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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스러운 동수 한 분 – 나의 아내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대륙에서 박해 당하여 유리실소하는 대법제자이다. 나는 본래 하나의 행복한 가정이 있었고, 현숙한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의 좋은 동수들이었다. 구정이 다가올 때 나는 나의 글이 그들의 정념정행(正念正行)을 기록하여 그들에 대한 나의 깊은 그리움을 기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와 아내는 1996년 1월 정식으로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아이는 겨우 2살 반이었으며, 우리 두 사람중 한사람은 집에 남아 아이를 데리고 있고, 한사람은 하루에 교대로 연공하고 법공부하였다. 수련한 지 얼마 안되어 나는 보도원이 되었고 적극적으로 홍법에 나섰다. 끊임없이 새로운 연공장이 생기고 법공부팀이 성립되었는데 노수련생이 이끌어야 했다. 매일 아침저녁 단체로 연공하고 법공부하는데 나는 모두 참석하였다. 이후로 아들은 그녀가 혼자서 보살피게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단체활동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느끼었지만 그녀는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고 묵묵히 아들을 보살피면서 법공부를 하였다. 내가 신기하게 느낀 것은 그녀가 법에 대한 인식, 그녀의 제고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대법의 신기함을 느끼었고 그녀의 순정한 마음으로 인하여 펼쳐진 신기함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에야 보니 마침 사부님께서 >에서 “신은 당신의 방법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당신에게 층차를 제고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상에서 당신의 인식이 제고되어서야 비로소 당신의 층차를 제고시켜 준다. 이것이 바로 바른 법리(正法理)이다. 나에게 얼마의 공로가 있어 나는 어떻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속인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러하다. 우주의 법리에 대해서 말할 때 어떤 특징 속에서, 어떤 특수한 환경 속에서 아마 이 한 면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대로 였다.

한차례 법회에서 그녀의 행동은, 나에게 큰 진동을 줬다. 1996년 말, 우리는 100여 명의 제자들이 참석하는 법회를 조직하였다. 간 사람들이 너무 많아 원래 정해진 표가 조금 모자랐다. 표를 나누는 보도원이 그녀에게 “당신은 노수련생이니 당신은 밖에서 들으시오”라고 말했다. 그 당시 극장 밖에서 큰 스피커를 연결하여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녀가 평소에 교류활동에 아주 적게 참석하기 때문에 마땅히 그녀더러 들어가서 듣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불편했고 평형을 잡지 못하였다. 스피커가 어떠하여도 나는 잘 듣지 못하였다. 나중에야 끝나기 전에 들어가서 비로소 조금 듣게 되었다. 아내는 극장의 계단에 앉아 두 다리를 틀고 가부좌하였는데 평온하고 또한 상서로웠으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들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오가면서 조금 혼잡스럽지만 그녀에게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부분 듣지 못하였는데 스피커가 잘 들리지 않았소.” 그녀는 “나는 아주 잘 들었어요. 그곳에 앉자 나는 마음속으로 속인의 벽이 대법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라고 하였다. 그녀의 평온한 말은 나에게 강력한 진동을 주었다. “공을 수련하는 길은 마음이 지름길”이다. 나는 속인의 생각이었고 마음속의 그 벽(평형을 잡지 못한 심리)이 이 일에서 나와 대법을 갈라놓았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대법 뿐이고 벽이란 개념이 전혀 없었다. 얼마나 순정한 일념인가. 이것이 바로 진수(眞修)이다. 대단한 대법제자! 나는 정말로 이렇게 좋은 동수 아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7·20 이전의 법공부나 홍법(洪法)이든, 아니면 7·20 이후의 호법(護法)이나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길이든, 우리 부부는 모두 서로 마음을 써주며 사랑하는 동수였다. 1999년 4·25에 나와 아내는 새벽 3시 반에 차를 타고 청원하였다.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서있었다. 총리가 나와서 대법제자를 접견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대법제자의 위대함을 직접 견증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새벽 1시 반이었다. 하루동안 서있었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고 우리는 마음속으로 아주 기뻤다. 7·21와 7·22 이틀동안 우리는 또 함께 북경으로 갔다. 두 명의 경찰, 두 명의 거위회(居委會), 네 사람이 문앞에서 하루동안 망을 보았지만 붙잡지 못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을 하든지를 막론하고 다만 우리의 마음상태가 순정하면 대법의 신기함, 초상함과 끝없는 위력은 체현되어 나올 수 있다. 후에 사악은 갈수록 발광하였고 나는 여러 차례 불법으로 불리워갔다. 네 차례 불법으로 구류되고 일년 노동개조 당하였다. 아내는 늘 밥을 보내고 돈을 보냈고 옷을 보내는 동시에 나를 격려하였다. 우리는 서로 지지하고 서로 신임하고 서로 협조하였는데 내가 감옥에 있고 그녀는 집에 있든지, 아니면 그녀가 감옥에 있고 내가 집에 있든지, 혹은 같이 감옥에 있든지, 혹은 내가 유리실소 하든지를 막론하고 우리의 마음은 모두 대법 속에서 긴밀히 연결되었다.

