해졌다. 그는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떴고 여동생은 결혼했으며 지능 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둘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매우 가난했다. 후에 구치소에서는 또 그의 여동생에게서 1500위안(약 26만 원)을 갈취하고 나서야 그를 석방했지만, 리처우런은 석방된 지 열흘 만에 세상을 떴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의 고문 설명도: 구타

가오청시 쩡춘진 궈좡(果莊)촌 촌민 우슈친(武秀琴)은 본래 전신부종과 당뇨병, 부인병 등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려 잘 누워 있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널리 전해진 시기에 법을 얻게 되어 수련했는데, 신기하게도 치료하지 않았지만 다 나았다. 2001년 7월, 우슈친은 갑자기 오른쪽 반신이 감각을 잃었고, 소변을 가누지 못했으며, 움직이지도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법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20여 일 만에 기적이 나타났는데,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가져와 마침내 걸을 수 있었고 간단한 집안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지 무법자들은 ‘헌법’이 부여한 공민의 종교 자유를 침해했고 장쩌민(江澤民)의 사악한 탄압 명령을 실행했다. 쩡춘진 파출소의 한 무리 경찰들은 도적 떼처럼 문을 부수고 집으로 쳐들어와, 벽을 타고 천정에 올라갔고, 집안을 마구 뒤집었다. 파룬궁 서적과 연공 테이프를 압수하고, 강제로 가오청시 610 세뇌반에 끌고 가 불법 감금하고는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나중에 몸과 마음의 시달림에 힘들었던 우슈친은 몸에 다시 몸이 아픈 상태가 나타났다. 그제야 가오청시 610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가족에게 집으로 데려가라고 전화했다. 2003년 11월 3일, 우슈친은 또다시 세뇌반에 납치되어 박해당했다. 한 평범한 시골 여성이 단지 연공으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려는 이유만으로 이런 잔혹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

리원쑤(李文素, 여)는 교사이며 97년 하반기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연공 전 신경쇠약, 두통, 협심증, 기관지염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고, 성격이 나빠 부부간에 갈등이 심했다. 수련을 시작한 후 그는 착실하게 ‘진, 선, 인’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고, 건강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도 화목해졌다. 1999년부터 일시적으로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그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노인의 변기에 있는 소변을 버리고, 벽난로 재를 치웠으며, 방을 청소하고 아침밥을 지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감동해 파룬따파는 너무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리원쑤는 줄곧 ‘진, 선, 인’의 기준으로 열심히 일했다. 학교에서 그녀에게 엉망인 반을 맡겼는데 평균 점수가 다른 반과 18점이나 차이가 났다. 하지만 그녀는 꼴찌 반을 기말시험에서 예상외로 1등으로 끌어올렸고, 반을 질서정연하게 잘 관리해 교장 선생님의 칭찬도 자주 받았다. 1999년 가오성시 교육국에서는 이렇게 우수한 교사를 불법적으로 공직에서 해고했고, 그 뒤에 네 차례나 불법으로 가뒀으며 현지 정보과(政保科)는 6천 위안(한화 약 104만 원)을 갈취하고도 영수증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스자좡으로 보내 3년간 불법 노동교양을 강요했다.

루펑(路峰)은 쩡춘진 궈좡촌 사람이며 쩡춘진 중학교 교사이다. 항상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고 맡은 바 일을 다 했다. 그가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었기에 소위 민감한 날(4.25나 7.20 혹은 나라에서 회의를 소집하는 기간)이 되면 학교 고위관리자는 그에게 ‘진, 선, 인’ 신앙을 포기하는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했고, 응하지 않으면 직장을 잃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의과 연구생 둥추이팡(董翠芳 여, 29세)은 가오청시 싱안(興安)진 사람이며 허베이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99년 7월 20일 후 베이징에 파룬궁 청원하러 갔다는 이유로 현지 국가보안 요원들의 괴롭힘과 협박에 여러 차례 시달렸다. 어쩔 수 없어 2001년 초에 집을 떠나 베이징 교외에서 유랑 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다. 2002년 봄, 둥추이팡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붙잡혀 베이징 다싱(大興) 노교소에 구금되었다. 그 기간 모진 고문을 받고 2003년 3월 20일 감옥에서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시신의 머리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가오청시에서 이런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불완전한 통계이지만, 99년경 가오청시에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100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어떠한 혹독한 시련을 겪었을지 한마디로 다 말할 수 없다. 2005년 3월 밍후이왕(明慧網)에서는 가오청 시위 방범위원회(610 사무실)에서 2005년 2월 1일에 각 향진 구역과 시 직속 기관에 내린 2005년 설 기간 파룬궁을 박해하라는 일련의 지침 통보를 폭로했다. 이는 중공 가오청시 위원회가 장쩌민이 발동한 파룬궁 박해-세뇌와 전향에 전력을 다해 참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통보문건은 ‘세 가지 제로’를 목표로 ‘베이징 상방(上訪) 제로’, ‘현지에서의 항의 집회 제로’, ‘유선 삽입방송과 무선전파 발신 제로’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제로’의 실행은 바로 파룬궁 수련생의 자유를 제한하고, 불합리한 괴롭힘, 부당한 벌금, 부당한 체포와 구금, 강제 세뇌와 잔혹한 고문, 공직 해고, 퇴직금 체납 등이 포함되며 회사나 가족까지 끌어들여 괴롭히거나 심지어 박해로 사망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사망하는 등이 있다.

