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26년간 수련해온 제자입니다. 감옥에서 박해받는 수련생을 구출하고 성원하는 데 참여한 경험과 수련 중 얻은 진실한 체득을 기록하여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보고드리며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가족이 박해를 반대하도록 인도하여 악인들을 위축시키다
2010년, 우리 지역의 A 수련생이 중공 경찰에게 납치돼 악당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6년형을 선고받고 성(省) 여자감옥에 감금되었습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공하며 전향을 거부하고 수감복 착용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장기간 감옥에서 악질 경찰과 범죄자들에게 학대와 구타를 당했고, 수갑 착용, 구속대 착용, 독방 감금, 바닥 고리에 쇠사슬로 묶이는 등 잔혹한 고문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B 수련생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A의 언니가 전에 여동생을 면회했을 때는 매우 강인한 모습이었는데, 지난달 면회에서는 여동생이 울었고 이번 달에는 감옥에서 면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둘은 A가 분명히 감옥에서 심각한 박해를 받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이며, 감옥에서 박해받는 수련생을 성원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의무입니다. 사악이 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박해하는 것이므로, 감옥 악인들의 악행을 즉시 저지하고 구세력이 수련생에게 강요한 부당한 옥고와 감옥 내 고통스러운 고문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둘은 A의 언니를 찾아 상황을 파악한 후 계획을 세우기로 했고, B가 A의 언니와 연락했습니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후 A의 언니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A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물었고, 그녀의 언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 여동생이 감옥에 들어간 이후 계속 제가 면회를 다녔어요. 때로는 면회가 허락되고 때로는 거부됐죠. 여동생은 제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고 항상 강인한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지난달 면회에서는 울었고, 너무 말라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어요. 걷는 것도 매우 힘들어 보였고 손목에는 상처가 있었어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감옥경찰들이 때렸다고 했어요. 그러자 경찰이 즉시 그녀가 더 말하는 것을 막고 데려가 버렸어요. 이번 달에는 면회도 허락하지 않았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기다리게 한 후, 결국 여동생이 연공하다가 독방에 갇혀 면회가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저와 B는 A의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이 여자 감옥은 악명 높은 곳으로, 파룬궁수련생을 가장 사악하게 박해하는 검은 소굴입니다. 모욕, 욕설, 구타, 잔혹한 고문 등 온갖 사악한 수단으로 ‘전향’을 강요합니다. 당신의 여동생은 분명 심각한 박해를 당하고 있어서 감옥에서 범죄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면회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그녀 몸의 상처를 볼까 두려워하는 거죠. 만약 가족들이 나서서 정의를 주장하지 않으면, 악인들은 더욱 무자비하게 박해할 것입니다. 우리 수련생 중 많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박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감옥의 모든 박해 수단은 불법이며, 게다가 그 검은 손길은 감옥 밖까지 뻗어와 가족의 합법적인 면회권마저 박탈하고 있습니다.”
A의 언니는 말했습니다.
“여동생이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고문당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친자매가 아니면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예요. 아직 2년 이상의 형기가 남았는데, 이대로 가면 정말 걱정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견딜지… 마음이 아프지만 방법이 없네요. 여러분은 어떤 방법이 있나요?”
저와 B는 말했습니다.
“감옥의 박해를 저지하려면 감옥 관리국을 찾아가세요. 만약 처리하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위로 올라가 요구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여동생에 대한 박해를 줄일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언제든지 생명의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저는 또 덧붙였습니다.
“우리 수련생 중에는 이미 선례가 있어요. 일부 수련생들이 감옥에서 매우 잔혹하게 박해를 당했는데, 가족들이 고발하러 가자 악인들이 두려워하여 더 이상 수련생을 고문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A의 언니에게 감옥 관리국을 찾아가도록 격려했고, 다른 수련생 가족들의 정의로운 행동을 예로 들었으며, 동시에 대법 속에서 올바른 위치를 잡도록 했습니다.
B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찾아갈 용기가 있으신가요? 우리가 동행할게요. 몇 명의 수련생들을 더 찾아 발정념을 도와달라고 할게요.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대단하고, 또한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거예요.”
A의 언니는 희망과 의지를 찾은 듯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말씀을 듣고 나니 용기가 생겼어요. 여러분이 이렇게 사심 없이 도와주셔서 저도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 여동생이 어떻게 고문을 당해도 몰랐을 거예요.”