아내는 아주 용감하였고 정기(正氣)가 있었다. 내가 2000년 6월 한 차례 불법으로 불려 갔을 때 그녀와 다른 수련생은 함께 정보과 과장의 집으로 찾아갔다. 아내는 아주 조리 있게 말하였고 사람으로 하여금 부부의 사랑의 정과 대법에 대한 단호한 올바른 믿음(正信)은 원융한 것으로 모순이 없이 느끼게 하였다. 과장은 그녀에 대해 아주 탄복하여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원래 법륜공을 연마하려고 하였는데 나중에 나는 당신들이 무정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오늘 당신을 통하여 당신들 연공하는 이들은 무정하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파출소에 통지하여 아내더러 그날 밤 나에게 밥을 보내도록 하였고 내일 사람을 풀어주도록 하였다. 이튿날 나는 풀려났다.

어느 한번, 나와 수련생은 지방에서 수련생들과 교류하다가 불법으로 구류되었다. 공안국은 사람을 시켜 말하기를, 가족이 돈을 내기만 하면 데려갈 수 있다고 하였다. 아내는 속임수에 들지 않았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였다. 매일 법공부하면서 모두 법을 읽어 천리 밖의 감옥에 있는 우리에게 읽어주려고 하였다. (마치 오늘날의 발정념처럼) 동시에 또 간수소의 경찰에게 편지를 써서 홍법하였다. 아울러 나는 줄곧 단식으로 항의하였다. 나와 두 사람 그리고 다른 대법제자들 모두 안에서 밖에서 묵묵히 협조하였다. 20여일 구류된 후 우리는 조건없이 석방되었다. (구류는 38일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지역 불법으로 구류된 대법제자는 2개월, 3개월은 전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떤 이는 이미8개월, 9개월 심지어 더 길었다. 그들은 대법제자에 대해 전혀 법률을 논하지 않았다. 나의 조건없는 석방은 그 지역 수련생들에게 아주 큰 고무격려가 되었다.) 이 일을 통하여 나는 아내의 이지와 지혜 그리고 대법에 대한 비할 바 없는 단호함을 보았다.

아내는 2000년 상반기에 세 차례 천안문에 가서 청원하였고 두 차례 불법으로 구류 당하였다. 3월 5일은 전인대회(人大)가 개막되는 날이었다. 전날 밤 파출소 소장이 경찰을 데리고 와서 소란을 피웠고 아내의 오빠와 언니는 우리가 북경에 가서 청원하는 것을 두려워 집에서 머물면서 우리를 지켰다. 나는 아침밥을 만드는 기회에 그녀를 엄호하여 나가게 하였다. 그녀는 1월경에 첫번째 청원할 때 단지 경찰이 한마디 어디로 가서 청원하는가 물었다가 경찰차에 잡혀졌다. 이번에 그녀는 문제를 반영하려고 하였다. 그 당시 천안문광장에는 경찰, 사복경찰들이 아주 많았다. 아내는 가볍게 대륙 기자의 보도장으로 들어갔고 아울러 여러 차례 들락날락하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서 볼펜을 빌려 신분증 복사본의 뒷면에, 전인대회가 법륜공이 모함된 것을 조사하고 사부님의 명예를 바로 잡고 회복할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썼다. 그녀는 편지를 기자에게 주었고 그들에게 인대대표에게 전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안전을 책임진 관원 그 곳으로 데려가졌고 그들은 이렇게 엄밀한 안전검사 하에 법륜공수련생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아주 놀라워하였다. 관원은 아주 화가 났고 보안을 찾아 꾸짖었다. 아내는 그에게 보안원을 비평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일체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였다. 아내는 자신이 불공정함을 당할 때 또한 보안을 대신하여 말하였다. 완전히 다른 사람을 고려하였다. 그녀의 진실과 선의는 책임원과 보안들마저 놀랍고 또한 감동하게 하였으며 그녀의 행위에 대해 이해와 탄복이 생기게 하였다. 사실 보안은 아주 억울하였다. 그들은 반드시 아주 이상하였을 것이다. 법륜공은 어찌하여 이런 사람들일까, 상급이 그들에게 알려준 법륜공은 마땅히 아주 흉하거나 혹은 두 눈빛이 멍한 사람이어야 했다. 아내의 솔직함은 마치 평소에 자신의 회사에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녀가 바로 기자라고 여기게 하였다. 그녀의 상서로움과 선량함, 열정은 마치 한 가닥 봄바람처럼 그녀와 접촉한 매 한 사람을 감염시켰다. 안전부문의 관원과 보안들은 인연이 있어 대법제자의 용기와 선량함을 견증하게 되었다. 그들은 반드시 크게 깨어났을 것이다. 자신은 상부에 의해 기만 당하였으며, 원래 법륜공을 연마하는 이들은 모두 이런 사람들이구나.

