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촨성 대법제자
[명혜망] 이것은 내가 수련 중에 겪은 두 가지 일로 이를 써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만약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1)
이 일은 2000년 가을에 일어났다. 그날 오후 몇몇 수련생이 우리집에서 단체 법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장 보위과 직원이 와서 나보고 공장 사무실로 잠깐 가자고 했다. 내가 공장 사무실에 가보니 아는 사람으로는 구(區)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원 두 명과 공업국 서기, 정·부 공장장, 보위과 직원이 있었고 소개를 받고 나서야 구 정법위원회 610 직원을 비롯해 모두 아홉 명이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들 중 누군가 나에게 왜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정부에서 수련을 금지하는데 왜 계속 수련하는지 등의 질문을 했다. 나는 수련 전 온몸에 병이 있었던 일부터 이야기했다.
“저는 원래 기관지염, 폐병, 인후염, 십이지장염, 위염, 소장염, 관절염, 패혈증, 허리 통증과 발 냉증 등 수많은 질병을 앓았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후 모두 치료받지 않고 나았습니다. 원래 병마에 시달리며 약에 의지해 살던 병자에서 병 없이 온몸이 가벼운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변한 것이죠.”
“병이 사라지고 몸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심성도 승화돼 올라왔습니다. 예를 들면 전년도에 제가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다가 37일 동안 불법 구금됐는데 섣달 스무이렛날 밤이 돼서야 풀려나 돌아왔습니다. 28일 아침 6시가 조금 넘어 나는 공공장소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장 서기가 화장실에 가다가 절 보고 언제 돌아왔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어젯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서기는 ‘이렇게 이른 시간에 청소를 하고 있군요’라며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저는 또 사비로 사람과 차를 불러 갑(甲)반 기숙사의 쓰레기를 치웠는데 세 대의 차로 실어 나르고 나서야 겨우 깨끗이 청소할 수 있었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좋고 바르며 위대하며, 이것이 바로 제가 수련하는 이유입니다.”
“중앙에서 당원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에 저는 이미 서면으로 구 조직부에 탈당 신청서를 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보내 저를 찾아와서는 탈당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당장(黨章) 규정에는 가입과 탈퇴가 자원이고 자유라고 되어 있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라고 묻자 찾아온 사람은 대답 없이 가버렸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正法)입니다.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수련해 병도 없어지고 사람도 좋아졌으며 매사에 다른 사람을 위하게 됐습니다. 수련은 오고 감이 자유롭고 명부도 없으며 경비도 없고 지도자도 없으며 사무실도 없고 문건 규정은 더더욱 없습니다. 오직 심성 수련을 통해 자신을 제고할 것을 요구할 뿐인데 무엇이 사악하단 말인가요? 이는 정법입니다!”
이 사람들은 더 묻지 않았고 오직 국보 부대대장만이 잠시 후 수갑을 꺼내 몇 번 만지작거렸지만 나는 못 본 척했다. 그들은 나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전부 주워 치우고 나갔다.
이후 사정을 아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해줬다. “그날 당신을 납치하러 온 겁니다. 당신이 너무 말을 잘해서 그들의 말문이 막힌 거죠.” 나 역시 줄곧 ‘내가 그들과 설전을 벌여 이겼다’고 여기며 은근히 기뻐했다.
사부님의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에서 “사부는 당신을 구하는 동시에 또 당신을 대신해 죄업을 감당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온갖 방법을 대어 당신의 죄업을 상쇄해 주고 있는바, 당신이 사부에게 빚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전에는 사람 마음, 사람의 관념으로 문제를 보았으니 하늘의 공을 탐낸 것이다. 사실 크고 작은 고난을 막론하고 오직 법에 있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대신해 죄업을 감당하시고 온갖 방법을 다해 죄업을 상쇄해주시기에 비로소 평안히 고난을 넘길 수 있는 것이다.
