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월 중국 파룬궁수련자 박해 상황 간략 보고

[명혜망]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2026년 5~6월 동안 최소 876명의 파룬궁수련자가 중국공산당(중공)의 다양한 형태의 박해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13명이 세상을 떠났고 최소 115명이 부당하게 징역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수감됐으며, 342명이 납치됐고 401명이 괴롭힘을 당했으며 6명이 ‘학습반’ 등 형식으로 강제 세뇌 박해를 받았다.

부당한 형을 선고받은 수련자 분포: 랴오닝성 22명, 산둥성 21명, 헤이룽장성 14명, 쓰촨성 11명, 지린성 9명, 저장성 5명, 허난성 4명, 광둥성 4명, 허베이성 3명, 충칭시 3명, 장시성 3명, 후난성 3명, 후베이성 2명, 윈난성 1명, 톈진시 2명, 내몽골 자치구 2명, 간쑤성 2명, 산시성(山西) 1명, 구이저우성 1명, 베이징시 1명, 안후이성 1명이다.

2026년 5~6월 파악된 중국 파룬궁수련자 중공 박해 인원 통계

2026년 5~6월 파악된 115명 중국 파룬궁수련자 중공 불법 징역형 선고

2026년 5~6월 파악된 115명 파룬궁수련자 중공 불법 징역형 선고 형기별 분포

2026년 5~6월 명혜망에 보도된 중국 각지 743명 파룬궁수련자 중공 납치 및 괴롭힘 피해 상황

세상을 떠난 수련자 분포: 헤이룽장성 2명, 랴오닝성 2명, 산둥성 2명, 쓰촨성 2명, 톈진시 1명, 신장 위구르 자치구 1명, 지린성 1명, 장시성 1명, 충칭시 1명이다.

일부 사례:

1. 산둥성 허쩌시 차오현 주원란 박해로 사망

명혜망 2026년 6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산둥성 허쩌시 차오현의 60대 파룬궁수련자 주원란(朱文蘭)은 2025년 10월 초 차오현 청관진 파출소에 의해 가택수색, 납치 및 감금됐다. 이어서 차오현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관련 인원들은 그녀에게 죄명을 씌우고 모함해 기소했으며 최종적으로 3년형을 부당하게 선고했다. 2026년 4월 25일 주원란은 박해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불법 감금된 후 주원란의 건강했던 몸에 급속히 심각한 병증이 나타났고 심지어 걸을 수도 없게 됐다. 판결 후 차오현 불법 인원들은 그녀를 산둥 여자감옥으로 보내려 기도했다. 가족의 강력한 요구하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주원란을 병원 병실로 보냈다.

주원란은 소박하고 후덕한 사람으로 일찍이 차오현 중의원 직원이었으며 이후 은퇴했다. 그녀는 1999년 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에 들어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심성을 높여 심신으로 큰 혜택을 받았다. 수련 후 그녀의 오래된 지병이 사라졌고 생활이 홀가분해졌으며 마음이 넓어졌다.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주원란은 여러 차례 차오현 공안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에 불법 감금되고 갈취 및 벌금을 당했다. 2009년 3월 3일 차오현 공안국 국보대대 사오뎬웨이(邵殿偉), 안청화(安呈華) 등에게 납치됐다. 2019년 8월 중순 차오현 왕지향에서 차오현 국보에 납치됐다.

2025년 10월 초 차오현 청관진 파출소는 청관 주민센터 간부들과 연합해 다시 주원란의 집에 들이닥쳐 부당하게 가택수색을 했다. 이어서 주원란은 허쩌 구치소로 납치됐다. 구치소에서 주원란은 정신과 신체에 심각한 고문을 받아 가족들은 몹시 애를 태웠다. 차오현 공검법은 소위 ‘절차’하에 그녀에게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했다. 감금 기간 그녀의 몸은 급속히 악화돼 마침내 걸을 수 없게 됐다. 2026년 4월 25일 주원란은 감옥으로 보내지기 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 왕슈롄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

명혜망 2026년 5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지린성 자오허시 파룬궁수련자 왕슈롄(王秀蓮)은 2025년 11월 하순 수란시 법원에서 3년 반의 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2026년 2월 13일 지린성 여자감옥 8감구로 수감됐다. 그녀의 딸이 4월에 면회했을 때 왕슈롄의 신체 상태는 여전히 양호했고 정신도 맑았다. 그러나 5월 10일 박해로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67세다.

왕슈롄은 1959년 9월 25일에 태어났으며 자오허시 신구 B구역에 거주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그녀는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돼 심신에 혜택을 받았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그녀는 일찍이 2012년에 비밀리에 3년 반의 형을 선고받고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받았다. 2025년 11월 다시 억울한 판결을 받고 입옥한 지 3개월도 안 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023년 10월 27일 자오허시 허베이가 파출소 경찰은 왕슈롄을 납치하고 가택수색을 했다. 톈강 파출소의 별명이 ‘다위안얼(大原兒)’인 경찰은 막대기 모양으로 만 종이로 그녀의 머리를 때리며 그녀에게 “진상 자료를 50여 권 배포했다”고 인정하도록 강요했다.

2024년 11월 왕슈롄은 사법 모함을 거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다. 2025년 7월 왕슈롄은 광시에서 현지 경찰에게 납치됐고, 이어서 자오허시 경찰에 의해 납치돼 돌아와 지린시 구치소에 감금됐다.

