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이징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어느덧 꼬박 30년이 되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덕분에 저는 언제나 법광(法光)에 흠뻑 젖어 무한한 아름다움을 거두었고, 매일이 행복으로 가득합니다. 오늘 30년 전의 소소한 기억들을 적어 사부님께 감사를 표하고 대법의 신위(神威)와 아름다움을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더 많은 분이 대법을 이해하고 수련에 들어와 도덕성을 높이며 생명 경지의 승화를 얻기를 바랍니다.
1996년 초 기쁘게 대법을 얻고 단체 법공부, 연공, 홍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1994년 즈음, 우리 현에서는 10여 명이 선후로 사부님의 설법반에 참가했습니다. 어떤 분은 톈진과 산둥 컨리 설법반에 갔고, 지난 설법반에 참가한 수련생이 가장 많았는데, 우리 부교장 선생님도 그중 한 분이셨습니다. 1995년, 사부님 설법반에 참가했던 열성적인 수련생 몇 분이 우리 지역 최초의 연공장을 세웠습니다. 듣기로는 처음에 베이산 근처에 있다가 나중에 지금의 푸쉐 공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곳은 예전 신발 공장 맞은편, 과학기술협회 건물 앞에 있는 작은 숲속이었습니다.
1996년 새해 첫날, 저는 기쁘게 대법을 얻고 심신의 혜택을 누리며 근처에서 열리는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집에도 법공부 팀이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매번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직접 꿰맨 방석을 깔아두며 사람들을 환영했고, 수련생들이 사부님 설법을 편히 볼 수 있도록 비디오 플레이어와 사부님 설법 비디오테이프도 사셨습니다. 매일 아침 저와 어머니, 아내는 함께 연공장에 가서 연공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연공장에 나가 20~30명씩 함께 단체 연공을 했고, 매주 월, 수, 금요일 저녁에는 우리집 법공부 팀에서 법공부를 했습니다. 1996년 섣달그믐날에도 우리 10여 명은 연공장에 모여 단체 연공을 하며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운 좋게도 우리 지역에서 열린 첫 대규모 사부님 설법 비디오 시청반에 참가했습니다. 행사는 퇴직 간부 활동센터 강당에서 열렸는데, 제 기억에 수십 명이 참석했습니다. 비록 비디오 시청이긴 했지만 우리 지역에서 열린 가장 크고 정식적인 첫 행사였기에 마치 사부님께서 우리 지역에 직접 오셔서 설법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반에 참가했던 많은 수련생이 훗날 우리 현의 대법 핵심 인재가 되었습니다. 지금 떠올려봐도 진정 신성하고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이면 우리는 중앙공원 서문으로 가서 홍법을 했는데, 매번 20명 정도 모였습니다. 보도원 네 명이 먼저 ‘파룬따파 무료 공법교습’ 현수막을 걸고 파룬궁 소개 자료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인연 있는 분들이 편히 볼 수 있도록 보배로운 책 ‘전법륜(轉法輪)’을 한 무더기 쌓아둔 뒤 단체 연공을 했습니다. 한번은 아침에 큰 눈이 내렸습니다. 날씨가 몹시 춥고 눈도 펑펑 쏟아져 저와 아내 단둘만 도착했는데, 녹음기도 없었지만 우리는 묵묵히 연공을 했습니다. 연공을 마치고 나니 공원 문 앞에 인연 있는 세 분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법륜’을 받아가려고 온 분들이었습니다. 눈보라를 무릅쓰고 법을 위해 찾아온 모습에 너무나 감동해 격려의 말을 건네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매주 진행되는 홍법 활동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1999년 ‘7·20’ 사악한 박해가 시작될 때까지 쭉 그랬습니다. 그날 비록 우리 둘뿐이었지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격려해 주시며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그 후 보도소 책임자가 각 향과 진으로 가서 농촌 수련생들과 연락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일요일 홍법 연공이 끝나면 갈 곳과 시간을 공지했고 가고 싶은 사람은 자원해서 신청했습니다. 저는 이때도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몇 명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교류도 하며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성 밖으로 나간 첫 대규모 홍법은 제철소 마을이었습니다. 10여 명이 현지 수련생들과 함께 단체 연공을 했습니다. 그곳에 부체(附體, 사람 몸에 붙는 동물, 귀신 등의 영체) 마(魔)가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많은 수련생이 수련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수련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여전히 그들 얼굴에는 두려움이 엿보였습니다. 홍법 연공장의 에너지는 무척 좋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대법의 홍대한 자비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고 다른 공간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홍법 활동이 끝나자 수련생들의 두려움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수련인의 감사와 기쁨만이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선후로 여러 향과 진을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각 지역의 수련생이 적은 편이라 그저 초기 연락망을 구축하는 정도였지만, 훗날 우리 지역에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데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6년 봄 연공장 규모가 커지고 핵심 역할을 맡아 무척 행복했다
