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아래에 이번 한 해 동안 남편과 딸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1. 대법이 좋다고 염하자 결석 통증이 사라지다
지난해 3월 어느 날 새벽 4시에서 6시 사이 남편은 배 부근에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더 아파서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는 통증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이따금 신음 소리를 냈다. 처음에 그는 아픈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조금 아프다 말겠지 생각하며 계속 참았다. 게다가 당시에는 시간이 너무 일러서 집안의 다른 사람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참다가 6시가 넘었고 나와 딸이 일어난 후에도 여전히 아파했다. 남편은 예전에 급성 맹장염에 걸린 적이 있어 통증을 겪었지만 그때의 통증은 진통이라서 한바탕씩 아팠다. 하지만 지금 이 통증은 지속적인 통증으로 그 양상이 달랐고 원인도 불명확한 데다 얼마나 더 아파야 할지도 몰라 그는 즉시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난 후 남편이 통증을 참기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잠시 후 아프지 않게 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남편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좋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예전에 우리 가족이 대법을 수련한 후 신체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마음속으로 계속 염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편으로 딸에게 혼자 잘 있으라고 하고 차를 불러 그를 병원에 데려갔다. 막 호출한 택시에 탔을 때만 해도 이따금 그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가는 길의 후반부에 이르자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병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을 때 그는 이미 전혀 아프지 않았다.
기왕 병원에 왔으니 남편은 그래도 검사를 한번 받아보기로 했고 우리는 응급실에 접수해 CT를 찍었다. 2시간 남짓 기다린 후 의사는 진단 결과를 내놓았는데 우측 신장 결석일 것이라고 했다. 결석이 크지 않아 배출되어 요관까지 내려왔는데 배출되는 과정에서 막혀서 특별히 아팠던 것이고 나중에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저절로 배출되었다고 했다.
돌아온 후 남편은 “이건 정말 너무 신기해. 병원에 다다르자마자 갑자기 나았으니 마치 나를 일깨워주는 것만 같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라고 일깨워줘서 고마워. 정말 너무 효과가 좋았어”라고 말했다.
지금은 이미 몇 달이 지났지만 남편은 다시는 아픈 적이 없었다.
2.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1) 촌지를 주지 않다
지난해 9월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수많은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귀중한 선물을 하거나 촌지나 돈을 주었다(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돈을 줄 때는 모두 1000위안부터 시작한다). 지금 사회는 세태가 날로 나빠지고 도덕이 타락해 관료사회의 부정부패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중공) 체제하에서 탐오와 뇌물 수수 풍조가 각 분야에 스며들었으니 본래 신성해야 할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학부모는 “당신이 선물을 주지 않으면 선생님이 당신을 기억할 거예요”라고 말했고 어떤 학부모는 “다른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마음을 편히 놓기 위해서예요.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이 당신 아이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어떡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제자로서 어찌 이런 불량한 사회 풍조를 조장할 수 있겠는가. 바르게 행하고 곧게 나아가며 바른 요소에 책임을 져야 한다. 게다가 수련인은 모두 알다시피 사람의 일생은 모두 배치된 것이라 사람마다 각자의 일생이 있고 각자의 인연 관계가 있으니 아이 역시 마찬가지여서 당신이 아이의 운명을 좌우할 방법은 없다. 학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선인(眞·善·忍)’의 법리에 따라 교육해 아이가 이후에 사람을 대할 때 진실하고 선량하며 너그럽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유치원 때부터 우리는 명절 때마다 선생님에게 돈을 준 적이 없고 단지 딸이 주고 싶어 하는 작은 선물을 주어 마음을 전했다. 딸은 반에서 ‘분위기 메이커’였고 모든 선생님이 딸을 좋아했으며 딸에게 아주 잘해주었다. 유치원을 졸업할 때 나는 선생님들에게 비교적 귀중한 선물을 사서 유치원으로 보내 지난 몇 년간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보여준 관심과 보살핌에 마음을 전했고 그 기회를 빌려 몇몇 선생님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선생님에게 촌지를 주지 않았으나 선생님 역시 아주 책임감이 강했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각종 명절에 딸이 직접 축하 카드를 만들거나 선생님이 병가를 냈다가 돌아온 후 선생님에게 꽃을 선물한 것은 모두 딸 스스로의 마음이었다.
사실 선생님에게 촌지나 돈을 주지 않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들이 돈을 받으면 불의한 재물에 속하며 또한 자신의 귀중한 덕과 맞바꿔야 하니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2) 아이들 사이의 갈등 처리
딸은 조산아라서 같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할 때 지적 발달 수준과 신체 발달 수준이 모두 떨어졌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딸은 학교에서 여러모로 적응하지 못해 수업 시간에 밑에서 딴짓을 하거나 자거나 강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각 과목 선생님들이 나를 찾아와 아이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해 늘 충돌이 일어났고 아이 학부모들이 자주 나를 찾아와 하소연했다.
딸은 이해 능력이 약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말도 잘 배우지 못해 동문서답을 하거나 무엇을 물어봐도 모른다고만 했다. 그래서 대부분 상황에서 딸이 다른 아이와 갈등이 발생하면 다른 아이가 사건의 경위를 말하며 우리집 아이가 무엇 무엇을 했다고 말했고 그런 뒤에 도출된 결론은 언제나 일의 전부가 우리집 아이의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매번 이런 일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최대한 수련인의 기준과 요구에 따라 행해 많이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고 상대방 학부모를 많이 배려하며 진심으로 상대방 학부모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저녁에 딸을 데리고 집에 돌아온 후 딸을 차근차근 잘 이끌어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이 옳은 것이고 어떤 일이 틀린 것인지, 학교에서 어떤 일은 해도 되고 어떤 일은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었다.
