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린창칭(林長靑)
[명혜망]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엇을 ‘진언(眞言·참된 말)’이라 하는가? 마음과 입이 하나가 되어 거짓이 없고 아첨하지 않는 말이 바로 진언이다. 진언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이유는 희귀하고 얻기 어렵기 때문이며, 생명을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기록돼 있다.
고대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통치 시기, 헬비디우스 프리스쿠스는 원로원 의원이었다. 황제는 프리스쿠스가 원로원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다.
프리스쿠스는 말했다. “폐하께서 제 의원직을 박탈하신다면 모르겠지만, 제가 의원직에 있는 한 저는 원로원에 들어가야 합니다.”
황제가 답했다. “좋다, 들어오라. 단, 침묵을 지켜라.”
프리스쿠스: “제 견해를 묻지 않으신다면 침묵하겠습니다.”
황제: “나는 반드시 그대의 견해를 물을 것이다.”
프리스쿠스: “그렇다면 저는 반드시 제 마음속의 진실을 말할 것입니다.”
황제: “만약 그대가 진실을 말한다면 나는 그대를 죽일 것이다.”
프리스쿠스: “폐하께서는 폐하의 일을 하십시오. 저도 제 할 일을 하겠습니다. 저를 죽이는 것은 폐하의 일이고,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제 일입니다.”
결국 프리스쿠스는 로마에서 추방됐고 얼마 후 황제가 보낸 사람에게 살해당했다.
세월이 흘러 천 년이 지난 지금, 프리스쿠스의 이야기는 점차 희미해지고 잊히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히 오가지만 진언은 갈수록 희귀해지고, 진언을 말하는 대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1999년 중국공산당(중공)이 불법적으로 파룬궁 탄압을 시작한 이래, 중공의 비방은 수많은 중생의 눈과 귀를 가렸다. 일부 사람들은 불법(佛法) 박해에 적극 가담했는데, 불법을 훼손하고 수련자를 해치는 것은 태산보다 무거운 죄업으로, 살아서는 고통받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질 업보를 짓는 일이다. 거짓말에 중독된 중생을 깨우기 위해 수련자들은 ‘붉은 공포’를 무릅쓰고 시비를 가리고 선악에는 응보가 따른다는 진상과 진언을 전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는 납치됐고, 어떤 이는 박해받아 사망했다.
랴오닝성 번시(本溪)시 수련자 천옌(陳妍)은 2024년 7월,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경찰에 납치됐다. 번시시 구치소에서 감옥경찰은 재소자를 사주하고 묵인해 천옌을 수차례 폭행하게 했다. 그들은 천옌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잡아당겼고 그녀는 피 섞인 가래를 토했으며, 여러 차례 기절했다. 변호사는 접견 당시 천옌의 두피가 찢겨 혹이 났고, 몸과 팔다리에 외상과 긁힌 상처가 있으며 반응이 둔한 것을 목격했다. 2025년 10월, 천옌의 부모가 두 차례 구치소를 방문했을 때 천옌은 휠체어에 실려 나왔다. 당시 그녀는 두 다리로 걷지 못했고 머리카락은 엉겨 붙어 있었으며 온몸을 떨었다. 2025년 11월 5일, 천옌은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이송됐으나 3일 만에 45세를 일기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유족이 수의를 입히기 위해 시신을 뒤집자 그녀의 입에서 검은 점액이 흘러나왔다.[1]
2026년 1월 30일까지 박해로 사망한 사실이 확인된 파룬궁수련자는 총 5302명에 달한다. 그들은 신앙 때문에 죄인이 됐고, 진언을 말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거짓말이 뒤덮인 사회에서 그들은 진상을 명백히 밝혔고, 혼탁한 세상 속에서 맑고 순박했다. 진언은 죄가 없고, 수련자는 두려움이 없으며, 큰 사랑(大愛)은 경계가 없고, 어진 자(仁者)에게는 적이 없다.
2천여 년 전 로마의 프리스쿠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파룬따파 수련자들, 그들은 왜 모함과 고문, 살육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그들은 광명정대(光明正大)하기에 당당하고 용감하며, 사심이 없고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진언은 선한 말이며 구원이다. 선량한 사람이 모함받고 용사가 피해를 입는 것은 인류의 비애다. 하지만 겨울밤이 아무리 길어도 이들은 기꺼이 어둠 속에서 당신을 위해 등불을 밝히고, 혹한 속에서 당신에게 숯을 건넨다. 이들은 광명의 사자(使者)로서 당신을 위해 왔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진언을 믿고 진실을 선하게 대해 화를 멀리하고 복을 얻는다. 반면 어떤 이는 진언을 두려워하고 진실을 의심해 구원받을 기회를 놓친다.
진심은 값을 매길 수 없고, 진언은 위엄이 있으며, 진상은 두려움이 없다. 진언을 듣는 것은 행운이며, 진상을 아는 것은 행복이다. 부디 진상이 당신에게 평안을 주고, 진언이 당신에게 건강을 주기를 소망한다.
주:
[1] 자료 출처: 명혜망 ‘2025년 파룬궁수련자 124명 박해로 사망 확인’
원문발표: 2026년 2월 27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2/27/5071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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