1996년 봄 무렵, 수련생 수가 늘어나면서 우리는 중앙공원 동문으로 옮겨 단체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동문은 공원의 정문이라 아주 넓었고 오가는 사람이 많아 무척 북적였습니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각종 기공을 연마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있던 연공장은 작은 숲속이라 조용하고 연공하기에는 좋았지만 외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반면 새로운 연공장은 비록 조금 ‘산만’하긴 했지만 대법을 널리 알리는 데 아주 좋은 역할을 하여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행복한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제가 처음 갔던 법공부 팀에는 주택관리소 여직원, 식량 창고 노동자, 현지 농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다들 법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책을 읽는 분위기가 다소 느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팀 단체 법공부에 참가할 때마다 바른 자세로 앉아 두 손으로 ‘전법륜’을 받쳐 들고 최대한 맑고 우렁찬 목소리로 법을 읽었습니다. 제가 진지하게 법공부하는 모습에 사람들도 감화를 받아 법공부에 더 마음을 쏟게 되었고, 환경도 더욱 순수해졌습니다. 보도원은 사람들의 변화를 보고 무척 기뻐하며 제 방식을 인정해주었습니다. 저 역시 법공부를 하며 깨달은 바를 최대한 나누어 다 함께 제고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덕분에 법공부 팀은 전체적으로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매주 일요일의 홍법 장소도 비교적 좁은 서문에서 동문으로 바꿨습니다. 이곳은 주말이면 찾아오는 사람이 무척 많아 대법을 얻는 분들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아 베이징 총지부에서 전달된 사부님 신경문은 모두 복사집에 가서 복사해야 했습니다. 신경문이 도착할 때마다 다들 하루빨리 볼 수 있도록 보도원이 먼저 한 번 읽어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갓 도착한 신경문은 보도원도 익숙하지 않아서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 보도원은 저를 추천해 대신 읽게 했습니다. 저는 돌산 위에 서서 진심을 다해 법을 읽어주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우렁차서 수련생들은 한 구절 한 글자 모두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고 사부님 신경문의 함의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신경문 ‘병업(病業)’, ‘수련자 금기(修者忌)’, ‘원용(圓容)’, ‘무루(無漏)’ 등은 모두 그때 제가 사람들에게 읽어주었던 것들입니다. 사부님의 경문을 제일 먼저 대중에게 읽어주다 보니 자연스레 사부님의 강대한 법력의 자비로운 가지(加持)를 받게 되어 저 자신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더욱 자신감을 얻었고 경문의 함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어 향후 정법(正法) 수련을 위한 아주 훌륭한 밑거름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핵심 구성원으로서 보도원 법공부 팀에 합류했습니다. 모임에는 매번 10여 명이 참석했고, 보도원이 전반적인 상황을 전해주면 다들 수련 중 부딪힌 구체적인 문제들을 교류했습니다. 두어 번 참석한 뒤, 저는 이처럼 훌륭한 대법을 더 많은 사람이 얻게 해야 하는데 연공장이 하나뿐이니 영향력이 너무 약해 아는 사람이 적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도원에게 이렇게 건의했습니다. “단지 녹음기를 메고 와서 틀고 끄는 일이라면 평범한 열성 수련생이어도 충분합니다. 보도원이라면 응당 우리 현의 모든 주민을 생각하여 더 많은 사람이 법을 얻을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책임 보도원은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이 큰 연공장 하나를 동, 서, 남, 북 4개의 연공장으로 나누는 겁니다. 그러면 더 많은 수련생이 가까운 곳에서 연공할 수 있어 시간도 절약되고 대법도 더 잘 알릴 수 있어 사람들이 법을 얻기 한결 수월해질 것입니다. 동시에 시내에 세워진 동, 남, 서, 북 4개의 연공장이 각각 네 방향의 향과 진에 있는 농촌 수련생들을 도와 각자의 마을에 연공장을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보도원은 제 제안이 아주 좋다고 여겨 그 자리에서 즉시 3개의 새로운 연공장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책임자는 원래 있던 공원 동문의 큰 연공장에 남고, 동쪽과 북쪽은 다른 두 보도원이 맡았으며, 저는 같은 팀의 L 아주머니와 함께 서쪽 연공장을 세우러 갔습니다.
