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쓰촨성 통신원)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 진장(錦江)구 파룬궁수련자 덩웨이융(鄧維勇)은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고 쓰촨성 자저우(嘉州) 감옥에서 박해받아 기억상실, 뇌졸중, 간질, 당뇨병 등 16가지 질병을 얻었다. 2022년 5월 10일, 출소 당시 그는 온몸이 마비돼 힘이 없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으며, 완전히 기억을 상실했다. 그는 2025년 9월 27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57세였다.
덩웨이융은 1967년 11월 11일에 태어났으며 청두시 진장구에 거주했다. 그는 집안의 효자였고 직장에서는 공인된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1986년에 군에 입대했고, 1990년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며, 1995년부터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인품이 좋고 성격이 밝으며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해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번 돈을 거의 다 선행을 베푸는 데 썼다.
여러 차례 납치 및 강제노동 박해 받아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 악당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한 이후, 덩웨이융은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에 여러 차례 납치됐다. 2001년 초, 그는 청두시 진장구 사허푸(沙河鋪) 파출소에 납치됐다. 2002년 2월 7일 부당하게 2년 6개월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쓰촨성 몐양(綿陽)시 신화(新華)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를 받았다. 그 기간에 가족은 어떠한 통지서나 판결문도 받지 못했으며, 2003년 5월 26일에야 풀려났다.
2017년 5월 5일부터 17일까지 덩웨이융은 청두시 진장구 스쯔산(獅子山) 파출소, 아파트 단지 관리소장, 경비원 등에게 여러 차례 괴롭힘을 당했다. 5월 5일, 스쯔산 파출소 관할 경찰 리치궈(李其國)와 린(林) 씨 관리소장이 덩웨이융의 집에 와서 최근에 무슨 활동을 했는지, 밖에서 전단지 자료를 배포했는지, 어떤 사람들과 접촉했는지를 캐묻고 사진을 찍었다. 13일 하루 종일, 아파트 정문에서 두 사람이 덩웨이융의 집을 감시했다. 16일, 아파트 전기 수리공이 덩웨이융의 집에 5시간 동안 전기를 끊었다.
부부 모두 부당하게 징역형 선고받아
2018년 5월 5일, 덩웨이융과 아내 리슈잉(李秀英)은 청두시 진장구 스쯔산 파출소에 납치돼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당했고, 집 안의 대법서적, 자료, 컴퓨터 등 개인 물품을 강탈당했다. 덩웨이융 부부는 신진(新津) 세뇌반에 감금돼 10일 동안 고문과 자백 강요를 받았으며, 이후 청두시 피(郫)현 구치소로 이송돼 계속 감금돼 모함을 받았다.
2019년 12월 26일 오전, 청두시 진장구 법원은 덩웨이융과 리슈잉에 대한 재판을 열어, 덩웨이융에게 부당하게 4년형과 벌금 1만 위안(약 190만 원)을 선고하고 리슈잉에게 2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2020년 6월, 덩웨이융은 러산(樂山)시 자저우 감옥으로 이송됐다. 가족이 면회를 신청했지만 감옥 측은 허락하지 않았고, 가족에게 많은 증명서를 떼오라고 요구했으며, 증명서를 다 떼오자 여러 번 핑계를 대며 미뤘다. 이후 감옥 측은 마침내 한 달에 한 번 화상 면회를 할 수 있도록 동의했다.
자저우 감옥서 박해로 위독해져
2021년 7월, 덩웨이융은 자저우 감옥에서 딸과 화상 면회를 할 때 그녀에게 말했다. “백신을 맞은 후 몸이 너무 불편하고 머리가 아프며 명치가 답답하고 토할 것 같아.” 자저우 감옥은 당시 모든 수감자에게 의무적으로 두 차례 백신을 접종하게 했는데, 7월 1일에 1차 접종을 하고 7월 22일에 2차 접종을 했다. 덩웨이융은 2차 접종 후 구토, 어지럼증, 설사, 팔다리 무력감, 전신 식은땀 등 뚜렷한 부작용을 보였다.
