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眞修)·실수(實修)하며 수련생과 함께 제고하다

글/ 간쑤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200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아래에 저의 수련 체험을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수련생을 돕는 과정에서 자비심을 체득하다

L 수련생과 저는 간헐적으로 협력하며 진상 지폐를 사용해 사람을 구했습니다. 2024년 섣달, 그녀는 제게 자신의 몸에 올바르지 않은 상태가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얕은 교류를 했고, 그녀는 사부님과 대법을 믿으며 정념(正念)으로 고비를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L은 타지에 가서 딸의 아이를 돌봤습니다. 2025년 4월, 그녀는 생후 10개월 된 외손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그녀는 자신의 몇 가지 상세한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저는 그녀의 상태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녀는 딸의 집에 있을 때 사위와 격렬하게 다투었고, 심지어 사위의 따귀를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딸과 사위가 아이를 별로 돌보지 않아 자신이 법공부를 따라가지 못하게 됐고, 신체의 바르지 않은 상태가 심해져 4개월 동안 과일과 채소만 먹을 수 있었다고 원망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마음을 가라앉혀 대량으로 법공부하라고 건의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하루에 사부님 설법 녹음 4강을 듣고 있으며, 아이도 따라서 법공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혼자 10개월 된 아기를 돌보느라 얼마나 피곤할 텐데, 어떻게 4강의 설법을 다 들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아직 수련의 엄숙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법에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제한돼 있어 더 깊이 교류하지는 못했습니다.

며칠 후, 저와 F 수련생이 그녀를 보러 갔는데, L의 안색은 눈에 띄게 좋지 않았고, 그녀는 자신이 15kg 넘게 살이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주방에 부적이 하나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엄숙하게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무릇 우리 대법(大法)을 수련하는 사람은 그것을 채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낮고 아주 좋지 못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즉시 떼어냈습니다.

저는 또 어떤 수련생이 제게 L이 모신 불상이 사부님의 법상이 아니라고 일깨워 줬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불상을 꺼내 보라고 해서 봤더니, 불상이 아니라 확대된 호신부(護身符)였고 그 위에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가 인쇄돼 있었지만, 확실히 배경의 불상 그림은 사부님의 법상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F는 L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고,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며 우리에게 부적과 이 확대된 호신부를 소각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와 F는 그녀에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일깨워 줬습니다.

4월 30일 오후, 저는 스쿠터를 타고 L과 외손녀 만만(滿滿)을 우리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이때 L은 이미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우리집 소파에 계속 무릎을 꿇은 채 사부님 설법 영상의 제1강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저는 만만을 제 침실로 데려가 작은 병 하나를 장난감으로 찾아 주었습니다. 저는 본래 성미가 급해서 특히 아이를 돌보는 것에 참을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뜻밖에도 차분했고, L도 무척 감동했으며, 우리는 모두 당시의 장이 매우 상화롭다고 느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큰 강물의 홍수가 계곡의 작은 강으로 역류해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제가 미처 높은 곳으로 피하기도 전에 홍수가 순식간에 물러갔습니다. 작은 강바닥에는 온통 진흙투성이였고 깨끗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으며, 게다가 큰 똥구덩이가 세 개나 있었습니다. 잠에서 깬 후,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일깨워 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L이 착실히 수련하지 않아서 공간장이 매우 지저분하고, 게다가 부적절한 남녀 관계 문제까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L이 이렇게 큰 병업 고비를 만났으니 첫 번째로 반드시 그녀의 잘못을 폭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5월 1일, L은 아이를 사돈댁에 보내고 다시 우리집에 와서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았습니다. 제2강을 다 보고 나서 저는 진정으로 엄숙하게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제도하시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호주 수련생들에 대한 설법 영상에서 부적절한 남녀 관계는 살인 방화에 비해서는 가볍겠지만, 대법에 먹칠을 하는 점에서는 무겁다고 하셨습니다.” L은 그 자리에서 얼굴을 가린 채 울면서 매우 후회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죄송하게도 사부님 얼굴에 먹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어서 또 말했습니다. “제가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었겠어요!” 마치 대법을 배운 후 좋아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했습니다. 저는 약간 의아했지만 더 이상 말하기가 불편했습니다. 제3강 법공부를 마치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기간에 L의 아들과 친척들은 L의 상태에 몹시 놀랐고, 친척들은 울면서 그녀에게 병원에 가라고 강요했지만, L은 고집스레 자신이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L은 매우 초조해 보였습니다. 저 역시 L이 병원에 간다면 고난이 더 커질까 봐 걱정됐습니다. L의 아들은 제가 어머니가 병원에 가는 것을 막는 줄 알고 있어서 저는 말했습니다. “어머니 스스로 결정하게 두세요. 병원은 병을 치료할 수는 있지만 목숨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이때, 몇몇 수련생들도 L의 아들에게 “어머니가 병원에 가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수련생들은 모두 L에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바로 원망심이 일어났고, 병업 중인 L에게 정념을 더해주지 않은 그 수련생들을 원망했습니다.