우리는 감옥 관리국을 찾아갈 계획을 의논했고, A의 언니의 일정에 맞춰 감옥에 갈 시간을 정했습니다. 그 후 A의 언니는 기쁜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저와 B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오직 대법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평범한 A의 언니가 무력함에서 대의로 가족을 구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여자 감옥에 가는 날, 날씨는 맑고 상쾌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약속한 시간에 여자 감옥 정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성(省)내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B는 성내 몇몇 수련생들에게 발정념을 도와달라고 하고 길 안내도 부탁했습니다. 저는 지역 수련생 몇 명과 함께 와서 발정념을 하며 다른 공간에서 악인들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도록 조종하는 모든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습니다. A의 언니, 형부, 어머니가 함께 차를 타고 왔고, 그녀의 언니는 정기가 충만했습니다.
A의 언니는 계획대로 먼저 감옥에 가서 A와의 면회를 요청했습니다. 교도관, 감구장, 감옥 ‘610’(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은 각종 핑계를 대며 면회를 방해했고, 감옥장을 찾자 그들은 감옥장이 없다고 했습니다. A의 언니가 나와서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B와 저는 즉시 소통한 후, 성내 수련생의 안내로 B가 A의 언니와 함께 감옥 관리국을 찾아갔고, 우리와 함께 온 수련생들은 여전히 감옥 정문 앞에서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B 일행이 감옥 관리국에 도착하자, A의 언니는 방문 이유를 설명하며 감옥이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고발했습니다. 여동생을 학대할 뿐만 아니라 가족의 법적 면회 권리까지 박탈했다고 했습니다. 감옥 관리국 직원이 여자 감옥 감구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라고 했고, 감구장은 여전히 악의적으로 변명하며 A가 연공하고 관리에 따르지 않아서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A의 언니는 정의롭고 엄중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그녀는 제 여동생이에요. 당신들은 그녀를 때릴 권리가 없어요. 당신들은 감옥법을 위반했고 가족의 면회 권리까지 박탈했어요.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해서 어떻다는 거죠? 오늘 저는 반드시 제 여동생을 만나야 해요. 당신들에게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모르겠어요. 만약 생명에 위험이 생긴다면, 당신들 중 누가 책임질 수 있겠어요? 해결하지 않으면 더 상부로 찾아가겠어요.”
가족의 정의로운 행동이 악인들을 위축시켰고, 감구장의 오만한 기세가 사라졌습니다.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고, 감옥 관리국 직원은 다시 감옥장에게 전화해 A의 언니가 면회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했습니다.
오후, B와 A의 언니 일행은 감옥 관리국에서 돌아와 감옥에서 A 면회를 요구했습니다. 경찰, 감구장 등은 더 이상 방해하지 못했고, A의 언니는 바라던 대로 여동생을 면회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감옥은 이후로 A에 대한 폭력적인 박해를 중단했고, 그녀의 불법 구금이 끝날 때까지 그랬습니다.
사실, 길은 사부님께서 이미 마련해 놓으신 것이며, 수련생들이 정체적으로 협력하여 함께 제고하고 가족들이 정의롭게 박해에 반대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정체적인 정념 협력 속에서 각자 신통을 발휘하여 악을 제거했습니다.
2. 사부님의 안배 아래 수련생 구출에 성공하다
몇 년 전, 어느 날 제가 C의 집에 갔을 때, 그녀는 D가 중공 경찰에게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 둘은 D의 가족을 찾아가 D가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구금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와 C는 기다리거나 의존하지 않고, 임시로 두 사람의 소그룹을 형성하여 D 구출에 협력했습니다. 우리 둘은 법리적으로 깨달은 대로 행동하기로 의논했습니다. C는 직장인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출근하게 되면 함께할 수 없고, 경험도 별로 없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능력이 많아요. 휴무일 때는 우리가 함께하고, 당신이 근무할 때는 제가 혼자 하면 됩니다. 저도 잘 모르고, 경험이 근거가 되는 것도 아니며, 게다가 구출되는 수련생마다 마음 상태도 다 다릅니다. 사실 우리 둘만 구출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사부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고, 또한 진상을 알리는 데 참여하는 수련생들도 있습니다.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면 지혜는 모두 사부님께서 열어주시는 거예요.”
D의 박해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지역 일반 변호사를 고용하여 D를 면회했습니다. 저와 C는 구치소 밖에서 기다렸고, 변호사가 정보를 전달해주었습니다. 저는 공안국의 납치와 검찰원의 불법 체포 소식을 즉시 정리하여 명혜망에 공개했고, 국내외 수련생들이 박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진상을 알리며 사악이 D에게 가하는 박해를 해체했습니다.
