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호주 대법제자
[명혜망] 제가 대법을 수련한 이후 집에는 몇 차례 우담바라화가 피었습니다. 최근에 한 고비를 넘은 뒤, 빨래걸이 고리에서 또다시 하얀 우담바라화 한 송이를 발견했습니다.
1. 크고 작은 상가를 찾아다니며 서명을 받다
2009년 법을 얻은 초기, 저는 제가 사는 해변 도시의 중생들이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부에 허가증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시청사와 도서관 등 여러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서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천을 구입해 캠핑용 접이식 탁자에 덮고, 전문업체에 의뢰해 서명 내용을 플라스틱 골판에 인쇄해 탁자 위에 놓았습니다. 서명지를 꽂을 바인더 2개를 준비하고, 대형 포스터 2장을 인쇄해 A형 지지대 양면에 부착했습니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빵집 앞에 갔습니다. 이곳은 반드시 지나가는 길목이었고, 베트남 자매가 운영하는 가게였습니다. 먼저 언니가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제가 진상을 설명하고 전단지를 건넸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동생이 가게에서 음식과 물 한 병을 가져왔습니다. 언니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며 저희를 매우 동정하고 무언가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서명 받는 일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묻자 그녀는 기꺼이 동의하며 서명지와 전단지를 베트남 커뮤니티로 가져가 서명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고정된 장소에서만 서명을 받지 않고 기업과 상가들을 직접 찾아다녔습니다. 당시 제 마음속에는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면 나는 들어간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루는 노인활동센터에 갔을 때, 안내 직원이 노인대학이 대강당에서 행사 중이니 가서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책임자를 찾아 의사를 전하자 며칠 뒤 한 교회에서 90세가 넘은 노인을 초청해 강연하는데, 백여 명이 모일 예정이니 그때 몇 분 시간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약속한 날이 되어 강연장에 갔습니다. 대강당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저는 맨 앞줄 가장자리에 앉아 ‘사부님 가지(加持)해 주세요’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전반부 강연이 끝나자 노인대학 책임자가 간단히 저를 소개하며 앞으로 나가 말하라고 했습니다. 강연자의 주제가 ‘인생’이었기에,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저는 그 단어의 또 다른 의미인 ‘생명’과 연결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 손에는 전시판을, 다른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중앙 통로를 따라 걸으며 말했습니다. 청중들이 집중해서 들었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끝나자 서명지가 든 바인더를 한쪽 끝에서부터 전달해 청중들이 후반부 강연을 들으며 서명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양쪽 벽 쪽 통로를 따라 전단지를 나눠주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책임자가 와서 아직 서명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번 학기 마지막 행사는 음악회인데 다시 올 수 있다고 해서, 또 한 번 기회를 얻었습니다.
거의 2년 동안 이 도시의 크고 작은 상가를 대부분 다녔고, 주말 장터나 정부 청사 근처에서도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만 명 이상이 반(反)박해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2. 10년 동안 꾸준히 진상 전화를 걸다
2013년부터 중국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하기 시작했으며, 10년 동안 한 번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정과 직장이 있기에, 저녁에 전화하기 위해 집안일과 저녁 준비 시간을 최대한 줄였습니다. 조리 시간이 짧은 간단한 요리를 하거나, 가족이 오븐에 음식을 준비하게 하거나, 때로는 배달음식을 시켰습니다. 저녁은 대체로 5시경에 먹었습니다. 직장에서 점심 휴식 시간에는 노트북을 들고 조용한 골목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른 도시에서 법회나 홍법 활동에 참가할 때도 전화카드를 챙겨 저녁에 적당한 장소에서 전화했습니다.
전화 외에도 다른 단기 항목에 참여했습니다. 2014년 어느 날 밤, 플랫폼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몇 통을 해도 삼퇴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생각하니, 방금 전 회의에서 항목 조율자가 제 역할을 다른 수련생에게 넘기겠다고 발표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미리 통보받았지만 실제로 일이 생기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회의 중에도 질문에 성의 없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책임감 있게 해왔고 인정도 받았는데 왜 교체하는 거지?’ 더 깊이 보니 이는 자아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스스로 잘한다고 여기며 자만하는 마음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이런 집착을 가지고 전화하니 효과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집착을 찾아내고 제거하겠다고 결심하자 이후 전화로 삼퇴 권유가 잘 이뤄졌습니다.