2026년 2월 13일 왕슈롄은 지린성 여자감옥 8감구에 수감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감옥경찰이 감방장 리밍주(李明珠, 형사범)를 조종해 ‘비판 폭로 불합격’을 이유로 거의 매일 그녀를 질책해 왕슈롄의 심박수가 장기간 110~120 사이를 유지하게 했고 온몸이 떨리게 했다. 하지만 리밍주는 그녀가 ‘꾀병을 부린다’고 모함하며 병원에 보내기를 거부했다.

5월 10일이 돼서야 왕슈롄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당일 세상을 떠났다. 감옥은 책임을 질까 두려워 서둘러 그녀를 위해 병보석 수속을 밟았다. 감옥 측은 “심장병 응급처치 무효”라고 주장하며 그녀의 딸에게 ‘응급처치 영상’을 보여주었다.

3. 오후에 끌려가 새벽에 사망, 우한 후상슈의 죽음에 의혹이 무성하다

명혜망 2026년 6월 28일 소식에 따르면, 후베이성 우한시 신저우구의 63세 파룬궁수련자 후상슈(胡尙秀)가 2026년 6월 10일 오후 2시에 경찰에 납치돼 알 수 없는 장소로 끌려가 다음 날 새벽 4시경까지 심문을 받았다. 그녀는 갑자기 불편함을 호소했으나 현장 인원들은 어떠한 응급처치도 취하지 않았고 후상슈는 곧 사망했다. 구체적인 경위는 여전히 조사 중이다.

후상슈는 신저우구 싼뎬 가도사무소(주민센터) 공무원으로 파룬따파를 수련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녀는 신중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이전에 한 번도 박해를 받은 적이 없었으며 당국과 어떠한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후상슈는 다른 파룬궁수련자 정보를 말하라고 강요받았으나 거부하자 벌서기를 당했고 장시간 벌서기 후 기절했다. 경찰은 즉시 응급처치를 하지 않았고 잠시 후 상황이 이상함을 발견하고 나서야 병원에 보냈으나 구하지 못했다. 감시 카메라 영상에서 벌을 서던 후상슈는 갑자기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통곡하며 쓰러졌다. 그러나 어떤 경찰도 상황을 묻지 않았고 후상슈는 중간에 발버둥 치며 일어났다가 다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구체적인 체벌과 기절한 시간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납치 이유에 대해 신저우구 주청 파출소 및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들은 신저우 장린 시장에서 6명이 공개적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으며, 이 6명은 이미 잡혔고 그중 한 명이 그 활동을 후상슈가 조직한 것이라고 ‘지목’했다고 주장했다.

4. 4년의 감옥 학대와 10년의 박해, 랴오닝성 잉커우시 류위줘 억울하게 사망

명혜망 2026년 5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성 잉커우시 파룬궁수련자 류위줘(劉玉琢)는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고 선양 여자감옥에 감금돼 장기간 학대를 받아 심신이 심각하게 손상됐고, 마침내 2026년 5월 11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나이는 63세였다.

류위줘는 잉커우시 라오볜구 루난진 타이허좡 사람이다. 1998년 2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 ‘진선인’을 준칙으로 삼아 심신에 혜택을 받았고 사람들을 진실하고 선량하게 대했다.

2003년 6월 5일 두 명의 경찰이 류위줘를 잉커우시 둥펑 파출소로 납치했다. 경찰 린칭(林靑)은 위협하며 말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검찰원에 가면 말해야 할 거다. 너 같은 애는 10년, 8년은 선고받을 거다. 왕바오진(王寶金)도 자백이 없었는데 10년을 선고받지 않았느냐?” 이어서 그들은 류위줘를 잉커우시 잔쳰구 검찰원에 모함해 넘겼고 검사관 판쉐펑(范學峰), 류바오린(劉寶林)은 ‘법률 실시 파괴죄’로 그녀를 기소했다.

구치소에서 그녀는 강제노동을 당했다. 한번은 그녀가 자신의 돈으로 동료 수련자에게 셔츠 한 벌을 사주었는데 구치소 소장 주잉제(朱英杰)에게 3일 동안 수갑을 차는 벌을 받았다.

감금 기간 둥펑 파출소는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을 처리한다고 거짓말을 하며 그녀의 남편에게 2000위안과 담배 한 보루(110위안)를 갈취했고, 잔쳰 공안분국 국장 리창위(李長玉)에게 1000위안을 주었다. 사실상 사건은 610과 국보가 조종했으며 그들은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나중에 남편이 속은 것을 알고 파출소에 가서 따졌지만 오히려 위협을 받았다. “당신도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우리는 당신에게 노동수용소 처분을 내릴 권리가 있다. 법원 심리에도 가격이 있는데 합의부 7명에게 한 사람당 5000위안이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은 법정에서 3만 5천 위안을 썼다. 법원은 최종적으로 6개월을 선고했지만 잉커우시 정법위와 610은 여전히 석방에 동의하지 않았고 남편이 1만 5천 위안을 더 내놓고 나서야 풀려났다.

2012년 류위줘는 푸순 뤄타이산장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그 기간 정신적, 신체적 이중 고문으로 심장병이 발작했다.

2016년 6월 28일 다시 가택침입과 납치, 가택수색을 당했고 2017년 2월 15일 오전 류위줘는 불법 재판을 받았다. 공소인의 혐의 제기에 그녀는 평화롭게 말했다. “파룬따파는 사람에게 선을 향하도록 가르칩니다. 나는 수혜자이며 대법은 내 마음속에서 금지될 수 없습니다.” 그녀가 선의로 경찰에게 권고했으나 거칠게 제지당했다. 2017년 4월 26일 잔쳰구 법원은 류위줘에게 4년형을 부당하게 선고하고 1만 위안의 벌금을 부과했다.