이어서 우리 둘은 D의 가족과 함께 지역 공안국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D의 사건이 심각하다는 핑계로 회피했습니다. 가족들은 다시 시 공안국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지만,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라며 민원실로 넘겼고, 민원실은 가족들에게 변호사를 찾아 서류를 열람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지역 공안국은 곧 D를 검찰원에 조작해서 고발했고, 검찰원은 여전히 D가 중점 대상이라며 소위 서류를 공안국으로 돌려보내 증거를 보충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지역 변호사를 통해 D를 면회했습니다. 변호사는 D의 말을 전했습니다. D가 자신의 집 냉장고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가져가고 전기를 끊어달라고 했으며, 고향에 가서 남동생을 찾아 실제 나이를 증명해달라고 했습니다(호적이 실제보다 어림).
저는 시련 중에 있는 D의 사람마음이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나올 수 없는 길을 안배한 것인데, 이는 그가 구세력의 안배를 전면 부정하는 데 불리했고, 이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D의 사람마음을 따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냉장고 안의 물건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고 전기도 끊지 않았으며, 그의 남동생을 찾는 것은 헛수고라고 생각하여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사악은 수련생을 박해할 때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사람마음을 겨냥합니다. D는 자주 구출 활동에 참여했으므로, 그가 법리적으로 어떻게 박해에 대항하고 구세력의 사악한 안배를 부정하며, 어떻게 속인 이 한 층의 법률을 활용하여 박해를 저지하는지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반드시 정념정행(正念正行)하여 박해를 부정하고 빠져나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변호사가 첫 번째로 그를 면회했을 때 이 부분에 대해 그와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밖에서 구출에 참여하는 수련생들이 안에 있는 수련생의 사람마음에 이끌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어야만 구세력의 모든 사악한 안배를 부정할 수 있습니다.
곧 D의 조작된 사건이 다시 검찰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족들은 D를 위해 변호사 선임을 원했고, 우리도 정의로운 변호사가 개입해 서류를 열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화로 사건을 맡을 변호사와 연락했고, 변호사는 곧 도착했습니다. 저와 C가 역에서 변호사를 맞이하고 D의 상황을 설명한 후, 변호사와 함께 검찰원에 가서 서류를 열람했으며, 우리 둘은 밖에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다시 변호사와 함께 구치소에 가서 면회했습니다. D가 정념정행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사부님의 법 한 단락과 필요한 소통 메시지를 그에게 전달했습니다. 변호사는 순조롭게 면회했고 나와서 D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밖에서 건강했던 사람이 구금되어 박해당한 결과라고 말했고, 변호사에게 검찰원에 ‘불기소 처분’과 ‘강제 처분 변경’에 관한 법률 문서를 제출하도록 일깨워 주었습니다. 변호사는 돌아가서 EMS로 우편 발송하겠다고 했습니다.
변호사가 두 번째로 왔을 때, C는 출근해야 해서 제가 혼자 역에서 변호사를 맞이하고 구치소에 동행했습니다. 변호사는 나와서 D가 구치소의 약물 박해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으며, 박해에 참여한 경찰과 검찰원 직원들의 불법 행위를 고발하고, 형법 300조를 남용해 선한 사람을 조작 고발한 것에 대해 고발했다고 전했습니다. 구치소 주재 검사와 검찰원이 고발을 막자, D는 변호사에게 고발장 전달을 위임했습니다.
변호사는 당일 저녁 고발장을 정리하고 다음 날 인쇄하여, 제가 변호사와 함께 공안국에 가서 고발장을 전달했습니다. 변호사는 저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나와서 공안국이 고발장을 접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구정부 민원실로 갔고, 약 15분 후 변호사가 나와서 민원실 직원들이 직접 고발장을 접수하지 않고 EMS로 우편 발송하라고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변호사는 돌아가서 우편으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변호사가 매우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며칠 후, 우리는 다시 지역 변호사를 통해 D를 면회했습니다. 변호사는 그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생명이 위독하다고 했지만, 검찰원은 여전히 직무를 소홀히 하며 법원에 불법 기소를 했습니다. 저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변호사는 막 오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C는 근무해야 했기 때문에 저 혼자서 변호사를 맞이했습니다. 동시에 D의 가족과 연락했는데, 가족들은 돈을 빌리느라 바쁘다고 했습니다. 저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가족이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매우 급하게 말했습니다.
“구치소에서 전화가 왔어요. D의 생명이 위험하니 가족들이 법원에 2만 위안의 보증금을 내면 구치소에서 즉시 석방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가족들을 안심시키며 이 돈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말했습니다.
