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성 후루다오시 쑤이중현 파룬궁수련자 양장웨이(楊將威)가 전봇대에 ‘진선인(眞·善·忍)은 좋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였다는 이유로 2024년 4월 19일 쑤이중현 공안국 가오링 파출소 경찰에 납치됐다. 이후 후루다오시 롄산구 법원에서 두 차례 불법 심리를 받았다. 2025년 2월 중순, 양장웨이가 롄산구 법원에서 1년 2개월 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55세인 양장웨이는 쑤이중현 량진다양 전력설치회사 직원이었다. 그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 후 ‘진선인’ 법리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했으며 주변에서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한번은 회사 동료의 자녀가 물에 빠졌을 때 그가 구해냈다. 양장웨이가 살던 아파트의 한 세대에서는 노부부가 한밤중에 갑자기 병이 나서 진저우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자식이 세상을 떠나서 도와줄 친척이 없었다. 노부부가 양장웨이를 찾아오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따라나섰다.
이처럼 좋은 사람인 그는 중공 악당의 파룬궁 박해 중에 여러 차례 납치되고 불법 구금됐으며, 3차례에 걸쳐 7년 반 동안 강제노동을 당했다. 2008년에는 또다시 불법으로 10년 중형을 선고받았고 4개 감옥을 전전하며 갇혀서 박해를 당했다.
베이징에서 파룬궁 억울함을 호소하다 여러 차례 불법 구금돼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7월 21일, 양장웨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베이징 경찰에게 납치됐고, 나중에 쑤이중현 공안국 경찰이 현지로 끌고 가서 박해했다(오토바이는 압수). 7월 27일, 양장웨이는 쑤이중현 ‘610’(파룬궁 박해를 전담하는 불법 조직) 세뇌반으로 끌려가 10일 동안 구금 박해를 당했고 500위안을 갈취당했다.
1999년 9월 3일, 양장웨이가 또다시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다. 쑤이중현 공안국은 양장웨이의 직장에 지시해 차량을 보내 베이징에서 그를 잡아오게 했으나 실패했다. 9월 8일, 양장웨이가 베이징에서 돌아와 출근했을 때 쑤이중현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돼 쑤이중현 구치소에 갇혔다. 15일간 불법 구류된 후 다시 후루다오시 수용소 세뇌반으로 끌려가 20일 동안 구금 박해를 당했고 700위안을 갈취당했다. 10월 12일, 양장웨이는 쑤이중현 공안국으로 끌려갔고 가족이 1,000위안을 갈취당한 후에야 풀려났다.
1999년 10월 21일, 쑤이중현 공안국 경찰이 양장웨이를 구치소로 유인해 가두고 집을 수색했다. 양장웨이는 구치소에서 25일 동안 구금 박해를 당했다. 11월 16일, 양장웨이의 가족이 또다시 3,000위안을 갈취당한 후에야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첫 번째 후루다오시 수용소에서 잔혹한 박해를 당하다
2000년 6월 24일 저녁, 양장웨이는 쑤이중현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돼 구치소에서 구금 박해를 당했고, 9일 후 후루다오시 수용소로 끌려가 1년 6개월 강제노동 판결을 받았다.
양장웨이가 후루다오시 수용소에 끌려간 당일, 경찰은 주먹과 발로 때리고 불법으로 몸수색을 했다.
2000년 11월 8일, 경찰대장 류궈화(劉國華)와 경찰 장궈주(張過柱)가 양장웨이를 사무실로 불러 수갑을 채우고 구타했으며, 전기봉으로 얼굴, 목, 등 등을 번갈아 가며 충격을 가했다. 양장웨이는 굴복하지 않았다.

2001년 3월 1일, 양장웨이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다시 경찰의 전기 고문을 당했다.
2001년 11월, 양장웨이는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다가 경찰의 야만적인 강제 음식 주입과 고문 도구로 구타를 당했다. 경찰은 또 그의 목을 움켜쥐고 관자놀이 양쪽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그는 순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혀가 밖으로 길게 튀어나왔으며, 그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이후 양장웨이는 며칠 동안 수갑이 채워졌고, 손목에는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다. 치아도 강제 음식 주입 과정에서 힘으로 벌려져 흔들리게 됐다.