2017년 8월 22일 류위줘는 선양 여자감옥 1감구 4분대에 감금됐다. 정보원에 따르면 그녀는 화장지, 식품, 의류 등 기본 생활용품 구매가 금지됐다. 가족이 예치한 돈도 감옥은 그녀가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 팬티조차 사지 못하게 했다. 2017년 말 가족이 600위안을 보냈으나 그녀는 계속 받지 못했다. 그녀가 감옥장에게 편지를 써서 돈을 찾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카드 정보가 불완전하다’는 핑계로 미루며 오랫동안 해결해주지 않았다.

감옥 악질 경찰 쑨솽(孫爽)은 장기간 절도범 왕나(王娜)에게 파룬궁수련자들을 구타하도록 사주했다. 왕나는 주먹질과 발길질, 벌서기를 하고 5서(五書, 다섯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강제로 쓰게 했으며 심지어 대걸레 자루와 빗자루 자루로 수련자의 음부를 찔렀다. 그녀는 또한 ‘연좌제’ 방식을 사용했다. 즉 분대 전체 죄수들에게 TV를 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파룬궁수련자들을 공격하도록 강요했다. 감옥은 이익을 얻기 위해 모든 수감자에게 고강도 노동을 강요했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처벌을 받았다. 파룬궁수련자들은 강제노동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강제 세뇌를 받았고 말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제한받았으며 어디를 가든 감시범이 따라다녔다.

2020년 6월 27일 류위줘는 4년간의 박해를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미 예전의 생기를 완전히 잃었고 원래 활달하고 총명했던 그녀는 멍해지고 굼떠졌으며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고 일어서서 걸을 힘이 없었으며 몸을 뒤집기 어려웠고 말도 불분명해졌다. 나중에는 완전히 행동이 제한되고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으며 몸이 뻣뻣해져 목조차 돌리지 못하고 눈동자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다. 2026년 5월 11일 류위줘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5. 4년 강제노동, 4년 억울한 징역 박해, 지난시 루서우루 억울하게 사망

명혜망 2026년 5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산둥성 지난시 장추구 파룬궁수련자 루서우루(魯守祿)는 거듭 박해를 받아 두 차례에 걸쳐 총 4년의 강제노동 박해를 받았고 매달리기, 신발 밑창으로 머리 맞기, 작은 의자 앉기 등 수많은 고문을 당했다. 2017년 5월 루서우루는 다시 납치돼 감금됐고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아 산둥성 감옥에서 박해를 받다가 2024년 7월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는 72세였다.

그해 재판 후 판사도 마을에 조사를 나갔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루서우루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앞서 루서우루를 잡은 파출소 소장도 말했다. “우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루는 좋은 사람인데 상부에서 잡으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루서우루는 지난시 장추구 슈후이진 시난위촌에 살았다. 그는 자신이 당시에 파룬따파를 얻었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1996년 8월 나는 기쁘게 대법을 얻었고 『전법륜(轉法輪)』 이 책을 읽은 후 내 세계관은 모두 변했으며 어떻게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됐고 경계도 승화됐다. 예를 들자면 이전에 성도에 물건을 배달하러 갔을 때 고층 건물이 즐비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자주 한탄했다. ‘이렇게 많은 고층 건물이 있는데 내 것은 하나도 없구나.’ 파룬궁을 수련한 후 알게 돼 다시 고층 건물을 보았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이 많은 건물을 모두 내게 준다 해도 이 대법을 내게 주는 것만 못하다!’ 기쁜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99년 7월 이후 루서우루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박해를 받았다.

1999년 12월 30일 신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루서우루는 베이징에 청원을 갔다가 현지로 송환돼 장추시 구치소에 한 달여간 감금됐고 큰 팻말을 목에 건 채 오전 내내 자동차에 실려 조리돌림을 당했다.

2000년 7월 장추시 슈후이 파출소 경찰에 의해 구치소로 납치돼 매달리기와 구타를 당했다. 두 손은 수갑이 채워진 채 문에 매달렸고 발끝이 겨우 땅에 닿은 채 밤새 매달려 있었다. 네 명의 형사범에게 신발 밑창으로 머리를 맞아 온 머리가 피투성이가 됐고 얼굴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2000년 8월 불법적으로 3년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지난시 류창산 노동수용소에서 루서우루는 또 다음과 같은 고문을 당했다. 그는 한 방으로 끌려가 옷이 벗겨진 채 바닥에 엎드렸고 악인들은 바닥에 물을 뿌린 후 1인치 두께의 고무관 안에 모래를 넣고 고무관으로 루서우루를 때렸으며 전기봉으로 전격을 가했는데, 네 개의 전기봉으로 동시에 그의 온몸을 전격했다. 작은 의자에 앉기를 강요당했는데 같은 자세로 작은 의자에 앉아 하루 10시간 이상씩 4~5개월을 내리 앉아 있었다.

2005년 5월 11일 루서우루는 집에서 슈후이 파출소 경찰에게 파출소로 납치됐고 이어서 가택수색을 당해 CD 굽는 기계 1대(3000위안 이상 가치), 공 CD 1000여 장, 제본기 3개를 빼앗겼다. 그날 밤 루서우루는 장추시 구치소로 이송됐고 6월에는 쯔보시 왕춘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불법적으로 1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강제노동(시멘트 포대 만들기)을 강요받았다.