F와 L은 고향이 같았는데, F가 제게 L의 몇 가지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과연 제 꿈에서 가리킨 대로 L은 남녀 관계에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으나, 그녀는 한 번도 그것을 폭로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L과 깊이 있는 교류를 하기로 상의했습니다.

5월 4일 오후, 저와 F는 우리집에서 L과 함께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법공부를 마친 후, 우리는 L에 대해 들은 몇 가지 소문을 이야기했고, 동시에 남녀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초래되는 몇 가지 심각한 결과에 대해 법에서 교류하며, L이 체면을 내려놓고 자신의 잘못을 폭로해 사부님께 참회하기를 희망했습니다. L은 대수롭잖게 조금 말했는데, 우리 둘 다 L이 자신의 잘못을 폭로하는 것이 고비를 넘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도록 도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밥을 한다는 핑계로 F와 L이 교류하도록 남겨뒀습니다. 마침내, F의 거듭된 추궁 끝에 L은 수련 이후 남녀 관계 방면에서 저지른 잘못을 폭로했는데, 확실히 여러 차례 부적절한 남녀 관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로써 저는 L이 생사 고비를 넘기고 있다는 것을 더욱 명백히 알게 됐습니다. 저는 문득 아찔해졌는데, 이렇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 수 있겠습니까? F가 제게 말했습니다. “L에게 병원에 가라고 권했던 그 수련생들은 모두 L을 수련생으로 여기지 않아요.”

그날 밤, L의 아들이 두 명의 수련생을 데려와 L에게 병원에 가라고 권했고, L은 견디지 못하고 병원에 가겠다고 동의했습니다. 병원에 이송된 후 L은 자궁암 말기 확진을 받았습니다. 자궁종양이 너무 커 요도를 막아 오랫동안 소변을 배출하지 못해 신부전증이 나타났고, 혈액 투석과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L이 투석할 때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병원에서는 연이어 두 차례 위독 통지를 내렸습니다. L의 아들은 어릴 적에 어른들을 따라 법공부를 한 적이 있어 수련의 일을 조금 알고 있었기에, 우리에게 문자를 보내 어머니를 위해 정념을 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가 정념을 발해주자 L의 상태가 호전됐습니다.

L이 병원에서 돌아온 후, 우리 몇몇 수련생이 교대로 그녀와 함께 법공부했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누워서 휴대폰만 보며 우리가 법을 읽는 것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으며, 서둘러 법공부하고 착실히 수련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서서히 L은 스스로 법을 읽을 수 있게 됐지만 조금 더듬거렸습니다. 우리가 20여 일 동안 단체로 법공부를 견지한 후 L은 법공부가 마음에 와닿았고 법을 읽는 것도 유창해졌다고 말했습니다.

L을 돕는 과정에서 줄곧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만약 L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L의 자녀들은 어머니에 대한 정이 매우 깊어, 한편으로는 어머니에게 병원에 가라고 강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하는 것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L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자녀들은 감정적으로 변해 말했습니다. “치료가 늦었어요.” 우리는 이 상황을 잘 수습하지 못하면 대법에 대한 그들의 긍정적인 인식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이러한 걱정이 모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법을 스승으로 삼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며, 결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지금 와서 보면, 애초 제가 정말로 L이 병원에 치료받으러 가지 않기를 바랐던 것도 이성적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또 비록 L에게 병원에 가라고 권한 그 수련생들의 처사가 완전히 법 중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L에게 병원 치료를 권한 수련생을 원망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갈지 말지는 마땅히 L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L이 치료를 받은 후 근 4개월간 밀접하게 접촉하면서, 우리는 L의 수련에 확실히 많은 문제가 있고 수련이 매우 착실하지 못해 정념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저지른 잘못을 알게 된 후 약간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행동이 대법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 도대체 계속 도와야 할까?’