2001년 12월, 양장웨이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후루다오시 수용소에서 잔혹한 박해를 당하다
2002년 1월 30일, 양장웨이는 페인트를 사러 갔다가 잠복한 경찰에게 납치됐다. 소위 이유는 며칠 전 현 전역의 여러 곳 벽에 페인트로 진상을 알리는 표어가 많이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양장웨이는 쑤이중현 구치소에 불법 구금돼 박해를 당했고, 10일간 단식 항의를 했다. 가족이 1,000위안을 갈취당한 후에야 풀려났다.
2002년 5월 22일, 양장웨이가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쑤이중현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돼 싱청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다음 날 오후, 양장웨이는 3년 강제노동 판결을 받았다. 소위 이유는 그가 세뇌반에서 세 끼 밥을 먹지 않아 ‘완고한 분자’라는 것이었다. 5월 24일, 양장웨이는 후루다오시 수용소로 끌려가 구금 박해를 당했다.
2002년 6월, 양장웨이는 멍씨 간수, 추이샤오둥(崔曉東), 류하이허우(劉海厚) 등 경찰에게 여러 개의 전기봉으로 고문을 당했고, 몸에는 큰 물집이 많이 생겼다.
2002년 8월 초, 양장웨이는 수용소에서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2002년 11월 18일, 양장웨이는 경찰대장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보고합니다!”라고 외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다시 전기 고문을 당했고 독방에 ‘엄격 관리’됐다.

2003년 1월 5일, 후루다오시 수용소는 불법 구금된 파룬궁수련자들에게 또 한 차례 잔혹한 박해를 가했다. 경찰은 양장웨이 등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안전모’를 씌우고(머리를 부딪치지 못하게), 수건으로 입을 막고, 여러 개의 고압 전기봉으로 전신의 민감한 부위에 충격을 가했다. 일부 수련자들은 박해로 인해 위독해졌다.
2003년 5월, 양장웨이는 후루다오시 수용소에서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박해당해 시립중심병원으로 이송돼 수술 응급처치를 받았다. 수술 후, 양장웨이는 후루다오시 수용소에 의해 강제로 조기에 실밥을 제거당하고 수용소로 끌려갔다. 양장웨이는 단식으로 항의했고 매일 야만적인 강제 음식 주입의 고통을 당했다. 후루다오시 수용소는 줄곧 가족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2003년 6월 5일, 양장웨이의 아버지와 여동생 양윈핑(楊蘊萍), 친구 야오옌후이(姚彦會)가 함께 후루다오시 수용소에 가서 소장 왕위안춘(王元春)을 만나 양장웨이의 질병 치료를 위한 석방을 요구했다. 왕위안춘의 지시로 경찰은 세 사람을 납치했고, 이후 야오옌후이는 후루다오시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동을 당했다. 양윈핑 역시 2003년 7월에 강제노동 판결을 받고 랴오닝성 마싼자 수용소에 갇혀 박해당했다.
세 번째 후루다오시 수용소에서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박해당하다
2005년 7월 1일 새벽 5시, 쑤이중 여러 곳의 큰 굴뚝에서 미국 에포크타임스의 사설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 대형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소리가 매우 컸고 가장 오래 지속된 것은 1시간 동안 연속 재생됐으며, 많은 군중이 모여 구경했다.
2005년 7월 4일 아침, 경찰이 양장웨이의 직장에 쳐들어와 상황을 조사한다는 구실로 그를 경찰차에 태워 납치했다. 양장웨이가 “왜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잡아가느냐”고 따졌다. 이후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장 싱찬(邢嬋·여)과 류창허(劉長河) 등 여러 명의 경찰이 양장웨이의 집에 쳐들어와 수색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2005년 7월 5일, 양장웨이는 후루다오시 수용소로 끌려가 3년 강제노동 판결을 받았다. 양장웨이는 단식으로 항의했고 경찰은 죄수들을 시켜 그에게 강제 음식 주입의 고통을 가했다. 양장웨이는 후루다오시 수용소에서 100여 일 동안 단식 항의를 하다가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박해를 당했다. 2005년 10월 12일, 양장웨이는 후루다오시 중의병원으로 이송돼 검사를 받았고 전해질 불균형, 저칼륨혈증 진단을 2005년 10월 17일, 후루다오시 수용소는 양장웨이의 가족에게 ‘원외 치료’ 승인 신청서를 가져가라고 통지했다. 10월 18일, 가족이 쑤이중진 파출소와 허핑가 주민위원회에 가서 도장을 받으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쑤이중현 ‘610’의 동의가 있어야 도장을 찍어준다고 핑계를 댔다. 10월 19일, 가족이 쑤이중현 ‘610’을 찾아갔고, 처음에는 ‘610’의 상얼구이(尙爾貴)와 천궈화(陳國華)도 자신들은 관리하지 않는다며 발뺌했다가 여러 차례 교섭 끝에 동의했다. 가족은 당일 ‘원외 치료’ 승인 신청서를 수용소에 제출하고 즉시 석방을 요구했다. 후루다오시 수용소는 시와 성(省)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승인이 오면 석방하겠다고 주장했다.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쑤이중 형사대에 납치되다
2006년 8월 6일 밤, 양장웨이는 파룬궁수련자 페이즈화(裴志華)와 함께 쑤이중현 가오타이진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리던 중, 차를 타고 지나가던 쑤이중현 공안국 다왕먀오 파출소의 천옌룽 등 5명의 경찰에게 발견됐다. 그들은 차를 돌려 오토바이를 탄 양장웨이와 페이즈화를 추격했다. 양장웨이와 페이즈화는 추격당하다가 오토바이와 함께 길가 도랑에 떨어졌다.
양장웨이는 쑤이중 구치소 근처의 형사대 사무실 건물로 납치됐다. 다음날 새벽, 양장웨이는 정념으로 탈출했다.
10년 옥고, 4개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다
2008년 2월 25일, 중공 공안부는 ‘F0801’ 작전을 시작했고, 쑤이중현에서만 13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납치됐다. 결혼한 지 한 달 된 양장웨이·리샤오밍(李小明) 부부도 납치돼 후루다오 구치소에 불법 구금돼 박해를 당했다. 이후 리샤오밍은 1년 강제노동 판결을 받고 랴오닝성 마싼자 수용소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2008년 5월, 양장웨이는 후루다오시 법원에서 10년 중형을 선고받았다.
양장웨이는 10년의 옥고 중에 진저우 난산 감옥, 판진 감옥, 다롄 난관링 감옥, 다롄 제1감옥을 전전하며 불법 구금됐고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2009년 4월, 판진 감옥 5감구(監區) 경찰은 인사과장 류신위안(劉鑫源)의 직접적인 계획 하에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새로운 박해를 가했다. 전기 고문, 수갑으로 매달기, 구타 등의 고문을 가했고, 4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 연속 밤마다 양장웨이와 황리중(黃立忠·2009년 10월 25일 박해로 사망), 장치(張奇), 자오루(趙璐), 상옌밍(商艷明), 뤼빙구이(呂秉貴), 궁화이유(宮懷友) 등 파룬궁수련자들을 엄격 관리대로 끌고 가서 고문을 가했다.