약 1년 전에는 수련생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중국인들에게 삼퇴를 권하는 항목에 참여했습니다. 수련생들은 매일 진심으로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5월 어느 날, 하루 종일 일하고 지쳐 있었는데, 밤이 되어 약속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수련생들과 접속해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곧 극심한 피로와 졸음이 몰려와 말이 어눌해지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됐습니다. 다만 수련생이 끊임없이 보내오는 메시지 알림 소리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지만 피곤함과 졸음이 계속 엄습했습니다. 결국 함께 전화하던 수련생이 제가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았는지 우리는 온라인 전화를 일찍 끝냈습니다. 다음 날, 다른 수련생이 알려주길, 원래는 함께 전화하던 수련생의 아내가 제가 못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끝내지 못하게 하려 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내가 매우 피곤했지만 당직을 취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협조했는데 당신들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구나’라는 약간의 불만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 ‘그들의 마음은 귀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려 했을 뿐이다. 나의 피곤함이야말로 돌파해야 할 고비다. 수련은 바로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한 남성이 전화를 받자마자 “공산당이 좋다”고 했습니다. 목소리는 선량한 사람 같았지만 거짓말에 속아 있었습니다. 저는 인내심을 가지고 삼퇴의 필요성과 대법의 진상을 설명했습니다. 20여 분 후 그는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수련생이 전해주길, 그 남성은 최근 이혼을 겪어 마음이 힘들었는데, 우리의 선의를 느꼈으며 우리가 그를 위해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인사말 녹음을 했습니다. 수련생이 정성껏 원고를 작성하면 제가 녹음하고, 다른 수련생이 발송했습니다. 효과는 매우 좋았고, 대부분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은 전화를 잘 받았으며 삼퇴율도 높았습니다. 어떤 날은 전화를 걸면 거의 매번 삼퇴가 이뤄졌습니다. “당신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알다니 놀랍다”, “당신이 보낸 메시지를 듣고 정말 감동했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았습니다. 또 어떤 이는 “저를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고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맞이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신령이 우리를 보호해 주길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있는 그룹에 수련생을 초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전화를 걸다 보면, 특히 진상을 설명할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자주 느꼈습니다. 저는 이것이 대법 수련을 통해 얻은 자비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장 안에서 중생들은 진상을 명확히 들을 수 있고,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 사부님께서 전화하도록 일깨워주신 이후, 저는 한 번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저는 다른 공간에서 이 전화 항목에 저의 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빠질 수 없었습니다.
3. 연공
2022년 3월 어느 날, 제 오른쪽 무릎 관절이 갑자기 붓고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힘줄이 늘어난 듯했지만 겉으로는 이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공(靜功)을 할 때는 이를 악물고 한 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소업(消業)이라고 여겼습니다. 어머니가 해산물을 좋아하셔서 어릴 적 어머니가 살아 있는 생선을 사 오면 제가 잡는 일을 도왔는데, 그때 큰 업을 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5월에 션윈 공연이 본 지역에 왔을 때, 저는 백스테이지에서 보안 일을 했습니다. 공연 내내 강대한 에너지 장을 느꼈고, ‘다리의 고통이 이 에너지 속에서 완화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 심해져 가부좌할 때뿐 아니라 걸을 때도 아팠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걸음이 느려지고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결가부좌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소업이 아니라 수련에서 문제가 드러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안으로 깊이 찾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이 올 것임을 알았습니다.
제가 처음 법을 얻었을 때는 어린 두 아이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갓 수련에 들어섰기에 법에 대한 이해가 얕았고, 연공에도 스스로 엄격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느라 다섯 가지 공법을 한 번에 완수하지 못했고, 하루는 동공(動功)만, 하루는 정공만 하거나 아예 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후 전화 항목에 참여하게 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더 중요시하며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저는 이 허점을 깨닫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아침 근무가 있으면 새벽 4시에 일어나 한 시간 연공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 준비를 했습니다. 8시 이후 근무라면 5시에 일어나 두 시간 연공을 했습니다. 근무 중 휴식이나 저녁 시간을 활용해 법공부를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부좌 중에 전신을 감싸던 점프슈트 같은 것이 몸에서 벗겨져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또 한 겹 인간 껍질이 벗겨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물질적 신체도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8~10시간 근무에도 물 한 병만 있으면 식사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추위나 더위, 배고픔과 갈증에 대한 감각이 점점 약해졌습니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안에서부터 변화해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상은 저의 수련 교류입니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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