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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관념에 이끌리지 않고 가정,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어릴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했고, 응석받이로 자라 제멋대로 하며 이기적이고 거만하고 횡포했으며, 기본적인 전통의 문화 예절을 몰랐습니다. 학교 다닐 때 만세를 부르고, 구호를 썼으며, 지주(地主)를 비판하는 공개 재판 총회를 보았습니다. 총회가 끝나면 어떤 지주는 무대에서 끌려가 총살당했고, 저도 따라서 모모를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마을에 그려놓은 류사오치, 왕광메이 만화를 보았으며, 소위 린뱌오, 공로이(孔老二, 공가의 차남)를 타도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또 덩샤오핑을 비판하고 우경 복권 풍조(우경 분자로 비판·처분된 자들의 판결 번복 및 복권 활동을 가리킴)를 겪었으며, 해설자도 했었습니다. 20~30페이지 되는 해설을 며칠을 외워야 했고, 투쟁의 말투, 투쟁의 사유로 이렇게 앵무새처럼 십여 년을 배웠습니다. 대학입학 시험에 붙어 대학을 다니고 사회에 진입한 후 표면은 패기가 없고 나약했지만, 뼛속까지 형성된 이기심과 쟁투심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질투, 원망, 분노, 불평불만 하면서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해 결국 온몸에 병이 생겼습니다.

여러 가지의 방식 모두 편안하게 생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심각한 경추병과 오십견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마지막에 안마를 근거로 도움을 청했습니다. 약 6개월쯤 안마를 받았을 때 안마사의 친구가 와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소개했고, 그때가 1996년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새벽에 연공하러 나갔고 책을 청했습니다. 오성이 너무 낮아 과거에 제가 연마했던 기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마음대로 책을 보고 연공했습니다. 이렇게 2주 연마한 후, 각 부위 맥락이 뛰는 것을 느꼈고, 이것은 예전에 없었던 현상으로 들지 못하던 팔도 제3장 공법을 연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뚜둑뚜둑 소리가 나더니 나중에는 소리 나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가벼워지고, 잠도 잘 수 있게 되었으며, 유선종이 사라지고 만성 위염 등 저를 괴롭히던 많은 질병이 모두 사라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편안했습니다.

법을 얻은 후 저는 더는 외롭지 않았고, 공허하지 않았으며 안정된 생활을 하여 제가 아침에 웃으면서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직장에서 개인 득실을 따지지 않았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나의 일 남의 일을 가리지 않았으며, 자신을 필요로 하면 따지지 않아 모두들 저를 벽돌 한 장으로 묘사했습니다. 수련하기 전엔 늘 조그마한 이익을 탐내 얻으면 기뻐하고, 공짜를 얻으면 마음이 매우 편안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법을 얻은 후 사람의 도리를 알게 되어 더는 그런 요령 좋게 돈을 챙길 수 있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이 저에게 본부서의 회계를 관리하고, 수입과 지출을 전부 저 혼자 관리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록 규칙에 맞지 않아 저도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동료들이 저를 얼마나 신뢰하는가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 중의 경지는 일체 환경 중에서 체현될 것이다. 당신의 사업 중에서, 생활 중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남들은 모두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1]

1. 8년간 시어머니를 위해 목욕시키는 고난 속에서 자신을 향상시키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주된 사항은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것입니다. 큰고모의 남편은 저와 남편을 잘 이해했습니다. 그는 자주 말했습니다. “처남 내외는 정말 쉽지 않겠어! 나는 아이 10명을 돌볼지언정 노인은 모시지 못하겠어. 노인은 몸이 점점 안 좋아지기 때문에 기분도 점점 나빠질 거야. 게다가 관념도 있고, 고집 세고, 늘 독선적이고, 먹는 것도 까다로워 간이 싱겁다 짜다, 딱딱하다느니 물렀다느니 하는 것이 매일 식사 때마다 화제가 되잖아. 가장 좋은 것을 노인에게 대접하고 자신은 좋지 않은 것을 먹는데도 노인은 자네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맛보고서야 시름 놓으니 말이야.”

