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내려놓고 법 중에서 자신을 바로잡다

글/ 지린성 대법제자 법동(法童)

[명혜망] 저는 최근 수련 중에서 집착을 발견한 것과 어떻게 대법 안에서 바로잡았는지에 대한 약간의 수련 체험을 써내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3인 법공부 팀의 결성

최근 1년 동안, 저는 A, B 두 수련생과 자주 함께 법공부를 했습니다. 어느 날, B 수련생이 메시지함에 자신을 도와 발정념을 해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병업 가상이 심해졌고, 제가 가서 그녀를 좀 봐주길 바랐습니다. 제가 가서 B 수련생과 교류하던 중, B는 제게 불만을 드러내며 제가 말하는 것이 매우 강경해 사람들에게 압박감을 준다고 했습니다. 또 제가 속인에게는 잘하면서 수련생에게는 선하지 않다고 했으며, 제가 너무 강경하기에 A는 많은 때 자신을 억누르며 감히 제게 진실을 다 말하지 못하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저에게 맞춘다고까지 말했습니다. B의 말은 제게 뜻밖이었고, 마치 제게 맹렬한 일격을 가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틀림없이 제 심성에 문제가 생겼기에 이러한 결과가 초래됐음을 의식했습니다.

저와 A, B 수련생이 함께 법공부를 하게 된 것은 우선 A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를 오랫동안 돌보느라 수련생들과 법공부를 하고 교류할 환경이 부족했습니다. 그녀가 저를 찾아와 자신의 집에서 함께 법공부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저는 매주 반나절의 시간을 내어 A와 함께 법공부를 했습니다. 이후, B 수련생에게 병업 가상이 나타나 한동안 돌파하지 못해, 제가 자주 가서 그녀와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B의 상태가 조금 좋아지자 저는 그녀의 의견을 물어, A의 집으로 와서 법공부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3인 법공부 팀을 형성하게 됐습니다.

매번 법공부를 마친 후, 우리는 자주 법에서 교류했습니다. A, B 두 수련생은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똑같이 곤경에 처해 있으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A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는 “너무 힘들어요, 수련이 어쩌면 이렇게 힘든가요”였습니다. 오랫동안 가정의 자잘한 일에 빠져 있다 보니 A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가부좌를 한 지 몇 분도 안 돼 다리가 미끄러져 내려왔고, 법공부를 할 때 졸았으며, 발정념을 할 때 정신이 흐릿하고 손바닥이 넘어갔습니다. B 수련생은 막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그녀 또한 병든 어머니를 여러 해 동안 돌보느라 법공부, 연공, 진상 알리기를 따라가지 못해 신체에 바르지 못한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마침 이때 그녀는 수련하지 않는 가족과 갈등이 생겨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신체의 바르지 못한 상태는 더욱 심각해져 걷는 것조차 매우 힘들었습니다.

처음 법공부 팀을 구성한 목적은 모두가 서로 돕고 이끌어주며 수련의 길을 함께 잘 걷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수련생에 대해 책임진다는 마음에서 저는 제가 본 수련생들 수련에 존재하는 부족함을 지적해 줬는데, 예를 들면 정념으로 문제를 보지 못하는 것, 고생을 겪으려 하지 않는 것, 이익심, 안일심, 원망심 등등이었습니다. 수련생들이 하루빨리 제고돼 올라오도록 돕기 위해 저는 사부님의 관련 경문과 명혜망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을 사이트 내 메시지함에 붙여넣어 수련생들과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수련생들의 변화는 크지 않았고, 심지어 끊임없이 그 집착스러운 이야기들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수련생이 많은 방면에서 사람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보고 수련생을 위해 조급해졌으며, 때로는 참지 못하고 수련생을 질책하기도 했는데, 한번은 뜻밖에도 B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저는 자신이 이미 수련인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음을 인식하고 수련생에게 사과했지만,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B와 A의 그러한 무력함을 보고서 저는 제가 이미 수련생에게 고통과 상처를 줬음을 인식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디가 법에 부합되지 않았을까요?

독선적이며 자아에 집착하다

안으로 찾으면서, 저는 자신에게 자아에 집착하는 아주 강한 마음, 즉 독선적인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 마음이 매우 깊이 숨어 있어 평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음을 깨달았는데, 자신이 평소에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지 않았고 때로는 자신이 아주 못 닦았다고 느껴 잘 닦은 수련생을 진심으로 경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교류도 자신과 가까운 수련생에게만 한정됐습니다. 어쩌면 수련생과 가까웠기에 경계심이 부족해져, 때로는 말이 비교적 직접적이고 마음대로 나갔을 수 있습니다. 수련생의 명백한 부족함을 보면 지적해 주고 싶었고, 자신이 솔직하며 출발점은 수련생을 위한 것이기에 악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련생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았고, 특히 수련생이 법에서 인식해 올라오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 말투가 강경해져 기어코 상대방이 자신의 인식을 인정하게 하려 애썼습니다.