아내는 아주 많은 경찰들에게 “보호” 되어 “영광스럽게” 돌아왔다. 전인대회가 개막하는 이 날은 아주 큰 국경일이다. 구위 파출소 몇 명의 경찰과 큰 차가 북경에서 기다리면서 사람을 맞이하였는데 단지 한 사람이었다. 또한 대회당으로 들어간영향력이 아주 컸다. 그들은 우습기도 하고 또한 탄복스러웠다. (아주 많은 대법제자들은 이미 먼저 청원하여 붙잡혔고. 구 간수소에서는 아주 많은 제자들을 가두고 있었다.) 아내는 불법으로 간수소에 보내졌고 그녀는 똑같이 아주 잘하여 경찰과 재소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비록 먹는 것은 옥수수빵이고 배추국이며, 잠을 자려고 돌아누울 때 구령을 부르지만 (여자감방은 청원하여 불법으로 감금된 대법제자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모두들 옆으로 누워잤다) 그녀는 아주 낙관적이었다. 나는 그녀가 전혀 고생을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고생”은 그녀로 놓고 말할 때 아무 것도 아니고 진정으로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를 체현하였다. 20여 일 후 그녀는 조건 없이 석방되었다.

2000년 4월 25일 우리 두 사람은 천안문에 가서 청원하고 함께 구 간수소에 잡혀갔다. 예심은 아주 명석한 노경찰이 하였는데 단지 간단하게 정황을 물었다. 그녀는 아내에게 “만약 나라면 당신들을 전혀 붙잡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간수소에서 우리는 비록 함께 있지 않았지만 연공을 견지하여 재소자들의 구타를 당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대법제자들과 함께 단호한 정념정행을 통하여 연공 환경을 창조하였다. 동시에 중생을 구도하였다. 5월 13일은 법륜대법날이며 또한 사부님의 생신이다. 구 간수소는 경문을 외우는 목소리가 하늘가에 울려 퍼졌고 우주를 진감하였다. 경찰과 감금된 재소자들은 반갑게 불법을 듣게 되었다.