예를 들어 어떤 학부모가 우리집 아이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갔다고 말하면 나는 두 배나 혹은 여러 배의 물건을 사서 돌려주게 했고 그런 다음 딸에게 학교에서 함부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어떤 아이가 딸이 매일 가져가는 빵이나 우유, 과일을 빼앗으면 나는 딸에게 두 몫을 싸주어 다른 아이의 것까지 챙겨주게 했다. 어떤 아이가 딸의 수채화 펜을 가져가서 펜촉을 전부 뽑아버리면 나는 다시 새것을 사주었는데 한 학기에 수채화 펜 3상자를 바꾸었다. 딸은 자주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가져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다시 새것을 사주었고 연필만 해도 여러 상자를 잃어버렸다. 나는 어찌 됐든 잃어버린 물건은 분명 학급 안에 있을 테고 이 아이가 쓰지 않으면 저 아이가 쓰고 있을 테니 낭비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 역시 딸에게 자신의 물건을 잘 살피라고 당부했다.
또 한번은 다른 반 아이 하나가 딸과 갈등이 발생했는데 딸이 다 같이 쓰는 공용 화장실에서 사람을 때렸다고 했다. 화장실에는 CCTV가 없어서 모두 그저 다른 아이의 설명만 들을 뿐이었다(딸은 언어 표현 능력이 아주 약해 무엇을 물어봐도 모른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그 아이가 일의 경위를 묘사한 녹음본을 내게 보내주어 나는 듣고 나서 마치 그 아이가 청소를 하려는데 딸이 그 아이를 막아서고 비키라고 했지만 그 아이가 비키지 않아 충돌이 일어났고, 딸이 그 아이를 때린 것 같다고 여겨졌다. 낮에 딸 반의 담임선생님이 딸을 데리고 그 아이의 반으로 가서 그 아이에게 사과했고 저녁에 하교할 때 나를 조금 남게 해서 그 학부모에게 직접 사과하게 했다.
저녁에 나는 딸을 데리러 학교에 가면서 내내 상대방 학부모의 분노를 어떻게 대면할지, 어떻게 사건의 경위를 파악할지 생각했다. 사실 내 마음도 매우 불안했는데 사리를 아는 학부모도 있지만 정말로 소통하기 쉽지 않은 학부모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수련인으로서 이 일은 표면적으로는 우리집 아이의 문제지만 사실 이 속에는 모두 나에게 각종 집착심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 기간에 나는 항상 불려 갔는데 선생님이 부르지 않으면 다른 학부모가 찾았다. 왜 최근에 연달아 늘 딸과 다른 아이가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나에게 무슨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버스를 타면서도 생각하고 길을 걸으면서도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수많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찾았다. 나 스스로에게 쟁투심이 있어 남편과 다투거나 말다툼할 때 항상 우위를 차지하려 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과 명예욕이 있어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말해주는 것을 듣기 좋아했다. 이기심이 있어 내 마음대로 하려 했고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스스로 규칙을 정해 놓고 다른 사람이 내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화를 참지 못했다. 질투심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을 보면 질투했고 내가 대가를 많이 치렀는데 다른 사람이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마음의 균형을 잃고 질투했다.
바로 내가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있을 때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상대방 학부모가 저녁에 양측 학부모가 남아서 직접 해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은 일순간 환히 트였고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이 내게 상대방 학부모의 전화번호를 주어 나는 저녁에 상대방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선은 진심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과를 했는데 어쨌든 내 딸이 그녀 집 아이를 때렸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고려했다. 그녀 집 아이는 내성적이고 겁이 많았고 우리집 아이는 약간 남자아이 성격이 있어 털털하고 말하는 목소리도 큰 편이었는데 지금 그 아이는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내 딸과 마주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부모나 자기 집 아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까 봐 분명히 걱정할 것이고 특히 성격이 내성적인 아이라면 더욱 그렇기에 나는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오늘 돌아온 후 딸을 꾸짖었고 사람을 손으로 때려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이 화장실에 있을 때 쉴 새 없이 문을 두드려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고 말하고는, 이어서 그녀가 걱정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왔다. 우리집 아이가 이해 능력이 약간 약해서 내가 딸에게 한 번, 심지어 여러 번을 말해도 꼭 당장 듣거나 당장 고치는 것은 아니므로 내가 담임선생님과 조금 상의해서 우리집 아이가 당분간 교직원 화장실에 가고 큰 공용 화장실에는 가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두 아이가 마주치지 않을 테고 그녀 집 아이도 화장실에 갈 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에 나는 또 상세하게 상대방 학부모가 아이로부터 파악한 일의 경위를 들었는데, 내가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내용과 또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딸이 분명 그 아이를 때린 것은 맞았다. 나 역시 일의 경위에 대해 여러 가지 버전을 들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함께 한동안 지켜본 후에 다시 생각하기로 결정했고 만약 두 아이에게 여전히 갈등이 있다면 함께 만나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 놀기로 했다. 어린아이들은 여러 번 놀다 보면 좋아지기 마련이다. 이후에 이 학부모는 다시는 나를 찾은 적이 없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4/17/5020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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