저는 다른 일 하나가 생각났는데, 제게는 오랫동안 고정적인 법공부 팀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번은 법공부를 마치고 다 함께 교류할 때, 우리 팀이 아닌 그저 가끔 일이 있어 들르는 수련생이 C 수련생에게 부족함을 지적했습니다. C는 받아들이지 않고 아주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그 수련생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수련생의 말이 틀리지 않았고, C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집착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제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C는 제 태도 표명 때문에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거부했습니다. 이후, 제가 팀의 D 수련생과 이 일을 교류했을 때, D는 그녀가 보기에 제가 당시 개인적으로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시각으로 문제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의 부족함과 집착을 마주할 때, 제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닦는 것을 소홀히 했음을 인식했습니다. 물론 때로는 일의 표상을 따라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고, 같은 종류의 문제에서 마음 닦는 것을 중시하기도 했지만, 오래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더 많은 경우, 여전히 인식하는 데 머물렀을 뿐 자신을 더 깊이 찾아보고 실제적으로 닦지 않았으며, 오히려 수련생이 곤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조급해하고, 수련생의 부족함이 오랫동안 제거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의 견해와 인식을 표현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저는 할 말을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를 솔직하다고 여겼는데, 어쩌면 속인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장점일 수 있겠지만, 수련인은 마땅히 더 높은 요구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자신이 수련생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수련생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지 결코 수련생을 해치려는 생각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어째서 상대방을 감동하게 하기는커녕 도리어 남에게 불쾌감과 압박감을 가져다줬을까요? 어째서 D는 제가 개인적으로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시각에서 수련생의 문제를 대한다고 말했을까요? 저는 이것이 어쩌면 자신에게 장기간 존재해 온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에 대조해, 저는 자신이 대부분의 경우 개인적인 이익의 각도에 서서 수련생을 가늠하고 판단했으며, 또한 말 속에 개인적인 관념과 정서가 섞여 있어 한 말이 순수하지 못해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주요한 것은 자신이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마음을 닦아내지 못해, 타인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고려하지 못했고 남의 감당 능력을 고려하지 못해, 할 말을 직접 할 줄만 알았지 좋게 말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수련생의 문제를 지적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방식을 선택해 써야 하는가이며, 수련생에게도 배려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수련생은 사람이 닦는 것이지 신이 닦는 것이 아니며, 특히 곤경에 처했을 때 수련생은 더더욱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고 정념으로 수련생을 대해야 합니다. 구세력은 바로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할 뿐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는데, 생각해보니 자신의 이전 사유 방식이 구세력과 얼마나 흡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각지 설법9-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인은 어떤 문제에 부딪히든 모두 자신을 보고 자신을 닦아야 하며, 수련생의 부족함을 보았을 때 자신을 일의 밖에 두어서는 안 되고, 가장 먼저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하며 반드시 내가 닦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수련생의 부족함은 바로 제 부족함일 것이며, 마땅히 자신에게도 정도는 다르지만 이런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일 겁니다. 수련인은 오직 자신을 닦는 몫만 있을 뿐, 기어코 상대방을 바꾸려 하는 것은 남을 통제하려는 중공 악당 문화의 마음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깊이 찾아보니 그 속에는 또 과시심,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 남의 스승 노릇 하기 좋아하는 마음, 남을 얕보는 마음 등 다른 좋지 않은 마음들도 연관돼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행위와 일념을 지켜보며 마음 써서 착실히 수련하다

이전에는 착실한 수련에 대한 개념이 그리 또렷하지 않아 그저 입으로만 말했을 뿐 행동상의 변화는 크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착실히 수련한다는 것이 바로 자신의 매 하나의 사상과 일념, 나아가 행위까지 지켜보다가 사상과 행위에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을 발견하면 가서 배척하고, 제때 법 안에서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라 여깁니다.