배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시어머니는 뇌출혈 후 자신을 거의 돌볼 수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깔끔하신 분이어서 남방에서 매일 목욕하는 습관이 있으셔서 여름에는 물론 겨울에도 사흘이 멀다 하고 목욕해야 했습니다. 암 말기 반응은 피부가 가려워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시어머니의 요구로 거의 매일 뜨거운 물을 데워 목욕시켜드리고, 목욕을 마치고 나면 옷을 빨아야 했으며, 속옷은 모두 손으로 빨았습니다. 피부 가려움증이 시작됐을 때 처음에 어찌 된 일인지 몰라 옷을 깨끗하게 빨지 않았다고 하거나 샴푸나 바디 샤워가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옷을 빨래할 때 주의를 기울였고, 동시에 시어머니에게 샴푸나 바디 샤워 브랜드를 자주 바꿔드렸습니다. 마지막 4년에 얼마나 많은 브랜드를 바꿨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목욕하는 일을 놓고 말하자면 저는 줄곧 당연한 일이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료가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저에게 청했을 때, 저는 시어머니 목욕을 시켜드려야 해서 떠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동료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에서 나오는 대로 며느리가 시어머니 목욕시켜주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럼 누가 씻겨주냐고 물었습니다. 동료는 딸더러 씻겨주라고 하든지 가정부를 찾아 씻겨주어야지, 며느리가 왜 목욕을 시켜줘야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 나서 매우 놀랐으며,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관념이었습니다. 시아버지도 동료에 대해 말하시며 동료 아내가 뇌졸중에 걸려 아들이 엄마를 씻어드린다면서 그의 며느리도 그렇고, 그리고 동료들도 거의 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목욕시켜드려서는 안 된다는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도 ‘내가 씻겨드리지 말아야 하나’하는 하나의 마음을 갖게 되었고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대법을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마음은 비록 참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왔으며, 특히 시어머니를 돌봐드리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때 더 들추어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시어머니도 뚜렷해진 때가 있었고, 특히 후기에 이르러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 한편으로 시어머니를 씻어드리면서 그 맡기 어려운 냄새를 맡으며 제가 힘들어 땀을 뻘뻘 흘릴 때 시어머니가 종종 감동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어느 생에 복을 쌓아서 자네와 같은 좋은 며느리를 만나 이렇게 나를 잘 돌봐줄까?” 한번은 한쪽에 앉아있던 큰고모가 듣고 말했습니다. “지금 돈이 있으면 어떤 가정부를 못 찾겠어요?” 저는 당시 ‘그러게요’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나 지난 후 마음이 서글펐습니다. ‘내가 고생하는데 당신이 씻겨드리지 않으면 그만이지, 거기에서 비아냥거리고 있다니.’ 그러나 제가 수련인 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후반 시어머니의 대변 실금은 늘 식사할 때 시어머니가 감각을 느낄 때쯤에는 이미 늦어 밥그릇을 내려놓고, 몇 겹 입은 바지를 갈아입히고 빨아야 했으며, 어떤 때는 바로 목욕 시켜드려야 했습니다. 한번은 형님(남편 형의 아내)이 남방에서 돌아와 모두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는 반만 드시고는 가려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를 말하지 않았지만 저는 바로 반응했으나 이미 늦었고, 미처 화장실에 가기도 전에 대부분 배설물이 바지에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또 한참 바삐 일하고 대충 수습한 후 형님이 몸이 좋지 않은데 아직 주방에 있을 것을 생각하고 형님을 도와 설거지를 했습니다.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 형님은 저를 피하고 창문을 열고 싶어 했지만 태연하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잠시 후 좀 미안해하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병이 난 후 바람이 두려워 1년 내내 창문을 거의 열지 않았습니다. 본인 방에 냄새가 나면 문을 열게 했으나 창문을 열지 못하게 했고, 다른 방도 열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름에 가장 더울 때만 며칠 열게 했으며, 그마저 잠시 열었다가 닫게 했습니다. 집에는 방에 들어서기만 하면 불쾌한 냄새가 났습니다. 외지에서 대학 다니는 딸이 입원하여 열흘간 간호해준 이외에 8년 동안 줄곧 저 혼자 마지막까지 시어머니를 씻겨드리고 옷을 빨고 이발 등을 해주었습니다. 온 가족이 저의 수련 경지를 칭찬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2. 진정으로 시아버지를 감동시켜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다

시아버지는 과거 제가 수련하기 때문에 매우 차별하셨고, 저를 마찬가지로 차별하는 큰고모의 남편조차 때론 그대로 볼 수 없어 종종 뒤에서 시아버지가 사람들 앞에서 저에게 한 지나친 일들을 말했습니다. 한번은 큰 형님 부부가 남방에서 와서 아침밥을 먹을 때 남편이 아주버님이 앉는 것을 보고 저에게 아주버님을 모시고 앉으라고 하여 바로 앉았습니다. 이때 시아버지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보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너 형님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시어머니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때 남편이 화가 나서 너무 사람을 업신여긴다고 그들과 다퉜지만 저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남편에게 제가 나쁘다고 타일렀습니다. 사실 남편은 요즘 사회에서 보기 드문 효자이고, 항상 부모님의 위치를 높이 두었으며, 저도 수련을 한 후 점점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시아버지의 터무니없는 질책에 변명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하면서 시아버지 요구를 최대한 만족시켜 드렸고, 자발적으로 시아버지를 위해 생각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매일 오후에 시아버지를 모시고 공원으로 산책을 갔으며, 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호하는 저를 늘 딸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니라고 말하자 시아버지는 나중에 딸이라고 말하라면서 “다른 사람은 다 밍크코트가 있는데(여성 가족을 가리킴) 자네만 없다.”면서 기어이 저에게 사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제가 대법에서 닦아낸 정기(正氣)로 시아버지의 일부 이기적이고 변이된 나쁜 사상 관념과 행위를 바로 잡았고 시아버지에게 대법 진선인(眞·善·忍)의 아름다움과 훌륭함,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함을 들려주었습니다.