1996년 여름과 가을 점점 더 많은 연공장을 세우고 보도원이 되다
저와 몇몇 보도원은 곧장 행동에 나서 새로운 연공장 개설에 착수했습니다. 저와 L 아주머니는 먼저 사람들을 데리고 남대가 공상은행 앞으로 가서 연공을 시작했고, 일주일 뒤에는 백화점 앞으로 옮겼습니다. 장소가 더 넓어진 데다 현내 중심지였기 때문에 홍법 효과가 무척 뛰어나 갈수록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1999년 7월 22일 새벽, 저는 경찰의 감시 속에서 그곳에서 열린 마지막 단체 연공에 참가했습니다. 그런 뒤 감시망을 떨쳐내고 의연히 베이징 천안문(天安門)으로 향하여 대법을 수호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혹독하지만 더욱 아름다운 정법 수련의 길에 올랐고, 박해에 맞서 대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하는 더 큰 무대에 올랐습니다.) 무척 신기하게도 큰 연공장 하나가 4개로 나뉘었지만, 원래 있던 공원 연공장 역시 사람이 줄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순식간에 더 많은 인원이 모였습니다.
백화점 연공장이 세워진 지 며칠 안 되어, 저는 서관 쪽 수련생들도 근처에 연공장을 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첫 연공은 삼각지 공원에서 했는데 우리 세 명뿐이었습니다. 모기가 너무 많아 커다란 물린 자국이 여럿 생겼습니다. 결국 우리는 서쪽에 있는 한 식당 앞을 골라 서관 연공장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백화점 연공장 운영은 L 아주머니에게 맡겨두고, 저는 새로운 연공장과 법공부 팀을 개척하러 다녔습니다.
첫 법공부 팀은 한 젊은 노동자의 집에 꾸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수련을 하지 않아 80대 노부부의 집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당시 인원은 2~3명에서 4~5명 정도로 아주 적었지만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게는 확고한 정념(正念)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장 외지고 어려움이 많은 팀에 가서라도 기필코 가장 제고가 빠르고 훌륭한 팀으로 만들어 대법의 신위와 아름다움을 실증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여름 내내 사람이 점점 늘어나면서 법공부 팀은 어느 부부의 집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온 가족이 수련하는 대가족으로 어머니와 여동생도 모두 수련을 했기에 환경이 몹시 훌륭했습니다. 그 집은 방도 널찍하고 마당도 아주 컸습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야외에서 법공부를 했는데, 어떨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마당이 꽉 차기도 했습니다. 웃음꽃이 피어났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1997년 섣달그믐날 밤, 귀청을 울리는 경사스러운 폭죽 소리 속에서 우리는 고요히 연공을 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가슴 벅차게 차올랐습니다.
어느 일요일 홍법을 마칠 무렵, 둥진에 사는 부부 수련생을 만났는데 진(鎭) 안에서 단체 법공부를 간절히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분들의 열정에 크게 감동한 저는 그 자리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고 그들의 이웃 마을로 향했습니다. 부부는 그곳에 사는 3~4명의 수련생과 만나, 마을 마당의 작은 오두막에서 단체 법공부를 하기로 뜻을 모으고 둥진의 첫 법공부 팀을 세웠습니다. 또 시진에는 제 동창이 살고 있었는데 버려진 작은 학교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부와 함께 그곳에도 연공장을 하나 꾸렸고 8~9명 정도가 단체 연공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매주 하루씩 둥진과 시진을 오가며 그들과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곤 했습니다.
이후 시관 연공장의 수련생 일부가 성 모퉁이에 또 연공장을 만들어 하나가 두 개로 발전했습니다. 베이환과 구러우 두 연공장에서도 일부 수련생이 갈라져 나와 시환 연공장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공원 서문, 수이관, 둥관, 성남 등지에도 연달아 연공장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연공장들은 수련생들이 가까운 곳에서 연공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더 많은 세상 사람이 법을 얻을 수 있는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나중에는 한동안 현 전체의 핵심 구성원들이 모이는 법공부도 우리집에서 열렸습니다. 사람이 하도 많아 나중에는 방 안이 꽉 차서, 저를 비롯해 늦게 온 사람들은 문가에 서서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해 여름, 우리는 두 번째 대규모 사부님 설법 비디오 시청반을 개최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야외에서 열렸는데 성남 양수 발전소 준비 사무소의 공터였습니다. 저는 대법 행사 준비 작업에 처음 참여하여, 매일 대문을 여닫는 일을 돕고 임시 매점을 지키시는 당직 할아버지와도 원만하게 소통했습니다. 이번 설법반에 참가한 수련생들은 다들 수확이 몹시 크다고 느꼈습니다. 천목(天目)이 열린 한 수련생은 하늘에 수많은 천신(天神)과 천병천장(天兵天將)이 함께 사부님의 설법을 신성하게 듣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베이환과 난환 구역에서 각각 여러 차례 시청 모임을 가졌지만, 보도소 전체가 조직한 사부님 설법 비디오 시청은 이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매주 일요일이면 우리 모든 수련생은 공원에 모여 단체로 홍법을 했습니다. 저와 연세가 지긋하신 보도원 자오 아주머니가 공법교습을 맡았는데 매주 새로 배우러 오는 분들이 넘쳐났습니다. 결국에는 수백 명 단위로 불어나 그 광경이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1996년 겨울 단체 법공부를 견지하고 확고히 대법을 수호하다
