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올해 67세다. 아들이 아침 식당을 연 지 벌써 3년이 됐는데, 장사가 아주 잘된다. 나와 남편은 가게 일을 도왔는데 남편은 전병을 굽고 나는 죽을 끓였다. 남편이 구운 전병이 맛있고 내가 끓인 죽도 맛이 좋아서 매일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많은 손님이 소문을 듣고 우리집에 죽을 먹으러 왔다. 나는 매일 새벽 3시면 일어나 죽을 끓여야 했고, 물건을 들여오는 일도 맡았으며, 저녁밥까지 해야 했다. 매일 아주 바쁘고 힘들다 보니 점차 법공부와 연공 시간이 줄어들었다. 비록 세 가지 일을 모두 하고는 있었지만 마음을 써서 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몇 번이나 내가 죽에 파묻혔다고 일깨워주셨지만 나는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갑자기 코피가 났다. 코를 막으면 피가 입으로 나왔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까지 동반됐다. 며칠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자 가족들은 다급해져서 내게 병원에 가라고 권했다. 내 아버지도 코피가 나다가 나중에 폐암으로 악화돼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가족과 남동생, 여동생들 모두 몹시 걱정하며 매일 내게 병원에 가라고 재촉했다.
나는 수련인에게는 병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곧바로 안으로 찾기 시작해 자신에게 이익심, 안일심, 색욕심, 쟁투심, 환희심 등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지만, 늘 근본을 찾지 못한 느낌이었다. 열흘 남짓 지났는데도 여전히 차도가 없었다. 가족들은 매일 “아직도 피가 나?”라고 물었고, 나는 “별일 아니야”라고 했다. 가족들은 “아직도 괜찮다고 해? 얼굴이 새하얗잖아”라고 했다. 비록 나는 아직 집착의 근원을 찾지는 못했지만, 사부님과 법을 믿는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새롭게 정리하며 명예, 이익, 정에서 찾아보았다. 명예에는 딱히 집착할 것이 없었다. 이익을 살펴보니 아들이 남편에게는 월급을 주면서 나에게는 주지 않았는데, 비록 나는 퇴직해 연금이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채소를 사러 갈 때면 식당 금고에서 돈을 꺼냈고, 때로는 좀 더 많이 꺼내기도 하면서 아들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그래도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으로 찾아보니, 이것 역시 ‘진(眞)’에 부합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각자의 운명이 있는데, 아들의 돈을 가져가는 것은 덕을 잃는 일이 아닌가? 나는 서둘러 사부님께 ‘제자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자 코피가 뚝 멎었고, 가족과 친척들은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2019년 7월 어느 날, 10여 명의 경찰이 갑자기 우리집에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하고 나를 납치해 파출소로 끌고 가 불법 심문했다. 나는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장은 “그런 건 다 안다”고 하며 또 다른 몇 가지를 물었고,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가 “당신은 답변을 거부할 수 있다”고 했다. 그 후 나는 진상을 알리는 것 외에 다른 것들은 일절 답변을 거부했고, 결국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감금됐다.
구치소에 도착한 후 나는 곧바로 단식하며 박해를 반대했고, 그들은 내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위치를 고정시키고 강제로 음식을 주입했다. 경찰은 같은 감방의 범죄 용의자들을 시켜 내가 밥을 먹도록 설득하게 했지만, 나는 식사를 거부하며 무조건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은 연좌제를 쓰며 같은 감방의 범죄 용의자들에게 “만약 그녀가 밥을 먹지 않으면 너희를 처벌하겠다”고 소리쳤다. 그녀들은 연루될까 두려워 매일 내게 밥을 먹으라고 권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중생구도를 하는 사람인데, 만약 그녀들이 연루된다면 나를 원망하고 대법에 대해 오해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녀들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워 밥을 먹기로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여기는 내가 머물 곳이 아니다. 나는 나가서 사람을 구해야 한다.’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나는 오직 대법의 관할만 받으며,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나는 최근 한동안의 수련 상태를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우리집은 법공부 팀 장소라 매일 4~5명이 드나들었고, 많을 때는 10여 명이 되기도 해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다. 또 집을 떠나 떠도는 수련생 한 명도 자주 우리집에 와서 먹고 자고 했다. 나는 그녀가 법공부를 잘하고 법리에 밝다고 여겨 그녀에 대한 숭배심과 의존심이 생겼고, 무슨 일이든 다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내게는 또 일 욕심, 안일심, 색욕심, 쟁투심, 원망심, 질투심, 그리고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도 있었다. 두 수련생이 내게 이것도 법에 있지 않고 저것도 법에 있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안으로 찾지 않고 오히려 “당신들 이건 당(黨)문화적인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다. 또 밖으로 구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 등등도 있었다. 이렇게나 많이 법에 있지 않은 사람 마음을 찾고 나니, 내가 대체 어떻게 수련했는지 정말 부끄러웠다! 나는 사부님께 제자의 정념을 가지(加持)해주시어 이런 사람 마음들을 멸해 없애고, 자신을 잘 수련해 중생구도를 하도록 도와달라고 청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마음속으로 법을 외웠고, 매 정시가 되면 발정념을 하며 사부님께 제자에게 덮개를 내려주시어 그 무엇도 나를 교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나는 그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었다.
내가 단식을 그만두자 같은 감방 사람들도 기뻐했고, 나에게도 잘해주었다. 이후에 나는 이 감방에 수련생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우리 둘은 협력해 이 인연 있는 사람들을 구했다. 나는 내 심성 방면의 수련을 중시하기 시작했고,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며 중생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보게 했다. 한번은 한 사람이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부주의로 변기통에 솔을 빠뜨렸는데, 여러 사람이 시도했지만 건져내지 못했다. 내가 “내 팔이 기니 내가 한번 해볼게요”라고 했다. 나는 윗옷을 벗어 곁에 있던 사람에게 들고 있으라고 건네주었다. 나는 화장실 변기 앞에 엎드려 아주 큰 힘을 들여 솔을 건져냈다. 모두가 아주 기뻐했다. 내 옷을 들고 있던 그 사람은 원래 시 정부에서 일하다 경제 문제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녀는 매우 감동해서 “당신은 어쩜 이렇게 좋나요?! 매사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네요”라고 했다. 나는 “저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해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누구에게나 다 잘하고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하라고 알려주셨어요”라고 했다. 그녀들은 모두 깊이 인정했다.
어느 날, 검찰원에서 남녀 검사 두 명이 왔다. 나를 납치해 구치소에 가둔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나를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 두 젊은 검사는 내게 “아주머니, 반드시 죄를 인정하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갈 수 없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들을 쳐다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속으로 ‘나는 오직 내 사부님 말씀만 들으며, 모든 것은 내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고 생각했다. 남자 검사가 내게 “당신은 죄를 인정합니까?”라고 묻자 나는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여자 검사가 내게 “무슨 중대한 질병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그대로 가버렸다.
내가 감방으로 돌아오자 그녀들이 내게 죄를 인정했냐고 물었다. 내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녀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 저녁밥을 막 먹고 났을 때 감방장이 “아주머니, 어쩌면 오늘 집에 가실지도 모르겠네요”라고 했다. 나는 “모르죠”라고 했다. 막 말을 마치자 한 경찰이 와서 내게 짐을 챙겨 집에 가라고 했다. 감방 전체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나를 배웅했다. 37일 만에 나는 무죄로 석방됐다. 나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신기함을 직접 경험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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