루서우루는 2015년 12월 28일 장쩌민 고소로 인해 납치돼 15일간 구류됐다.

2017년 5월 10일 루서우루는 슈후이 청관 파출소로 납치됐다. 6월 13일 변호사가 현지 파출소 소장을 만나 루가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느냐고 물었을 때 소장도 말했다. “우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루는 좋은 사람입니다. 마을 사람과 이웃들도 그가 인품이 좋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상부에서 잡으라고 했습니다.” 변호사가 검찰원 사건 담당자들을 만나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모릅니다! 지도자가 우리에게 이렇게 처리하라고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2018년 1월 초 당시 66세였던 루서우루는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루서우루는 산둥성 감옥으로 보내져 계속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그곳에서 강제노동을 강요받았는데 한동안 매일 밤 1시 반까지 야근을 해야 했고 이로 인해 심신이 지쳐 계단을 오르지도 못할 정도로 어지러워했다.

2019년 산둥성 감옥 11감구에서 루서우루는 박해로 뇌졸중 증상이 생겨 감옥 밖 경찰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치료를 받았다.

2021년 5월 7일 루서우루가 4년 억울한 징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현지 610 직원들은 또 계속해서 괴롭히며 압박을 가했다. 2024년 7월 루서우루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6. 5년 억울한 징역 고문, 71세 바오구이친 출소 시 정신 이상

명혜망 2026년 6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치치하얼시 은퇴 교사이자 파룬궁수련자인 바오구이친(鮑桂琴)은 5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2021년 말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보내져 잔인한 고문을 받았으며 한때 마비돼 생활을 자립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감옥은 석방을 거부했고 경찰은 심지어 “전향하지 않으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바오구이친이 억울한 징역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나왔을 때 정신이 이미 심각하게 이상해져 말이 뒤죽박죽이었고 자주 도로 경계석에 앉아 슬리퍼를 들고 혼잣말을 했다.

바오구이친은 올해 71세로 치치하얼시 푸라얼지구에 거주하며 푸라얼지구 신춘학교의 초등학교 교사였다. 파룬따파 신앙으로 인해 여러 차례 납치, 감금, 불법 강제노동 및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20년 4월 19일 오후 바오구이친이 한 파룬궁수련자의 집을 방문했다가 훙바오스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고, 2020년 11월 26일 경찰은 다시 바오구이친을 납치해 치치하얼시 구치소로 보냈다.

2021년 9월 말 가족은 바오구이친이 5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이미 보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21년 말 바오구이친은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 수감됐다. 조장 왕수(王姝) 등 죄수들은 그녀가 구치소에서 가져온 물건 일부를 버리고 맨바닥에서 자게 했다. 중국 동북의 겨울은 몹시 추워 바닥이 차가웠지만 감옥에서 나눠준 새 이불마저 왕수가 반납하게 해 구치소에서 가져온 얇은 이불만 남게 했다.

당일 바오구이친은 화장실, 세면장, 창고 등으로 끌려가 구타, 체벌, 번갈아 가며 공격을 당했고 심야가 돼서야 감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됐다. 때로는 밤새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다음 날 계속 고문하며 신앙을 포기하는 이른바 4서(四書, 네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전향을 거부했기 때문에 매일 모욕, 구타, 작은 의자에 앉는 벌을 받았다.

왕수와 위안징팡(原竟芳, 10조 조장)은 자주 결탁해 파룬궁수련자들을 모욕하고 체벌했다. 왕수는 툭하면 조 회의를 열어 장시간 모욕하고 협박하며 “전향하지 않으면 계속 작은 의자에 앉는 고문과 맨바닥 취침을 시키고, 말하지 못하게 하고, 소비하지 못하게 하며, 형기가 다 되어도 집에 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8감구에서는 죄수 조장의 권력이 막강해 함부로 파룬궁수련자들을 체벌하고 구타할 수 있었으며 경찰은 제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포상을 내렸다.

죄수 왕수민(王疏敏, 40대, 무기징역)은 바오구이친을 전담해 박해하도록 안배됐다. 그들은 바오구이친을 화장실, 세면장, 창고 등으로 끌고 가 번갈아 공격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며 체벌과 고문을 가했다.

바오구이친은 장시간 작은 의자에 앉는 벌과 군대식 자세를 강요당했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구타를 당했다. 작은 의자는 작고 딱딱했으며 의자 면이 울퉁불퉁했는데 천을 깔지 못하게 했고 몸은 뻣뻣한 자세를 유지해야 했으며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엉덩이가 다 짓물렀다.

왕수민은 미친 듯이 바오구이친의 뺨을 때렸는데 좌우로 마구 때려 소리가 매우 컸다. 바오구이친은 30~35kg밖에 안 나갈 정도로 말라서 한 줄기 바람에도 쓰러질 것 같았다. 죄수들은 모두 그녀가 맞아 죽을까 봐 걱정했지만 감히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2022년 3월의 어느 날, 왕수민은 감옥경찰이 약속한 ‘감형’을 받지 못하자 바오구이친에게 화풀이를 하며 수십 대를 미친 듯이 때렸다. 때리면서 소리쳤다. “나는 이미 파룬궁수련자를 여러 명 전향시켰다. 파룬궁 수련자를 전향시키면 감형해 주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안 해 준다고?! 너희 대대, 경찰들은 한 말을 안 지킨다!” 경찰이 나타났음에도 그녀는 계속 구타했다.