시아버지는 1년 내내 습관성 불면증을 앓고 있어 수면을 취하기 위해 50여 년 동안 수면제를 복용했습니다. 올해는 저의 조언을 듣고 잠자기 전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에 스스로 반드시 파룬궁하오(法輪功好)!를 해야 한다며 덧붙여 외워 반년이 지나도록 수면제를 더는 먹지 않았습니다. 시아버지의 고집으로 이전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수련을 안 하는 사람은 여전히 이기적인데, 시아버지는 저에게 비밀에 부쳐달라면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게 했고, 저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면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님 딸이 불면증으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제가 알려주면 믿지 않을 수 있으니 아버님이 직접 겪은 일로 형님에게 말하면 얼마나 좋아요?” 시아버지가 스트레스를 몹시 크게 받으셔서 저는 더는 난처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아마 제가 닦아야 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3. 다른 사람의 차별에 더는 고민하지 않다

저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었고, 부끄러움을 잘 타고 자존심이 지극히 강해 다른 사람이 저를 차별하거나 표정이 굳어지면 심지어 눈빛 하나에도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화내고 원망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이 대가족에서나 직장에서나 수시로 이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한 사람이 저를 손가락질하거나 한 무리 사람이 지나간 후 몇 사람이 머리를 돌려 저를 보며 틀림없이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집에서 큰고모가 저를 야박하게 대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올케 빼고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없어.” 뜻인즉 제가 그들의 집을 망신시켰다는 것입니다. 시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하셨는데, 제가 소문이 났다는 뜻으로 예전에 우리 부서의 상사가 시아버지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며느리가 있다고 말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도 저를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어서 경찰과 접촉한다고 비꼬았습니다. 매우 많은 이런 모든 비난에 직면해 저는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게 정정당당게 일하고 수련인 답게 행동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뒤에서 제게 주는 평가입니다.

사람들을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때도 저의 얼굴 신경을 자극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한번은 기차역에서 옆에 앉은 젊은이에게 삼퇴를 권했더니 그는 당시 화내며 저를 욕했습니다. ××당의 월급을 받으면서 탈당하라 하는가 하는 등등. 저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다소 긴장하고 기차역에서 그가 신고할까 봐 두렵긴 했지만 속으로 정법 구결을 외우고 자신을 진정시킨 후 안으로 찾으면서 그에게 ××당이 저에게 월급을 지급한 것이 아니라는 이치를 설명하자 그는 마침내 조용해졌습니다. 또 한번은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한 여성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제가 입을 열자마자 그녀는 화를 냈고, 즉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떠들었지만 저는 줄곧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버스가 도착했을 때 저는 그녀가 손에 많은 물건을 든 것을 보고 그녀를 도우려 했으나 그녀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선량함이 그녀를 감동시켜 표정이 그렇게 악하지는 않았습니다. 속으로 이런 사람을 위해 애석해했고, 제가 그들을 구하지 못해 유감스러웠습니다.

과시심 때문에 어릴 때부터 듣기 좋은 말을 듣기 좋아했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말을 듣기 좋아하여 환희심과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독선적인 마음이 생김으로서 성실하지 않고, 모든 일을 과장하고, 심지어 목적을 위해 모종의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의 변태 심리를 과시했습니다. 이런 변태적 심리는 현대 관념의 행위에 이끌려 마의 세력 범위를 형성했습니다. 이 마의 세력 범위가 저를 수십 년 동안 속박했습니다.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함에 따라 갈수록 그 심각성을 인식하여 점차 진정하게 뛰쳐나왔습니다. 행동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때 과시심을 가지지 않았고, 나타나면 바로 경계하고 그것을 저지했습니다. 사실 과시심의 최종 근원은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약해질수록 과시심이 점점 담담해집니다. 모든 일에서 안으로 찾고 변명하는 습관을 버렸고, 다른 사람 특히 가정에서의 고난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제가 제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유 없는 질책을 태연하게 직면할 수 있고, 분노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화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반성할 수 있습니다.

수련에서 어느 정도 향상되긴 했지만, 대법의 요구와 수련에서 정진하는 수련생과 비교하면 거리가 너무 멀기만 합니다. 자신을 잘 닦고 수련의 길을 잘 걸어 스스로 꾸준히 노력해야 하며, 더 많은 중생을 구하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습니다.

개인의 체득이므로 법에 부합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시정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미국서부법회설법’

 

원문발표: 2020426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26/4042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