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5.13] 위암 말기 환자가 새 생명을 얻기까지

글/ 산둥성 대법제자 정산(淨山) (본인 구술, 수련생 기록 정리)

[명혜망] 나는 농촌 사람으로 올해 70세가 됐으며 새로 입문한 수련생이다. 2025년 5월, 생명이 다해가는 순간에 비로소 대법 수련에 들어섰고 사부님께서 내 목숨을 구해주셨다.

나는 군 복무를 했고 보건 상식을 익혔으며, ‘맨발의 의사’(역주: 농사일과 의료 업무를 병행하던 농민 의사)로 일하면서 사람들의 병을 진찰하기도 했다. 낫게 해준 경우도 있었고 그러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생로병사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2020년부터 위장에 탈이 생겨 수시로 위산이 역류하고 은근히 아팠다. 통증이 심해지면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위염이라며 약을 먹으면 좀 낫는다고 했다. 그러나 약을 끊으면 2~3일 만에 또 통증이 찾아왔다. 만두나 부추는 먹지 못했고 찬 것은 더더욱 못 먹었으며 차도 마실 수 없었다. 이후 통증이 점점 잦아져 거의 매일 오전부터 시작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됐으며 몸은 점점 수척해졌다.

2025년 4월 30일, 차에서 막 내리자마자 구토를 했고 복통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침 아들이 휴가 중이어서 나를 시립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위암 말기였다. 의사는 성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성 병원에서 추가 검진을 받은 결과 위암 말기로 확진됐다. 딸과 아들은 나 몰래 눈물을 흘렸고 처음에는 병명을 숨기고 알리지 않으려 했지만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녀들은 모두 수술을 받으라고 권했다. 의사는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수술 후 항암 치료, 둘째 항암 치료 후 수술, 셋째 방사선 치료였다. 나는 의사 출신으로 이 분야의 지식이 있었기에 어느 방안이든 원기를 크게 해치리라는 것을 알았다. 수술 후 회복이 잘 되지 않으면 온몸에 힘이 빠져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게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수술도 방사선 치료도 모두 거부했다.

이후 한 친척이 유명한 중의사를 소개해줬는데 많은 유명인들을 치료한 이라고 했다. 우리는 퇴원 수속을 밟고 곧장 그 중의사를 찾아갔다. 노중의사는 필름을 보고 병세를 파악하더니 단번에 4천 위안어치 약을 처방했다. 나는 그 중의사에게 물었다. “이 약을 먹고 나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낫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 중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서양 의학은 이미 방법이 없고 중의학도 소용이 없다면 불문에 귀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내 배우자가 바로 불도를 닦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아닌가.” 파룬궁에 대해 반신반의했지만 배우자의 몸은 갈수록 좋아졌고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이후로 약 한 번 먹지 않았고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들에게 말했다.(아들은 어릴 때 엄마를 따라 대법을 배운 적이 있었지만 중국공산당의 박해 이후 더 이상 배우지 못했고 그래도 엄마의 파룬궁 수련을 늘 지지해왔다.) “서양 의학, 중의학 다 봐봤잖아. 너희들은 효성스러운 자녀들이고 다들 효도를 다했어. 중의사가 한 말도 들었지? 집에 돌아가면 엄마한테 파룬궁을 배울게.” 아들은 “그래요, 엄마한테 열심히 배우세요”라고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들이 작은 스피커를 정리해놓고 말했다. “다 준비했어요. 엄마한테 법을 배우고 연공하세요.”

다음 날 아내와 함께 사부님의 설법 영상 첫 번째 강을 봤다. 사흘째 되는 날 두 번째 강을 보다가 침대에 앉은 채로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내가 갑자기 내 표정이 좋지 않고 이마의 주름살이 펴지는 것을 봤다(보통 사람에게서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의미한다). 아내는 당황해 서둘러 내 둘째 누나에게 전화를 걸고 또 울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후 난 깨어나 아내를 달랬다. “울지 마, 나 괜찮아.” 죽음이 두렵지 않았지만 법공부를 막 시작해 깨달음이 아직 높지 않았던 터라 장례 문제도 정리해뒀다.

아들이 돌아왔고 두말없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려 했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들이 가방을 들고 내 신분증을 찾아 접수 준비를 하자 나는 다급해져 가방을 빼앗고 신분증을 내주지 않았다. 아들이 아무리 요구해도 주지 않았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가지 않을 거다. 어떤 상황이 돼도 병원에는 갈 수 없다. 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해.” 아들도 더 이상 강요하지 못하고 말했다. “아버지, 병원에 가지 않겠다면 엄마랑 열심히 연공하세요.” 나는 “그래, 나는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싶다. 병원엔 가지 않겠다”라고 했다.

저녁에 사부님의 공법교습 영상을 보며 다섯 가지 공법을 따라 배웠다. 첫 번째 공법을 연공할 때 은은한 향기가 풍겨왔고 심폐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으며 온몸이 매우 편안하고 황홀해 인간세상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섯 번째 공법을 배울 때는 단번에 결가부좌를 틀 수 있었고 30분을 지속할 수 있었는데 다리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아내는 나의 인연이 참으로 크다고 했다. 나도 인연이 작지 않다고 느꼈다. 만년에 이르러서도 수련할 수 있고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의 수련 길에 오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인연인가!