8감구 경찰은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구타를 단 한 번도 제지하지 않았다. 감방의 전자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죄수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며 공개적으로 구타를 구경했다. 경찰은 간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감형, 가산점, 전화 통화, 소비 한도, 친척 면회, 상품 등의 방식으로 타격수들을 포상했다.

이런 방임 속에 바오구이친은 거듭 구타를 당해 마침내 마비됐고 생활을 자립할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감옥은 석방을 거부하며 “전향하지 않으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가족 면회 때 그녀는 형사범이 휠체어로 밀고 나왔다.

7. 부당하게 4년형 선고받고 납치돼, 지린성 징위현 양수진 야만적 고문 당해

명혜망 2026년 6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지린성 바이산시 징위현 파룬궁수련자 양수진(楊淑珍)은 2024년 7월 국보에 납치돼 감금 및 모함을 당했고 이어서 징위현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창춘 여자감옥 8감구 ‘공견실(攻堅室)’로 보내져 여러 고문을 당했다.

경찰의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중 양수진의 치아가 부러졌고 그 후 강제로 음식물이 주입될 때 치아가 폐로 들어가 호흡 곤란으로 생명이 위독해져 병원으로 응급 이송됐다. 치아를 빼내기 위해 병원은 그녀의 폐 조직 일부를 절제했다. 치아가 부러진 후 그녀는 정상적으로 식사할 수 없었는데 경찰은 그녀가 ‘밥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치아 하나만 끼워주었다. 이 박해가 구체적으로 구치소에서 일어났는지 감옥에서 일어났는지는 여전히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양수진은 50대로 신앙을 고수하고 시민들에게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하얼빈 감옥에 4년간 불법 감금됐다. 2024년 7월 15일 징위현 공안국 국보대대 대장 자오하이(趙海) 등 경찰은 그녀를 납치해 가택수색을 했고 바이산시 구치소에 감금했다. 그녀를 모함한 공안 인원과 구치소 모두 가족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구치소 기간 동안 그녀는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했고 바이산시 구치소 경찰의 잔혹한 고문(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강제 수액 투여, 모욕과 욕설)을 당했다. 경찰은 그녀를 독방에 가두고 각 감방에서 몇 명의 범죄 용의자를 뽑아 그녀를 감시하고 박해하게 했다. 자주 그녀가 “사람을 때린다! 사람을 때린다! 파룬따파하오!”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목격자에 따르면 그녀의 치아 여러 개가 부러졌다고 한다.

징위현 공안국 국보대대, 징위현 검찰원, 법원 인원들은 배후에서 조작해 그녀를 모함했다. 2025년 1월 29일 설 전에 가족은 양수진이 징위현 법원으로부터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유와 과정 모두 불분명하며 전체 사건이 비밀리에 조작돼 완성됐다.

그 후 양수진은 창춘 여자감옥 8감구로 보내져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1층 7감실(공견실)에 감금됐다. 전향을 거부했기에 매일 꼼짝도 못 하고 작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엄격하게 제한됐고 대변은 극히 드물게 허용됐다. 때로는 쪼그려 앉자마자 강제로 끌어올려져 대변이 사방에 흩뿌려졌는데 바오자는 그녀의 화장지를 한 통씩 뜯어 닦게 했다. 그녀의 엉덩이는 짓물러서 더 이상 의자에 앉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벌서기를 당해야 했다. 아침 기상부터 밤 취침까지 계속 서 있어야 했고 한밤중에도 일어나 보초를 서야 했다. 바오자 다이위(代玉), 치신(齊心)이 온갖 음흉하고 악랄한 수단을 사용해 그녀를 박해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다.

양수진이 감옥에서 단식으로 박해를 계속 반대했는지는 여전히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를 희망한다.

8. 안후이 여자감옥의 흑막: 70대 판원팡 집단 구타, 굶주림과 약물 고문 당해

명혜망 2026년 6월 26일 소식에 따르면, 안후이성 푸양시 70대 파룬궁수련자이자 전 산부인과 의사인 판원팡(范文芳)은 2022년 다시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안후이성 허페이시 여자감옥에서 비인간적인 학대와 약물 박해를 당했다.

판원팡은 원래 푸양시 잉저우구 원펑 주민센터 병원의 산부인과 의사였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그녀는 진선인을 준칙으로 삼아 심신에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그녀는 신앙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감금을 당했고 두 번 세뇌반에 갇혔으며 세 차례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고 세 차례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형기는 각각 7년, 5년, 5년). 누적 불법 강제노동과 징역형 기간이 20년에 달하며 옥중에서 각종 고문을 당해 구사일생을 겪었다.

안후이성 여자감옥 집중훈련대 기간 판원팡은 ‘죄를 인정하지 않고 전향하지 않으며 공산당 가요를 부르지 않고 감옥 규정을 외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무 죄수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다. 죄수들은 바닥을 닦던 더러운 걸레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 입꼬리가 찢어져 피가 나게 했고 그녀가 소리도 내지 못하게 했다. 죄수들은 그녀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으며 그녀의 몸 위에 무릎을 꿇고 누른 채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더욱 잔인한 것은 죄수들이 그녀의 양팔을 잡고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녀 엉덩이와 발뒤꿈치가 피투성이가 된 것이다. 새로 수감된 죄수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몸을 돌려야만 했다. 구타자들이 지쳐 자리를 뜨고 난 후 판원팡은 힘겹게 바닥에서 기어 일어나 감옥경찰에게 “사무 죄수가 사람을 때린다!”고 도움을 청했다. 당직 경찰은 느릿느릿 걸어와 싸늘하게 한마디만 했다. “누가 널 때렸어? 누가 봤어?”

