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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는 오로지 사람을 구도할 몫이 있을 뿐이다

여전히 사람 마음으로 법을 실증하는 국내 제자들과의 교류

 

법학습을 잘하면 사람 마음을 제거하기 어렵지 않다

이 글은 아주 잘 썼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방식에 대하여 아직 청성(淸醒)하지 못한 그러한 수련생들은, 이 글을 좀 보는 것이 가장 좋겠다. 이 글은 비록 전면적으로 씌어지지 못했고 심도(深度)에 한계가 있으나,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데 한 일체에 대하여 똑똑하다.
기실 걸어 나오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이런 구실 아니면 저런 구실을 대든지 간에 모두 두려운 마음을 덮어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오히려 수련자가 사람과 신으로 구별되는 견증(見證)이자 수련자와 속인의 구별이며 또한 수련자가 제거해야 할 최대의 사람 마음[人心]이다.

李 洪 志
2005년 7월 20일


【명혜망 2005년 7월 20일】사부님께서는『시카코시 설법』에서 대법제자는 “오로지 사람을 구원하는 몫이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본 후에 나는 감촉이 많았다. 여기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사람 마음이 있으며 사람 마음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을 대하는 제자들과 교류하여 자신의 몇 가지 견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는 마땅히 사부님의 정법(正法)은 모든 중생을 구도하고 있음을 아주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어떠한 생명이든지 막론하고 정법에 죄를 짓지 않는다면, 심지어 역사상 이미 아주 많은 죄악을 저지른 ‘중공(中共)’ 이런 사령(邪靈)조차도 정법에 죄를 짓지만 않는다면 모두 선해(善解)될 수 있고 구도될 수 있다. 이 얼마나 큰 자비인가! 이 얼마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수승(殊勝)함인가! 그럼 이 특수한 시기에 대법제자로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면서, 우리가 한 일체는 모두 정법의 수요(需要)를 둘러싸서 하고 있으며 중생구도의 수요를 둘러싸서 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한 일체 일체의 근본 기점은 모두 중생구도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법제자가 진정으로 위대한 점이다. 우리가 법학습을 잘 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은 자기 세계 속의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발정념을 하는 것은 정법에 죄를 지어 구도할 방법이 없는 생명들을 제거함으로써 구도될 수 있는 생명들을 구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것은 보다 많은 방대한 천체의 생명들을 구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정법의 매 일보(一步)마다 늘 사람 마음으로 정법과 중생구도를 대하는 일부 수련생들이 있다. 그들은 늘 사람과 다투는 것이 아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등등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씩 돌이켜 분석해보자.

99년 박해 이후부터 2000년 사이에, 많은 수련생들은 마땅히 걸어나와 법을 실증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혹이 있었고 걸어나와 법을 실증하고 베이징에 가는 것이 사람과 다투고 정부와 대항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 시기에 이런 사람들이 또 정말로 적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만약 법의 기점에 서서 본다면 우리는 왜 걸어 나와야 하는가? 명(名)을 다투고, 이익을 다투고 반항하기 위해서인가? 대법제자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으며 욕을 해도 대꾸하지 않는 것으로 세간의 일체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걸어나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편으로는 자신을 보는 것으로, 대법 속에서 수련하는 생명으로서 법이 박해를 받을 때 일어나서 법을 실증하는 가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생구도인즉 한 부류 한 부류씩 수련생들이 걸어나와, 갈수록 더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그런 거짓말을 알게 했으며, 대법제자의 견인(堅靭)한 신념과 대선대인(大善大忍)의 흉금을 보게 하였다. 이로써 그 생명들로 하여금 더 이상 대법과 대법제자들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만약 법에 서서 인식한다면 명명백백하게 걸어나올 수 있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대법제자가 걸어나온 것은 중생구도에 아주 중요한 작용을 일으켰다. 아울러 사람 마음을 갖고 이 문제를 본 수련생들은 오히려 자신만 수련하고 자신만 고려할줄 알았지 법과 중생의 안위(安危)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어떤 각도에서 본다면 이런 수련생들은 낡은 세력의 표현과 마치 아주 흡사하게 사(私)를 위하고 자신을 위하고 있다.

2001년이 되자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걸어나와 중생을 구도하였다. 이 시기에 사부님께서는 경문을 발표하시어, 제자들에게 발정념을 하여 법을 박해한 그런 사악한 마와 썩은 귀신들을 제거함으로써 정법에 대한 사악의 교란과 파괴를 감소시키라고 요구하셨다. 이 시기에 많은 제자들이 모두 발정념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중한 수련생들은 여전히 법에 서서 문제를 고려하지 못했다. 그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관념은 바로 발정념이 선(善)한가 선하지 않은가, 이렇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등등이었다. 사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이런 생각이 있는 수련생들은 자신을 좀 보아야 한다. 자신이 정말로 개인수련에서 쟁투심을 제거하지 못했는지, 쟁투심을 가지고 법을 실증하며 발정념을 했는지. 만약 이 마음이 없다면, 당신이 발정념 할 때 정말이지 완전한 일종의 선념이다. 법은 표준이 있는 것으로 법을 파괴한 그런 생명들에 대한 방임은 곧바로 중생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사실 만약 법의 기점에 서서 본다면 발정념도 중생구도이다. 자기 세계의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체계의 중생들도 구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사악한 요소들이 눌려 내려올 때 만약 당신이 그것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람을 통제하여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죄를 저지르는데 우리는 이렇게 본다. 결과는 어떻겠는가? 그것 자신도 소멸되고 조종당한 그 사람도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역시 소멸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사악한 요소를 통제하는 고층생명 역시 정법에 죄를 지어 도태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소훼(銷毁)되겠는가? 만약 당신이 발정념을 통하여 이런 요소들을 제거한다면, 악을 행할 수 있는 것이 없어져 원래 조종당해야 할 사람이 법(法)에 죄를 짓지 않게 된다. 그런 고층 생명 역시 법(法)에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들은 도태를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한다면, 발정념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사람 마음을 갖고 발정념을 대하는 수련생은 사악한 요소를 그리 잘 청리하지 못함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중생들의 도태를 초래하게 될 것인가? 당신은 중생구도의 사명을 짊어졌는가?