“이미 사람이 위험한데 돈을 내지 않으면 사람을 풀어주지 않아요.”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 가족은 밖에 있을 때 건강했는데 3개월 만에 이렇게 박해를 당해 위험해졌습니다. 법원이 생명을 무시하고 빨리 사람을 풀어주지 않고 오히려 돈을 갈취하는 것은 당신의 가족을 생명으로 도박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돈을 주면 다음에도 요구할 것이고, 동시에 그들의 범죄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가족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해 제가 석방될 상황에 있을 때 경찰이 제 자녀에게 돈을 요구했지만 주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흥정하듯 마지막에 200위안까지 내렸지만, 아이는 여전히 정의롭게 거부했고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저도 결국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D의 가족은 이 말을 들은 후 정의롭게 말했습니다.
“당신 말을 따를게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요. 한 푼도 주지 않겠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모든 것이 사부님의 장악 아래 있으며,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분석했습니다. 지금 D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며 생사를 내려놓고 박해에 반대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저는 또한 자신감을 가지고 D의 가족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변호사와 함께 법원에 가세요. 당신이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고 한 푼도 주지 않아도 그들은 사람을 풀어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세 사람은 법원에 도착했고, 저는 밖에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변호사와 D의 가족이 안으로 들어가 판사와 협상했습니다. 가족은 이치에 근거하여 힘껏 주장했습니다.
“사람을 거의 죽게 만들어놓고 또 돈을 요구하는군요. 저는 돈이 없어요. 사람이 죽으면 당신들을 고소할 거예요.”
판사는 보증금을 1만 위안으로 줄였지만, 가족은 여전히 돈을 내지 않겠다고 하며 법원을 나왔습니다. 변호사가 나중에 나와서 판사가 다시 5천 위안으로 내렸다고 했습니다. 이후 판사는 다시 D의 가족에게 전화해 2천 위안을 내라고 했지만, 가족은 여전히 돈을 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중공에 의해 타락한 사법기관이 생명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마치 장사를 하듯 법률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저는 D의 가족과 함께 변호사를 배웅한 후 다시 가족에게 꼭 돈을 내지 말라고 격려했습니다. D의 당일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저녁 9시가 넘어 그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구치소에서 전화를 계속 걸어왔다고 말했습니다. D의 생명이 이미 위급하니 가족들이 빨리 법원에 돈을 내면 즉시 석방하겠다고 재촉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더욱 확신이 생겼고 가족에게 거듭 당부했습니다. 단호히 거부하면 그들은 반드시 사람을 풀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부님의 안배와 자비로운 보호 아래 D의 가족은 정의롭게 사악의 갈취를 저지했습니다. 다음 날 법원은 구치소가 사람을 석방하는 것에 동의했고 몸이 허약한 D는 가족에 의해 순조롭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D의 가족은 어릴 때부터 D의 수련을 지지했습니다. 이후 D는 중공의 박해를 여러 차례 겪었고 또 여러 번 밖에서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본래 어려웠던 가정이 박해로 인해 불안정하게 되었고, 그 가족은 성장 과정에서 자주 혼자 집에 있어야 했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번 D의 일로 인해 가족은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없었고 직장도 멀리 있어서 급여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활도 어려웠는데 제가 그를 찾을 때마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식사하지 못했습니다. 수련생이 박해를 당하면 가족 역시 고난을 겪습니다. 저는 가족의 어려움을 이해했고 그가 굶지 않게 하려고 그가 좋아하는 식당을 찾게 했습니다. 적게는 10여 위안, 많게는 몇십 위안의 식사비를 모두 제가 냈습니다. 이번에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용은 모두 수련생들이 모은 것이었습니다.
맺음말
D 구출 과정에서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계속해서 제자를 보살피시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가장 신기하게 느낀 것은 세 번 역에서 변호사를 맞이할 때 전광판에 오가는 열차 시간이 모두 정시로 표시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사부님을 굳게 믿고 하는 일이 대법이 이 층에 부여한 표준에 부합하니, 사부님께서 제자를 격려하시며 정념정행하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C와의 협력 중에 대부분의 시간에 그녀가 출근해야 해서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법의 한 입자로서의 역할을 발휘하여 조용히 행동하고 불평 없이 수련생에게 의존하는 마음을 버렸습니다. 매번 일을 마친 후 저는 즉시 C와 소통하여 협력 중에 그녀가 어떤 단계도 놓치지 않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광활한 우주 속에서 신들도 부러워하는 정법시기(正法時期) 대법제자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주셨으며, 모든 능력을 주시고 제자의 위덕(威德)을 성취하게 하셨습니다! 오직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정진하여 실천 수련하며 서약을 이행해야만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묵묵히 협력해 주신 수련생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허스
원문발표: 2025년 4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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