저는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를 체득했습니다. 당시 마침 휴가였고 저 역시 L을 돕는 과정에서 일종의 자비로운 에너지를 체득했습니다. L의 최종 결과가 어떠하든, 그녀가 법공부를 하루 더 하면 업력을 조금 더 제거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저 수련생의 좋은 면만 보고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전체적인 협력을 중시하는 이것 역시 제 수련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2. 수련생의 도움 아래 병업 고비를 넘기다

L이 자신의 잘못을 폭로하도록 도운 후,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수련이 쉽지 않으며 구세력의 교란과 파괴가 스며들지 않는 곳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약간 피곤함을 느꼈는데, 이때 한 가지 생각이 제게 들어왔습니다. ‘네가 오지랖을 부렸으니 다음은 네 차례야.’ 저는 당시 뇌가 약간 둔해짐을 느꼈고, 잠재의식 속에서 구세력이 제가 진수(眞修)하지 않았다고 여겨 저를 어떻게 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즉시 부정하지도 않았고 중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후 수련생들과 이야기할 때 구세력의 일체 안배를 부정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저의 정념이 결코 강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 기간에 저의 수련 상태는 매우 나빴고, 심성을 지키지 못해 아이에게 자주 화를 냈습니다.

두 달 후 어느 날, 20여 일 동안 아팠던 오른쪽 어깨와 경추, 등 부분의 통증이 더 심해져 정념을 발할 때 입장(立掌)을 할 수도 없었고 앉아서 법공부할 수도 없었습니다. 끊임없는 통증에 이따금 강한 통증이 동반돼 제 체력을 소모시켰고 인내심도 마모시켰습니다. 저는 정념을 발해도 힘이 없었고, 법공부와 법 암기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수년간 수련하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심란하게 지속되는 통증으로 인해 저는 약간 쇠약해졌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 하늘의 공을 탐하는 마음, 과시심, 쟁투심, 질투심, 원망심, 이익심, 남을 바꾸려는 마음 등 수많은 사람 마음을 찾아냈고, 진심으로 사부님께 참회했습니다. 이웃 수련생들이 저와 함께 법공부하고 정념을 발하는 것을 도와주며 동시에 법에서 저와 교류했지만, 저의 상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정에 정념을 발하고 나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저는 오른쪽 어깨를 감싸고 사부님 법상(法像) 앞에서 맴돌며 마음속으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만 하나?’ 이때 한 가지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 제가 이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제 조급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안정됐고, 저는 곧바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가지(加持)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후 이틀 동안 저의 통증은 심해졌고, 각종 바르지 않은 염두가 수시로 제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계속 아프면 신경이 괴사할 텐데. 너의 팔 안에 고름이 생겼어. 이건 너희 가족의 유전병이야.’ 저는 이런 염두에 따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이 염두들은 모두 구세력이 주입하는 것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를 관할해 주시는 사부님이 계시니 제 신체에는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귀에서 고름이 흘러나왔지만, 저는 사부님께서 제게 신체를 정화해주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밤새 이어폰을 끼고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고, 대법 음악 ‘보도(普度)’, ‘제세(濟世)’를 들었습니다.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 때, 이틀 밤 심야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일은 병원에 가야지.’ 하지만 아침에 정신이 맑아진 후에는 여전히 조금 더 버텨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수련생도 제게 말했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보세요.”

사흘째 오후, F가 저를 보러 와서 말했습니다. “소극적으로 감당하지 마세요.” 저는 당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약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소극적으로 감당하고 있다는 걸까, 감당하지 않고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저는 이 말에 따라 제 문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내가 이를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건가? 아, 이제 알 것 같다.’