어느 날, 명혜망 중국 종합소식에 현지 파출소와 주민센터 직원이 A를 교란하고 박해한 사실을 폭로하는 글이 실렸는데, 폭로된 사건은 모두 이전에 발생한 것들이었고, 글은 A의 한 직장 동료 수련생이 쓴 것이었습니다. A는 두려운 마음과 압박감이 생겼고 부정적인 사유가 매우 강해져 사악이 집으로 찾아올까 봐 두려워했는데, 그날 법공부를 할 때 심신이 불안해 기본적으로 법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마음을 겨냥한 듯, 그날 주민센터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복도 위생에 관한 일을 물었습니다. A는 더욱 긴장했고 의심과 우려하는 마음이 다 튀어나왔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대해 교류했습니다. A는 먼저 폭로 글을 쓴 수련생을 원망했는데, 예전 같으면 저는 기탄없이 A가 법 위에 있지 않다고 지적한 후 사부님의 법을 인용하고, 다시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강조했을 것입니다. 맨 처음, 저도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고 A가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본다고 여겼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지금 A가 두려운 마음에 휩싸여 있고 또 아주 강한 원망심이 있으니, 그녀의 이런 상태는 구세력이 빈틈을 타기 쉽다’라는 생각이 나타났습니다. B 역시 팀의 현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녀는 우리 사이에 간격이 생겼으며 간격은 사악에게 가장 빈틈을 타기 쉽다고 느꼈는데, 그녀는 이전에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대법제자는 사람이 수련하는 것이며, 사람이 수련하면 집착이 있게 마련이고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사람 마음이 있고 집착이 있다고 해서 마땅히 박해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련 중에 어떤 일이 생기든 관건은 우리가 어떻게 문제를 보느냐, 사람 마음으로 대하느냐 아니면 정념으로 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나타났을 때 우리가 안으로 찾을 수 있고 수련인의 마음가짐으로 대하며 끊임없이 법 안에서 자신을 바로잡기만 한다면, 교란과 갈등은 해소될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가 승화하고 길을 닦는 계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저는 시야가 확 트였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상유심생(相由心生)’의 법에 대해 더 깊은 이해가 생겼습니다. 저는 사실 수련인이 박해를 받고 교란을 받을지 여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며, 관건적인 순간에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법공부와 교류를 통해 저는 법리상에서 점점 또렷해졌습니다. 하지만 A 수련생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정했는데, 이때 저는 수련생을 배려해야 하며 자신의 인식을 그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고 그녀에게 어떠하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저 자신을 돌이켜보니, 수련생에게 두려운 마음과 원망심이 있다면 틀림없이 자신에게도 이런 문제들이 존재할 것이었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이 층층이 제거되는 것이고 또 다른 방면에서 체현됨을 발견했는데, 예를 들어 제가 진상을 알릴 때 아무에게나 다 알리지 못하고, 인상이 선량해 보이고 안전한 느낌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 이것 역시 두려운 마음과 자아를 보호하려는 마음이며, 잠재의식을 깊이 파보면 여전히 구세력의 박해를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고 묵인하는 성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원망심은 어떨까요? 저는 수련생이 제게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특히 A가 사석에서 다른 수련생에게 저에 대해 불평한 것을 알았을 때, A가 대면해서 제게 직접 말하지 않고 등 뒤에서 남을 논하는 방식에 대해 불만과 원망이 생겼지만, 본성의 일면이 곧 이것은 사악이 이런 좋지 않은 사람 마음을 이용해 저와 수련생 사이의 간격을 벌리려는 것임을 의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어코 그 좋지 않은 마음을 배척했고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동수를 원망하지 말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좋지 않은 마음이 때때로 또 불쑥 튀어나왔고, 저는 끊임없이 배척하며 가급적 수련생의 장점을 생각하려 노력했으며, 자신의 독선적이고 자아에 집착하는 것으로 인해 수련생에게 상처를 입힌 것을 생각하자 어려움 중에 있는 수련생에게 매우 미안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기간에 저도 여러 차례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진심으로 A, B 수련생에게 사과했고, 자신이 이전에 잘하지 못해 그녀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조성하고 그녀들에게 상처를 입혔음을 인정했습니다. 몇 차례, A는 또 제 앞에서 그 폭로 글을 쓴 수련생을 불평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녀가 제게 보여주기 위해 연기하는 것이며, 제 원망심이 깨끗이 제거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내 A는 잘못됐음을 의식하고 즉시 “어째서 원망심이 또 나왔지, 나는 그것을 원치 않아, 원망심은 죽어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안으로 찾는 동시에 수련생도 안으로 찾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는데, 수련은 정말 오묘해서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은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우리 자신의 수련 상태는 직접적으로 남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체가 모두 제 수련을 돕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B가 제게 의견을 제기한 이후, 우리는 메시지함에서 교류했는데, 그녀는 또 몇 차례 보충 의견을 제기하면서 말투가 매우 직설적이었습니다. 서신을 본 이후 제 첫 반응은 수련생에게 감사하는 것이었으며, 저는 수련생이 제게 좋지 않은 것들을 제거하도록 돕고 있고 저를 채찍질해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게 하고 있음을 의식했습니다. B가 제가 때때로 그녀와 말할 때 뇌를 거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제가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존중과 동정심도 부족함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후 마땅히 가급적 일에 부딪혀 말할 때 상대방의 각도에 서서 타인을 더 많이 이해하고 존중하며 남의 기분을 더 많이 고려해야 합니다. 수련생이 제가 이기적이고 강경하다고 한 것은 저에게 겸손함이 부족하고 수련인의 자비로운 흉금을 닦아내지 못했음을 설명하므로, 저는 겸허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지금 저는 매일 묵묵히 곤경에 처한 수련생들을 위해 발정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응당 수련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 여깁니다.

제가 조금씩 이렇게 실천해 나갈 때, 저는 끊임없이 주변 수련생들에게 있는 빛나는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수련생 사이의 성스러운 인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으며, 사존과 법의 위대함을 더욱 느끼고, 제 자신의 비천함과 보잘것없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존께, 그리고 자신에게 ‘나는 수련을 잘해 자신을 고수하지 않고 일체 사람의 것을 내려놓으며, 법 안에서 자신을 깨끗이 씻어내어 수련의 길을 바르고 잘 걸어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상은 제 개인의 이 층차에서의 인식으로, 법 위에 있지 않은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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