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치타이허(七台河)시 파룬궁수련자 쑨룽샤오(孫榮孝), 신수룽(辛淑榮) 부부는 2023년 2월 28일 치타이허시 공안국 타오둥(桃東) 파출소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전에 가택수색으로 빼앗긴 파룬궁 서적을 돌려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두 사람이 약속대로 파출소에 도착하자 경찰은 이들을 속여 납치했고 치타이허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했다.
중국공산당(중공)의 20여 년에 걸친 지속적인 파룬궁 박해는 이 부부의 심신에 감당하기 어려운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쑨룽샤오는 다년간의 고문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오랫동안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신수룽은 남편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박해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을 간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찰의 장기간 끊임없는 괴롭힘과 공포, 현실적인 생활고에 시달리던 69세의 신수룽은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2024년 11월 16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현재 쑨룽샤오는 온몸이 검게 변했으며 장기간 누워 지낸 탓에 신체 여러 부위에 심각한 병변이 발생해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소변줄을 꽂은 채 타인의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이런 위독한 상태임에도 치타이허시 공안 부문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으며, 이른바 ‘감독 관리’를 명목으로 매주 사진을 찍어 파출소로 전송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1954년생인 쑨룽샤오와 1956년 음력 12월 18일생인 신수룽은 원래 치타이허시 보리(勃利)현 청시가에 거주하다 치타이허 시내로 이주했다. 두 사람은 1997년 6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진선인(眞·善·忍) 기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면서 심신 상태가 눈에 띄게 개선됐고 성격도 밝고 평온해졌다. 쑨룽샤오를 다년간 괴롭히던 오십견과 관절염은 치료하지 않고도 나았으며 안색도 붉어졌다. 부부는 성실하고 남 돕기를 좋아해 친척과 이웃들 사이에서 평판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1999년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시작한 후, 그들의 원래 평온하고 화목했던 생활은 완전히 깨졌고 이어서 20여 년에 달하는 감금, 고문, 괴롭힘과 정신적 학대가 잇따랐다.
1. 납치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받다
2002년 6월 14일 아침 8시경, 치타이허시 안전국은 보리현 공안국 바이위강(白玉剛) 등 4~5명과 결탁해 퇴근하던 쑨룽샤오를 길에서 납치했다. 그들은 현(縣) 제4중학교 북측 아파트의 한 빈집(그들이 임대한 것으로 추정)으로 그를 끌고 가 불법 심문했고 강제로 집 열쇠를 빼앗았다. 이어서 경찰은 어떠한 합법적인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은 채 무단으로 그의 집에 침입해 미친 듯이 가택수색을 했다. 대법서적, 사부님 법상, 녹음 장비, 복사 및 인쇄 기재 등 대량의 개인 물품을 강탈했으며 악의적으로 배추 절임 독까지 깨뜨렸다. 강탈하고 파괴한 물품이 차 한 대에 가득 찼고 바이위강은 가치가 ‘10만 위안’이라고 떠벌렸다.
경찰은 신수룽을 교통경찰대 3층으로 납치했다. 청시 파출소장 류(劉) 씨와 다른 몇몇 경찰은 신수룽의 한 손은 위로, 다른 한 손은 아래로 향하게 해 비스듬히 묶고 장시간 행동을 제한한 채 번갈아 가며 자백을 강요했다. 오후 3시가 넘도록 고문이 지속되자 신수룽은 경련을 일으키며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실려 가 응급 처치를 받았다. 당일 밤 11시 반, 경찰은 극도로 허약한 그녀를 또다시 현 구류소로 납치했고 이후 치타이허시 구치소로 이송했다가 십여 일 뒤 다시 보리현 구류소로 납치했다.
7월 31일 오후, 신수룽에게 심근경색 증상이 돌발했다. 경찰은 책임을 질까 두려워 마지못해 병보석에 동의했다.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장 장둥춘(姜東春)은 처음에 여전히 석방을 거부하다가 병원 심전도에 신수룽의 맥박과 혈압이 없어 언제든 사망할 수 있다고 나오자 마지못해 귀가에 동의했다.