심각한 증상에도 불구하고, 감옥과 감옥경찰은 신속한 구급 조치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노동 강도를 더욱 높였다. 덩웨이융이 있는 감구(監區)는 전자 기기 가공을 했는데, 애초에 노동량이 고강도였음에도 감옥경찰은 여전히 매일 그에게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할당량을 채우라고 강요했다. 다 완성하지 못하면 체벌을 받았는데, 저녁에 작업을 마치고 감구로 돌아온 후 그려진 원 안에 강제로 서 있어야 했고 밤 10시가 돼서야 침대에 누워 쉴 수 있었다.
감옥 내부에서는 이런 체벌을 의도적으로 ‘학습’이라고 포장해 강제적인 처벌의 본질을 감추고, ‘문명적인 관리’, ‘학습 개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수감자는 소위 ‘학습’이라는 것이 노골적인 체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덩웨이융은 장기간 억지로 서 있는 벌을 받아 몸이 계속 한계치로 내몰렸고, 서 있다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는 일이 잦았다. 감옥경찰은 그제야 마지못해 그를 의무실로 끌고 가 주사를 놓고 약을 먹였다. 작업장으로 돌아오면 휴식도 허락하지 않고 계속 강제노동을 시켰다.
덩웨이융 박해를 담당한 주임 경찰 장인(張寅, 장인<張銀>으로도 불림, 경찰번호 28558656)은 노동 강도를 가중했을 뿐만 아니라 덩웨이융이 직접 구매한 영양제를 전부 몰수하고 이른바 ‘식단 통제’를 실시했다. 장인은 “환자는 많이 먹으면 안 돼. 몸에 안 좋아”라고 주장하며 이를 핑계로 덩웨이융의 기본적인 영양 섭취를 박탈했다. 덩웨이융은 배가 고파 매일 밤마다 잠에서 깼고 수돗물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8월 17일이 돼서야 감구는 몰수했던 물품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이 기간에 덩웨이융은 거의 매일 체벌을 받았다. 8월 30일과 31일, 9월 1일 새벽에 이르기까지 그는 계속된 체벌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8월과 9월 동안, 가족은 줄곧 화상을 통해 덩웨이융을 만날 수 없었다. 9월 27일, 경찰은 갑자기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덩웨이융이 이미 9월 2일에 입원했다고 통보했다. 가족이 입원 이유를 캐묻자, 경찰은 그저 “처음엔 머리가 몽롱하고 아프다더니 나중엔 걸음걸이가 불안정해 자주 넘어졌고, 결국 어느 날 쓰러졌다”라고만 말했다. 전 과정에서 감구의 장기간 체벌, 노동량 가중, 영양제 몰수 등 박해 사실은 단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10월 3일, 가족은 다시 자저우 감옥의 통지를 받고 덩웨이융에게 위독 통지서가 내려졌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으며, 즉시 직계 가족 5명을 배정해 러산시 시중심병원 응급실로 급히 와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라는 요구를 받았다.
60여 명의 경찰이 그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길 기다려
가족이 급히 병실에 도착했을 때, 눈앞의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덩웨이융은 철제 침대에 고정돼 온몸이 ‘큰 대(大)’ 자 모양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양손과 양발에 모두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침대 틀에 묶여 스스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의 팔에는 여전히 정체불명의 약물이 투여되고 있었다.
병원에는 60여 명의 경찰이 와 있었다. 경찰은 가족에게 다가가지도, 만지지도, 사진이나 영상을 찍지도 못하게 엄격히 명령했고 “본 것을 인터넷에 올리지 마”라고 경고했다. 가족이 병인을 묻자 감옥 의사는 가볍게 넘기려 하며 “낮잠을 잘 때 입에 거품을 물고 전신 경련을 일으키며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고, 불러도 깨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장기간 체벌, 노동 가중, 영양제 몰수 등과 관련된 어떠한 진실도 밝히기를 줄곧 거부했다.