1996년 12월의 어느 날 점심 무렵, 수련생 두 분이 용무가 있어 우리집에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마을은 당시 우리 지역에서 연공 인원이 비교적 많은 곳이었고, 여름에 우리가 가서 동작을 교정해주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곳의 수련 상황을 묻자, 그들은 저의 깊은 관심에 고마워하며 수련생들과 만날 수 있도록 저를 초대해주었습니다.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 도착하여 마을 안에 5개의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부 돌아보니 수련생들의 연공 열정은 대단히 높았으나 법공부는 별로 중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들 혼자서 책을 볼 뿐 단체 법공부 팀은 꾸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장 저녁에 다 함께 모여 법공부를 하자고 제안하며, 두 수련생에게 사람들을 모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농촌 사람들은 무척 소박해서 약속한 시간이 되자 20~30명이나 모여들었고 방 안을 꽉 채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피어올랐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사부님의 새 책 ‘파룬따파의해(法輪大法義解)’를 가져오게 하여, 단체 법공부의 중요성에 관한 사부님의 설법을 함께 읽었습니다. 법공부를 마치고 교류를 나누자 다들 단체 법공부 팀을 꾸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는 무척 따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대법제자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더없이 순수했기에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지해주시어 마치 신선 세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매일 단체로 연공하는 것을 바탕으로 단체 법공부를 더욱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사악이 어떻게 박해하고 교란하든 이 마을의 대법제자들은 꿋꿋이 단체 법공부를 견지해오고 있습니다. 다 함께 정체를 형성하고 착실하게 공동 제고하며 지금까지도 아주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30년 전인 1996년, 제가 직접 겪은 일련의 일들입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신수련생이었던 제가 신속히 진정한 대법제자로 거듭나게 하셨고, 대중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자원 보도원이 되게 해주셨으니 이는 제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입니다. 우리 현 전체에 연공장이 단 하나에서 순식간에 수없이 많이 세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저는 이 모든 것이 대법의 신위이자 창세주께서 베풀어 주신 홍은(洪恩)임을 알았습니다. 우리 지역 대법제자들이 다 함께 대법을 배우고 널리 전하던, 이토록 위대한 과정을 제가 직접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실로 큰 행운이었습니다.
맺음말 정체를 형성하고 사부님 따라 새로운 시대를 열다
훗날 정법 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우리는 1998년 베이징 방송국 대법 수호 행사와 1999년 ‘4·25’ 중난하이 평화 청원(上訪)에도 참가했습니다. 대법을 수호하고 대법 속에 융화되는 대법의 입자가 될 수 있어 정말로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직접 겪은 것은 훗날 1999년 ‘7·20’부터 시작된 사악의 광기 어린 대박해 속에서도 제가 응당 해야 할 일들을 훌륭히 해낼 수 있는 탄탄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눈 깜짝할 새 30년이 지나,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은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중공이 들어서기 이전의 찬란했던 5천 년 신전(神傳)문화를 순선(純善)하고 순미(純美)하게 펼쳐 보이는 션윈(神韻)예술단은 이미 8개 예술단으로 규모가 커졌고, 전 세계 순회공연을 통해 각 민족과 각계각층 대중에게 널리 호평을 받으며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세상 모든 이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올바른 믿음을 탄압하는 사악한 중공은 지금 붕괴와 해체의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중공 악당의 마귀적이고 악령적인 본질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간파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중공을 포위하고 토벌하는 정사(正邪) 대전이 열리고 있으며 하늘이 중공을 멸할 날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27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사악한 박해 속에서도 대법제자들은 결코 쓰러지지 않았고, 우리는 바른 믿음을 굳건히 지키며 오늘날까지 흔들림 없이 걸어왔습니다. 최근 2년 동안 우리 지역 대법제자들은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수많은 법공부 팀을 끊임없이 복구하고 새롭게 꾸렸습니다. 우리는 두 차례에 걸쳐 전체 제고를 촉진하는 법회를 열었고, 모두 함께 다시 한번 더 안정적인 정체를 형성하여 공동으로 제고하며 세 가지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제가 사부님을 따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위대한 생명이 된 것은 사부님께서 제게 하사하신 더없이 큰 영광입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아름다운 미래가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30년 전의 숱한 일들을 되새기며 앞으로 저 자신이 수련을 더욱 훌륭히 해내어, 전 세계 선량한 이들과 함께 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희망합니다.
30년 동안 자비롭게 지켜주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이끄시어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7/31/51285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7/31/51285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