L이 그녀의 문제를 폭로한 후, 저는 그녀가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그 고난이 틀림없이 크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대법제자는 각자 모두 사부님께서만 관할하십니다. 구세력이 L을 암에 걸리도록 박해했는데도 저는 오히려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구세력 역시 제게 오랫동안 제거하지 못한 사람 마음이 많다고 여길 것이 틀림없고, 그러므로 그것들이 감히 제게 이렇게 큰 고난을 강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쩐지 이번에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고비인데도 저를 정념이 없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안으로 깊이 찾아, 박해를 인정한 배후에는 수련생에 대한 불관용과 수련생의 잘못을 꼬투리 잡고 놓지 않으며, 남을 징벌하고 괴롭히며 사람을 투쟁 대상으로 삼는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식 사유가 있음을 깨달았는데, 이것들은 모두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흘째 아침, 저는 여전히 아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손으로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었을 때, 저는 거의 병원에 가서 통증을 완화하려 했습니다. 이때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제도하시려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감당하셨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그렇게 많은 것을 해주셨는데 제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만약 병원에 간다면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해주신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해주신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저는 굳건해졌습니다. 그날 오후가 됐을 때, 저의 마음은 완전히 안정됐고 마침내 단정하게 앉아 정념을 발하고 법공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 또한 제가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저는 서둘러 시간을 내어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스쿠터를 타고 물건을 사거나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 정수기 물을 받아오고, 밥을 하고 집안일을 하는 등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저는 노력해 실제 행동으로 구세력의 일체 안배를 부정했습니다. 비록 스쿠터 타는 것을 2분밖에 견딜 수 없었고, 비록 자주 너무 아파서 길가에서 소리 내어 울었으며, 비록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종종 두 팔을 목에 걸치고 있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 곁에 계시며 이미 저를 대신해 아주 많은 것을 감당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10일 후, 신체의 통증은 기본적으로 무시할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3. 정체적으로 협력해 박해를 해체하다

제가 막 병업 고비를 넘겼을 때, 현지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그에게 “시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지요? 우린 당신을 꼭 만나야 합니다.” 전화를 끊은 후, 저는 제 아랫배가 무의식중에 떨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즉시 손가락으로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뭘 두려워해? 두려워하지 마!” 저는 경찰의 어떤 요구에도 협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잠시 정념을 발했지만, 마음이 그다지 안정되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때야말로 사악을 제거할 좋은 기회이므로 마땅히 수련생들에게 알려 함께 악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4~5명의 수련생에게 알린 후, 낮 12시 정념을 발했습니다. 경찰이 점심을 먹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당신은 진상을 알지 않습니까? 어째서 아직도 국보대(國保隊)에서 전출 가지 않았습니까?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 얘기는 하지 마시오. 이것은 내 일이요. 당신이 안 오면 나도 보고할 수가 없으니 안 오면 우리가 당신 집으로 갈 거요.”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일은 정당한 업무도 아닙니다. 당신들 경찰은 도둑질하고, 강도질하고, 사기 치는 자들을 단속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경찰이라면 마땅히 권선징악을 해야 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협조하지 않을 테니, 당신들도 저를 교란하러 오지 마십시오. 이런 일(박해에 가담하는 것을 지칭)을 하는 것은 당신들에게 조금의 이로움도 없습니다. 더 방해하지 않을 테니 쉬십시오.” 전화를 끊고 저는 이어서 30분 동안 정념을 발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당부했습니다. “오늘은 누가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마라.” 오후 3시가 막 지났을 때, 저는 소파에서 정념을 발하고 있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제 마음은 매우 평온했으며 계속해서 정념을 발했습니다. 일종의 자비롭고 상화한 장이 저를 감싸주었고, 저는 사부님의 가지를 느꼈습니다. 문밖의 사람은 문을 네 번 두드리더니 떠났습니다.

저는 아마 최근 우리가 붙인 ‘중공(중국공산당)은 악마다’, ‘중공은 사교(邪敎)다’ 등의 스티커 때문에 사악이 견디지 못해 경찰이 교란하러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최초의 생각은 휴대폰을 꺼서 경찰이 저를 찾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튿날 저는 늘 이렇게 숨어 지내는 것도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만약 경찰이 저를 심문하려 한다면 정면에서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갖가지 악행을 폭로하고, 중공의 역대 정치 운동이 중국 인민에게 저지른 죄악을 알리며, 대법이 진상을 안 세상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복을 알려 경찰이 대법제자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저지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제 마음은 태연해졌고, 저는 당당하게 경찰을 마주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수련생들이 계속해서 함께 정념을 발해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를 해체했기 때문에 경찰은 다시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맺음말

수련을 시작한 이래, 저는 줄곧 수련생들과의 협력을 매우 중시했고, 줄곧 여러 곳의 수련생들과 단체 법공부를 견지해 왔습니다. 수련생들과 서로 도우며 법 안에서 인식을 제고해 병업 고비를 넘겼고, 수련생들과 장기적으로 협력해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 스티커를 붙이며 진상 지폐를 사용하고, 가끔은 대면해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의 심성은 끊임없이 제고됐으며, 시시각각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을 느꼈습니다. 비록 저의 진보가 매우 느리고 길을 걸어오며 수없이 넘어졌지만, 사부님께서는 한 번도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의 작은 진보마다 사부님의 무수한 심혈이 스며 있으니, 제자는 오직 용맹정진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29/5141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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