이와 동시에 쑨룽샤오는 이후 현 형사경찰대로 끌려갔고, 치타이허시 안전국과 보리현 공안국 국보대대에서 4일 밤낮으로 심문했다. 그들은 누구와 연락하는지, 누구의 지시를 받는지, 인쇄한 자료를 누구에게 주는지 말하라고 강요했다. 그들은 이것을 무슨 지하 조직 사건으로 조작해 박해를 확대하고 공을 세워 포상을 받으려 기도했다. 치타이허시 공안국 직원들은 또 쑨룽샤오를 치타이허 공안국으로 끌고 가 하루 밤낮을 심문했다. 사건 담당자는 부과장급 수사관 천샹(陳祥), 천룽찬(陳龍燦) 등이었다. 심문 기간 그들은 쑨룽샤오에게 장시간 기마 자세(일종의 고문)를 강요해 기절하게 했다. 그들은 취조실에서 연거푸 담배를 피우며 연기로 쑨룽샤오를 괴롭혔다. 쑨룽샤오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라 어찌 견딜 수 있었겠는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들은 쑨룽샤오에게 밥을 주지 않아 여러 끼니를 굶겼다. 그들은 또 쑨룽샤오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잠을 못 자게 해 머리가 어지럽고 방 안이 빙빙 도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불법 심문 후 쑨룽샤오는 예전 치타이허 제2구치소(북산에 위치)에 17일간 형사 구류됐다가 다시 보리현 구류소로 옮겨져 불법 감금됐고, 2002년 8월 1일 전에 현 구류소에서 현 구치소로 이송돼 불법 감금됐다.
신수룽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쑨룽샤오는 부당하게 4년형 선고받아
이번 박해로 신수룽은 47일간 불법 구류됐고, 집에 돌아온 지 보름도 안 돼 경찰이 또다시 그녀를 납치하려고 사방으로 잡으러 다니자 이후 신수룽은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다.
쑨룽샤오는 현 구치소에 거의 1년 가까이 불법 감금된 후, 보리현 법원에서 이른바 ‘형법 300조’로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고 2003년 7월 15일 치타이허시 감옥으로 납치됐다. 당시 박해에 가담한 책임자는 치타이허시 안전국 부국장 스(石) 씨, 치타이허시 정법위 부서기 량(梁) 씨, 보리현 공안국 부국장 쑹궈량(宋國良), 국보대대 대장 장둥춘, 부대장 바이위강, 검찰원 위안샤오춘(袁曉春), 법원 왕신(王昕), 한청궈(韓成國) 등이었다.
쑨룽샤오는 치타이허 감옥 집훈대에 15일간 갇혀 있다가 감구로 이송돼 구멍탄을 만드는 노역에 시달렸다. 치타이허 감옥에서는 설사만 했고 먹는 족족 설사해 불과 며칠 만에 뼈만 남을 정도로 야위었으며 손등 핏줄 있는 곳이 푹 파여 피가 없었고, 몸이 허약하고 힘이 없어 걸음이 비틀거렸으며 가래를 뱉을 힘조차 없었다. 두 손으로 빈 세숫대야를 들지 못했고 바닥에 쪼그려 앉으려면 두 손으로 바닥을 짚어야만 했다. 이 지경이 됐는데도 텅(滕) 씨 성을 가진 형사범(반장)은 여전히 쑨룽샤오에게 육체노동을 강요했고, 수레를 밀 때 뛰면서 밀게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구타를 당했다. 감옥경찰은 삼각 가죽벨트로 사람을 때리면서 “죽지 않을 정도로만 때리면 된다”라고 말했다.
치타이허 감옥에 있은 지 두 달 반 만인 그해 9월 말, 쑨룽샤오는 무단장(牡丹江) 감옥으로 납치돼 먼저 집훈대에 갔다가 이후 1감구로 배정됐다. 무단장 감옥 1감구는 파룬궁수련자 전향(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에 매우 열성적이었다. 그들은 많은 죄수를 배치해 파룬궁수련자를 감독하게 했고, 파룬궁수련자 1명당 7~8명의 죄수를 배정해 전향 관리를 책임지게 했으며 전문적으로 죄수 1명이 밀착 감독해 좌우를 떠나지 않게 했다.