덩웨이융의 신체 상태는 더욱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 두 눈의 다크서클이 극심했고 왼쪽 눈은 시퍼렇게 멍들어 심한 타격을 받은 것 같았다.
· 이마에는 꿰맨 흔적이 뚜렷한 상처가 하나 있었고, 그 옆에는 마른 핏자국이 있었다.
· 그는 계속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으며 가족이 오랫동안 부른 뒤에야 간신히 눈을 떴다.
· 깨어난 후 그는 놀랍게도 자신의 아내를 알아보지 못했고, 친형만 간신히 알아봤다.
· 그는 반복해서 ‘목이 마르다’고 말했고, 입술은 갈라져 검붉은 핏자국이 배어 있었다.
· 물을 연거푸 여러 잔 마셨음에도 여전히 극도로 갈증을 느꼈는데, 오랫동안 물도 마시지 못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감옥 측이 말하는 ‘갑작스러운 발병’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낮부터 밤 12시까지 덩웨이융에게 밥을 주지 않았고, 가족이 밥을 사 왔지만 경찰은 그에게 먹이지 못하게 했다. 그 외에도 그의 팔에는 마른 핏자국이 있었고, 양손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으며, 손톱 밑은 온통 새까만 것들로 가득했고, 두 종아리는 매우 앙상하고 붉게 변해 있었으며, 바지에도 마른 핏덩어리 몇 개가 묻어 있었고, 발바닥 피부는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이 전부 뒤집혀 있었으며 핏자국도 있었다!
당시 54세였던 덩웨이융은 오히려 7~80대 노인처럼 늙어 보였다. 모든 경찰은 가족이 사람을 빼앗아 갈까 봐 두려워하며 덩웨이융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60여 명의 경찰이 병원 전체를 겹겹이 포위했고, 20여 명의 경찰이 응급실도 물샐틈없이 에워쌌으며 전 과정을 녹화하는 경찰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녹화를 허락하지 않았고 덩웨이융에게 민감한 말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귀에 대고 귓속말을 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이 감옥 의사에게 상황을 묻자 그는 “죄수들은 매일 낮잠을 자야 하는데 오늘 낮잠이 끝난 뒤 불러도 덩웨이융이 깨지 않았고, 또 약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 거품을 물었어.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중과 간질이야”라고 말했다.
가족의 병보석 요구가 거부당해
당일 내내 감옥경찰 3명이 덩웨이융의 가족을 따라다녔는데, 그중 한 명은 감옥과 과장 양옌강(楊彦剛)이었다. 그는 가족에게 이 일을 인터넷에 폭로하지 말라고 말했다. 가족이 병보석을 요구했지만 감옥 측은 그의 상황이 병보석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불허했다.
10월 4일, 덩웨이융은 청두시 솽류(雙流) 항공항(航空港) 죄수 병동 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그곳에 3개월 넘게 감금돼 치료를 받았다. 도착 후 현지 경찰은 또 가족에게 덩웨이융이 “조현병을 앓고 있어서 사람을 때린다”라고 공언하며, 그에게 조현병 치료제를 먹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어떠한 의학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왜 이전에 심각한 신체적 상해와 의식 혼란이 나타났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 후 덩웨이융은 또 진탕(金堂) 죄수 병동 감옥으로 이감됐다. 출소하는 날까지 그는 진탕 병동 감옥에서 감금되어 있었다. 만 4년의 불법 감금은 단 하루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동안 가족이 여러 차례 병보석을 신청했지만, 감옥 측은 덩웨이융의 생명 위험과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건강 상태를 완전히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거절했다.