2009년 5월, 판진 감옥 5감구 경찰대장 왕젠쥔(王建軍)과 경찰 류지춘(劉繼春), 장푸더(張福德), 류원샤(劉文霞), 류링(劉嶺) 등이 여러 차례 양장웨이를 침상 사다리, 감방 창문, 빨래 건조대의 쇠파이프에 강제로 수갑을 채워 매달았다. 매일 16시간씩 매달려 있었고 6개월 이상 지속됐다. 양장웨이의 양다리는 매달려 있어서 피가 부어올랐고 통증이 심했다.

2012년 5월 8일, 양장웨이는 판진 감옥에서 다롄 난관링 감옥 2감구 10분대로 이송돼 불법 구금됐고, 그곳에서 다롄 난관링 감옥의 잔인무도한 박해를 당했다. 양장웨이가 파룬따파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전향’을 강요하기 위해 경찰은 각종 고문으로 그를 괴롭혔다. 3일 3밤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고, 전기 로스터기로 엉덩이를 태워 문드러지게 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스티커를 붙였다가 1년 이상 형을 선고받다
2024년 4월 19일, 양장웨이는 쑤이중현 가오링진의 한 전봇대에 ‘진선인은 좋습니다’ 스티커를 붙였다가 쑤이중현 공안국 가오링 파출소 경찰 궈테쥔(郭鐵軍) 등에게 납치됐다. 이후 국보대대 대장 왕바오민(王寶民)이 사람들을 데리고 양장웨이의 집을 수색해 《전법륜》 1권, 재생기 2대, 달력과 벽걸이 달력을 약탈했다. 당일 저녁, 사건 담당 기관인 가오링진 파출소장 쉬보(徐博)는 가족에게 양장웨이가 3일간 구류되며 구치소에 갇혔다고 통지했다. 3일 후 7일로 연장된다고 변경됐고, 형사 구류라며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2024년 4월 25일, 사건 담당 기관인 가오링 파출소는 양장웨이를 쑤이중현 검찰원 제2검찰부에 날조해 넘겼다. 5월 1일, 가오링 파출소장 쉬보는 양장웨이의 가족에게 양장웨이가 이미 불법 체포됐다고 통지했다.
2024년 6월 21일, 양장웨이는 후루다오시 롄산구 검찰원으로 날조돼 넘겨졌고, 당시 담당 검사는 두양(杜楊·여)이었다. 롄산구 법원은 원래 8월 20일에 불법 재판을 열기로 했다가 나중에 재판 시기를 연기한다고 통지했다.
2024년 12월 26일, 양장웨이는 후루다오시 롄산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고, 공소인은 장샤오진(張孝金), 판사는 왕웨추(王月秋)였다. 베이징 변호사와 양장웨이의 여동생이 변호인으로 출정했다. 쑤이중현 공안국 가오링 파출소 경찰 궈테쥔이 사건 기록에서 위증을 한 것이 재판 중에 폭로됐다. 변호사는 궈테쥔과 또 다른 증인 류환(劉歡)의 출정을 요구했다. 재판장 왕웨추는 ‘휴정’을 선포하고 ‘다음에 다시 개정’하기로 했다.
2025년 1월 16일, 양장웨이는 또다시 후루다오시 롄산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2025년 2월 중순에 알려진 바로는 양장웨이가 후루다오시 롄산구 법원에서 1년 2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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