장기적인 학대로 판원팡은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없게 됐고 입안의 치아가 모두 빠져 유동식을 마시며 연명해야 했다. 그 후 판원팡은 11감구로 이감됐다. 그녀는 이른바 전향을 거부하고 ‘파룬따파하오’를 외치는 것을 고수했다. 우두머리 죄수가 들을 때마다 일부러 큰 소리로 공산당 노래를 불러 교란했고 자주 그녀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 이런 고문은 수년간 지속됐다. 감구 구장 황링(黃玲)은 심지어 밥을 주지 말라고 명령했고 때로는 그녀의 밥과 반찬을 대변기에 직접 버리기도 했다. 판원팡은 극한의 배고픔에 시달려 대변기에서 밥을 건져 먹을 수밖에 없었다. 감옥경찰과 죄수들은 오히려 비웃으며 “대변기도 깨끗하다”고 말했다.

11감구 구장 웨이차이(魏彩)는 판원팡을 병원으로 보내 그녀가 ‘정신병’이 있다고 진단하게 하고 정신 억제 약물을 먹도록 강요했다. 판원팡이 거부하자 웨이차이는 모든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보지 말라고 명령한 후 약을 밥에 섞어 강제로 먹였다.

2025년 11월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감옥 측은 판원팡에 대한 약물 박해를 강화해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사했다. 원래 정신이 맑았던 그녀는 표정이 멍해지고 의식이 혼미해지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주요 박해자는 경찰 웨이(魏) 씨다.

9. 집에 ‘쩐싼런하오’ 붙였다가 허베이 라이위안현 허우만윈 가택수색 및 납치 당해

명혜망 2026년 6월 27일 소식에 따르면, 허베이성 바오딩시 라이위안현 라이위안진 수이윈촌 파룬궁수련자 허우만윈(侯曼雲)은 단지 자기 집에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네 글자를 붙였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다. 2026년 6월 12일 이른 아침 그녀는 라이위안현 공안국 소속 10여 명의 경찰에게 침입 및 가택수색, 납치를 당했다. 다음 날 집에 돌아왔을 때 경찰은 여전히 그녀를 위협했다. “이 일은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우리가 조사하고 싶을 때 언제든 갈 거야.”

6월 12일 아침 7시경 라이위안 공안 10여 명이 허우만윈 집 문 앞에 도착했는데 그중 경찰복을 입은 자는 남자 4명과 여자 1명이었고 검은 옷을 입은 자가 7~8명 있었다. 그들은 문밖에서 문을 열라고 요구하며 이른바 ‘소환장’을 내보이고 그녀가 ‘사이비교 홍보물을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양측이 약 30분간 대치한 후 경찰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1미터 길이의 큰 가위를 가져오게 하고 자물쇠를 자르겠다고 위협했다.

허우만윈은 급히 집 안으로 물러나 두 번째 문을 잠갔다. 이어서 남자 둘, 여자 하나가 담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와 열쇠를 빼앗고 첫 번째 대문을 열어 모든 인원을 들어오게 했다. 경찰은 안채, 바깥채, 방 안을 한 바퀴 뒤진 후 허우만윈을 강제로 끌고 갔고 대문을 잠그고 열쇠를 가져갔다.

허우만윈은 라이위안 공안 건물 지하 2층 심문실로 끌려갔다. 그와 동시에 경찰은 가족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다시 그녀의 집으로 돌아와 수색을 했다. 그들은 대련, 연화, 복(福)자를 찢고 벽화 6점, 컴퓨터, 프린터, 휴대폰 등 개인 재산을 빼앗아 갔다.

오전 9시경 허우만윈의 큰아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이 무리들이 토비(土匪, 지방 도적떼)처럼 물건을 뒤지고 빼앗는 것을 보았다. 특히 본 마을에 새로 부임한 마을 관리 쑨리밍(孫黎明, 쑨훙순의 아들, 50대)은 극도로 광분한 태도를 보였는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글자가 있는 물건을 보기만 하면 크기를 불문하고 모두 달려가 찢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대법에 대한 증오가 병적에 가까웠고 미국을 크게 욕했지만 그의 딸은 미국으로 시집가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20년 전 허우만윈의 남편 왕푸순(王福順)이 살아있을 때 집안의 영벽에 ‘쩐싼런하오(眞善忍好)’라는 4개의 큰 전서체(타일)를 새겼다. 남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올해 집을 수리할 때 그녀는 이 네 글자를 붙였다. 오랫동안 그녀의 집을 감시하던 쑨리밍, 하오라오류(郝老六) 등이 즉시 사방에 악의적으로 신고했다.

불법 심문에서 관련 인원들은 뜻밖에도 말했다. “라이위안현에서 너만 감히 그 네 글자를 붙였구나.” 다음 날 오후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낼 때 경찰은 여전히 위협했다. “이 일은 끝나지 않았다. 집에는 파룬궁 물건을 붙이면 안 되고 영벽의 ‘쩐싼런하오’는 종이로 가려라. 우리가 조사하고 싶을 때 언제든 갈 것이다.”

