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진상을 알리다

글/ 허난성 대법제자

[명혜망] 1997년 제 나이 56세 되던 해는 제 운명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위염, 담낭염, 두통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고 병이 발작할 때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매일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해 다행히 대법(大法)을 수련하게 됐습니다. 수련 후 모든 병증이 사라져 온몸이 가벼워졌고 마침내 병이 없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됐습니다.

이후 거의 30년 동안 저는 약 한 알 먹지 않았습니다. 현재 84세인 저는 자녀의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편의 식사까지 챙기고 있습니다. 매일 오전 저는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나가서 대법 진상을 알립니다. 진상을 똑바로 알려 세상 사람을 구하는 것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신성한 사명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일을 진정으로 잘해내야만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중생들에게 떳떳할 수 있으며 자신의 서약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과 장쩌민이 대법을 박해할 때 당시 제 외조카는 구류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대법제자를 여러 번 구타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진상을 알려도 듣지 않고 오히려 “또 말하면 당신도 잡아넣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악당이 주입한 거짓말에 완전히 이성을 잃었습니다(나중에 응보를 받아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그와 제 자녀가 결탁해 저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압박했고 주민센터에서도 책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법이 옳고 사부님이 결백하시다고 굳게 믿었기에 그들에게 제 몸이 예전엔 어땠고 지금은 어떤지 이야기했으며 어떤 책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집에서 혼자 법공부를 하고 연공했습니다.

그러나 이 박해에 직면해 저는 그저 수동적으로 감당할 뿐 능동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손자를 돌보느라 법공부도 따라가지 못하고 연공도 꾸준히 할 수 없게 되면서 정신 상태마저 나빠지자 자신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후 수련생들과 연락이 닿아 사부님의 새 경문을 보며 서로 교류할 수 있게 돼 다시 새롭게 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가 시작된 후 저는 매일 오전 수련생과 함께 나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매우 커서 감히 정면으로 말하지 못하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나중에 많이 말하다 보니 두려운 마음도 갈수록 줄어들어 정면으로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비 오는 날이든 눈 오는 날이든 더운 날이든 명절이든 저는 수련생과 협력해 나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때로는 상점에 가고 때로는 사찰 축제에 가며 때로는 시골 장터에 가서 알렸습니다. 매번 우리가 탈퇴시킨 명단을 모두 통계 내어 보관했다가 매주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수련생에게 전달했는데 어떨 때는 일주일에 200~300명을 탈퇴시키기도 했습니다. 진상을 알릴 때 때로는 두 수련생이 함께하고 때로는 세 수련생이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협력해 한 명이 진상을 알리면 다른 수련생은 옆에서 정념을 발했습니다. 서로 협력하니 효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진상을 듣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고 온화한 말로 그의 마성적인 면을 자극하지 않았습니다.

20여 년간 진상을 알리면서 저는 줄곧 비교적 순조롭게 걸어왔고 무슨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 10여 명의 수련생과 함께 교류회를 열었을 때 파출소로 납치됐으나 그날 저녁 바로 사부님의 보호하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때로 진상을 알려도 듣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저는 그가 알아들을 때까지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때로는 자료를 가져가서 나눠주기도 했으며 이제 진상 알리기는 매일 제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됐습니다.

수련생과 서로 도우며 함께 정진하다

저는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데 몇몇 수련생이 저와 협력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매일 나오지 못했고 어떤 수련생은 교란이 생기기만 하면 감히 나와서 알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녀들에게 연락해 되도록 나와서 진상을 알리게 했으며 단지 옆에서 정념을 발하기만 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안전에도 매우 주의해 외출할 때는 모두 모자를 썼습니다. 우리가 사고 없이 안정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해내야만 더 큰 역할을 발휘할 수 있고 손실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수련생에게 병업 고비가 나타나면 저는 그녀에게 가서 정념을 발해주고 법리를 교류했을 뿐 절대 수련생을 질책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에게 문제가 나타났을 때도 안으로 찾아 제 자신을 돌아보았기에 지난 몇 년간 수련생들과 모두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하면 비록 제가 기술은 모르지만 다른 젊은 수련생을 찾아 휴대폰을 세팅해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사부님의 모든 설법, 연공 음악, 명혜주간, 법회 교류 문장, 진상 동영상 등이 모두 들어있었습니다. 전 세계 대법제자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알기에 저는 자주 감옥 같은 검은 소굴을 향해 정념을 발해 그곳의 사악을 해체합니다. 아직도 수많은 수련생이 감옥 등에서 박해받고 있음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제게 그곳의 사악을 해체할 책임이 있다고 느낍니다.

법공부를 잘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다

저는 매일 오후와 저녁에 집에서 법공부를 합니다. 법공부를 할 때면 앉은자세를 바르게 하고 시간이 날 때면 제자 교류 문장을 듣습니다. 매일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연공하며 두 번째 공법은 한 시간 동안 연공합니다. 네 차례 정각에 정념을 발하는 것도 견지하고 있으며 때로는 45분에서 한 시간 동안 정념을 발합니다. 제가 올해 비록 84세가 됐지만 제 생각 속에는 항상 제가 대법제자이지 속인 중의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런 부정적인 사유가 저를 교란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진상을 더 잘 알릴 수 있고 일을 할 때 절반의 노력으로 두 배의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꾸준히 진상 지폐를 사용하다

지난 몇 년간 저는 줄곧 진상 지폐를 사용해왔습니다. 자주 은행에 가서 돈을 바꾸면 안전하지 않은 요소가 있기 때문에 저는 물건을 살 때 잔돈을 많이 거슬러 받기 위해 여러 상점에서 물건을 샀고 거슬러 받은 잔돈은 수련생에게 주어 인쇄하게 했습니다. 매주 저는 받아온 진상 지폐, 주간지, 진상 자료를 다시 다른 수련생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제가 매일 진상을 알리러 나가므로 다른 수련생들이 저와 연락하기가 쉬워서 그들은 무언가 필요할 때면 자주 저를 찾습니다. 비록 매일 매우 바쁘고 시간 계획이 빡빡하지만 저는 조금도 번거롭다고 느끼지 않으며 수련생의 일이 곧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수련생이 제가 잘한다고 말할 때도 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부님의 요구와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아직 닦아버려야 할 수많은 집착심과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가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줄곧 순조롭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덕분이며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저는 애당초 걸어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무한히 감사드리며 인간세상의 언어를 다 쓴다 해도 사부님에 대한 제 감사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법이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기에 저는 오직 더욱 정진하고 사람을 많이 구해야만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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