날이 밝자 아내와 함께 사부님의 설법 영상 세 번째 강을 봤다. 보다 보니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포동포동하고 희고 부드러운 큰 손이 내 위장 위를 위아래로 어루만지는 것이 보였다. 매우 편안한 느낌이었고 약 10여 분간 지속됐다. 깨어나니 위장이 훨씬 편해진 느낌이었다. 이 일을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는 감격스럽게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 직접 당신의 위장을 정화해주신 거예요! 사부님은 정말 자비로우세요!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도 사부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졌다.

이때부터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약은 먹을 수 없었다. 먹으면 토했기 때문이다(중의사한테서 돌아온 뒤 사흘만 약을 먹었는데 셋째 날 먹자마자 전부 토해내고 말아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이후로는 약을 전혀 먹지 않았다.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니 기운도 생기고 체중도 늘었다. 나는 훠사오(중국식 구운 빵)를 좋아했는데(복통으로 인해 5년 가까이 딱딱한 것을 먹지 못했다), 두 달 내내 훠사오를 먹어도 위장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웃 마을 수련생이 우리를 문병하러 왔다. 나는 수련생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내 아내가 20여 년을 수련했는데도 깨달음이 높지 않아서 내가 그런 상태가 되니 놀라 울지 않았습니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 나는 법을 얻은 지 며칠이 됐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수련생은 내가 잘 깨달았다고 하며 굳건하게 수련을 이어가라고 격려해줬다.

8월 말이 되자 위산이 다시 역류하고 통증이 재발했다. 이번에는 더 심해서 작은 칼로 도려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다시 몸을 정화해주시는 것임을 알았기에 그것을 병으로 여기지 않고 평소처럼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한 달 넘게 위산을 토했고 때로는 피가 섞인 액체도 나왔으며 밥도 넘길 수 없게 됐고 몸도 갈수록 쇠약해졌다. 어느 날 아침 파룬장법(法輪樁法)을 연공하다가 온몸에 땀을 흘리고는 기운이 빠져 서 있지 못해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후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으며 밤새 복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연공도 할 수 없어 그저 법을 들을 뿐이었다. 몸은 급격히 수척해지고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했다. 그래도 두렵지 않았다. 정말이다. 생사를 이미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법을 얻었으니 아무 유감이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자녀들은 내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또다시 울면서 병원에 가라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아들은 어쩔 수 없어 심각하게 말했다. “아버지, 지금 아버지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나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고 하나는 대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직접 선택하세요.” 나는 말했다. “단연코 병원엔 가지 않겠다. 병원에 가는 건 돈 쓰고 죽으러 가는 거야. 나는 법공부하고 연공을 계속할 거다. 나는 이미 법을 얻었고 이것은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시는 것이고 소업(消業)이야. 나는 괜찮다. 침대에서 내려가 연공할 거야.” 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법공부하고 연공하기를 계속했다.

4~5일이 지나 다시 구토가 시작됐고 위장이 경련하며 아팠는데 이번에는 피를 토했다. 세 번은 피가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내가 걱정할까 봐 나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 밖 도랑으로 가서 피를 토했다. 한 번 토하면 큰 웅덩이를 이룰 정도였고 거무스름한 자줏빛이어서 매우 보기 무서웠다. 사흘 동안 계속 피를 토했고(매번 토할 때마다 위장이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다), 나흘째가 되자 더 이상 피를 토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가래 같은 딱딱한 것들을 토하기 시작했는데 찔러보니 안에 썩은 살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이것도 사흘 동안 계속 토하다가 마침내 멈췄다. 다 토하고 나니 몸이 가볍고 편안해졌으며 위장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편안해졌다. 그리고 다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무엇이든 먹을 수 있게 됐다. 만두든 과일이든 찬 것이든 다 먹을 수 있었고 차도 마실 수 있게 됐다. 체중도 지금까지 5kg 넘게 늘었다. 나는 정말 나았다! 대법과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셨다! 우리 마을에서 7~8명이 위암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많은 돈을 썼지만 모두 낫지 못하고 결국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났다. 오직 나만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여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났다. 사부님은 위대하시다! 대법은 초범적이다!

지금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집안일을 하며 온종일 즐겁게 지내고 있다. 이웃과 친척, 친구들이 모두 내 몸에서 대법의 신기함을 직접 목격했다! 모두가 대법을 인정하며 자발적으로 진상 자료를 달라고 한다. 한번은 가족 잔치 자리에서 누나가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며 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대법이 정말 좋구나, 정말 너무 좋아!”

예전에는 정수리의 넓은 부위에 머리카락이 없이 반들반들했는데 지금은 검은색과 흰색이 뒤섞인 머리카락이 빽빽하게 자라났고 훨씬 젊어 보이게 됐다.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이한 이 기회를 빌려 멀리서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제자는 반드시 열심히 수련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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