허우만윈의 남편 왕푸순은 이미 4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에 장기간 중공의 박해를 받아 여러 차례 불법 감금, 구타, 벌금을 당해 심신이 심각하게 피폐해졌고 마침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언니 허우푸윈(侯福雲)도 바이스산진(샤베이터우) 파출소 소장 리구이(李貴)의 사주를 받은 경찰에 의해 두 발목을 잡힌 채 바닥에 끌려 다니다가 결국 박해로 사망했다. 허우만윈 본인은 무려 10여 차례나 불법 감금을 당했고 누적 5년에 달하며 그 기간 수차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다.

10. 마링 두 번째 위독 통지 받아, 가족의 감외집행 요구에 변명만

명혜망 2026년 5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2026년 5월 8일 윈난성 제2여자감옥 9감구 경찰과 의사는 전화로 가족에게 5월 5일 마링(馬玲)이 발열과 복부 팽만이 생겨, 5월 7일 감옥에서 마링을 윈난성 감옥 관리국 중심병원에 입원시켰다고 알렸다. 5월 9일 중심병원은 마링에게 병위독 통지를 내렸고 그녀의 전신 상태가 매우 좋지 않으며 여전히 열이 나고 발열 원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이 이전에 요구한 임시 감외집행 신청에 대해 윈난 여자 제2감옥은 여전히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핑계를 대며 발뺌했다.

마링은 올해 69세로 윈난대학 도서관 은퇴 부연구관이었으며 일찍이 10여 년간 감옥에서 박해를 받았고 2024년 6월 다시 납치 및 모함을 당해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26년 4월 24일 윈난성 제2여자감옥 9감구 리(李) 의사(전화: 0871-65126165)는 마링의 가족에게 전화로 마링이 올해 3월 13일 감옥 관리국 중심병원에서 퇴원해 여자 제2감옥 9감구로 돌아왔고, 4월 20일 감옥경찰이 그녀를 쿤명시 옌안병원으로 데려가 진찰하고 신체검사를 했으며, 의사는 기존 상황과 당일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검사 결과를 냈다고 알렸다.

난소 골반 왼쪽 부속기의 악성 종양은 현재 이미 약 9cm까지 자랐다. 위장관에서 새로운 종양이 발견됐는데 의사는 위장관의 이 종양이 원발성이고 난소의 종양이 속발성일 것으로 의심했다. 암은 이미 말기에 이르렀고 가벼운 빈혈이 있었다. 옌안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돌아온 후 마링은 윈난성 제2여자감옥 병원에 머물렀다.

가족은 상황을 알고 4월 27일 다시 윈난성 제2여자감옥 9감구에 마링에 대한 ‘임시 감외집행 신청’을 제출했다. 1월 19일까지 교섭했으나 여자 제2감옥 9감구 왕(王) 경찰(마링 책임 경찰), 여자 제2감옥 청원사무실 류(劉) 경찰은 치료에 협조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링이 잠시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처리해 주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이전 감옥 측의 전화 통보에서는 마링이 치료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말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심지어 1월 6일 왕 씨 성을 가진 여경이 가족에게 전화했을 때 가족이 제출한 임시 감외집행 신청을 어떻게 처리할지 묻자, 왕 경찰은 특별히 또 강조했다. “첫째, 그녀는 우리 병원에서 정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왔다고 해서 우리가 돌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여기도 정규 병원이고 그녀도 정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통화 내내 마링이 치료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말은 없었다.

1월 16일 금요일 오후 왕 경찰과 리 의사가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의사는 마링이 치료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9감구가 집단으로 논의한 결과 마링은 잠시 감외집행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신청을 보류한다고 말했다. 가족이 무슨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지 더 묻자 그녀는 지난주 금요일(1월 16일) 의사가 마링이 치료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알렸고 감외집행 조건 중 치료에 협조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치료에 협조하지 않으면 감외집행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화 통화의 마지막에 왕 경찰은 “그녀는 현재 여전히 우리 국 중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우며 그들이 주장하는 ‘치료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말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따라서 가족은 감옥 관리국 관련 직원들이 직접 국 중심병원에 가서 마링 본인을 대면해 상황을 파악하고 전면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해, 감외집행 여부에 대해 공정한 결정을 내리기를 희망했다.

1월 23일 윈난 여자 제2감옥 청원사무실 류 경찰은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감옥 9감구의 이에 대한 답변은 마링이 잠시 감외집행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인을 요약하면 즉 치료에 협조하지 않아 감외집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감구에서도 가족에게 연락해 마링이 치료에 협조하지 않는 일을 알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족은 이의를 제기했다. 청원사무실이 감옥 관리국 중심병원에서 당사자 마링을 직접 만나지 않았고, 마링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상황에 대해 실지 조사와 질문을 하지 않았으며, 마링 본인에게 묻지 않았고 국 중심병원의 관련 의사 간호사에게도 묻지 않았다. 마링이 12월 26일부터 병원에 온 이후 현재까지의 상황에 대해 이전에 있었던 모든 병력 검사와 신체검사 보고서, 그리고 입원 후의 상황을 포함해 전면적인 파악을 하지 않았다. 단지 9감구의 치료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말만 감외집행을 거부하는 근거로 삼았고, 확인조차 거치지 않은 채 가족에게 치료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외집행을 거부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은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가족은 청원사무실 경찰이 마링의 임시 감외집행 문제에 대해 독립적인 조사를 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결정을 내린 후 가족에게 답변해 달라고 요청했다.