나중에 사부님의 경문 중 여러 곳에서는 각종 방법을 이용하여 사악을 제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중에는 “만약 악경, 나쁜 사람이 충고를 듣지 않고 여전히 막무가내로 악을 행한다면, 가히 정념으로 제지할 수 있다. 대법제자가 정념이 강하고 두려운 마음이 없는 상황에서, 정념으로 오히려 악을 행한 자를 제지할 수 있다. 악경이 전기봉을 사용하든지 나쁜 사람이 약물을 주사하여 박해하든 지간에 모두 정념으로 폭행을 가하는 자에게 전류와 약물이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 입장(立掌)하거나 입장하지 않아도 다 되며, 정념이 나가기만 하면 된다.”(『정념(正念)으로 악행을 제지하라』)

“그런 까닭에, 모든 대법제자들·신노수련생들은 발정념 중에 구체적으로 정(鎖定)한 목표 외에 이런 흑수(黑手)를 직접 가리켜 그것들을 철저히 소멸하라. 동시에 여러분들이 발정념 시, 사상을 더욱 집중하고 더 순정·평온하게 하며, 더 큰 능력을 움직여 모든 흑수·썩은 귀신들을 해체시켜 이것들의 다른 공간 속에서의 최후의 교란을 소멸할 것을 요구한다.” (『정념으로 흑수(黑手)를 제거하라』)

이렇게 하는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사실 사부님께서는 아주 똑똑히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고 선(善)을 행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며, 이 정념은 악인이 악을 행하는 것을 제지하고, 또한 기타 나쁜 사람에게 경고하여 보여주는 것이며, 역시 세인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하기 위해서인데 , 목적은 여전히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이다. ”
(『정념(正念)으로 악행을 제지하라』)

우리가 사악을 제지하는 것은 그것이 법에 대해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근본적으로 그가 좋게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그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단 죄를 지은 후에는 갚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법제자에 대하여 말한다면, 오늘까지 걸어왔다면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마땅히 명백해야 하는데, 우리는 오로지 사람을 구도할 몫이 있을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속인 중의 쟁투, 분쟁, 정치적인 각축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우리는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법정각(正法正覺)을 수련성취하는 생명이다. 우리가 하는 일체는 모두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9평이 나온 후에 정법은 또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사람 마음을 가진 일부 수련생들은 자신마저 느끼지 못하는 당문화에 의해 어지러워진 관념으로 이 새로운 형세를 보고 있으며 그 결과 또 헤어 나오지 못한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중생구도이다! 우리 다시 한번 각도를 바꾸어 생각해보자. 우리가 중생들에게 중공의 진면목을 이야기하여 똑똑히 보지 못하게 한다면 또 즉시 탈퇴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는가? 그들은 도태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神)은 새로운 우주 중에 이런 생명들이 계속 존재함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곧 도태될 것이며 우리는 그들을 구하여 반드시 사령에게서 벗어나도록 해야만 한다. 이렇지 않은가? 중국 국내의 사람들은 장기간 이 당이 어떻게 ‘영광스럽고 위대하며 정확하다’고 주입당한 동시에 또 여러해 동안의 주입을 거쳐 많은 사유방식이 모두 그러하며 그 속에 완전히 빠져있다. 하여 일부 수련생들은 단번에 돌아서지 못하는데 여전히 사람 마음이 너무 중하여 법의 기점에 서서 문제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의 기점에 선다고 하더라도 사람 역시 선(善)과 악(惡)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악(惡)이라면 사람은 마땅히 그것을 제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악을 제지한다면 그것은 곧 당신이 정치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망나니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한 이러한 일은 인간세상의 무슨 시비(是非)를 위한 것이 아니며 근본적으로 말할 때 우리는 오로지 사람을 구할 몫만 있을 뿐이다. 이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아직까지 사람 마음을 갖고 정법을 대하는 중국 국내의 일부 수련생들은 정말로 자신을 잘 보아야 한다. 우리의 기점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자신의 사람마음은 아직도 이렇게 중한가?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정말로 갈수록 제한적이다. 우리 다함께 이 최후의 시각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길을 순정(純淨)하고 순정하게 잘 걸어나가자. 중생을 구도하고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을 기탁한 그런 중생들을 구도하자.

개인의 인식이니 만약 적절치 못한 곳이 있으면 지적해주기 바랍니다.

(대륙 대법제자)

 

문장완성:2005년 7월 19일
문장발표:2005년 7월 20일
문장갱신:2005년 7월 20일 11:46:16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7/20/10651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