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바른 믿음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사소한 일인가?

글/ 기혜(起慧)

[명혜망] 바른 믿음은 개인에게 있어 단순한 정신적 의지처에 그치지 않으며, 내면의 가치와 삶의 방향을 이루는 근본적인 토대다. 유혹과 타락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바른 믿음은 개인에게 안정적인 지지점을 제공해, 곤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방황 속에서도 방향을 찾을 수 있게 한다. 굳건한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그것을 강제로 포기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생명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그의 정신을 잔인하게 짓밟는 행위다. 정신은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신 건강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른 믿음’을 다양한 배경의 신앙과 구별하는 이유는, 오늘날 사회의 많은 신앙은 무신론, 현대적 관념, 현대 과학의 산물로서 한계가 크고 심지어 해롭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 주제는 별도의 글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바른 믿음이 사람에게 지니는 의미와 가치

첫째, 바른 믿음은 개인의 가치관과 행동 준칙을 형성한다. 종교적 교의이든 어떤 신념에 대한 굳건한 고수이든, 바른 믿음은 우주의 법칙에 부합하는 시비와 선악의 판단 기준을 제공해 복잡한 현실 속에서 바른 믿음에 근거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

파룬궁(法輪功)은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부르며, 지난 세기 90년대 중국에서 일어난 진선인(眞·善·忍)을 핵심 가치로 하는 심신 수련법으로 느리고 부드러운 다섯 가지 공법과 도덕 향상을 강조하는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 개인의 도덕성과 평화, 비폭력을 강조하며 단기간에 많은 대중이 수련에 입문하게 함으로써, 중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정신적 신앙 집단이 됐다.

진선인을 믿는 많은 파룬궁수련자는 불의한 것을 취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배려하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하는 도덕적 굳건함을 보여준다. 이로써 사회 속에서 신뢰와 선한 상호작용을 촉진하는데, 이것이 바로 바른 믿음이 오늘날 사회에 강력한 지지를 제공하는 실례다.

둘째, 바른 믿음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사람이 좌절, 상실, 질병, 죽음 또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 내면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쉽게 생겨난다. 그러나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고난을 단련이나 시험으로 여겨 생명의 강인함, 선한 본성, 포용력을 향상시킨다.

마지막으로, 바른 믿음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많은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수많은 풍파를 겪고 나서 덧없음과 공허함을 느끼며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바른 믿음은 사람을 더욱 크고 높은 맥락 속에 두게 하여, 타인을 이롭게 하든 진리를 추구하든 어떤 신념을 실현하든 간에 삶이 더 이상 하루하루의 반복에 그치지 않게 하며, 짧은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영원한 의미를 얻게 한다.

사람에게 바른 믿음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영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사람의 영성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다. 바른 믿음은 사람이 영성을 유지하고 정신적 귀착지를 찾으며 인생의 궁극적 목적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이다.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의 심신 승화는 당사자에게 있어 어떤 세속적 체험보다도 더 진실한 경험이다. 한 사람이 자신이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바른 믿음을 강제로 저버리게 될 때, 그 상처는 결코 ‘생각을 바꾸는 것’이나 ‘의식을 바꾸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첫째, 자아에 대한 고차원적 인식의 부정이다. 바른 믿음은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와 직결된다. 외부의 힘이 한 사람에게 이러한 신념을 부정하도록 강요할 때 이는 진정한 자신을 배반하도록 강요하는 것과 같으며, 사람을 강렬한 상실감, 공허감, 자기 의심 속으로 몰아넣는다. 나아가 내면에 모순과 불안을 야기해 미래에 대한 기대와 행동 동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는 정신적 차원의 살인에 해당한다.

둘째, 자기혐오와 죄책감을 유발한다. 폭력과 강권 아래 마음속의 신, 진리, 고차원의 자아를 배반하고 세속적 차원에서 선악과 시비의 준칙을 잃게 되면 사람에게 강렬한 죄악감이나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신체가 살아있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스스로를 ‘배도자(背道者)’나 ‘겁쟁이’로 여기게 되며, 이러한 도덕적 오점은 종종 평생을 따라다닌다. 이는 불안, 우울, 심지어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과 같은 장기적인 심리적 외상을 유발해 심신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이는 만성적인 살인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공신력의 붕괴다. 가장 신성한 신념마저 폭력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을 때 공신력은 권력과 금전으로 대체되며, 인간이 타인, 사회 정의, 심지어 인간 본성에 대해 갖는 신뢰도 빠르게 무너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고 정신적인 연결을 맺기가 매우 어려워지며, 거시적인 것부터 미시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서로를 가까운 적으로 여기고 속고 속이며 서로를 해치는 일이 끊이지 않게 된다. 이는 건강한 사회에 대한 살인에 해당한다.

바른 믿음이 인생, 인류, 사회에 미치는 중요성 때문에 역사상 수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바른 믿음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 로마 제국이 300년에 걸쳐 기독교인을 잔혹하게 박해해 무수한 순교자를 낳은 것 외에도, 근대에는 티베트 불교 신자들 또한 가혹한 신앙 탄압을 겪었다. 많은 사원이 폐쇄되거나 철거됐고 승려들은 강제로 환속됐으며 종교 활동은 엄격한 제한을 받았다. 일부 승려는 바른 믿음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구금되거나 강제로 사상 개조를 받아야 했다. 많은 티베트인이 대대로 이어온 신앙 전통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났다. 이러한 사건들은 마찬가지로 정권이 한 집단의 신앙을 파괴하려 할 때, 그 피해가 개인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문화와 민족의 정신적 뿌리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맺음말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기본적 인권일 뿐만 아니라 심신 건강과 인격의 완전함을 지키는 중요한 조건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중국은 기독교인과 불교 신자를 박해했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거짓말로 파룬따파를 사교로 모함하고, 구금, 고문, 실형 선고, 반복적인 자택 방문 괴롭힘, 생계 단절 등의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자신을 저버리고 바른 믿음을 배반하는 전향서 등 수련 포기 각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며 심지어 장기적출까지 자행하고 있다.

권력자들은 손에 쥔 권력의 지팡이가 땅과 몸을 통치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신앙을 진정으로 통치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일선의 공안, 검찰, 법원 직원은 사람에게 바른 믿음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살인과 같으며 큰 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따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파룬궁수련자들에게 바른 믿음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데 가담한 수많은 집행자가 잇달아 크고 작은 현세의 응보를 받거나 자손에게까지 응보가 미치고 있는데, 이는 당사자에 대한 징계인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경고다. ‘법은 다수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을 속이고 남을 기만하는 환상일 뿐이다. 역사를 거울삼아 선한 마음을 지키고 ‘사람 피를 묻힌 찐빵(人血饅頭)’을 먹지 않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진정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2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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