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천(淸泉)
[명혜망] 중국인이라면 대부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사실 이 말에는 앞부분이 더 있는데, 바로 ‘정심성의(正心誠意), 격물치지(格物致知)’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본래 사서오경(四書五經) 중 《예기(禮記)·대학(大學)》편에 나오는 도리다. 이 네 단계는 고리가 서로 맞물리듯 수신(몸을 닦음)에서 시작해 치국평천하(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함)까지 이어진다. 수신을 하려면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히 하며(정심성의),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르러야(격물치지) 한다.
그러나 ‘격물치지’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대학》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그 참뜻이 실전됐다. 《대학》은 춘추시대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가 저술했는데, 당시에는 죽간(대나무 조각)에 기록했다. 죽간은 보존하기 불편한 데다 엮은 끈이 끊어지기 쉬워 순서가 뒤섞이기 십상이었다. 유포 과정에서 죽간이 유실되거나 순서가 섞였고, 현재 널리 알려진 판본은 송나라 때 주희(朱熹)가 순서를 재배열한 것이다.
역대 학자들은 ‘격물치지’에 대해 각기 주석을 달았다. 예를 들어 주희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그 극치에 도달함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 철저히 규명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정이(程頤)는 “오늘 한 가지를 탐구하고 내일 또 한 가지를 탐구해 쌓인 것이 많아지면 활연히 관통하는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실행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왕양명(王陽明)은 “모두가 격물을 하려면 주희의 설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지만, 누가 진정 그 말대로 실천했는가? 나는 착실하게 그대로 해보았다”고 회고했다. 왕양명은 21세 때 “만물에는 반드시 겉과 속, 굵고 가는 것이 있으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지극한 이치가 깃들어 있다”는 선배 유학자의 말을 떠올리고 전(錢)씨 성을 가진 친구와 토론했다. 성인이 되려면 천하 만물을 탐구해야 하는데 그럴 힘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먼저 뜰 앞의 대나무부터 탐구하기로 했다.
전씨 친구가 먼저 온 마음을 다해 밤낮으로 3일간 대나무를 탐구했으나 과로로 병이 났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 여겼다. 이어 왕양명이 직접 나섰다. 밤낮으로 그 이치를 깊이 생각했으나 얻지 못했고, 7일 만에 그 역시 과로로 병이 났다. 결국 두 사람은 마주 보고 탄식하며 “성인은 될 수 없는가 보다. 격물할 만큼 큰 힘이 없구나”라고 했다.
왕양명은 35세 때 환관 유근(劉瑾)의 미움을 사 귀주(貴州) 용장(龍場)역 역참 관리로 좌천됐다. 왕양명은 이곳 용장역에서 ‘격물치지’의 도리를 깨달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용장오도(龍場悟道)’라고 부른다.
《왕양명연보(王陽明年譜)》에 따르면 당시 그가 처한 환경은 열악하고 험난했다. 용장은 귀주 서북쪽 만산(萬山)의 가시덤불 속에 있었고, 그곳 소수민족의 언어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은 중원지방에서 도망쳐 온 망명자들이었고, 왕양명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거처할 집조차 없었다. 게다가 환관 유근의 분노도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왕양명은 득실과 영욕은 초월했으나 생사는 초월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이에 돌로 관을 짜고 “나는 오직 운명의 배치만을 기다릴 뿐”이라 맹세했다. 그는 밤낮으로 단정히 앉아 침묵하며 마음의 안정을 구했다. 시간이 지나자 가슴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왕양명은 《예여문(瘗旅文)》에서 “부모와 고향을 떠나 이곳에 온 지 3년이 지났다. 독기(毒氣)의 침입을 겪으면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도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수행원들이 모두 병들자 왕양명은 직접 장작을 패고 물을 길어 죽을 쑤어 먹였다. 또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고향 곡조에 해학을 섞어 들려주며 그들이 질병과 타향살이의 고통을 잊게 했다. 왕양명은 이때도 성현이 되겠다는 뜻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성인이 이곳에 처했다면 어떤 도가 있었겠는가?’라고 생각하다가 한밤중에 갑자기 격물치지의 뜻을 크게 깨달았다. 비몽사몽간에 누군가 알려주는 듯해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며 뛰어일어나니 수행원들이 깜짝 놀랐다. 그는 성인의 도가 자신의 본성에 이미 구비돼 있으며, 이전에 외부 사물에서 이치를 구하던 방식이 틀렸음을 알게 됐다. 암기하고 있던 《5경》(시경, 서경, 예기, 주역, 춘추) 구절로 검증해보니 부합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에 《오경억설(五經臆說)》을 저술했다.
훗날 왕양명은 《대학문(大學問)》에서 ‘격물치지’에 대한 이해를 상세히 밝혔다.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반드시 그 의념(생각)이 일어나는 곳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의념의 발동에는 선과 악이 있다. 선악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못하면(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모르면) 참됨과 망령됨이 뒤섞여, 아무리 (뜻을) 성실히 하려 해도 성실히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그 뜻을 성실히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앎을 투철히 하는 데(치지) 힘써야 한다. 여기서 ‘치(致)’란 나의 양지(良知, 타고난 양심)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는 네 구절로 이를 요약했다. “선도 악도 없는 것이 마음의 본체요,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이 뜻의 움직임이다. 선과 악을 아는 것이 양지(양심)요,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함이 격물이다.” 이는 왕양명 심학(心學)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 됐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4일
문장분류: 천인(天人)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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