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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정한 선(善)인가 ◎사부님 평어

정법(正法)과 수련

이 글 ‘무엇이 진정한 선(善)인가’는 정법(正法)과 수련의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아주 명백히 말하였다. 대법제자는 정법 중에 있기에 과거의 개인수련과는 다르다. 무리한 상해(傷害)에 직면하거나 대법(大法)에 대한 박해에 직면하거나 우리에게 강제로 주어진 불공정에 직면할 때, 예전의 개인수련처럼 그렇게 대하여 일률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는 현재 정법시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개인의 집착과 잘못으로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은 반드시 사악이 교란하거나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수련 중이며 아직도 최후의 속인 마음이 있다. 문제가 나타나면 반드시 먼저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가를 검사해야 한다. 만약 교란과 파괴임을 발견하면 실제적인 문제를 처리할 때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가급적 평화롭고 慈悲(츠뻬이)하며 선량해야 한다(비록 이용당하는 사람이 늘 사상이 좋지 못한 사람이거나 혹은 좋지 못한 사상을 나타내는 사람일지라도). 왜냐하면, 사악이 사람을 이용할 때 사람 자신은 흔히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공간의 사악 교란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격하게 정념(正念)으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리훙쯔(李洪志)
2001년 7월 8일


[밍후이왕] 최근 진상을 알릴 때, 우리는 ‘선에는 보답이 있고, 악에는 응보가 있다’는 천리(天理)를 전단지나 신문에 넣어 세인들에게 알리고 있는데, 어떤 속인은 큰 거부감을 느끼며 심지어 우리에게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법에 의해 바로 잡힌 한 입자(粒子)로서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선악에 응보가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천리인데 변이된 인간이 믿지 않을 뿐이다. 믿지 않는 사람이 거부감을 느낄 때는 그 이치가 그의 변이된 부분을 건드려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깊은 인상이 남아 장래에는 그에게 이득이 된다. 나는 이 일 자체를 떠나, 우리가 반드시 일부 변이된 관념을 바로잡아야 함을 깨달았다.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제거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반드시 대법으로 일체를 가늠해야 한다. 대법은 영원히 우리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속인의 느낌에 이끌려 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직장, 사회, 심지어 가정에서 때로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턱대고 속인이 하자는 대로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인류의 도덕수준이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나든지 이 우주의 특성 ⎯⎯ 真(쩐)·善(싼)·忍(런), 그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꼭 좋은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해서 당신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마저 모두 비뚤어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우주의 이 특성에 부합(符合)해야만 그는 비로소 좋은 사람이며, 이것이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으로서, 이것은 우주 중에서 승인받은 것이다. 당신은 인류사회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지만 보지 말라. 인류의 도덕수준이 크게 미끄러지고, 세상 기풍이 날로 떨어져 오직 이익만 탐내고 있지만, 우주의 변화는 인류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한 수련인으로서 속인의 표준으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속인이 이 일이 옳다고 한다 해서 당신이 이것에 따라 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 속인이 좋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이 아니고, 속인이 나쁘다고 해서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도덕표준이 비뚤어진 시대에는 한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 당신이 그에게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어도 그는 믿지 않는다! 한 수련인으로서 우주의 특성으로 가늠해야만, 비로소 무엇이 진정 좋고, 무엇이 진정 나쁜지 변별해 낼 수 있다.”(전법륜)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선(善)인가?

‘전법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대법을 수련하는 한 할머니가 큰길을 건너다가 자동차에 치였다. 그런데 할머니는 “괜찮아요. 당신들은 가보세요”라고 말하며 먼지를 툭툭 털고는 남편의 손을 잡고 떠났다. “구경꾼들마저 이상하다고 느낀다. 이 할머니는 왜 그에게서 돈을 좀 뜯어내지 않는가. 그에게 돈을 달라고 해야 한다. 지금의 사람은 도덕수준마저 비뚤어짐이 발생했다.”(전법륜) 겉으로 보면 구경꾼들은 그 할머니 대신 불의에 맞서는 것 같지만 이는 사실 변이된 ‘선(善)’이다. 사람들은 흔히 눈에 띄지 않는 변이된 관념을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법제자가 변이된 관념에 이끌려 가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반드시 진정한 대선(大善)으로 그것을 적극 제거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나에게 깊은 교훈을 남긴 한 가지 사건이 있다. 어느 날 나는 차를 운전하다가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 부주의로 앞 차를 들이받았는데, 상대방은 아주 불쾌한 표정으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면서 차 뒤쪽을 자세히 살폈다. 그의 차 뒤에는 깊게 패어 들어간 홈이 몇 곳이 있었다. 그의 차는 아주 높아서 내 차가 들이받아 생긴 것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내 잘못이 아니라 해도 업을 갚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모든 손실을 배상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즉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그에게 좋은가?’ 나는 내가 이기심으로 자신의 득실을 따지고 있는 것을 보고 강한 정념으로 생각했다. ‘만약 나의 업력 때문이라면 예전에 빚진 일체를 감당하겠지만 이유 없이 돈을 뜯길 순 없어. 이렇게 하면 그에게도 좋지 않아.’ 그때 뜻밖에 그 운전자가 다가와 말했다. “저 홈들은 다른 차가 박은 겁니다. 선생님과는 상관없어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는 이어서 자기소개를 하고 기분 좋게 나와 악수하고 헤어졌다. 아마 그의 선량한 일면이 내가 진심으로 그를 생각해 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우리의 일언일행은 모두 중생에 대해, 사회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일체 바른 요소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됐다. 우리의 잘못으로 그들이 업을 짓게 해선 안 된다. 미래의 인류사회에는 변이된 사상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선(善)은 아무런 사념(私念) 없이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며, 한 생명, 중생과 우주의 영원함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선(善)의 힘은 그 어떤 저애력과 선하지 않은 것도 모두 녹여버릴 것이고, 그 어떤 변이도 모두 바로 잡을 것이며, 이해되지 않던 것도 점차 이해되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상을 알리고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세인의 선념(善念)을 계발시키고, 그들에게 그 배후에 있는 위대한 법리(法理)를 보여줘야 한다!

[법입자(法粒子), 정견망에서 전재]

 

원문발표: 2001년 7월 8일
문장분류: 사부님 평어 문장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01/7/8/130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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