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필농(筆農)
[명혜망] 정월 초하루와 이튿날은 설날(섣달그믐을 지나 새해로 들어서는 날) 이후 맞이하는 중요한 명절이다. 당·송·원·명·청 각 왕조의 풍습은 역사적 배경에 따라 변화가 있었지만, 모두 ‘단란함’과 ‘축복’이라는 공통된 핵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배, 제사, 가족 모임 같은 활동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가족 결속력을 높이며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등 심신 건강에 유익하다. 동시에 효도, 웃어른 공경, 가족 사랑 등 전통 가치관과 윤리 도덕의 전승을 보여준다. 섣달그믐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단순한 명절이 아니라 문화와 책임을 전달하는 시간이며, 모든 세대가 축하와 휴식 속에서 문화의 뿌리와 가족의 유대를 느끼게 한다.
당나라 시기 설날, 특히 정월 초하루에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풍습이 이미 적지 않았다. 당나라 설 풍습은 축제의 활기와 장엄함을 중시했으며, 가족 모임, 세배, 제사 등이 흔한 활동이었다. 특히 ‘초하루 세배’ 때 사람들은 새 옷을 입고 친지와 친구를 방문해 선물을 교환했다. 이런 풍습은 길상(吉祥, 행운)과 축복을 상징하며, 새해의 순조로운 삶과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당나라 사람들은 제사 또한 중시했다. 특히 설 기간에는 많은 가정에서 제물을 차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조상의 보살핌과 가정의 안녕을 빌었다. 제사 활동은 가문과 역사의 전승을 보여주며 가족 구성원의 가족애와 윤리적 책임감을 강화했다. 세배와 제사는 당나라 사람들의 효도 문화를 반영하는데,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당시 사회의 기본 윤리 규범이었다. 이러한 풍습을 통해 가족 간의 정과 책임감이 유지되고 사회 안정이 촉진됐다.
송나라 시기 새해 축하 활동은 더욱 다원화됐으며, 송대 사람들은 의식과 세부적인 표현을 더욱 중시했다. 송대부터 섣달그믐밤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단원반(團圓飯)’ 전통이 시작됐고, 초하루에는 폭죽을 터뜨려 새해 도래를 축하했다. 당시 폭죽은 사악함을 쫓고 재앙을 피하며 새해 평안을 기원하는 상징이었다. 또한 송대에는 꽃등 감상과 등수수께끼 놀이가 시작됐는데, 이는 명절의 재미와 참여감을 높이고 예술과 아름다운 삶에 대한 송나라 사람들의 추구를 보여줬다.
단원반과 명절 활동은 가족 구성원이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게 해 가족애를 높이고 일상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폭죽놀이, 꽃등 감상 등은 사람 간의 교류를 강화하고 긍정적인 정서와 건강한 사회 환경을 조성해 유가가 강조하는 ‘인애(仁愛)’ 정신을 구현했다.
원나라 설 풍습은 몽골 민족의 특색이 짙으면서도 한족(漢族)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원대 설 기간에는 ‘배신년(拜新年)’ 전통이 있었는데, 백성들이 초하루에 친지를 방문해 선물을 건네며 축복하는 것이다. 명절에는 풍성한 연회와 장터가 열리곤 했다. 원대의 원소절(정월 대보름)은 매우 떠들썩해서 등불 축제, 용춤, 사자춤 등의 활동이 성행했으며, 정월 초하루부터 긴 축제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족에게 있어 원나라 통치자는 비록 이민족이었지만 명절 전통에는 여전히 한족의 윤리 문화가 보존돼 있었다. 특히 ‘세배’ 풍습은 사람 간의 상호 존중과 축복을 구현했으며, 조상과 가족에 대한 한족의 공경심을 반영했다.
명나라 설 풍습은 송나라와 원나라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켰으며, 특히 가족의 단란함과 조상에 대한 공경을 중시했다. 정월 초하루 전, 명나라 가정에서는 대청소를 하며 지난 한 해의 불길함과 묵은때를 씻어내고 새해의 행운과 축복을 맞이했다. 청소는 단순히 집안일이 아니라 가정의 청결과 정돈을 촉진해 사람의 마음을 더욱 상쾌하게 했다. 초하루 당일에는 집집마다 세배하며 어른들에게 축복을 올렸다.
명나라 설 기간에는 연야반(年夜飯·설 전날 저녁 식사)이 가족 모임의 중심이 됐다. 가족들이 모여 연야반을 먹으며 정을 나누고 즐거움을 공유했다. 단원반과 세배 활동은 가족 결속력을 높이고 고독감을 줄이며 심신 건강을 증진했다. 또한 가족과 조상에 대한 존경을 강조해 ‘효도’ 문화를 이어갔다. 이러한 풍습을 통해 사람들은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고 사회 질서를 유지했다.
청나라 설 풍습은 명나라의 많은 전통을 계승했으며, 특히 만주족 문화와 한족 문화의 융합 면에서 두드러졌다. 청나라 사람들은 설 기간 장식을 매우 중시해 집집마다 춘련(春聯)을 붙이고 등롱을 내걸었다. 정월 초하루에 폭죽을 터뜨려 사악함을 쫓고 재앙을 피하는 풍습도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전 왕조와 마찬가지로 청나라 설에도 여전히 세배와 세뱃돈(훙바오)을 주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세배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이나 친지에게 축복과 길상을 전하는 상징이었다. 청나라 설 활동은 폭죽, 용춤 등의 형식으로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화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춘련 붙이기, 폭죽 터뜨리기 등 활동은 신체 활동과 활력을 높이는 역할도 했다.
청나라 설 풍습은 명나라의 ‘효도’ 전통을 이어받아 가족의 단란함과 가족애를 강조하는 동시에 민족 융합의 문화적 특색을 보여주며 서로 다른 민족 간의 이해와 존중을 촉진했다.
요컨대 당·송·원·명·청 등 왕조는 달랐지만 설날의 단란함과 축복이라는 핵심은 일치했다.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중원 지역 사람들 뼛속에 내재된 ‘천성’일까?
원문발표: 2026년 2월 21일
문장분류: 천인(天人)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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