감옥은 파룬궁수련자에게 ‘4서’(회개서, 비판서, 결렬서, 보증서 등 4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고, 쓰지 않으면 구타하고 고문했다. 형사범을 시켜 수련자를 감시하게 하고 그들에게 전향을 강요했으며 거짓으로라도 ‘4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죄수들이 파룬궁수련자를 바오자(包夾, 24시간 밀착 감시)하면 가산점을 받아 감형될 수 있었다. 형사범들은 감형을 위해 온갖 수단을 써서 파룬궁수련자에게 전향을 강요했다. 쑨룽샤오는 전향하지 않아 지시(雞西)시 살인범 주뎬화(朱殿華), 자무쓰(佳木斯)시 살인범 류즈쥔(劉志軍), 무단장시의 런수웨이(任書偉)에게 두 차례나 심한 구타를 당했다.
어떤 파룬궁수련자가 전향하지 않자 죄수들은 그를 누르고 사포로 피부를 문질러 피가 날 때까지 벗겨냈다. 벗겨진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다시 그 딱지를 문질러 또 피가 나게 했고, 이 부위가 아물고 나면 피부가 검게 변해 다시는 본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2004년 12월, 쑨룽샤오는 불과 4일 사이에 두 차례나 참혹하게 구타를 당했다. 첫 번째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맞아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 없었고, 이틀 뒤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또다시 여러 명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다. 그들은 50대가 넘은 쑨룽샤오를 바닥에 나뒹굴도록 때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억울한 옥살이를 회상하며 쑨룽샤오는 “단지 안 죽었을 뿐이지, 마음이 좁았다면 죽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쑨룽샤오를 박해한 감구 지도원은 리제즈(李潔志), 감구장 옌산밍(閆善明), 중대장 둥위장(董玉江), 지도원 리웨이(李偉), 감옥경찰 리위훙(李玉宏), 왕허(王和)였다.
수차례 치타이허시 공안 경찰의 박해를 받다
쑨룽샤오가 2006년 6월 13일 출소하자 보리현 청시가 파출소는 그를 요주의 인물로 취급했고 신분증을 재발급받으려면 ‘보증서’를 쓰라고 했다.
쑨룽샤오와 신수룽은 이후 치타이허시로 이주했으나 치타이허시 공안 경찰에게 수차례 박해를 받았다. 2015년 신수룽은 치타이허시 베이안 뉴타운 아파트 단지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돼 구류됐다.
2019년 11월 어느 날 오전, 신수룽은 큰길을 걸어가면서 진상을 알리고 있었다. 그 길에는 사람이 꽤 많았는데 갑자기 경찰차 한 대가 그녀 곁에 서더니 차에서 3~4명이 내려 그녀를 경찰차로 밀어 넣었다. 그들은 누군가 그녀를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신수룽을 치타이허시 신싱 공안분국 신청 파출소로 납치해 ‘호랑이 의자’(고문 도구)에 묶고 가방 속 자료가 어디서 났는지 말하라고 강요했다. 나중에 그녀의 남편이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이유로 4년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2층에서 류야저우(劉亞舟)라는 소장이 내려와 신수룽의 이름을 부르며 “어디서 났는지 말 안 할래?”라고 말하더니 다짜고짜 그녀를 세게 발로 찼다. 그가 무엇을 묻든 신수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3시가 넘어 경찰은 신수룽을 화장실로 데려가 물었다. “말할래, 안 할래? 말 안 하면 매달아 놓고 옷을 다 벗긴 뒤 물을 끼얹고 창문을 열어 얼려 죽일 거야. 죽으면 자살로 칠 테다.” 한 경찰이 그녀를 구석으로 밀치고 발로 그녀의 아랫배를 찼으며, 밀어서 넘어뜨렸다가 다시 잡아당겨 일으켜 세우는 등 이렇게 괴롭히면서 말할 것인지 물었다. 신수룽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말했다. “잘 들으세요. 난 오늘 목숨을 내놓았어요. 생사를 내려놓았으니 절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밤이 되자 신수룽은 구치소로 납치됐고 불법 구류 10일 만에야 풀려났다.
