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5.13] 깨달은 동료들 “진정한 파룬궁은 이런 것이었구나!”

글/ 중국 허베이 수련자 왕칭란(王淸蘭, 가명)

[명혜망] 명혜망의 한 보도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수련계에서 신앙이란 사람이 생명의 근원, 생명의 의미, 생명의 귀착지에 대해 인식하고 답을 구하는 것이다. 신앙은 신에 대한 믿음으로, 본질적으로 세속의 어떤 신뢰, 이념, 이론, 생활방식, 행복과 건강법보다 높은 차원에 있다. 다시 말해, 신앙은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와 직결된다.”

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탄압하던 초기,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고집했다는 이유로 원래 부서에서 강제로 전출됐다. 주변은 온통 낯선 동료들뿐이었고, 그들은 악당 매체가 퍼뜨리는 거짓말을 그대로 믿어 내가 자살하거나 사람을 해칠 거라고 오해했다. 그 당시 나는 아직 ‘신앙’이나 ‘수련’ 같은 개념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고, 다만 ‘진선인(眞·善·忍)’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악당의 선전을 뒤엎기에 충분했다.

새 부서로 온 지 3~4개월이 지나자 동료들은 하나같이 탄성을 질렀다. “진정한 파룬궁은 이런 것이었구나!” 동시에 그들은 내게 진심 어린 인정과 도움을 베풀어 줬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이 흘렀다. 어느 날 친구가 결혼 피로연에 갔다 와서 내게 이런 말을 전해 줬다. 피로연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직장의 왕칭란이야말로 진짜 파룬궁이에요. 파룬궁은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조작을 거부하다

나는 그 당시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는데, 간부가 더 높은 실적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직원에게 부가적인 상품을 팔도록 지시하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상여금과 성과급을 삭감하겠다고 규정했다.

판매 임무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첫 번째 임무를 겨우 마치면 두 번째 임무가 곧바로 떨어졌다. 본업 자체도 몹시 힘든데 퇴근 후 개인 시간을 쪼개어 추가 임무까지 해야 하니, 쌓이고 쌓이다 보면 채우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꼼수를 찾고, 조작을 하고, 대충 넘기기 시작했다. 돈을 삭감당하지 않으려고 속임수를 쓰는 것이 서로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는 관행이 돼 버렸다.

나도 늘 이 추가 임무를 채우지 못했다. 그런데 마감이 다가오면, 새로 부임한 부소장이 친한 친구(나와 같은 조의 동료)를 통해 내 임무를 가져다가 처리해 줬다. 동료가 부소장에게 내 말을 전했다고 한다. “나는 차라리 돈을 깎이더라도 조작을 하지 않겠어요, 조작하면 ‘진(眞)’을 못 지키는 것이고 그건 사부님의 요구를 따르지 못하는 거예요.”

부소장은 내가 임무를 채울 수 있도록 자신의 업무량을 늘렸다.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아 그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소장은 내가 돈을 깎이는 걸 원치 않았다. 탄압이 가장 심했을 때, 내가 수련 포기 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월급, 상여금, 연말 상여금이 모두 삭감되고 하루에 8마오(약 150원)의 생활비만 지급됐으며, 이혼까지 하고 주택담보대출까지 갚아야 해서 생활 수준을 최저로 낮출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도 내가 한 푼을 여러 번 쪼개서 쓴다는 걸 다 알았다. 그들이 가끔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우리 집 쥐도 저 집에 가면 굶어 죽겠다.”

임무를 채우지 못하거나 조작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간부는 눈을 감아 주기로 하면서 임무 완수 조건을 완화하는 대신 벌금 대신 일요일 출근으로 대체하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제 부소장 걱정을 안 해도 되겠다 싶어 나는 환하게 웃으며 출근을 담당하는 조장에게 달려가 말했다. “이번 일요일 출근은 제 휴가에서 차감해 주세요.”

우리는 반나절 근무제였고 정기 휴일도 없었다. 1년에 연차 며칠과 초과근무 보상으로 받은 일요일이 전부였는데, 다들 일요일 하루하루를 아끼고 아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절대 쓰지 않으려 했다.

