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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귀한 사진, 행복한 기억

글/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5월 13일】

내게는 비할 바 없이 진귀한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사진에서는 사존께서 자비로운 눈빛과 미소로 바라보시고 계시며 그 옆에는 처음 사존을 뵙고 비할 수 없는 기쁨과 미소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내가 서 있다. 나는 매번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전체 심신이 말로 표현할 비할 수 없는 행복과 희열에 빠진다.

이것은 1996년 파룬따파 북경국제법회에서 지단(地壇) 방택헌(方澤軒)에서 개최된 마지막 교류회가 끝난 후 사존께서 몸소 방택헌에 오셨을 때 찍은 사진이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사존을 뵌 것이다. 당시 광경을 회상해보니 작고 상세한 내용까지 모두 눈앞에 역력하며 내 생명 중에서 영원히 진귀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다.

나는 1996년 법을 얻었다. 1996년 4월 모친이 전화를 걸어 급히 알려주셨다. 새벽에 북해(北海) 공원에 가서 새벽운동을 하는데 몹시 미묘하고 상화로운 음악소리에 이끌려 음악소리를 찾아 가보니 파룬궁 연공장으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원래 연공음악테이프를 사려고 하셨는데 보도원이 파룬궁 서적을 읽어보라고 건의해 『전법륜』을 가져오게 되었다.

모친과의 전화 대화 중에 나는 어머니가 느끼는 급박과 흥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모친은 우리가 기공을 이렇게 오랫동안 연마했는데 어떤 기공사도 이렇게 뚜렷하게 도리를 이야기 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이 후 모친은 매일 전화를 걸어 자신의 느낌을 말해 주었으며 『전법륜』중의 단락을 읽어주셨다.

모친은 『전법륜』을 읽은 후 조금도 주저 없이 수십년 연마하던 원래의 기공을 포기했으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73세의 고령인 모친이 지팡이를 짚고 특별히 『전법륜』을 주시기 위해 나를 찾아 오셨다. 당시 나는 중병을 앓은 지 몇 년이 되었기 때문에 신체가 매우 허약했고 1년 내내 병상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생명의 진정한 의의를 찾고 있었으며 적지 않은 불교, 도교 서적을 읽었으며 답을 찾으려 했다. 나는 또 다른 법문의 기공을 여러 해 연마했지만 생명의 진리를 찾지는 못했다.

모친이 『전법륜』을 보내준 후 나는 즉시 읽지 않았다. 당시 나는 마침 밀종(密宗)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 나는 마음속으로 있어 본 적이 없는 평정함을 느꼈고 마치 깊고 맑은 하늘처럼 순정하고 잡념이 전혀 없었다. 내 눈이 아무 생각 없이 주위의 물건을 돌아보는데 책상에 놓인 『전법륜』이 시선에 들어왔다.

내가 『전법륜』을 펴서 읽기 시작하자 즉시 평이하고 알기 쉬우면서도 또 비할 수 없이 깊은 내포에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한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나도 이런(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여 페이지까지 읽었을 때 신체는 즉시 정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신체에 원래 가지고 있던 십여 종의 병증세가 그림자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매우 신기하게도 겨우 며칠 만에 나는 수십 년 고질병에서 철저히 벗어났다. 사부님께서는 내게 새 생명을 주셨다.

대법을 수련한 후 신체가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심령에도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과거의 이기적이고 협애한 경지 중에서 한 걸음씩 걸어나와 관용과 인내를 배웠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며 일마다 수련인의 표준에 비추어 자신을 단속했다.

1996년 6월, 광명일보에서 파룬궁을 왜곡하는 보도가 실렸는데 나는 행간에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모함하려는 것을 보았고 마음이 평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장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의 절실한 체험을 써 내어 세인들에 알려야겠다고 결정했다. 파룬따파는 진정하게 건강을 얻게 하고 심령도 제고되는 고덕대법이다!

문장을 다 쓴 후 나는 보도원에게 주었고 동시에 광명일보와 당시 총리였던 주용기(朱熔基)에게 보냈다.

1996년 11월 2일 아침 나는 지단 방택헌에서 북경국제법회가 열린다는 통지를 받았으며 또 나더러 회의에서 수련체험을 발표하라고 했다. 내가 딸(어린제자)을 데리고 회의장에 갔을 때 교류회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들어보니 바깥 동수들은 그들 각자의 대법수련후의 변화, 심성관을 넘는 고통, 미혹의 집착을 버린 후의 평정…. 등등을 서술했다. 나는 속으로 매우 감동했다. 오후에는 조를 나누어 교류하고 저녁에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방택헌 대강당에는 앞뒤에 두 개의 강당이 있었다. 수련생들은 두 강당에 식탁을 차려놓았고 나는 후면의 대강당에 앉았다. 종업원이 두 번째 요리를 올려놓은 지 얼마 안 되어 돌연 앞 강당에서 열정적인 함성이 들렸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잘 듣지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알았다. “사부님께서 오셨다!”

비록 며칠 전 법회 본회의장에서 사회자가 사부님의 팩스를 전달했는데 대략적인 의미는 사부님께서 미국에 계시기 때문에 이번 법회에 참가하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모두들 사부님께서 법회가 끝나는 마지막 날 제자들을 보러 오실 줄 생각지도 못했다.

나와 딸은 원래 뒤편 강당 가장 안쪽에 있었고 게다가 사람이 많고 비좁았으며 탁자 위에는 음식이 가득차려 있었기 때문에 거의 틈이 없었다. 나중에 당시 상황을 생각하니 기이했다. 사부님께서 오신 것을 알았을 때, 앞에는 많은 의자가 가로막혀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의자 몇 개를 화살처럼 풀쩍 뛰어넘어 갔으며 단번에 앞 강당 입구에 도달했다.