5월 말, 대부분 수련생들이 조건 없이 석방되었지만 여전히 네 명의 수련생들이 감금되었다. 동시에 감금된 이들 중 아직도 많은 이들이 지방수련생들이었다. 5월 31일 나와 아내 등 8명 수련생은 공안국에 가서 청원하였다. 민경(民警)은 우리를 맞아주었고 우리가 제기한 감금된 법륜공제자를 석방하라는 의견에 기록을 하였다. 이는 탄압한 후 구 공안국 신방판에서 첫번째로 단체청원하는 대법제자를 맞은 것이다. 모두들 민경(民警)에게 홍법하였고 그들은 아주 신선하게 듣고 있었고 아주 좋게 느끼었다. 이튿날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온 수련생과 가족 50, 60명은 공안국에 가서 단체로 청원하였다. 인원수가 비교적 많음으로 접대원은 접대할 수 없다고 느끼었다. 아내는 주동적으로 민경에게 제기하여, 여러분들의 의견을 집중하게 하였고 필을 빌려 여러 사람들이 말하게 하고 그녀가 기록하였다. 주요하게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대법을 바로 잡아주고 감금된 모든 대법제자를 석방할 것 등 여러 가지 요구가 포함되었다. 기록한 후 아내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한번 읽었다. 아주 잘 썼고 그녀는 훌륭히 읽었다. 모두들 열렬한 박수소리로 통과를 표하였다. 그리고 줄을 서서 서명함으로써 대법제자의 좋은 풍모를 펼쳐보였다. 공안은 아내를 데려가려고 하였고 모두들 그들과 같이 가지 말라, 당신은 우리의 대표로서 우리에게 대표가 없게 된다. 가려면 우리 함께 가자고 하였다. 나중에 정보과장이 말했다. “그럼 당신이 돌아가시오.”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나더러 돌아가라고 하고선, 그들이 길에서 나를 붙잡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정보과장은 당신을 붙잡지 않을 것임을 보증하였다. 그녀의 약속을 받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청원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고 공안은 대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수련생들은 공안국 대문 밖에서 법을 외웠고 여러 날 지속되었다. 걸어나오지 못한 수많은 수련생들이 이번에 걸어나왔다. 동일한 시간에 어느 한 구의 제자가 공안국에 가서 수련생의 정황을 물었는데, 현장에서 2년 노동개조 당하였다. 그러나 우리 이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긴 시간동안 청원하였지만 사악은 도리어 박해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대법제자가 전체적으로 제고되는 중요성을 충분히 설명하였다. 우리는 일단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는 전체가 형성되면 반석같이 견고하고 금강불파(金剛不破) 한다. 이번의 성공적인 청원, 아내의 단호한 정신(正信)과 순정한 마음상태, 선의적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함은 아주 좋은 작용을 일으켰다.

2000년 후반, 나는 불법으로 노동개조 당하였다. 몇 달 전, 회사는 북경에 가서 청원하지 않음을 보증하고 단체연공에 참석하지 않으면 출근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 두 사람은 회사가 우리에게 헌법이 부여한 권리를 포기할 권리가 없다고 여기고 서명을 거절하였으며 그 때문에 출근하지 못하였다. 우리 두 사람의 월급은 중지되었다. 내가 노동개조 당할 때 그녀에게 어떠한 저축을 남기지 않았다. 그녀는 일자리가 없었고 아이는 학교에 다니려면 돈이 필요하였다. 매 달마다 나에게 돈을 보내야 했는데 누구든지 아내의 그 당시의 간고함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연약한 몸으로 견강하게 걸어나왔고 각 방면에서 모두 원융하게 잘 하였다. 감옥에 있는 나는 그녀의 견인함과 대인에 경탄과 감사로 충만하였다. 나는 그녀가 잘할 수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대법이 그녀에게 무궁한 용기와 힘을 주었다. 대법은 나의 아내더러 그렇게도 티없이 완벽하게 변하게 하였다.

2001년 나는 노동개조소에서 석방되었다. 우리는 함께 법공부하고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하였다. 우리의 마음은 정법의 길에서 영원히 함께 있었다. 아내의 정념은 아주 강하였다. 2002년 3월 장춘의 수련생을 성원하고 동시에 그 지역 세뇌반의 사악한 요소를 청리하기 위하여 오전에 가서 법회를 열기로 하였다. 오전에 날씨가 아주 좋지 못하였는데 큰비가 올 모양이었다. 발정념 전에 나는 ‘낡은 세력이 우리를 놀라게 하지 말라. 큰 비가 내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칼을 내린다고 하여도 갈 것이다’고 말했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말한 것은 틀렸어요. 우리는 정법의 일을 하고 있고 구도하는 것은 무수한 중생들인데 그것들은 절대 파괴할 수 없어요. 그것더러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해야 해요!” 나는 맞다고 하였다. 우리는 함께 단호하게 정념을 내보냈으며 출발한 후에 날씨는 갈수록 좋아졌다. 법회는 아주 성공적으로 열렸고 우리는 함께 정념의 강대한 위력을 체험하였다.

아내는 진상 알리기에 아주 주동적이었다. 일체 기회를 이용하여 진상을 알렸다. 물세, 전기세, 가스통교환의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아울러 효과가 아주 좋았다. 2002년 입춘은 나의 구에서 첫번째 법륜대법날이었다. 아내와 아들은 함께 시장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였다. 어떤 이들은 주동적으로 그녀한테서 주동적으로 요구하였다. 후에 그녀가 길에서 걸어가면 어떤 사람은 탄복하듯 그녀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법륜공을 연마하는 사람이다고 하였다. 그녀는 또 접착테이프를 구 정부의 문 앞에 붙혔고 아름다운 진상자료를 가장 번화한 큰길에 여러 날 붙혔는데, 정말로 일종 경사스러운 명절분위기였다. 그녀의 정념이 강하고 마음상태가 순정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와 다른 동수들은 큰 고무를 받았다. 어떤 때는 만들어진 자료가 없었는데 그녀는 기다리거나 의지하지도 않고 스스로 색연필로 적었다. 가족들이 모두 도와주려고 하였고 한번에 아주 많이 쓸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휴일을 이용하여 나가서 걸었다.