2022년 2월 28일, 진탕 병동 감옥은 갑자기 가족에게 조현병으로 인해 덩웨이융에게 또 위독 통지서가 내려졌다고 알렸다. 28일 오후에 가족은 화상 면회를 예약하고 즉시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덩웨이융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 잘 서지 못했고, (흉터를 가리기 위해서인지)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이빨이 다 빠져 있었고(집에 있을 때 덩웨이융은 치아가 전부 성했고 빠진 이가 하나도 없었다), 발음이 불분명하고 정신이 혼미했다. 감옥 측은 줄곧 신체가 건장하고 건강했던 덩웨이융이 왜 위독해지고 조현병에 걸리게 됐는지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2022년 5월 10일, 덩웨이융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던 날, 덩웨이융의 동생이 경찰차에서 그를 업고 내렸다. 당시 그는 온몸이 마비돼 힘이 없었고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으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완전히 기억을 상실해 집 안의 모든 사람과 물건을 아주 낯설어했다. 가족이 그를 병원에 데려가 건강검진을 한 결과, 뇌졸중, 간질, 당뇨병, 고혈압 등 16가지 질병이 발견됐다. 덩웨이융은 1986년에 군에 입대했을 정도로 몸이 아주 좋았고 여러 해 동안 큰 병에 걸린 적이 없었는데, 그가 감옥에서 대체 어떤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억울하게 세상 떠나
덩웨이융이 귀가한 후, 가족은 그를 크고 작은 10여 군데의 병원에 데려가 진찰을 받게 했고 수십만 위안을 썼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으며, 경찰은 여전히 여러 차례 집으로 찾아와 괴롭혔다. 그때 그의 머리카락은 이미 듬성듬성했고 온통 백발이었다! 의식도 불분명하고 기억력이 심각하게 감퇴했으며, 뇌졸중을 동반해 두 다리로 설 힘이 없어서 휠체어에만 앉아 있어야 했다. 대소변도 스스로 가릴 수 없었고 때로는 횡설수설하며 주의식이 몽롱했다. 정신이 맑아질 때면 자신도 조급해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덩웨이융은 귀가 후 종일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감고 혼수상태로 잠을 잤고, 휠체어에 앉아서도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운이 없었으며, 줄곧 눈을 뜨지 못했고 두 다리도 설 수 없었다. 가족이 덩웨이융을 데리고 크고 작은 10여 군데의 병원에 가 진찰을 받게 하며 수십만 위안을 썼지만 치료하지 못했다. 경찰은 또한 수시로 집에 와서 괴롭혔다. 꿈속에서 덩웨이융은 자주 “내 수갑과 족쇄를 풀어! 밧줄을 풀어! 돌로 내 무릎을 찍지 마! 약 안 먹어!”라고 소리쳤다. 감옥에서 그에게 무슨 독약을 먹이고 무슨 독주사를 놓았기에 그가 이렇게 비정상적인 상태에 이르렀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가족의 정성 어린 보살핌 속에서 덩웨이융은 3년 넘게 버텼지만, 결국 2025년 9월 27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자저우 감옥은 옛 쓰촨성 우마핑(五馬坪) 강제노동농장과 러산 사완(沙灣) 감옥이 합병된 곳으로 정문 밖에는 ‘천마(晨馬) 그룹 유한회사’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이곳은 쓰촨성에서 남성 파룬궁수련자들을 감금하는 주요 감옥으로, 서 있기 벌, 전기봉 충격, 야만적인 구타, 몇 초 만에 밥 먹기, ‘오토바이 타기’ 등의 혹형을 사용해 파룬궁수련자들의 전향을 강요하며, 독주사 투여 등도 포함된다.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2023년까지 자저우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수련자는 26명에 달하며, 파룬궁수련자의 가족 한 명도 박해로 사망해 총 27명에 이른다. 어떤 이는 감옥에서 사망했고, 어떤 이는 위독한 상태로 귀가해 얼마 안 되어 사망했다. 겨우 30세였던 남성 파룬궁수련자 팡쉰(龐勳, 쓰촨인민라디오방송국 진행자)은 2020년 7월 경찰에 납치된 후 부당하게 5년형을 선고받았고, 2022년 12월 2일 자저우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는데 시신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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