보니 앞 강당에서 수련생들이 사부님을 향해 몰려나오고 있었으며 많은 수련생들이 손을 내밀어 사부님과 악수하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사부님을 뵌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나왔다. “나는 수련인이다. 사람들을 밀치고 다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또 사부님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대문 근처에 한 척 높이의 문턱 위에 서서 머리를 힘껏 내밀고 똑똑히 사부님을 보았다.

수련생들 사이에서 사부님의 크고 훤칠한 신체는 뚜렷이 드러났으며 대중들과 달리 특별했던 것은 사부님의 얼굴과 주변이 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사부님께서 큰 걸음으로 뒤쪽 강당 방향으로 걸어가셨고 나는 전후 강당 사이의 입구에 서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부님께서 내 앞으로 오셨고 나는 한발을 내밀 겨를도 없이 바로 사부님 옆에 서 있었고 사부님 곁에서 사부님을 따라 뒤쪽 강당으로 가고 있었다.

나도 사부님과 악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사부님께서 옆에 계시니 악수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갑자기 『전법륜』중의 한마디가 나타났다. “그 역시 나와 악수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시종 손을 내밀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뒤쪽 강당에 가시어 그곳 수련생을 만나보시자 뒤쪽 강당 역시 들끓었고 격동한 수련생들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의 옆에 서서 마음속으로 순정하여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저 벙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내내 입을 벌리고 웃어서 양쪽의 뺨의 근육이 다 시렸다는 것을 나중에야 비로소 알았다. 나는 몇 번이나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다물지 못했고 그저 그렇게 웃고만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나의 (부)원신이 사부님이 누구인지를 보았을 것이다.

이 때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수련생들에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고 외쳤고 나는 마지못해 사람들을 따라 자리에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종의 힘 때문에 나의 다리를 굽혀 의자에 앉을 수가 없어서 내내 서 있었으며 두 손은 허스한 채 가슴 앞으로 당겨져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서서 쌍수 허스 하며 멍하니 사부님을 바라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손을 흔드시며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들 어서 식사하세요. 내가 여기 있으면 여러분은 식사를 못하니 당신들이 식사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말을 마치시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하지만 격동된 사람들은 심정을 평정하지 못했으며 누구도 다시는 밥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수련인은 반찬을 낭비할 수 없으니 종업원들에게 요리를 더 가져오지 말라고 요청했고 사람들은 자기 앞에 있는 요리는 억지로 다 먹으려고 노력했다.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탁자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의자를 잘 배열하여 사부님이 오시기를 격동적이며 절실히 기다렸다.

마침내 기다리던 사부님께서 오셨다! 이는 내가 처음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경청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이 법을 얻은 것은 상당히 쉽지 않았다. 아마 전반생에 고생을 겪은 것은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해서인데 이것은 당신들이 아는 것이다. 또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도 있다. 아마 몇 개 전생, 심지어 더욱 긴 시간인데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해 고생을 겪고 죄를 감당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법을 얻기 위해 더욱 큰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나는 단번에 눈물이 솟아나왔다. 그날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두 시간 가량 설법하셨다. 나중에 알았는데 사부님께서는 당시 열 몇 시간의 여행을 하고 비행기에서 내려 휴식도 없이 직접 회의장으로 수련생들을 보러 오신 것이었다.

수련생들이 밥을 먹을 때 사부님께서는 또 바깥에서 연공하고 있는 어린 제자들을 둘러보셨고 수련생들이 식사를 마친 후 재차 회의장에 오셔서 두 시간 동안 설법을 하신 것이었다. 만일 사회자가 사부님께서 공항에서 직접 이곳으로 오셔서 아직 식사도 하지 못하셨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수련생들은 사부님의 설법을 더 많이 듣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설법이 끝난 후 수련생들은 회의장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끌며 떠나고 싶지 않았으며 사부님이 설법하시던 장소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마지막에 문을 닫으려고 할 때까지 나와 딸은 아쉬워 떠나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는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으며 나는 다른 사람이 볼까봐 애써 버텼으나 어떻게 해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다행히 늦은 밤이어서 아무도 주의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와 딸은 사부님의 법상 앞에 꿇어앉아서 쌍수 허스하며 발원했다.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가겠습니다!”

밤이 되자 나는 조금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일어난 일체가 눈 앞에 펼쳐졌는데 이 일체는 내게 너무나 갑자기 왔으며 너무나 꿈만 같았다. 내가 정말 사부님을 뵈었는가? 나는 자기가 어떻게 이런 큰 복과 행운이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이 법회에서 찍은 사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오늘의 일체는 꿈이 아닐 테니까.

뜻밖에 그 후 얼마 안 되어 나는 정말로 가장 진귀한 사부님의 법회 사진을 얻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나는 진귀하게 간직하고 있는데 내가 어떤 마난을 만나거나 매우 어려울 때 나는 이 사진을 보기만 하면 일체의 어려움은 풀어진다.

수련의 길에 고생도 있고 낙도 있는데 마난을 만나 관을 넘길 때면 뼈를 깎는 고통이 있다. 관을 잘 넘기지 못하면 후회하며 자책한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위안이 되고 평정하다. 전체적으로 비록 울퉁불퉁 했지만 나는 시종 자신의 맹세를 기억하고 있다.

대법이 널리 전해진 16년을 맞아 나는 사존께 말씀드리고 싶다. 제자는 자신의 사전(史前) 대원(大願)과 금생의 서원(誓願)을 명심하고 있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존의 자비하신 고도를 저버리지 않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렵니다. 사부님 부디 안심하십시오!

문장발표 : 2008년 5월 13일

문장분류 : 중국소식>온고명금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5/13/1783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