조장은 내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없나요?” 나는 말했다. “이 방법이 제일 편해요. 돈도 안 깎이고, 남한테 폐도 안 끼치고, 조작도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아요.” 조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출근 표에 휴가로 표시해 줬다.

몇 번의 일요일이 지났는지 잊어버렸는데, 조장이 더는 못 참겠다고 했다. 회사 전체에서 나 혼자만 조작하지 않아 많은 일요일을 잃었고, 다른 사람들은 조작으로 다 임무를 채웠는데 결국 지사에서 나만 벌칙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결국 간부도 임무 완수 여부를 더 이상 따지지 않게 됐다.

이후 나는 경제 사정이 나아져 집을 샀다. 직장 규정에 따르면 나중에 집을 산 사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 면적이 기준을 초과한 사람은 난방비를 청구할 수 없었다. 집을 살 때 그 규정을 몰랐던 탓에 결국 난방비 청구가 안 됐는데, 1년 난방비가 800여 위안으로 거의 내 1년 생활비와 맞먹었다.

동료들이 말했다. “사장한테 선물이라도 좀 가져가요. 청구 안 되면 해마다 쌓이면 얼마나 되겠어요.”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안 해요. 그건 나쁜 관행이에요. 조장해선 안 되고 오히려 저항해야 해요.”

부소장의 친한 친구인 동료가 말했다. “제가 대신 선물 가져다줄게요. 저는 사장님이랑 좀 친하거든요.” “안 돼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건 사부님의 요구에 맞지 않아요.”

“그럼, 제가 가는 것도 안 된다고요?” “당신이 가도 제 일이잖아요. 저를 대표하는 거니까 안 돼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동료들은 모두 나를 존경하게 됐고, 진짜 파룬궁수련생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아마 소장과 부소장이 위에 보고했던 것 같다. 이후 몇 년 뒤 나는 다른 분사로 전출됐는데, 그곳 소장들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 일 솜씨는 흠 잡을 데가 없다더군요.”

610 요원이 나를 불러 면담할 때도 첫마디가 이랬다. “이거 참, 당신네 당 위원회 서기부터 소장, 주임까지 당신 칭찬을 한참 하더군요. 당신이 일을 어찌나 잘하는지, 우리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동료들의 인정과 지지

한번은 한 고객이 영업소에서 난동을 부렸다. 자기 돈이 우리 쪽에서 없어졌다며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가 용의자라고 따졌다. 파장을 줄이려고 간부가 현장에 있던 직원 모두를 사무실로 불러 고객과 협의하도록 했다. 그때 우리 조장이 말했다. “○○○는 안 가도 돼요. 나머지 분들이 가세요. ○○○은 절대 그런 짓 할 리 없어요.” 동료들 중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이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사실을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문제에서 동료들이 나를 이토록 믿고 있었다는 것을.

같은 조의 언니뻘 동료가 관리자가 됐다. 어느 날 영업소에서 한 수련생이 그 언니의 부하 직원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했다. 부하 직원이 언니에게 알리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냥 자리를 피하면 돼요. 그분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거짓말 안 하고 돈 때문에 나쁜 짓도 안 해요. 파룬궁은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건 누명을 씌운 거예요. 앞으로 또 만나더라도 절대 그분들한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아요.” 부하 직원은 “알겠어요”라고 답했다.

또 한번은 바로 그 언니에게 기독교를 믿는 친구가 입교를 권했다. 언니가 말했다. “당신들도 신을 믿고 신앙이 있지요. 그런데 당신들 중에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손에 쥐여 준 사은품을 돌려주고, 돈 앞에 허리를 굽히지 않고, 묵묵히 사람을 돕고, 거짓말 안 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거요. 아무도 없죠? 파룬궁 사람들은 그걸 해내거든요! 나는 수련은 안 하지만 파룬궁만큼은 진심으로 존경해요.” 이 말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언니가 우연히 나에게 들려준 것이다.