2022년 7월 11일 아침 7시 20분,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주민센터에서 왔다고 했다. 쑨룽샤오가 문을 열자 사복 차림의 경찰 17~18명이 들어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중에는 치타이허시 타오산(桃山) 공안분국 국보대장 빙원라이(邴文來), 타오둥 파출소 왕옌(王岩), 타오베이 파출소 구역 경찰 쑨더룽(孫德龍)이 있었고 여자 두 명도 있었으며 나머지는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긴장됐고 두 사람이 곧바로 쑨룽샤오를 가운데 끼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다짜고짜 물건을 뒤지기 시작해 사부님 법상, 대법서적 40여 권, 컴퓨터 3대, 프린터 2대, 인쇄 용지 7묶음 남짓, 절단기 2개와 잉크 등 다양한 소모품을 전부 가택수색으로 빼앗아 갔다.
당시 그들은 쑨룽샤오를 끌고 갔다. 신수룽은 며칠 전 집에서 목욕하다 넘어져 다쳤는데 상처가 깊어 스스로 생활하기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납게 그녀를 끌어당기고 야만적으로 그녀를 밀치면서 이 물건들이 다 어디서 났느냐고 심문했다. 그들은 신수룽의 집에서 12시간 동안 괴롭히다가 저녁 7시 반이 되어서야 떠났다. 쑨룽샤오는 그날 밤 풀려나 돌아왔다. 부부는 6개월간 거주지 감시를 받았다.
신수룽은 박해로 세상을 떠나고, 쑨룽샤오는 혼수상태에 빠지다
중공 경찰의 장기적인 감시와 괴롭힘은 쑨룽샤오, 신수룽 부부의 심신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고 그들의 건강을 갈수록 악화시켰다.
2023년 2월 28일, 치타이허시 공안국 타오둥 파출소는 신수룽과 쑨룽샤오에게 전화를 걸어 가택수색으로 빼앗긴 파룬궁 서적을 파출소로 찾아가라고 유인했다. 사실 그들을 납치해 박해하려던 것이었다. 이번에 풀려나 돌아온 후, 중년부터 박해를 받아 어느덧 칠순을 맞이한 이 부부는 더 이상 집에서 살 수 없었다. 그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잇달아 치타이허 집을 떠나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
중공 악당의 20년에 달하는 박해로 그들은 막대한 상처를 입었다! 2023년부터 쑨룽샤오의 건강은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수룽은 남편이 스스로 생활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박해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을 세심하게 돌보았다. 공안 경찰의 괴롭힘과 고된 생활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신수룽의 몸은 마침내 버티지 못하고 2024년 11월 16일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의 죽음은 쑨룽샤오에게 틀림없이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지금의 쑨룽샤오는 이미 일 년 내내 병상에 누워 혼수상태에 빠져 있고, 몸에는 소변줄이 꽂혀 있으며, 방 안에는 코를 찌르는 지린내가 진동한다. 현재 쑨룽샤오는 온몸이 검게 변했고 엉덩이 한쪽이 심하게 까맣다. 이런 상황인데도 치타이허시 공안 부문은 여전히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 하며, 매주 반드시 사진을 찍어 파출소에 전송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쑨룽샤오의 생명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며, 중국에 얼마나 많은 파룬궁수련자가 신수룽 부부와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그저 이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경찰도 피와 살로 이뤄진 사람이고 부모가 낳았으며 당신들에게도 친척과 친구, 부모 형제가 있다! 당신들이 자손을 거느리고 천륜지락을 누릴 때, 당신들이 박해해 죽음에 이르게 한 신수룽 부부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원문발표: 2026년 4월 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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