나와 아내는 모두 그 지역 610이 중점적으로 박해하는 사람이었고 어떤 때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사부님의 가르침과 정법제자의 책임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정진하게 하였다. 정법의 길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한다. 2002년의 국경일 오후, 경찰과 610의 사람들이 아내를 체포하려고 하였다. 그녀는 단호하게 문을 열지 않았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정념을 발하여 다른 공간의 사악을 제거하였다. 저녁에야 비로소 그들은 떠났다. 나와 아내는 그들이 다시 올까봐 두려워 친척집에 갔다. 우리는 집안의 진상자료를 가지고 길에서 가면서 배포하였는데 특별히 순조로웠다. 아내는 친척집에서 하룻밤만 머물고 돌아왔고, 나는 610이 다시 올까봐 두려워 그녀더러 며칠 더 피하라고 하였다. 아내는 “만약 내가 숨으면 그들은 내가 무슨 일이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내가 숨지 않으면 그들은 감히 나를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는 저의 집이고 저는 마땅히 정정당당하게 저의 집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제 이미 사악한 요소를 청리하였고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자신의 정념의 위력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비록 조금 걱정되었지만 그녀의 단호한 정념에 대하여 나도 지지하였다.

사실은 아내가 정확하였음을 증명되었다. 사악의 무리들은 아내의 강대한 정념하에 감히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였다. 마치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는 두 가지 정황 하에서, 그것들은 움직일 수 없다. 하나는 단호하기가 반석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들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 때 그들은 알고 있는바, 당신이 낡은 세력이든 낡은 이치이든, 이 제자가 바르게 가고 잘 하면 누가 만약 박해하다면 나는 절대로 그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나의 신변에는 무수한 정신(正神)들이 있다! 나는 무수한 법신(法神)이 있으며 모두 정법(正法)할 수 있다”(>)말씀하셨듯이 그러했다.

이후, 나는 유리실소 하였고 집 문앞에는 늘 망을 보는 사람이 있었다. 공안국은 또 나의 집을 수색하였지만 그들은 아내를 움직이지 못하였다. 나는 비록 유리실소 하였지만 집에 대하여 아주 마음을 놓고 있다. 나는 아내가 이미 아주 성숙한 대법제자임을 알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에 대하여 마음이 놓이고 아내는 나에 대하여 역시 마땅히 마음이 놓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서로 통하고 있다. 아내를 생각하면 가족을 생각하게 되고 나 또한 대법제자(나의 동수)들이 생각난다. 나는 집을 떠났지만 집이 있고 친인을 잃었지만 친인을 만난다. 나의 곁에 있는 동수들은 바로 나의 형제자매이고 바로 나의 친인들이다. 나는 비록 유리실소하였지만 법공부하고 발정념하고 진상을 알리며, 문장을 쓰고 사이트에 올라가보고 교류함에 모두 조건이 있다. 이것이 바로 대법수련에서 닦아낸 위덕이며 또한 대법제자의 한 정체(整體)임을 충분히 체현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여,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은 정말로 완전히 마음을 넓게 할 수 있어요. 나는 동수의 도움이 있으며 우리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넓은 정법의 길을 가고 있어요.

사랑하는 아내여, 당신과 아들에게 새해 문안을 드립니다! 전 가족에게 새해 문안을 드립니다! 전 세계 대법제자들에게 새해 문안을 드립니다!

사존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존님께서 저에게 한 갈래 이렇게 좋은 수련의 길을 배치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존께서 저에게 이렇게 좋은 동수(나의 아내)가 나와 함께 손잡고 어깨를 나란히 공동으로 정전할 수 있도록 배치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반드시 정념정행으로 법공부, 진상알리기, 발정념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자신의 사전의 큰 소원을 원만시킬 것입니다. 사존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발표일자 : 2003년 2월 4일

문장분류 : 護法歷程 (호법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