박해의 악행에 대한 보응의 경고는 일찍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지만,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마음을 조용히 하고 반성했는가?

장사오궈(張紹國)는 원래 가오청시 시위(市委) 서기이다. 2000년경 파룬궁 박해가 가장 심한 시기에 파룬궁 박해에 관한 업무보고를 할 때, 가오청시 공안국에서 우리 사람(관리 본인 혹은 가족을 가리킴)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묻자, 장사오궈는 히스테리적으로 “누구든지 막론하고 일률로 잡아들이고, 때리고, 처벌할 것이다”라고 소리 질렀다. 그 결과 2002년 봄, 가오성시에서 전인대회의를 열 때 그는 식물인간이 됐는데, 반년 후에 죽었다. 당시 50여 세였다.

웨이리옌(魏立岩)은 원래 가오청시 공안국 정보과(전문 불법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붙잡음) 과장이다. 정보과는 나중에 국보대대로 변경했고, 웨이리옌은 국보대대 대대장으로 부임 됐다. 가오청시 모든 파룬궁 수련생의 불법체포와 처벌, 노동교양은 모두 그와 관련되어 있다. 그 기간, 파룬궁 수련생 둥추이팡(여, 의학연구생, 가오청시 싱안진 사람, 2003년 박해로 사망)은 바로 웨이리옌이 직접 사람을 데리고 여러 차례 불법적으로 집을 수색하고 붙잡았었다. 그는 또 양쉐추이(楊雪翠, 대학교수)를 납치하는 데 가담했고, 그녀를 1년간 강제로 노교소에 보냈다. 결국, 웨이리옌은 2014년 가을에 위암으로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가 50대였다.

장쑤먀오(張素苗, 여)는 원래 가오청시 구치소 교도관이다. 2000년 전후, 한 여성 파룬궁 수련생이 구치소에 불법 구금 기간, 단식으로 불법 구금에 항의할 때, 장쑤먀오는 교도소 의사와 남자 죄수를 시켜 이 파룬궁 수련생을 감방에서 들고 나가 야만적으로 음식을 주입했고, 또 신발 밑창으로 그 파룬궁 수련생의 얼굴을 떼렷다. 그 결과, 2003년경 그녀의 외아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멈춰 선 트럭에 부딪혀 죽었는데 나이는 겨우 18~19세였다.

리루핑(李路平)은 원래 중공조직부 부부장이다. 중공 가오청시 시위 정부에서는 여러 차례 강제로 ‘전향’, ’학습반(세뇌반)’을 열어,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강제로 파룬궁을 모독 비방하는 방송을 보게 하고,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했으며, 파룬궁 수련생들이 진실을 밝히러 청원하러 가지 못하게 했고, 십여 일 심지어는 수십 일 불법 감금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리루핑은 ‘전향반’의 총책임자였다. 2014년 이 사람은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되었다.

어쩌면, 한두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주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역병이 왔고, 모두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전국의 심각한 재해 지역을 보면 확실히 모두 파룬궁 박해가 심한 지역이다. 밍후이왕 조사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3년까지의 14년간 헤이룽장(黑龍江), 허베이,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산둥(山東), 쓰촨(四川),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허난(河南), 베이징 등은 파룬궁 박해가 가장 창궐한 10대 지역이었다. 그 중,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헤이룽장성으로서 1위를 차지했고, 다음은 허베이성이 2위, 랴오닝성이 3위였다. 중공은 거짓말과 폭력으로 사람을 박해하고, 각급 관리들을 이익으로 유혹해 신불의 제자에게 죄를 짓게 하고 있다. 중공의 악행이 역병의 유행을 초래한 것이며, 정법에 대한 중공의 박해가 바로 역병의 근원이다!

 

원문발표: 2021년 1월 17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17/4186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