동료들의 도움

2003년, 제복을 입지 않고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은 세 사람이 아무런 절차나 합법적인 서류도 없이 나를 공안분국으로 데려가 7일 밤낮을 가뒀다. 앞에서 언급한 부소장은 매일 직접 나에게 밥을 가져다줬다. 하루에 두 끼가 될 때도 있었고 세 끼가 될 때도 있었다. 조원 동료들 대부분이 공안분국으로 나를 면회하러 왔다. 아마도 직장 간부가 전력을 다해 교섭을 해 준 것 같았는데, 지금도 누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상식적으로 일반 시민이 그런 곳에는 들어갈 수도 없는데, 하물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얼굴들이 드나들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 7일 동안 나는 압박감이 너무 커서 거의 밥을 먹지 못했다. 하지만 부소장은 매 끼니 여전히 밥을 가져다줬다. 남은 음식은 동료에게 부탁해 처리하고 매번 새 밥을 가져다줬다. 낮에는 조원 동료들이 교대로 곁에 있어 줬고, 힘 비축해서 경찰과 맞서야 하니 많이 쉬라고 말해 줬다. 밤에는 직장 보안팀 동료(처음 보는 사람)가 지켜봐 주면서 동정하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좀 자요. 우리가 여기 있으니 아무도 함부로 못 해요.” 공안국 경찰은 한두 번 조서를 작성하러 왔을 뿐이었다. 동료들 중에는 내가 쇠의자에 수갑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먹을 것과 필요한 것을 사다 주는 사람도 있었고, 경찰에게 나를 쇠의자에서 잠깐이라도 풀어 쉬게 해 달라고 부탁하러 간 사람도 있었는데 성공하진 못했지만 모두들 몹시 안타까워했다. 내가 구치소로 이송될 때도 생활용품은 모두 동료들이 챙겨 줬다.

바로 이 마음 따뜻한 동료들 덕분에 나는 더 참혹한 고문을 면할 수 있었다. 나와 함께 박해받은 수련생들은 공안국에서 수동식 전화기 감전 고문, 호랑이 의자 등 갖가지 고문을 당하고 들것에 실려 구치소로 들어왔다.

구치소에 있던 처음 4개월 동안 공안분국은 가족에게 통보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내가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고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어디 가서 찾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구치소에서 돈도 없고 몸도 많이 상했다. 구치소에서 직장에 전화를 걸어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병원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후임 소장이 직원들에게 모금을 조직했고 많은 동료들이 기부했지만 전달할 수가 없었다. 구치소에서 전화로 돈이 필요하다고만 했지 어디로 가져오라고,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후 소장은 동료들에게 돈을 돌려줬다. 이 일은 내가 돌아온 뒤에야 알게 됐고, 동료들은 나에게 구치소에서 돈 요구한 일을 알고 있었냐고, 그때 몸이 어떤 상태였냐고 물었다.

기적

구치소에서 내 몸 상태는 꽤 좋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몸이 굳어 버려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같은 감방 사람들이 놀라서 필사적으로 비상벨을 눌러 경찰을 불렀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경찰이 오지 않자 사람들이 저마다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내 입에 속효구심환(速效救心丸)을 한 줌 집어넣었고, 누군가는 인중을 눌렀다. 그때 경찰이 와서 잠깐 보더니 “기다려요”라는 말만 하고 가 버렸다. 또 한참이 지나 구치소 감옥의사가 약물이 든 주사기를 들고 들어왔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내 엉덩이에 약물을 주사했다.

그때 나는 의식이 또렷했다. 이 구치소에서 수련생 여럿에게 독주사를 놓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중 한 수련생을 직접 봤는데, 정신병원에서 나온 뒤로도 한동안 눈빛이 멍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 저 약물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딱 한 번 그렇게 생각했다.

의사가 문을 잠그고 나간 뒤, 주사로 들어갔던 약물이 주삿바늘 자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옆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물었다. “뿜어져 나오네, 어떡하지?”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왜 이게 뿜어져 나오는 거지, 눌러야 하나?” 한 수련생이 말했다. “건드리지 마요. 그냥 나오게 둬요. 분명 나쁜 거예요. 아니면 우리 사부님이 이렇게 나오게 하실 리 없잖아요.” 그렇게 약물이 다 뿜어져 나올 때까지 그대로 뒀다.

의학 상식으로는 근육주사로 들어간 약물이 원래의 길로 다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같은 감방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이 기적을 목격했다.

이상은 내가 직접 겪은 진실한 경험들이다. 파룬궁을 잘 모르는 동포와 이웃 여러분들이 파룬궁을 제대로 이해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명혜망 2026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6년 5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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