(2)
우리 부부는 둘 다 파룬궁을 수련하고 또 모두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한 적이 있었기에 중공 악당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게다가 우리 둘의 호적이 같은 곳에 있지 않았고 거주지 또한 호적 소재지가 아니었기에 이로 인해 세 곳의 파출소와 국보 대대에 연루됐다. 집에는 줄곧 몇 개 파출소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손님 노릇’을 하러 오곤 했다. 우리는 모두 익숙해졌고 오히려 떠들썩해졌다고 느꼈으며 진상을 알릴 기회와 대상이 늘어나 도리어 좋은 일이 됐다.
아내 수련생 호적지의 파출소에서 몇 차례 전화를 했으나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소장이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 어떤 사람인지 보겠다고 했다.
재작년 7월 어느 날 점심 무렵, 우리 둘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한바탕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평온한 생활 환경을 깨뜨렸다. 내가 가서 문을 열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왔다. 그중 샤오 씨라는 젊은이는 아내 수련생이 아는 사람이었고 아내 수련생 호적 소재지 진(鎭)에서 파룬궁 박해를 관할하는 직원이었다.
샤오 씨는 소개했다. “이분은 우리 진의 판(范) 부서기이고 이분은 파출소 양(楊) 소장이며 이분은 ○○ 경찰입니다. 이분들은 당신들 거주지 파출소 소장과 다른 경찰 한 명이고 이분은 장(張) 씨 주민센터 서기 겸 주임이며 이분은 건물 보안대장입니다.” 모두 여덟 명이 앉거나 서면서 거실을 가득 채웠다.
샤오 씨가 또 말했다. “우리가 온 것은 당신들을 좀 만나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에 성(省) 정법위원회에서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아 예전에 당신들에게 가했던 부자유스러움을 풀어주려 합니다.” 아무튼 입만 열면 모두 파룬궁을 수련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고 그가 사교(邪敎)라고 말하자 아내 수련생이 그와 이론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나도 깨닫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는데 어떻게 진상을 알릴까?’ 나는 사부님께 정념을 가지해 주십사 청했다. 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진상을 알리려 했다. 첫째는 파룬궁 수련 이후 우리의 변화이고, 둘째는 사교가 아니라는 이치를 밝히는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좌우에 앉아 있던 판 부서기와 양 소장을 향해 “제가 몇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들 둘은 이구동성으로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법을 얻기 전 병마에 얽매여 월급으로 약을 사 먹기에도 부족했던 상황과 수련 후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수련해 병이 사라지고 살도 올랐으며, 일할 때 다른 사람을 배려하게 된 상황부터 이야기했다. “지금 저는 76세인데도 100대 기업에서 일하고 있으며 10년 동안 구매 업무를 맡으면서 맑은 물처럼 청렴하게 일했습니다. 또 회사 기술 업무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제가 회사를 세 번이나 떠나려 했지만 회사에서는 번번이 저를 모셔 왔고 회장님은 눈물까지 흘리시며 저를 붙잡고 떠나지 못하게 하시면서 ‘당신들처럼 파룬궁을 수련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모시기 힘듭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또 중점적으로 공안부 [2000] 39호 문건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이 인정한 7개 사교 조직과 중앙판공청, 국무원 판공청이 인정한 7개 사교 조직은 모두 파룬궁과 무관하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2010년 12월 29일 국가신문출판총서 제2차 업무회의에서 통과된 《제50호 문건》과 그 구체적인 내용도 이야기했다. 《제50호 문건》은 파룬궁 서적의 금지가 이미 해제됐으며 합법 출판물에 속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파룬궁 서적이 합법이라면 파룬궁을 소개하고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관련 자료 역시 당연히 합법이다. 이 전체 과정에서 발언을 하거나 끼어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아주 진지하게 들었다.
이때 양 소장이 장식장 위에 놓인 상장 더미를 가리키며 “저 쌓여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제가 받은 상장입니다”라고 하자 그는 “저렇게 많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회사에서 ‘선진 생산자’로 선정됐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웃으며 “우리는 이제 가봐야겠습니다. 두 어르신 모두 몸조심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며 “번거롭게 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을 엘리베이터 안까지 배웅했다.
참으로 마음속에 법을 담으니 진상을 알리는 위력이 컸다. 그들은 올 때는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하더니 갈 때는 하하 웃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집에 오지 않았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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