1월 19일 왕 경찰은 전화에서 말했다. “그녀(마링을 가리킴)가 감옥에 들어온 이후 죄를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자신이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또한 임시 감외집행을 거부하는 조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임시 감외집행 규정’을 포함한 후속 보충 규정에는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만 처리할 수 있다는 부가 조건이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이 임시 감외집행을 거부하는 조건이 아닐 뿐만 아니라 반대로 중국 ‘헌법’과 ‘감옥법’이 명확히 보장하는 공민(감옥에 수감된 복역 인원 포함)의 중요한 권리 중 하나, 즉 신소권(申訴權, 억울함을 호소할 권리)이라는 것이다.

‘감옥법’ 제7조 규정: 범죄자의 인격은 모욕당하지 않으며 그 인신 안전, 합법적인 재산과 변호, 신소, 고소, 고발 및 기타 법에 따라 박탈되거나 제한되지 않은 권리는 침해받지 않는다. ‘감옥법’ 제21조 규정: 범죄자가 효력이 발생한 판결에 불복할 경우 신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이는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신청인의 어머니, 당사자 마링의 합법적 권리임을 명확히 한 것으로 감옥의 어떤 부서나 개인도 이를 침해하거나 박탈할 권리가 없으며 마링에게 죄를 인정하도록 강제해서는 안 된다. 만약 강제로 마링에게 죄를 인정하게 하는 행위가 있다면 모두 위법이다. 뿐만 아니라 ‘감옥법’ 규정에 따르면 감옥은 마링의 신소권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감옥법’ 제22조 규정: 범죄자의 신소, 고소, 고발 자료는 감옥이 마땅히 제때 전달해야 하며 억류해서는 안 된다. ‘감옥법’ 제24조 규정: 감옥이 형벌 집행 과정에서 범죄자의 신소에 근거해 판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할 경우 마땅히 검찰원이나 법원에 처리를 제청해야 한다.

9감구 왕 경찰이 한 말은 마링의 임시 감외집행 권리를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죄를 인정하지 않고 신소할 권리도 침해해 ‘감옥법’의 위 규정을 위반했다. 가족은 감옥이 ‘감옥법’ 규정에 따라 마링 및 다른 복역 인원의 신소권을 절실히 보장하기를 희망한다.

3월 23일 가족은 EMS를 통해 윈난성 감옥 관리국 판공실(정부 정보 공개 처리 담당)에 다음 사항을 가족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우편물을 보냈다. 2월 3일 가족이 감옥 관리국의 형벌집행처에 가서 윈난 여자 제2감옥이 위법하게 마링에게 감외집행을 허가하지 않는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처리 결과, 그리고 윈난 여자 제2감옥이 마링이 치료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실적 근거, 마링이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감외집행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법적 근거, 마링의 감외집행을 불허한 책임자의 이름, 직무, 경찰 번호를 공개하라는 내용이었다.

4월 20일 감옥 관리국은 가족에게 정보 공개 신청 답변서를 보냈는데 ‘감옥법 제2조’와 ‘정부 정보 공개 조례 제2조’에 따라 감옥은 국가 형벌 집행 기관이므로 감옥의 법 집행으로 생성된 정보는 형사 법 집행 정보이지 정부 정보에 속하지 않아 정부 정보 공개 신청으로 처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가족은 설 명절 전인 2월 12일에 마링의 전화를 받은 후 줄곧 마링의 소식이 없었고 감옥에서도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4월 10일은 감옥 9감구의 면회일이라 가족이 감옥에 면회를 가서 마링 본인을 만났는데 그녀의 정신 상태는 각 방면에서 모두 좋았고 단지 3월 13일 감옥 관리국 중심병원에서 돌아와 감옥 9감구로 왔으며 4월경에 배탈이 나서 감옥 내 병원에도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5월 8일 가족은 감옥 관리국 중심병원에서 마링이 걸려 온 전화를 받았는데 그녀가 화학 요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링 본인의 목소리는 이전처럼 크고 힘차지 않았고 다소 미약했지만 그녀는 의지가 확고했고 머리는 맑았다. 국내외 각계 인사들이 정념으로 그녀를 도와, 마링을 하루빨리 구출해 출옥시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맺음말

파룬궁은 진정한 불가(佛家)의 고덕대법(高德大法)으로 수련자에게 진선인을 준칙으로 삼도록 가르치며 민족, 국가, 사회에 백 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 이 때문에 파룬따파는 지금까지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으며 홍콩과 대만을 포함한다. 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진선인을 수련하는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한 것은 모든 시비와 선악을 뒤바꿔 놓았고 사회 도덕을 타락시켰으며, 동시에 중국의 법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어 중국 사회에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가져왔다. 오늘날 중국에 거짓(假), 악(惡), 투쟁(鬪)이 곳곳에 만연하고 도덕이 타락하며 탐오부패가 만연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모든 중국인들이 이 박해의 피해자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할 때 선량함과 정의에 대한 박해는 중공 악당이 통제하는 크고 작은 감옥 등 검은 소굴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현실은 참혹하고 결코 선량한 사람을 마음대로 괴롭혀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아직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악인에 대한 업보 사례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악당의 정보 봉쇄로 인해 대량의 중국인들이 무지하고 겁 없이 악행을 저질러 자신의 앞날을 끊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하늘과 같은 큰 죄를 짓는 것이며 진정으로 자신을 박해하는 것이다. 누가 중공 악마의 억압과 미혹하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는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른다는 천리가 실현될 때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을 위해 미래를 재조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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